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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년왕국이 이 땅에서 이루어질 나라이면, 희년법은 나라의 필수적 통치 수단입니다.
** 천년왕국은 설도 많고, 이단도 많아서 신중하게 다루어야 할 내용들입니다. 읽어 주시고 고견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이 글의 강조점> 천년왕국에 희년법을 넣어서 이해하면
① 천년왕국은 개개인을 심판하는 때가 아니고,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필요한 한시적 통치 수단이다.
② 천년왕국은 이스라엘에서 시작하여 세계로 전파될 것으로 보인다.
③ 천년왕국은 희년법으로 통치하는 나라다.
④ 계시록의 일곱 인은 토지문서의 개봉 절차로 볼 수 있고, 계시록의 중심 주제에 해당한다.
⑤ 예수 재림의 시기는 천년왕국의 수용 여부를 따라, 하나님의 주권적 판단에 달려있다.
천년왕국에 대한 글을 쓰기 전에
이스라엘 땅에 대한 마지막 글을 쓰려고 합니다. 필자는 21년 레위기 희년법을 경제적으로 해석한 책을 내었습니다. 그런 다음 레위기 희년법을 중심으로 성경에 있는 경제생활 부분을 창세기부터 그 내용을 이해하고 정리하는 중에 있었습니다. 이렇게 희년과 경제를 중심으로 요한계시록까지 가는 중입니다. 제 글은 유독 땅과 희년에 대한 내용이 많은데, 그 이유는 필자가 땅과 희년에 대한 주제를 가지고 성경 전체의 구속사를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독자분들은 보기에 따라 필자가 희년에 너무 몰입되어 있으며, 성경 이해도 희년법에 편중된 시각을 갖고 있다고 보실 수 있습니다. 지인들 중에 실제로 그런 조언을 주시기도 합니다. 그런 조언은 필자가 가질 수 있는 약점을 지적하여 저를 다시 보게 하는 것이므로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필자는 이런 조언에 대하여 이렇게도 생각합니다. 기존의 성경 이해가 성경이 알려주는 생활경제나 희년 부분은 제외시켜 놓고, 성경을 접하여 온 것이 오히려 더 큰 약점이고,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생활경제와 희년은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신 창조의 목적과 질서, 주인과 청지기의 관계와 신분으로 지켜야 할 생활질서입니다.
아무튼 창세기에서 시작한 경제생활 중심의 성경 이해가 신약에 들어와서 누가복음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만났습니다. 평소에는 예상하지 못한 부분입니다. 누가복음 족보가 기록한 계보를 들추다 보니 누가복음 족보에 대한 기존의 연구가 아직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누가복음만 다룬 단행본이나 주석서에도 없었습니다. 이상했습니다.
그런데 아직 연구되지 않은 족보에 희년법을 넣어서 풀어보니 쉽게 이해가 되어서 놀랐습니다. 그리고 평소에 눈여겨보지 않았던 다니엘의 70 이레도 희년 주기를 넣어보니 쉽게 이해가 되었습니다. 여기서도 크게 놀랐습니다. 그래서 22년 한 해는 누가복음 족보와 70 이레의 구속사를 희년법으로 이해하며, 한 해가 다 지나갔습니다.
23년에는 신약에서 고난주간에 행하신 예수님의 성전 사역인 화요일 성전강론을 모두 마치고, 고난 주간 후반부 사역인 십자가 사건을 다루고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치른 "값 치르기(요 19:310)"가 레위기 제사법에 있는 죗값만을 대상으로 하는가? 레위기 희년법에 있는 땅값까지 포함하는가를 두고, 공부하다가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때가 23년 한가윗날 7일째 즈음입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을 보면서 중동 땅에 대한 시사적인 글, 한 편을 써 보려고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해를 넘겨가면서 14편을 섰습니다. 여기서도 에스겔이 보여준 환상에서 희년왕국을 발견하게 됩니다. 또 놀랐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땅에 대한 글은 15회로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마지막 글은 요한계시록 20장에 있는 천년왕국에 대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전쟁으로 이스라엘 땅에 대한 글을 쓰게 되고, 다시 이스라엘 땅을 본 에스겔의 환상에서 희년왕국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고 에스겔 희년왕국에 대한 글을 쓰다가 보니 어쩔 수 없이 계시록에 있는 천년왕국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에 대한 부분을 정리하다가 뜻 밖에도 누가복음 족보가 눈에 들어왔고, 거기에 덤으로 다니엘의 70 이레까지 필자 나름대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정리하다가 중동전쟁을 만나서 이스라엘 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에스겔이 보여준 희년왕국을 필자도 보게 됩니다. 이것도 필자에게는 덤으로 얻은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지 못한 누가복음 족보, 다니엘 70 이레, 에스겔 희년왕국을 덤으로 보게된 것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필자가 보는 에스겔의 희년왕국이 계시록에 예언되어 있는 천년왕국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계시록은 아직 공부도 하지 않은 가운데 천년왕국에 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은 제가 정한 진도에서 스스로 속도 위반을 한 것이으로 그만큼 위험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한번 써보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보여준 이스라엘의 회복은 토지분배와 희년왕국이 있는 에스겔서 48장으로 종결되는데, 그 희년왕국이 바로 천년왕국이 시작되는 시점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에서 전쟁이 없었으면 필자는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과 부활 사건을 다루고, 사도행전으로 들어가서 초대교회를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바울서신, 공동서신을 지나서 계시록까지 갈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런 절차도 거치지 않고, 이해가 어려운 계시록 끝 부분을 바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필자가 그동안의 과정을 길게 이야기하는 것은, 천년왕국에 대한 글을 쓰기가 두렵기 때문입니다. 칼빈이나 마틴 루터 같은 대가들은 계시록에 대해서는 주석을 쓰지 않았다고 합니다. 계시록은 그만큼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할 부분입니다.
