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호 지음 _ 시와 음악을 만나는 심장 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다시 읽는 칼로스의 그림시와 세잔의 정물화
정말 많이
의지하는
빨간 외바퀴
손수레
빗물에
빛나고
곁에는 하얀
병아리들.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 「빨간 외바퀴 손수레」 전문
so much depends
upon
a red wheel
barrow
glazed with rain
water
beside the white
chickens.
―「The Red Wheelbarrow」 by William Carlos Williams
화가 세잔(Paul Cezanne)은 여러 편의 사과 정물화를 그렸다. 그런데 거기에는 사과가 집중적으로 조명을 받는 그런 그림은 하나도 없다. 사과의 빨간색이 클로즈업되는 그림도 없다. 오히려 사과 여러 개가 다른 물건들과 어울리는 공간 구성이 돋보일 뿐이다.
<사과가 있는 정물(Still life with apples)〉을 보자. 빨간 사과 여러 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그러나 이 정물화는 우리가 이 사과들만을 응시할 수 있게 놓아두지 않는다. 오히려 과반이 옆으로 놓여 있다든가, 탁자의 키가 크다든가, 또는 식탁보의 색깔이 하얗다는 사실에 관심을 돌리게 한다. 결국 우리는 사과만이 아니라 사과가 다른 사물들과 자리를 함께하는 그런 정물화를 만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런 정물화의 느낌을 주는 시가 바로 칼로스의 「빨간 외바퀴 손수레」다. 이 시는 모양, 색깔 같은 시각적 요소뿐만 아니라, 단음절 리듬과 시행/스탠자의 분절 같은 음성적 요소를 함께 활용하여, 세잔의 정물화를 닮은, 하나의 텍스트를 내놓고 있다. 그렇다고 이런 것들이 어떤 구체적인 아이디어나 추상적인 관념을 암시하고 있다고 넘겨짚을 일은 아니다. 차라리 우리가 이 독특한 구도를 통해 손수레의 진정한 이미지를 새롭게 얻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우리의 큰 기쁨이 될 것이다.
이제 시를 들여다보자. 비 온 뒤끝에 풍경이 산뜻하다. 이 시의 주어는 아무래도 헛간 앞에 놓여 있는 빨간 외바퀴 손수레다. 마치 세잔의 정물화에서 사과가 그러하듯이, “정말 많이 의지”하고 있다는 말로 시작하는 첫 스탠자다. 의존하고 있는 것은 바로 외바퀴 손수레다. 사실 여기에 의존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봄이면 흙 나르는 일부터 가을이면 결실을 운반하는 많은 일을 한다. 그런데 그 수레는 빨갛다. 빨간 사과가 싱싱함을 떠올리듯이 빨간 수레는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은 '정열적인 성실함'을 연상하게 한다. 더구나 ‘외바퀴’와 ‘손수레’를 다른 행으로 처리한 것은 어쩌면 독자가 이 수레를 그냥 스쳐 지나지 말고, 바퀴는 하나, 사람이 끄는 수레라는 것을 확인이라도 시키려는 뜻인지 모른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또 다른 것은 그 다음의 ‘비’와 ‘물’이 별개의 행으로 처리됐다는 점이다. 아마도 소나기가 지나갔을 법한데 그 빗물이 손수레에 남아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빗물에 젖어 빛난다는 이 메타포는 신선한 비전을 불러오는 시각적 효과를 끌어내기에 충분하다.
마지막 스탠자에서 비를 피해 헛간에 머물렀다가 다시 밖으로 뛰쳐나온 병아리들이 손수레 곁에 서 있다. 확실한 것은 손수레의 빨간색과 병아리의 하얀색이 잘 대비되고 있다는 점이다. 빨간색이 어떤 일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흰색은 새로운 시작을 나타내는 말인 듯하다. 이 두 색깔은 세잔의 정물화에서도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 시는 한 문장으로 되어 있으면서도 네 개의 스탠자로, 그리고 각 스탠자를 두 행으로 다시 나누어 회화적 효과를 꾀하고 있는 듯 보인다. 여럿이 모여 하나의 그림시가 탄생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일만 하는 빨간 외바퀴 손수레가 소나기 뒤끝에 빗물로 빛나고 그 곁으로 하얀 병아리가 찾아든 이 그림시에서, 지금 우리 독자가 말간 새 세상을 볼 수 있다면 그 얼마나 보람 있는 일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