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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룩시장의 정보를 취합하여
네 징후를 포착한다
몸속의 소식들은
언제나 한발 늦기 마련이다
진검승부를 펼치기도 전에
몸을 꺾어버리는 너의 비겁함을
술잔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단기기억은 해마가 관장하고
장기기억은 대뇌피질이 저장한다지만
술 취한 너에 관한 기억이라면
씁쓸한 입술과 어리석은 간뿐이다
인생에서 승부란 늘 뻔한 이치다
목소리 센 놈이 일견 유리해 보이지만
누군가의 마음을 취하게 하는 자가
해마 속에 파고들고
누군가와 마음을 섞는 자만이
대뇌피질에 자리 잡는 것이다
고래고래 소리 지르면서도
누구와도 마음 섞지 못하고
세상을 향해 헛구역질만 해대는
멍청한 간이여,
내 술이나 한 잔 받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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肝은 침묵의 장기이다. 그래선지 간에 대한 속설도 많고 풍자도많다. 간은 배 밖으로 튀어 나오기도 하고 심하게 붓기도 하고 콩알만큼 줄어들기도 한다. 쓸개와 한 통속이 되어 벼룩의 간을빼먹기도 한다. 간담이 서늘해지기도 하고 깜짝 놀라 떨어지기도 한다. 인체의 화학공장으로 불리는 간은 여러 가지 물질을 분해, 합성, 저장하며 해독 작용도 한다. 한마디로 우리 몸이 기본적 기능을 유지하고 외부의 해로운 물질로부터 생명을 지키는데 필수적인 장기인 것이다. 하지만 이토록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면서도 별다른 증상을 호소하지 않는다. 심하게 망가지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아픔을 표출한다.
간과 술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간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먼저 술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우리가 마신 술은 장에서 흡수되어 간을 거쳐 대사되는데, 알코올이 분해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대사물질이 바로 간 손상의 주범이기 때문이다.
술은 알코올 성분이 1% 이상 들어있는 모든 음료를 말한다. 술의 역사는 인류에 대한 역사와 그 맥을 같이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법적으로 널리 허용되는 중독성 약물은 알코올, 카페인, 담배인데 이 중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 것 역시 알코올이다. 원시시대에 나무에서 과일이 떨어져 발효된 것을 원숭이가 마시고, 그 후 인간들도 같이 마시며 자연스럽게 술의 기원이 되었으리라 추측한다. 인류의 탄생과 더불어 최고의 음식 중 하나로 여겨지다가 마침내 인간의 문화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리라.
탈무드에 나온 술의 기원은 사뭇 교훈적이다.
이 세상에서 최초의 인간이 포도나무를 심고 있었다. 그때 악마가 찾아와서 무엇을 하고 있냐고 물었다.
인간이 대답했다. "나는 지금 놀라운 식물을 심고 있지. 이 식물에는 아주 달콤하고 맛있는 열매가 열리는데, 익은 다음 그 즙을 내어 마시면 아주 행복해진다.” 그러자 악마는 동업자를 자청하고 양과 사자, 원숭이, 돼지를 끌고 왔다. 그러고는 그것들을 죽여 그 피를 거름으로 썼다. 포도주는 이렇게 해서 세상에 처음 생겨났다고 한다. 그래서 술은 처음 마시기 시작할 때는 양처럼 온순하고, 조금 더 마시면 사자처럼 사나워지고, 좀 더 마시면 원숭이처럼 춤추거나 노래를 한다. 그리고 더 많이 마시게 되면 토하고 뒹구느라 돼지처럼 더럽게 된다. 이것은 악마가 인간에게 준 선물이었다. 악마가 인간을 찾아가기가 너무 바쁠 때는 대신 술을 보낸다.
그렇다고 술이 꼭 악마의 편에 서 있는 것만은 아니다. 술은 우울감과 긴장감을 단번에 해소시켜 준다. 서먹한 인간관계도 한순간에 풀리게 한다. 평소에는 용기가 없어 하지 못했던 말이나 행동도 거침없이 할 수 있는 마법 같은 존재이다.