그런데 필자는 성경을 읽으면서 이해하기보다 글을 쓰면서 이해합니다. 성경을 읽기만 하면 의문이 생겨서 진도를 내지 못합니다. 그러나 글을 쓰게되면 성경을 서로 대조하고, 내용을 비교하고 확인하다 보면, 읽기만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성경을 깊게 이해할 수가 있었습니다. 성경은 성경이 알게 해준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계시록은 아직 전체적 이해도 하지 못했고, 그래서 언급할 시기가 되지 않았지만, 공부를 위해서 글을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스라엘 전쟁이 필자를 이스라엘의 영토 문제를 보게 하였고, 그래서 에스겔 희년왕국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에스겔서에서 발견된 희년왕국이 또 계시록에 있는 천년왕국을 피할 수가 없게 합니다. 그래서 지금 어렵고, 조심스러운 천년왕국에 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독자분들은 이런 점을 참작하여 주시고,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혹시 내용과 생각이 다르거나 오류가 있으면 의견을 주시기 바랍니다. 고치거나 보충하겠습니다. -이하 존칭 생략-
천년왕국에 대한 본문 내용(계 20:1~7,8)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 년 동안 왕노릇하니(계 20:4)
천년왕국은 요한계시록 20:4와 20:6에서 선택받은 일꾼들이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간 왕노릇 한다(또는 했다)는 말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천년왕국에 대한 요한계시록 20:1~8의 기록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① 천사가 하늘에서 무저갱 열쇠를 가지고 내려온다(1절). 여기서 무저갱은 끝이 없는 굴(터널 또는 지하 동굴) 같은 것이다.
②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무저갱에 가두고 1천년 동안 결박한다(2절).
③ 마귀가 만국을 미혹하게 하지 못하도록 한다. 그 뒤에는 반드시 잠깐 놓인다(3절).
④ 보좌에 앉은 자들이 심판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다(4절).
⑤ 소정의 자격 요건을 갖춘 사역자들이 살아서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1천년 간 왕노릇한다(4절).
<사역자의 자격 요건>
ㄱ.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
ㄴ. 짐승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손과 이마에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
⑥ 이것이( ⑤ ) 첫째 부활이며, 나머지 죽은 자들은 천년까지 살아나지 못한다(5절).
⑦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가 복이 있고, 거룩하다. 둘째 사망이 그를 다스릴 권세가 없다(6절).
⑧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왕노릇을 할 것이다(6절).
⑨ 천년이 차매 사단이 옥에서 나와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니(7절) 그 수가 바다의 모래와 같다(8절).
천년왕국은 세상을 심판하려는 것이 아니고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다.
예수님의 12제자들은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게 되면, 그때가 예수의 재림과 지구의 종말이 오는 줄을 알았다(마 24:3). 그런데 우리도 12제자들처럼 천년왕국 또는 예수 재림을 종말이라는 하나의 시기나 틀 안에 묶어서 이해하기 쉽다. 또 그렇게 이해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와 같은 종말관을 가진 제자들에게 앞으로 전개될 미래와 세상의 종말에 대하여 중요한 가르침을 주셨다.
마태복음 24장에서 예수님은 미래에 있을 사건이나 재림에도 시간적 사건들이 있을 것을 말하면서 그 사건들에 대한 구체적 설명은 해주지는 않으신다. 이것은 미래의 있을 특정 시기나 장소, 그리고 구체적 사건은 우리가 쉽게 판단할 수 없을 것이라는 가르침을 주신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면서 재림은 도적 같이 올 수 있으므로, 늘 깨어 있고, 각자가 맡겨진 청지기직의 사적 임무와 공적 사역에 충실하라고 하신다. 이것이 우리의 미래에 대한 확실한 가르침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가 다스릴 천년왕국의 실체는 별로 관심이 없고, 예수의 재림만 기다리거나 날짜를 세고 있으면 문제가 된다. 재림 시에는 심판을 받을까 하여 공포심을 가지거나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가 백마를 타고 천군 천사를 거느리고 오는 공중 재림에 집착하거나 상상하는 것을 말한다. 실제로 휴거와 세상 심판을 들먹이면서 공포심을 유발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므로 예수 재림을 사모하는 믿음이 오히려 열 처녀의 비유처럼 미래와 종말을 준비하지 못할 수가 있다는 뜻이다. 열 처녀의 비유에서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는 기름을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고, 신랑이 오는 시간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재림에 대한 지나친 공포심, 신비주의적 환상, 현실도피적 태도는 경계해야 한다. 물론, 우리는 오늘이라도 예수 재림이 있을 수 있다는 신앙 각성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 그러나 예수 재림에 대한 지나친 기대감이나 닥칠 환란에 대한 공포감, 그리고 신비주의에 사로잡히게 되면, 평소의 생활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런 종말관은 이단이 노리거나 즐겨쓰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인은 구원을 위하여, 그리고 진리와 영생을 위하여 당해야 할 고난은 피하려고 하지 말고, 그 고난을 맞아서 이겨내야 한다. 계시록은 고난을 겪고, 그 고난을 이긴 자에게 면류관을 안겨 준다(계 2:11, 2:26, 3:5, 21:7). 계시록이 말하는 환난이나 고난은 믿음이 좋은 성도들에게도 감당해야 할 몫이지 피해가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구속사로 본 천년왕국은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기보다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천년왕국은 미래의 있을 시간과 사건의 전 과정에서 그 하나의 절차적 단계로 보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맞아야 할 미래는 천년왕국이라는 평화적 시대가 있기도 하고, 전쟁이나 환란, 그리고 또 삶과 죽음의 심판으로 몇 차례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시간적 단계가 남아있다는 뜻이다. 필자는 앞으로 다가올 천년왕국은 이렇게 추정하고 있다.
(1) 천년왕국은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권이 현실적으로 실행되는 나라다. 천년왕국은 지상에서 이루어질 나라다. 그러므로 천년와국은 죽어가는 사후 천국이나 하늘에 있는 천상천국도 아니다. 천년이라는 말은 반드시 천년이라는 기간보다 천년이 상징하는 질적인 기간으로 보아야 한다. 이 말은 하나님의 구속사에서 시간이란 양적인 시간(크로노스)보다 질적인 시간(카이로스), 곧 시간이 필요한 내용의 충족 요건을 더 중시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천년왕국의 천년은 이 나라가 갖추어야 할 충족 요건이 채워지는 기간을 뜻한다고 보아야 한다.
