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영 작가의 <객주> 9권이 나온지 30여년 만에 10권이 나와 마무리됐다. 작가에 의하면 봉화의 보부산 길이 열리면서 거기에 착안하여 10권을 마무리했다고 한다. 울진, 봉화를 잇는 보부상길은 소나무 향기와 아름다운 계곡이 어우러진 멋진 길이다. 물론 옛적에는 삶의 애환이 깃든 사연많은 길이었을 것이다.
우리 고유의 언어를 복구하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는 이 책을 읽노라면 대대로 전수된 엤말과 속담의 활용, 민간에 유통된 비유와 사설, 민중 풍속에 스며든 재담과 육담의 연출 등 우리 말의 멋과 맛은 제대로 살린 작품이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 객주는 다양한 대중서사의 장르를 망라한 혼성물이다. 신분과 지역을 뛰어넘는 상인들의 모험, 숱하게 많은 모략과 복수 이야기, 작품 중 곳곳에서 터지는 격언과 요설과 타령, 다양한 인생살이 묘사 등을 보면 우리 고유 언어의 보물 창고이자 대중서사의 백과사전이다.
작가 김주영은 1939년 경북 청송에서 태어나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70년 '여름사냥'이 '월간문학'에 가작으로 뽑히고, 1971년 '휴면기'로 '월간문학' 신인상을 받으면서 문단에 나왔는데, 대표작으로는 '객주', '활빈도', '천둥소리',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 '화척', '홍어', '아라리 난장', '멸치', '빈집', '잘 가요 엄마' 등이 있다. 유주현문학상(1984) 대한민국문화예술상(1993) 이산문학상(1996) 대산문학상(1998) 김동리문학상(2002) 등을 수상했다.
객주의 질박한 언어는 청송감호소 출소자와의 일화에서 잘 드러난다. 김주영이 보부상길을 여행하던 중 어느날 이른 아침 청송감호소 앞 가게에 앉아 있는데 허름한 행색의 출소자 한사람이 담배가 있냐고 묻자 아예 피우던 담배갑과 라이터를 줬더니 출소자는 "감방에서 제소자들한테 가장 인기있는 책"이라며 객주 여러 권을 답례로 건넸는 이야기다..
김주영은 객주를 쓰는 동안 한개의 어휘를 찾으려고 국어사전을 맨앞에서 끝까지 밤새 뒤진 적이 수십번이라고 술회한 적 있다. 나중에 개인용 객주사전을 별도로 만들었을 정도다. 이후 김주영의 영향을 받아 수많은 작가들이 작품을 쓰는 동안 나무, 풀, 꽃, 산, 강, 지명 등 자기만의 사전을 만들어 쓸 정도였다. 이처럼 화석화된 한글을 찾아 문학 언어로 재현해 놓은 작업은 문학의 역할이다. 객주를 시작할 당시 우리말 갈래사전도 없고 조선왕조실록도 한글 번역에 안 된 상태였던 점을 감안하면 객주는 그 역할에 매우 충실한 셈이다.
따라서 객주가 우리 문학사에 끼친 영향은 문학계에 '객주문학'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열어 상업자본주의를 다룬 수많은 아류를 이끈 것 못지 않게 국어학 및 역사학에도 동기 부여한 점을 꼽을만 하다. 초기 자본주의 생성과정에 대한 연구 및 우리말갈래사전 편찬에도 수많은 영감을 불러 일으켰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부분이다.
김주영은 "객주를 쓸 당시 초기 자본주의와 관련 경제사료가 전무하다시피 했다. 역사학도도 아닌 나로서는 문학적 상상력, 열정만으로 끌고 나가기에는 힘이 부쳤다. 인문학적 한계에 부딪치면서 다시 공부하고 난 다음 쓰자는 게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고백한다. 그런 연유로 객주는 한 번 잡으면 손을 놓기 힘들지만 쉽게 읽을 수 있는 책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