그리스 비극 작가인 에우리피데스는 "한 잔의 술은 재판관보다 더 빨리 분쟁을 해결해 준다."라고 했으며 히포크라테스는 "술은 음료로써 가장 가치 있고 약으로써 가장 맛이 있으며 음식 중에서 가장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라며 술의 순기능을 예찬했다. 하지만 술은 광기와 중독을 불러온다. '랭보의 연인'으로 유명한 베를렌을 어둠의 끝까지 몰고 간 것은 당시 유행했던 압생트였다. 알코올 도수가 70~80도에 이르는 압생트는 19세기 후반 유럽, 특히 프랑스 파리의 예술가들이 열광하던 술이었다. 베를렌, 랭보를 비롯한 시인들과 고흐, 모네 등 인상파 화가들, 피카소, 헤밍웨이 등도 이 술의 마력에 빠져들었다. 압생트가 예술가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것은 환각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술은 결국 인생을 파국으로 안내 한다.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마시다가 술이 술을 마시게 되고, 나중에는 술이 사람을 마신다는 말처럼 달콤함이 나락을 불러온다. 애주가와 주정뱅이는 인생 한끗 차이다. 그 출발은 같지만 끝은 심히 다르다. 주정뱅이의 특기는 거짓말과 변명이다.
당신은 왜 불행한 그림자를 되찾으려 하는가
자꾸만 침대의 머리를 거꾸로 돌리려 하는가
이미 잠든 그림자를 깨워 수면제를 먹이려 하는가
죽고 사는 일을 술 끊는 일처럼 반복하려 하는가
술독에 빠진 그림자를 구름 속으로 슬쩍 밀어 넣었다 하루치의 우울을 잘 말려 담장 뒤편에 내걸었다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던 절망이 허공에 떠도는 소문처럼 풀려 나갔다 오래된 눈물이 바람에 날려 빨래처럼 펄럭였다 달의 뒤편으로 사라진 그림자의 행방을 다시 수소문 했다 아무도그 병에 대해 알지 못했기에 누구든지 변명할 수 있었다
- 「병명이 없는 변명」, 부분 『청진기 가라사대』
의사로부터 술과 담배에 대한 경고를 듣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음주량은 유전적인 특징이나 성별에 따라 개인적인 차이가 있다. 비교적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음주량은 남자는 일일 40g, 여자는 일일 20g 이하이다. 모든 술에는 그 술에 걸맞는 잔이 있다. 한 잔에 포함된 알코올의 양은 대략 8~10 그램 정도이다. 고로 안전한 하루 음주량은 각자의 잔으로 서너 잔 가량이다.
알코올중독은 마시는 술의 양이나 빈도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진단하는 것은 아니다. 음주로 인한 행위가 일상생활, 직업적 사회적 기능에 영향을 줄 정도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건강상이든 대인관계 문제든, 음주로 인해 안 좋은 결과가 예상되는데도 음주를 멈추거나 조절할 수 없다면 강력히 의심해 봐야 한다. 알코올 중독에 관한 자가진단법이 있지만 항목 수가 많고 주관적인 질문들로 이루어져 정확한 데이터를 취하기 쉽지 않다.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 본인과 가족이 동시에 문답에 참여하지만 역시 한계가 있다.
알코올중독 환자들의 기행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몇 가지 특징을 열거하자면 그들은 거짓말을 잘 한다. 핑계와 자기 합리화, 궤변에 능숙하다. 화를 잘 내고 쉽게 흥분한다. 술을 마시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지키지 않을 약속을 수시로 한다. 남 탓을 하며, 자신은 아무 잘못이 없다고 억지를 부린다. 자신은 알코올 의존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기를 건드리지만 않으면 화를 내지 않는다고 말한다. 등 뒤에서 잡아먹을 듯 한 눈빛으로 노려본다. 폭언, 폭력, 욕설을 한 뒤엔 기억을 못한다고 한다.
술에 취하여
나는 수첩에다가 뭐라고 써 놓았다.
술이 깨니까
나는 그 글씨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세 병쯤 소주를 마시니까
다시는 술 마시지 말자
고 써 있는 글씨가 보였다.
-김영승, 「반성 16」 전문
장기간 알코올을 섭취하게 되면 신경파괴가 일어나서 기억력이나 집중력, 실행 기능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알코올이나 담배, 마약과 같은 중독성 물질은 전두엽에 영향을 주어 비정상적인 쾌락을 유발하며, 지속적으로 마시고 싶은 갈망을 유발한다. 이제 그만 마시라는 조절력을 상실하고 만다. 그러다가 알코올성 치매로 발전하기도 한다. 또한 지속적으로 알코올을 섭취하게 되면 지방간이 발생한다. 지방간은 간염으로, 만성화된 간염은 간경화로 진행된다. 간경화가 지속되어 간암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진행되기 전에 대부분 그들은 생활능력이 사라지고 사회의 낙오자로 전락하고 만다. 결국 간이 병 들기 전에 그것을 내다 팔아야 할 운명에 맞닥뜨릴지도 모른다.