(2) 천년왕국은 사회구원, 구체적으로 경제구원이 실현되는 전체 시기를 말하고 있다. 여기서 사회구원이란 기근을 당한 야곱의 일가족(약 70명)이 요셉을 만나서 구원을 받는 것과 같은 것을 뜻한다. 땅이 없어서 종살이를 해야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얻어서 생존 문제를 해결하고, 자유를 회복하는 것도 사회구원에 속한다. 그래서 사회구원이란 한 공동체가 공동으로 받게 되는 현실 구원을 말한다.
(3) 그러므로 천년왕국은 개개인에 대한 선과 악을 판별하고, 죄인을 심판하는 때가 아니다. 개개인에 대한 믿음이나 행위의 심판은 천년왕국 이후에 있는 백보좌 심판에서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년왕국은 지금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신실하게 믿는 자들은 구원을 받았으며, 육이 죽었으면 사후천국이 약속되어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4) 천년왕국은 일꾼을 선택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나라를 다스리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은 계시록 20:4에서 말하는 소정의 자격 요건을 갖춘 자들이어야 한다.
(5) 천년왕국은 희년법 제정 이래 한 번도 시행하지 못한 희년이 현실적으로 실현되는 나라다. 주기적으로 반복해야 했던 구약시대의 희년은 복음적 내용으로, 그리고 영구적으로 지속될 희년으로 바뀌게 된다.
(6) 천년왕국은 이스라엘에서 시작하여, 이스라엘에서 세계로 전파, 확장되는 나라가 될 것으로 보인다.
(7) 천년왕국은 크게 보면 복음시대 안에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권이 교회 공동체에서 국가공동체로 이관된다. 통치권이 국가공동체로 이관되어도 교회 공동체는 지금과 같이 예배와 신앙교육 등 영적인 통치는 계속 담당할 것이다. 그러나 교회 공동체는 신앙 공동체이므로 기업이 없으며, 나라를 다스려 본 경험도 없다. 그래서 땅과 나라를 다스려야 할 천년왕국은 통치권이 교회에서 국가공동체로 이관될 것이다. 아마도 계시록이 말하는 네 생물과 24 장로가 공동체의 운영을 주도하는 그런 나라의 통치 시스템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아니면 종교 기능만 수행하던 교회공동체는 생활 공동체인 국가 통치까지 기능이 확장되어야 한다.
천년왕국과 관련된 계시록 구조와 일곱 인에 대하여
계시록의 구조
계시록 전체를 개괄적 이해도 하지 못하고, 끝에 나오는, 그리고 조심스러운 천년왕국을 먼저 언급하고 있다. 그래서 계시록 전체에 대한 구조라도 먼저 한번 보기로 했다. 계시록은 1:19에서 “네가 ①본 것과 ②지금 있는 일과 ③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라고 한다. 그리고 일곱별의 비밀, 일곱 촛대, 일곱 교회 등 7의 숫자를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①은 2장과 3장의 일곱 교회, ②는 4장, 5장 내용인데 지금 보고 있지만, 미래에 해당하는 ③에 있을 서론 부분이다. 그리고 ③은 장차 될 일에서 7의 숫자로 보여주는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에 대한 재앙과 관련된 내용이 계시록 16장까지다. 그다음은 바벨론의 멸망과 천년왕국, 그리고 마지막에 있을 사건들인데 이것도 7의 순서 안에서 이루어질 사건(내용)들다. 이런 계시록의 전체 내용을 편의상 초반부, 중반부, 후반부로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초반부 : 서론(1장),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2장, 3장), 하늘 보좌, 24 장로, 일곱 인봉(4:1~5:14)
중반부 :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으로 나누어 반복되는 재앙과 관련 내용(6:1~16:21)
후반부 : 바벨론 멸망, 큰 음녀, 왕들, 상인들의 몰락, 천년왕국과 그 이후 일들(17:1~22:21)
중반부 내용은 모두 일곱이라는 순서로 당하는 재앙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일곱 재앙에서 먼저 나오는 것이 일곱 인 재앙이다. 나팔 재앙과 대접의 재앙은 모두 앞에 있는 일곱 인의 재앙에 대한 반복적인 내용이다. 다시 말하지만,일곱 나팔과 일곱 대접의 재앙은 일곱 인의 재앙 다음에 있는 것이 아니고, 일곱 인에 들어있는 재앙을 반복하여 보여주고 있다는 말이다.
계시록 후반부에 해당하는 17장에서 22장까지의 사건이나 내용도 모두 중반부에 나오는 일곱 재앙, 곧 일곱 인의 재앙에 들어있어야 한다. 그러면 계시록에서 초반부 서론과 일곱 교회를 제외한 계시록 전체의 내용은 모두 일곱 인과 직접 관련된 내용이다. 그러면 과연 일곱 인의 재앙이 되는 인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이것이 계시록 중반부 전체 내용을 이해하는 선결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인(印)이란 헬라어 “습흐라기스”로 소유권을 증명하는 ‘도장(seal)’, ‘보증(signet)’을 뜻하는 증서다. 이에 비하여 계시록 13:16이 말하는 짐승들의 표(標, 표식)는 짐승의 수나 이름인 것 같고, 부당한 소유권의 낙인(烙印)에 관련되어 있다. 필자는 희년과 경제를 중심으로 성경을 보고 있으므로 계시록이 보여주는 인과 표를 늘 눈여겨보아야 하는 입장이다.
보통 계시록 5:1이 말하는 인봉된 책은 미래의 일어날 재앙이나 사건을 기록한 것으로 본다. 인은 사람에 대하여 하나님이 자기 백성으로 인정한 소유권이라고 보기도 한다. 그런데 일곱 인에서 인(印)은 인봉되어 있는 토지문서라고 하는 연구들이 있다. 그러나 이 인봉된 책(두루마리)을 토지문서라고 하는 것이다. 땅과 희년법을 연구하는 필자가 토지문서라고 하는 연구를 그냥 넘길 수가 없다. 그래서 간단하게나마 소개하기로 한다.
