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사택지적비 2) 목간에 남은 시 3) 백제 역사 회고 4) 백마강 배를 5) 백마 추강월이 6) 부여 7) 이성계 8) 무량사 9) 메나리 10) 부산 11) 이몽학 |
1) 사택지적비
백제의 비는 사택지적비(砂宅智積碑)라는 것이 하나 부여 읍내에서 발견되었으며, 국립부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사택지적은 일본에 사신으로 간 적 있는 백제의 귀족이다. <<일본서기>>(日本書紀)에서는 대좌평(大佐平)의 지위에 있었다고 했다. 비문 서두에서는 “내지성”(奈祗城)의 사람이라고 했는데, 그 곳은 수도 사비 서쪽 30리 밖의 외성이다. “寅”이라는 연대는 “甲寅”으로 볼 수 있어 654년(의자왕 14)으로 추정된다. 전문을 들면 다음과 같다.
慷身日之易往
慨體月之難還
穿金以建珍堂
鑿玉以立寶塔
巍巍慈容
吐神光以送雲
峩峩悲貌
含聖明以
한 단어를 둘로 갈라 양쪽에 배열한 것이 많다. 두 구절을 하나로 합쳐 번역해야 무슨 말인지 알 수 있다. 번역하면서 풀이해보자.
“慷慨身體日月之易往難還”는 “신체와 일월이 쉽게 가고 돌아오기 어려운 것을 슬퍼하고 개탄한다”는 말이다. 자기 나이가 많아져 서글퍼진다는 것을 그렇게 말했다. “穿鑿金玉 以建立珍堂寶塔”은 “금과 옥을 뚫어 진기한 집과 보배로운 탑을 세웠다”는 것이다. 소중한 자재를 사용해 정성 들여 불사를 했다는 말이다. “巍巍峩峩慈悲容貌”는 “높고도 높도다, 자비로운 용모여”이다. 새로 모신 부처의 모습을 형용한 말이다. “吐神光以送雲 含聖明以迎雨”는 “신령스러운 빛을 토하며 구름을 보내고, 성스러운 밝음을 머금고 비를 맞도다”이다. 부처가 날씨를 조절해주기를 기원하는 말이다.
=> 비문을 길게 쓰지 않고 말을 줄였다. 글자수를 6자와 4자로 고정시켜놓고 앞뒤 두 구절이 대구를 이루도록 하는 번려문의 수법을 지나치게 사용했다. 형식의 아름다움을 너무 추구해 무리하다고 할 정도로 대우법을 많이 사용한 변려문이다. 난숙한 경지에 이른 백제 말기의 문학이 화려한 수식 위주의 미문 취향에 빠지는 폐단이 있었던 것 같다.
2) 목간에 남은 시
백제의 한시는 문헌이 상실되어 전하는 것이 없다. 그러나 잘 찾아보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국립부여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는 부여 능사(陵寺)에서 출토한 목간에 적혀 있는 다음 글을 보자.
宿世結業 여러 번 살면서 맺은 업으로
同生一處 한 곳에 태어나지 않았는가.
是非相問 시비할 일 있어 묻고 답하라면
上拜白來 올라가 절하며 아뢰고 오리라.
이두라고 하는 견해가 있으나 한문이라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너무 간략해 이해에 지장이 있으나, 두 사람이 부부가 된 인연을 두고 하는 말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앞의 두 줄에서는 여러 생을 거치면서 각기 맺은 업이 모여 마침내 한 곳에 태어났다고 했다. 다음 두 줄에서는 잘 잘못을 가려 다음 생에서는 헤어지게 하려고 한다면 부처가 있는 불당에 올라가 절하면서 다시 함께 태어나게 해달라고 기구하겠다고 한 것 같다.
=> 앞에서 든 <사택지적비>와 함께 살피면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불교를 깊이 믿으면서 개인적인 소망을 나타낸 것이다. 부족한 자료를 가지고 일반화된 논의를 펴는 것은 무리이지만, 백제의 한문학은 고구려나 신라보다 더욱 난숙한 경지에 이르러 그런 특징을 나타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진취적인 기상을 잃었다고 하는 것도 가능한 진단이다.
3) 백제 역사 회고
이곡(李穀) <부여 회고>(扶餘懷古)
靑丘孕秀應黃河 청구가 빼어난 기운 배태해 황하에 응하면서
溫王生自東明家 온조왕이 동명의 가문에서 탄생했도다.
扶蘇山下徙立國 부소산 아래로 옮겨 와 나라를 세울 적에
奇祥異蹟何其多 기이하고 상서로운 이적 얼마나 많았던가.
衣冠濟濟文物盛 의관이 갖추어져 있고 문물이 성대하며,
潛圖伺隙幷新羅 기회를 엿보고 신라까지 합치려고 했었는데,
在後孱孫不嗣德 못난 자손들이 덕을 제대로 잇지 못해,
雕墻峻宇紛奢華 담장과 집을 아로새기며 사치를 일삼았네.
一旦金城如解瓦 하루아침에 견고한 성이 허망하게 무너지니,
千尺翠岩名落花 천척 푸른 바위에 낙화라는 이름이 붙었도다.
野人耕種公侯園 높은 분들 동산에 농부가 씨 뿌려 밭을 갈고
殘碑側畔埋銅駝 깨어진 비석 곁에는 구리 낙타가 파묻혔구나.
我來訪古輒拭淚 나는 와서 고적을 찾다가 눈물 흘리고,
古事盡入漁樵歌 옛일은 어부와 초동의 노래 속에 들었구나.
千年佳氣掃地盡 천 년의 좋은 기운 땅을 쓴 듯 없어지고,
釣龍臺下江自波 조룡대 아래서 강이 스스로 물결치는구나.
=> 백제가 망한 내력을 되돌아보며 처절한 심정을 나타냈다.
*<부소산성 입구>
*<반월루>
*<반월루에서 본 부여 시내>
*<고란사>
*<백마강(금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