팝니다 권리금 없습니다 시설비 조금 인정하시면 바로 드립니다 보수유지비가 만만찮을 것이라구요 철거비가 더 들거라구요 솔직히 동의합니다 분해효소가 없어 소주 한 잔 이상 안 받고 이래저래 속 끓이는 날 많았으니 오죽하겠습니까 그래도 몇 군데 손보면 바로 일을 시작해도 될 만큼 쓸 만합니다 형편 닿는 한 좋은 자재를 썼거든요 내놓을 날 올 줄 누가 알겠습니까 평생 쓰겠다 작정하고 큰맘 먹고 준비했지요 처음 시작할 때야 누군들 희망 아니겠습니까 급매물건이라고 더 깎으시면 벼룩의 간을 빼먹겠다, 는 겁니다 대신 덤으로 쓸개까지 얹어 드리지요 체질이 맞는지 거부반응은 없을지, 검사 일정부터 맞추어볼까요
팔려고 내놓은 간을 쓸고 닦는다 바위 위에 꺼내 말렸다가 다시 들여놓기를 몇 번인가 반복한 후에
-최정란, 「벼룩시장에 간을 내놓다」 전문
나는 술을 예찬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비난하거나 혐오하지도 않는다. 그래도 환자를 대하면 술을 줄이고 담배를 끊으라는 경고는 잊지 않는다. 담배는 백해무익이지만 적당히 마시는 술은 몸에 좋다. 적당하면 약이 되고 지나치면 독이 되는 파르마콘의 비밀이 술에 감춰져 있다. 정당한 노동의 하루를 마치고 저녁노을을 보며 기분 좋게 마시는 술이라면 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삶의 낙으로 삼고 친구와 함께 마시는 술은 분명 우리의 삶을 더 알차게 만들어 준다. 그래도 과음은 삼가야 한다.
경기가 나쁠수록 소주 판매량은 증가한다는 통계가 있다. 술집에는 저마다의 이유로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넘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는 불황에도 음주량이 감소했다. 코로나 방역 영향으로 사람들이 술을 마시는 횟수나 양 모두 줄어든 것이다. 술을 마시는 장소도 주점보다 집에서 마신 경우가 더 많았다. 다만 폭음이나 만취 등 건강에 해로운 고위험 음주 비율이 증가하고 특히 10대의 음주 비율이 대폭 상승한 것으로 분석됐다. 술을 마시는 상대도 친구나 선후배 직장 동료에서 가족, 배우자 혹은 혼술의 비율이 크게 높아졌다고 한다.
혼술은 해본적도 없거니와 집에서도 반주로 술 한 잔 해본 일도 없으니 술에 대해서라면 할 말이 없다. 내 평생에서 술이 마시고 싶었던 적이 있었던가. 없었다. 나 자신도 믿을 수 없지만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니 주사도 있을 리 없고 술자리에서 흥이 넘치지도 않는다. 당연히 재미가 있을 리 없지만 그렇다고 술자리를 꺼려하지 않는다. 술을 예찬하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눈으로 술을 마시는 방법도 꽤 괜찮다.
사람들은 한잔 술은 근심걱정을 없애고, 두잔 술은 도인의 경지에, 세잔 술은 신선의 경지에 오르고 네잔 술엔 학이 된다고 한다. 다섯 잔을 마시면 염라대왕과도 맞먹는다고 하니 술의 힘이란 그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
'주류(酒類)문학의 위엄'이라는 칭호를 받은 <안녕 주정뱅이>의 작가 권여선은 "반복은 지옥이기 때문에 망각이 필요하다. 술에 취해서 필름이 끊기는 망각은 그런 의미에서 작은 죽음이고, 다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게 해준다." 고 말했다. 등단작부터 한결같이 술이 등장하는 소설을 통해 암암리에 애주가임을 짐작케 했던 작가가 이젠 만천하에 드러내놓고 자신이 ‘주정뱅이’임을 커밍아웃 한 것이다. 인생이 던지는 잔혹한 농담 앞에서 인간은 병이 들거나 술을 마시는 형태로 보여준 그녀. 하지만 분명히 말하건대 술에 대한 집착은 누구도 미화할 수 없는 깊은 병이다. 스스로 탈출할 수 없으면 반드시 의사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로마의 철학자이자 정치가인 세네카는 행복론을 통해 "쾌락을 정복하는 그날, 고통도 충분히 정복할 수 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육체의 쾌락과 고통의 노예가 된 자들은 사악하고 고통스러운 노예생활을 하게 마련이다. 우리는 그런 무절제한 독재자에게서 탈출해 자유를 쟁취해야만 한다."라고 말했다. '쾌락을 정복하면 고통도 정복된다.'는 세네카의 가르침을 술잔에 가득 채워 큰소리로 외친다.
위대한 간이여, 내 술이나 한 잔 받아라.
-『문학청춘』 2021년 봄호 <시 속의 의학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