천년왕국을 위한 일곱 인의 개봉과 토지문서의 소각 절차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두루마리가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계 5:1)
계시록의 주요 내용인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재앙은 인봉한 두루마리를 어린양이 떼면서 시작한다.
장진광 목사는 그의 저서 『희년과 복음』에서 본문에서 일곱 인으로 봉한 두루마기(책)는 성경 희년법에 따라 기록한 토지문서라고 말한다. 그는 예레미야가 사촌 하나멜의 토지 무르기를 하면서 매매증서를 두통 작성한 것을 근거로(렘 32:11,44) 토지문서는 개봉된 문서와 인봉한 문서, 이렇게 두 개로 되어있다고 본다. 개봉된 문서는 매입자의 권리를 보증하는 증서이고, 인봉된 문서는 원래 성전에 영구 보관해야 하는 문서라고 한다(예레미아 때는 성전이 없어서 토기에 보관).
그래서 인봉된 토지문서는 초림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값 치르기로 무효가 되었고, 마지막 때에는 인봉을 떼어서 소각시켜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토지문서는 마귀에 잡혀있는 빚이므로, 이를 소각시켜 없애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계시록에서 말하는 일곱 인의 개봉은 토지문서의 소각하는 절차와 관련된 작업이라고 한다. 이와 관련된 내용 일부를 원물 그대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재림의 메시아는 철저히 인봉된 토지매매증서와 인봉을 떼고 여러 증인들 앞에서 소각시켜 버리는 작업을 통하여 토지 무르기 법을 최종적으로 완성하시는 분이다. 인봉을 떼고 그 내용을 확인하고 난 후 그 빚문서의 효력을 영원히 도말해 버리는 사역이 아직 그리스도에게 남아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재림 예수의 사역을 기록한 요한계시록에서는 일곱 인봉을 떼는 사건이 중심 주제이자 본론이 되고 있다. 인봉 떼는 일은 빚문서를 ‘무효화’시킨 일차 작업을 확정짓는 일로 기업 무를 자의 사역을 완성하기 위하여 결정적으로 중요한 사역이다(장진광, 희년과 복음, 1994, 두레문화, 68쪽.)”---
인봉된 문서를 떼는 자가 유다지파의 사자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책과 일곱 인은 하나님의 손에 보관된 토지문서(빚문서)를 지칭하고 있다. 그래서 계시록의 본론은 토지문서의 떼는 일로 일곱 인을 떼는 것이라고 본다.
---“요한계시록의 본론은 일곱 인의 재앙과 일곱 나팔의 재앙 그리고 일곱 대접의 재앙으로, 모든 사건들은 일곱째 나팔이 울려 퍼질 때 거기 소속되어 연속되는 사건이며, 또한 일곱 나팔의 모든 사건들은 일곱 인봉이 떼어지면서 나온 것들이다. 그러므로 일곱 대접과 일곱 나팔은 사실상 일곱 인을 떼는 사건 속으로 환원될 수 있다. 그것들은 반복적이고 부연적인 설명일 뿐이다. 결국 요한계시록의 중심 내용은 .... 인봉을 제거하는 이야기가 본론 부분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위의 책 69쪽).”---
계시록에 대한 이런 언급이 필자를 놀라게 한다. 성경 희년법의 토지 무르기 절차가 일곱 인을 떼는 작업이며, 이것이 계시록 전체 내용에서 본론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인봉한 책은 일반적으로 성도들의 행실, 아니면 미래의 내려질 재앙과 관련된 내용으로만 생각한다. 그러나 장진광 목사는 일곱 인봉의 개봉 절차가 토지 무르기에 필요한 토지문서의 소각과 관련된 절차라고 보고 있으므로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인(印)이란 어원 자체가 소유권에 대한 증명서이므로, 인봉을 떼는 책은 토지문서라는 말을 아니라고 단언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계시록이 5:1에서 말하는 책(두루마리)에 미래의 재앙에 대한 내용이라면, 토지문서도 함께 들어있을 것이다.
필자는 성경 희년법이 마지막 때에 그 진정성이 드러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런데 이 연구는 땅의 소유권과 토지 무르기의 완성이 계시록이 말하는 마지막 절차이자, 계시록 전체의 내용에서 중심 내용(본론)이라고 보고 있다.
어린 양이 인봉한 두루마리를 취하시면,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는데,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다(계 5:8). 그러면 성도들은 어린 양에 대한 새 노래로 찬양을 올리며, 하나님은 성도들을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아서 땅에서 왕 노릇을 하도록 하신다(계 5:9,10).
천년왕국을 이해를 위한 사전 검토
천년왕국에 대한 세 가지 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천년왕국에 대한 시간적 주제로 전천년, 무천년, 후천년설이 있다. 전천년설은 예수 그리스도가 먼저 재림하여 천년왕국을 직접 통치한다고 본다. 후천년설은 천년왕국이 먼저 있고 그 후에 재림이 있다고 보는 설이다. 무천설은 천년이라는 신약시대 전체 기간 안에서 천년왕국의 충족 요건이 채워지는 것을 말한다. 무천년설은 천년왕국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고 천년이라는 기간이 정해져 있다기보다 시간의 경과 또는 점진적 개량으로 천년왕국의 상태가 되는 것을 말한다. 무천년설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부활을 믿는 신앙이 점차적으로 성화되어서 거룩한 천국 백성들이 되고, 사회도 점진적 개혁이 이루어져서 이상적인 사회나 나라가 되는 것이 천년왕국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천천년, 후천년, 무천년설이 모두 일리가 있는 견해들이다. 그러나 어느 것도 확실하다고 단언할 수가 없다. 그 이유는 재림의 때는 아무도 모르며, 아들도 모른다고 예수님이 직접 말씀을 하셨기 때문이다(마 24:36).
필자는 기존의 세 가지 설에 대하여 추가하고 싶은 것이 있다. 재림의 때는 전천년, 후천년 등으로 사람이 추정하거나 판단할 대상이 아니라고 본다. 그때는 하나님의 주권적 판단에 따라 결정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인류(성도)가 자력으로 천년왕국의 시대를 이룰 수가 있다면, 예수 재림은 천년왕국 이후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연약함으로 인하여 초림에 있어야 할 천년왕국을 인류가 자력으로 이룰 수가 없다면, 예수 재림이 있어야 천년왕국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여기서 초림 사역을 경제적 측면에서만 보면, 예수님이 나사렛 회당에서 선포한 희년(눅 4:19)이 실제로 이스라엘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뜻한다.
전천년설 중 휴거는 성경에 없다.
전천년설 중에 극단적인 종말론을 내세우며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는 세대주의 전천년설은 경계해야 한다. 그들은 천년왕국이 오기 전에 7년 대환란이 있고, 이 기간에 성도들이 하늘로 '공중 들림'을 받아서 환란을 피한다고 한다.
이들은 예수 재림에 대하여 공중재림과 지상재림, 비밀재림과 공개재림으로 구분하여 성경에 없는 두 번의 재림을 주장한다. 그리고 환란 중에 성도들은 공중에서 천국 잔치를 열고, 지상에서는 전쟁과 살상, 온갖 천재지변과 환란이 벌어진다고 한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아서 전도의 대상인 나의 형제, 친족, 그리고 이웃들이 지상에서 참극이 벌어지고 있는데 하늘에서 즐거운 천국 잔치를 하고 있다는 것이 말이 될까? 예수님이 그런 상황의 공중재림과 천국 잔치를 펼치신다는 말인가? 아닐 것이다.
그리고 7년 대환란은 기간 인식에 오류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계시록에서 말하는 기간은 1,260일, 42달, '한 때, 두 때, 반 때'라고 한다(계 11:2,3, 12:4). 이 기간은 3년 6개월이다. 7년 대환란은 다니엘서 9:27이 말하는 1 이레를 문자적으로 이해한 것인데, 이 기간은 다니엘의 70 이레에 들어있는 마지막 기간 7년을 뜻하고 있다. 물론, 계시록 12장은 전삼년 반(계12:6), 13장은 후삼년 반(계 13:5)으로 연속된 기간으로 치면 7년을 볼 수가 있다.
다니엘의 70 이레는 희년 주기 490년과 7년 격차로 연동되어 있다. 주전 458년 바벨론 포로에서 에스라가 귀환(2차 귀환)한 주전 458년부터 예수 그리스도가 희년을 선포한 주후 26년까지의 기간이 69 이레 기간이다(희년 주기는 이보다 7년 빠른 주전 465년에서 주후 26년까지 490년 기간을 말함). 그러므로 다니엘이 말하는 마지막 남은 1 이레 7년이다. 그런데 이 7년 중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 사역에서 이미 3년 6개월의 공생애 기간에 사용되고, 성취되었다.
다니엘서 9:27에서 1 이레 기간으로 예언된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제물이 되면서 구약의 제사가 폐지되고 성취되었다. 이것이 전삼년 반이다. 그러므로 계시록이 말하는 대환란 기간은 7년이 아니고, 앞으로 있을 후삼년 반으로 3년 6개월을 남겨두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무엇보다 세대주의는 성경을 문자적으로 접근하며, 극단적인 종말론을 내세우는 것이 문제다. 이런 세대주의는 좋든, 나쁘든 신앙적인 열정은 높은 편이다. 그러나 성경의 문자적 이해와 신앙적 근본(원리)주의에 지나치게 강조하다보니 세상에 대해서는 공격성을 가지거나 현실 도피적인 태도를 가지는 경향이 많다.
계시록의 기록 순서와 사건의 시간 이해
마태복음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이 기록된 순서와는 다른 곳이 있다. 예를 들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팔복 설교는 마태복음 5장에 있고, 베드로의 장모에게 질병을 고쳐준 사역은 마태복음 8:14,15에 있다. 그러나 실제로 있었던 사건은 베드로의 장모를 치유한 사역은 갈릴리 1차 사역 초반에 있었고, 팔복 설교는 그 후반에 있었다.
씨 뿌리는 비유와 장애인의 눈을 뜨게 한 사역도 시간과 기록 순서는 다르다. 요한복음에서 마리아가 예수님 발에 향유를 부은 일자는 유월절 엿세 전에 있었으나(요 12:1), 마태복음은 고난주간 수요일(화요일과 목요일 사이)에 있었던 것처럼 기록되어 있다. 이와 같이 사건의 기록과 실제로 발생한 시간은 다른 경우가 있다.
복음서는 서로 시간을 비교할 수가 있어서 기록 순서와 시간이 다른 것을 확인할 수 있지만, 계시록의 내용은 미래의 일어날 사건이라 확인이 모호할 수 있다.
계시록의 내용은 전체로 보면 시간 순서로 기록한 것이지만, 세부적 또는 부분적인 내용은 시간별 사건에 대한 반복이나 부가적 언급이 많다. 그 전형적인 예가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에 관한 내용들이다. 이 내용은 첫째 인, 둘째 인과 같이 시간별로 일어날 사건(일)을 보여주지만, 이 시간별 사건을 다시 인, 나팔, 대접으로 나누어 반복하여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성경에서 계시를 보여줄 때는 먼저 시간별 사건을 보여주고, 이 사건을 주제별로 다시 반복하여 부연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계시록의 기록을 사건이 일어난 시간의 순서로 보기 쉽다. 그래서 19장에 있는 전쟁과 환란은 20장의 천년왕국보다 먼저 있다고 본다. 그래서 19장에서 예수 재림이 먼저 있고, 20장의 천년왕국이 있다고 보는 전천년설이 된다.
그러나 계시록 19장 전쟁이 20장의 천년왕국 뒤에 있다고 보면 후천년설이 된다. 필자는 19장의 전쟁이 천년왕국 뒤에 있을 마지막 전쟁, 곧 곡과 마곡의 전쟁으로 보고 있다. 물론 단언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필자가 후천년설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필자는 예수 재림의 때는 미리 정해진 시간이 있다기보다 구속사를 인도하는 하나님의 주권적 판단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스라엘과 천년왕국의 관계
하나님은 창세기 12:1부터 이스라엘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선택하여 구속사를 인도하여 오고 있다. 우리는 천년왕국의 이해에도 이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땅의 모든 족속은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통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게 예언되어 있다(창 12:3).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스라엘에서 태어났고, 십자가의 희생과 부활, 그리고 승천의 대사건들이 모두 예언된 이스라엘 땅에서 일어나고 성취되었다. 천년왕국을 다스릴 왕의 신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스라엘은 구약 성경이 쓰인 장소이며, 세계로 향하는 복음 전파의 출발지다. 신약의 3대 절기 중 첫 절기인 부활절이 이스라엘에서 시작되었다. 중간 절기인 성령강림절도 이스라엘에서 시작되었다. 초대교회도 마가의 다락방에서 시작되어 세계로 확장되었다.
이와 같이 구세주의 탄생과 죽음, 부활과 승천, 복음의 시작, 절기의 성취, 교회의 시작, 하나님의 나라 등이 모두 이스라엘에서 출발하여 세계로 뻗어 나가게 된다. 그러므로 아직 우리의 무지와 거부로 실현하지 못하는 희년법의 성취와 그에 따른 천년왕국의 출현도 이스라엘에서 먼저 시작되게 될 것으로 본다. 그래서 이스라엘에서 시작한 천년왕국과 희년 통치가 세계로 전파될 것이다.
첫째 부활과 둘째 사망에 대하여
첫째 부활은 무천년설에서 성도의 영적인 부활로 본다. 죄를 지은 인간의 영이 회개함으로써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주를 성령을 통하여 동행할 수 있게 되는 영적 부활에 동참하는 것이다(톰슨성경, 계 20:4의 주석). 계시록 20:4에서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이라고 하는 것은 죽은 자들의 영혼 부활을 뜻하고 있다.
둘째 사망은 악한 자들이 멸망을 받게 되는 최후의 심판을 기다리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는 책들에 기록된 각자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게 된다(계 20:12).
음녀, 땅의 왕들과 상인들
그의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계 17:5) 또 네가 본 여자는 땅의 왕들을 다스리는 큰 성이라 하더라(계 17:18)
마귀와 결탁하여 이 세상을 어지럽히는 자들로 거짓 선지자나 적그리스도가 있다. 그러나 이들과 결탁되어 있는 음녀, 땅의 왕들과 상인들이 있다. 음녀는 음욕을 이기지 못하여 음란 행위를 하는 여성이다. 바알 종교에서 이런 음란 행위가 성행하였다. 그런데 바알 신은 육체적 음란은 물론, 종교적 음란, 물질을 탐하는 경제적 음란으로 이스라엘을 망하게 한 우상이다. 그래서 본문이 말하는 음녀는 이런 것이 모두 포함되지만, 그 중에서도 주로 권력과 물질 탐욕을 부추기고, 이를 방관, 조장하는 종교 기관을 지칭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로 말미암아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인들도 그 사치의 세력으로 치부하였도다 하더라(계 18:3)
음녀는 땅의 왕들은 다스리는 큰 성이라고 한다. 왕들은 타락한 종교 기관의 정신적 지원을 받으며 세상을 미혹하는 정책을 펴는 통치자들을 뜻한다. 그리고 상인들은 음녀에게 종교적(정신적) 지원을 받고, 세상 통치자와 함께 세속적이고, 타락한 경제적 행위를 하는 자들이다.
이러한 경제적 행위를 구체적으로 직시하면 성경 희년법(레 25:15,16, 23,24)과는 상반된 거래를, 그것도 상습적으로 하는 자들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왕의 신분으로 성전에 들어가서 이런 상행위를 보고 “강도의 소굴”이라면서 강하게 꾸짖고, 성전과 시장을 정화시킨 바가 있다.
천년왕국과 관련된 난해한 구절과 용어들
계시록에는 짐승의 표와 666, 144,000명과 같은 난해 구절이나 용어가 들어있다. 계시록의 이해에서 상징성 용어나 내용를 구체적 사물인나 사건과 동일시 하는 것은 위험하다. 필자 역시 이런 구절과 용어는 뜻을 잘 모른다. 그러나 뜻을 모르는 용어나 구절에 대해서도 글을 쓰는 자가 가지는 관점은 필요하다. 그래서 독자들의 사전 이해를 위해서 몇 가지 언급해 두고자 한다.
인(계 5:1)과 표(계 13:16,17)에 대한 관점 : 경제적으로만 보면 인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정당한 소유권을 표시하는 증서다. 계시록이 말하는 일곱 인봉의 두루마리는 토지문서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계시록이 말하는 표(標)는 짐승의 수나 이름으로 사악하고 나쁜 의미로 쓰이게 되는 인식표다.
표라는 말은 헬라어로 “카라그마”이며, 문자적으로는 ‘날카롭게 긁은 흔적’을 말한다. 이것도 무엇을 표시하는 인식표( 標識, mark) 또는 낙인(烙印)을 뜻한다. 주인이 노예의 이마에 낙인을 찍어서 신분을 표시하는 것을 연상할 수 있다. 이 표에 대한 이해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특히 이 표가 가진 숫자 666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주장이 난무하고 있다. 로마시대는 로마의 황제나 제후를 뜻하는 것으로 보거나 특정 종교 단체의 수장으로 보기도 했다. 컴퓨터의 등장으로 바코드, 요즈음은 베리 칩을 주목하기도 한다.
필자는 이 표에 대한 이해도 경제적 측면에서만 생각해 보고 있다. 계시록이 말하는 짐승의 표는 순전히 매매 행위에 관련된 것이다. 이 표가 없으면 거래를 못하게 한다. 계시록에서 표는 자주 등장하고, 사람의 행위를 판별하는 기준이 될 만큼 중요시 한다. 아주 사악한 우상이고, 우상을 경배하지 않으면 살상을 할만큼 잔인성을 가진다. 하지만, 이 표를 가진 사람이 폭력, 살상, 약탈, 도둑과 같은 비도덕적 행위를 하도록 허락하는 증서는 아닌 것 같다. 단순하게 상거래에서 매매를 못하게 하는 경제활동과 관련된 인식표로 보인다.
그러면 우상인 짐승의 표를 받아서 하는 상거래는 무엇일까? 이 거래는 계시록 18장이 말하는 상인들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계 18:3,11). 그러면 상인들이 모두 악한 사람일까? 그렇지 않다. 생활상의 필요를 따라 하게 되는 일반적 실물거래(재화, 서비스)는 모두 선하다. 그러므로 짐승의 표를 받고, 하게 될 부당한 거래는 귀신의 처소,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 더럽고 가증한 새가 모인 곳과 관련이 있다(계 18:2). 이 장소와 관련된 거래다.
성경 희년법이 가르쳐 주는 부당한 거래는 팔지 못하게 한 토지를 비롯하여 거래에 제한을 둔 금융물(빚 담보물, 실물 없는 가격물)을 분별없이 팔고 사는 거래와 관련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물론, 현재의 사회제도 안에서 그 법과 제도를 따른 땅과 금융물 거래를 한 자가 모두 부당한 거래를 했다는 뜻은 아니다. 이런 거래를 제도적으로 제정, 묵인, 권장하거나, 이 제도를 악용하여 부당한 부를 취하는 상인들이 그 대상이다.
이런 부당한 거래의 예를 들면, 성전에서 세겔화와 로마 화폐를 바꾸어 주던 환전상이 그 대표적이다. 환전상들은 성전세 납부용 세겔화를 가지고, 부당한 웃돈(premium)을 붙여서 교환하여 주었다. 예수님은 이런 환거래를 “강도의 소굴”이라고 꾸짖고, 성전에서 내어 쫓은 바가 있다(마 21:12,1). 여기서 예수님을 노하게 한 것은 상거래가 자체가 아니다. 성전세 납부를 위하여 세겔화를 바꾼 순례자들도 아니다. 순례자는 세겔화를 바꾸지 못하면 성전세 납부를 할 수가 없다.
이렇게 세겔화에 웃돈을 붙여야 화폐교환이 가능하도록 묵인, 조장한 성전의 지도자와 제도를 악용하여 폭리를 취한 상인들이 나쁜 것이다. 계시록이 말하는 짐승의 표는 성전의 세겔화 거래처럼 가증한 거래를 하게 한 제도, 그리고 그 책임자, 이런 가증한 제도를 이용(악용)하여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환전상들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사악한 제도와 결부된 성전 지도자가 계시록 17장에서의 음녀, 제도를 주도한 통치자나 부당이익 추구자들이 계시록 18장이 말하는 왕과 상인들이라고 할 수 있다.
표와 666 : 인과 7의 연속수
표와 666의 실체에 대한 관점 : 그러면 현실 사회에서 짐승의 표를 주고, 이 표가 아니면 매매를 못하게 하는 실체가 누구일까? 계시록 13:18은 사람이라고 한다. 킹제임스성경은 이런 사람을 ‘한 사람’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그래서 표와 관련된 수 666을 적그리스도로 보는 것 같다. 그런데 ‘한 사람’에 대한 숫자가 666이라고 하는데, 필자는 아직 이런 부분에 이해가 부족하다.
다만, 표와 관련된 표와 666의 숫자는 계시록에서 자주 언급되는 숫자 7의 서수와 상반된 의미를 가진 수로 보고 있다. 7은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거룩한 수이고, 6은 7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의 수라는 것이다. 666으로 6이 세 번 반복된 것은 악이 충만한 수라고 한다. 일곱 인의 재앙이 7회, 나팔 재앙과 대접의 재앙이 각각 7인 것은 7이 666의 죄악을 심판하는 수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필자는 성경 희년법이 7의 수로 구성되고 있어서 이와 관련시켜 보기도 한다. 안식일 주기는 7일, 안식년 주기는 7년, 희년 주기 49년도 7의 주기인데 666은 이런 안식일과 희년을 지키지 않는 것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3대 안식일을 연속수로 표기하면 777이고, 이에 반하여 666은 7 안식 주기를 지키지 않고, 안식년과 희년을 정면으로 어긴 자의 수가 될 수 있다. 곧 7의 주기로 지키는 경제상태가 아닌 6일, 6년, 그리고 희년이 아닌 해가 지속되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6일, 6년, 반희년이 계속되는 기간은 땅이 사람에게 노예 상태로 묶여서 쉬지를 못하거나 가격과 빚으로 잡혀있는 시간이다.
144,000과 셀 수 없는 무리
144,000(7:4)의 관점과 셀 수 없는 큰 무리(7:9) : 계시록 7장에서는 인침을 받는 자는 144,000명이다. 계시록 이해에서 이 숫자를 기독인 전체에서 구원받는 수로 여기면, 144,000이라는 수는 의문이 있을 수밖에 없다. 기독교인은 모두 구원을 받은 것으로 여기는데, 그 수를 144,000명 밖에 되지 않으니 그 수가 너무 적기 때문이다.
그래서 144,000명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 인식은 이 수가 상징적인 수이고, 실제와는 다르다고 보고 있다. 물론, 필자도 싱징적인 수로 보고 있었다. 이스라엘 각 지파별로 12,000명씩, 12지파의 합이 144,000명(144,000 = 12,000×12) 이다. 또 상징수로 보면 12지파와 12제자의 곱수에 충만의 의미를 가진 1,000을 곱할 수도 있다(144,000 = 12×12×1,000)이다.
그러나 계시록 7:4에서 144,000명을 말하고 있지만, 7:9에서는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어린 양 앞에 서는 것을 볼 수 있다. 셀 수 없는 무리는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들로 어린 양 앞에서 찬양을 올리고 있다. 그러므로 7:4에서 말하는 144,000명은 이스라엘 민족 중에 인침을 받을 자의 수이고, 7:9에서 말하는 셀 수 없는 무리가 그리스도인들이 받아야 할 구원의 수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144,000명의 숫자에 대하여 예민해야 할 이유가 없을 것 같다. 신천지 집단은 이 144,000의 숫자를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신도들을 미혹하고 있다.
오히려 계시록 7:4에서 144,000명의 숫자를 기록한 목적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할 수 있다.
첫째, 144,000명은 이스라엘 민족에 대하여 인침을 받을 자의 수이다. 이 숫자는 에스겔서에서 예언한 12지파의 토지분배와 관련된 숫자로 볼 수가 있다.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12지파에 대한 토지분배도 사실은 상징성이 강하다고 보았다. 지금 상태의 이스라엘 민족은 오랜 기간 흩어져 살아서 12지파에 대한 혈통의 분류가 어렵다. 또 지파별 혈통을 분류할 수 있다고 해도 분배된 토지를 보면 경계가 불투명하다.
그래서 144,000명의 숫자는 회복한 이스라엘 12지파의 토지분배와 관련된 것으로, 토지분배를 받을 자에 대한 상징성 또는 대표성을 가진 수로 보아야 할 것이다.
둘째, 144,000명은 천년왕국에서 나라를 다스릴 자로 선택받을 자의 수라고 추정할 수도 있다. 필자는 천년왕국은 사회구원을 위해 필요한 한시적인 국가공동체라고 보았다. 그래서 천년왕국은 개개인의 믿음이나 행위를 심판하지 않고, 국가에서 필요한 일꾼을 선택하여 나라를 통치하는 사회다. 그래서 144,000명은 천년왕국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권을 집행하는 데에 필요한 사역자의 수를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천년왕국의 사역자 수가 144,000명으로 보는 것은, 천년왕국이 성경 희년법으로 통치하는 나라로 보기 때문이다. 역사 이래로 희년법은 거의 모두 불순종한 상태에 있다. 그러므로 희년법 순종 여부로 사역자를 찾는다면, 144,000명은 오히려 많은 숫자일 수도 있다. 이에 대한 구체적 내용은 희년왕국에서 왕노릇하는 자의 자격 요건을 말하고 있는 계시록 20:4에서 다시 논의할 예정이다.
네 생물과 24 장로(계 4:4~19:4) : 계시록에는 장로에 대한 기록이 총 12회 나온다. 그중에 네 생물과 24 장로가 함께 기록된 것은 9회다. 네 생물이 동반하지 않은 3회의 기록에도 네 생물이 설명되거나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계시록에서 24 장로의 명칭에는 반드시 네 생물이 함께 들어있다. 필자는 이렇게 상징적으로 소개하고 있는 네 생물의 의미를 잘 모르고 있다.
네 생물은 사자, 송아지, 사람, 독수리 같은 모양이므로, 등장하는동물은 에스겔 1:10과도 비슷하다. 천사를 말하는 듯 하며, 사자는 왕의 권위를, 송아지는 섬기는 종, 독수리는 고귀함과 민첩성을 가진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낸다고 한다. 네 생물이 보좌에 앉으신 이(하나님)에게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드릴 때(계 4:9,10), 24 장로들도 주 하나님께 경배하면서 만물을 지으심에 대한 신앙고백을 하고 있다(계 4:10,11). 아마도 네 생물은 땅과 만물을 상징 또는 대표하는 것으로 보인다.
구약에서 장로는 백성들의 생활에 관련된 사무를 집행하는 사역자다. 지역 성읍의 성문에서 토지 무르기를 하거나 계대결혼에서 증인의 역활을 한다(룻 4:2,4, 신 25:8). 가정의 상속이나 가정사의 자문(신 21:19), 지역 주민들이 생활에서 억울한 것이 있거나 다툼이 생기면 이에 대한 송사를 맡는다(신 21:2).
예수님 당시 산헤드린 공회에 소속된 장로들은 자기 역할을 다하지 못하여 예수님께 호된 꾸중을 들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마 21:23, 막 7:5). 이들은 제사장과 공모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는데 동참하였다(눅 9:22, 22:52,66).
계시록에서 나오는 24 장로는 마지막 때에 큰일을 담당하는 지도자다. 24 장로는 이스라엘 12지파의 대표와 예수 그리스도의 12제자를 말하거나 상징성 또는 대표성을 가진 수라고 볼 수 있다. 아마도 이 땅에서 이루어진 천년왕국의 통치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24 장로와 계시록 20:4에 뽑히는 일꾼들이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장로들은 지역 현장에 살면서 토지를 경작하고, 거래해 본 생활 경험도 있다. 지역 주민이 살아온 경제생활의 실정과 특히 농경시대에 땅이 없는 백성이 살아가는 민생고를 체득한 지도자들이다.
장로는 성전에서 종교 업무만 전담해온 종교 지도자들과는 하는 역활이 다르다. 장로는 지역 주민의 생활 부분을 지도하거나 판단 하는 자다. 아마도 천년왕국에서는 이런 생활 부분에서의 식견과 체험을 가진 자들이 왕 같은 제사장으로(벧전 2:9) 쓰임을 받을 것 같다. 이때는 예수 그리스도의 역활도 히브리서 기자가 말한 바와 같이 멜기세덱의 신분으로 평화의 통치를 하실 것이다(히 7:1,11).
천년왕국은 반드시 필요하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마 5:17)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8)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셔서 구약의 율법을 깨고 복음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복음시대에도 율법과 선지를 폐하려는 것이 아니고 온전하게 하려는 것이다. 성경 희년법은 물질이 가진 고유한 불변 성질을 따라서 제정한 것이므로 복음시대에도 폐지할 수가 없다. 그리고 성경 희년법은 아직 실현된 적이 없다. 그래서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대상에는 이런 불변 성질의 희년법이 반드시 들어있다고 보아야 한다.
필자는 세상의 종말이 오기 전에 이런 천년왕국의 세상이 필요하다고 본다. 천년왕국은 하나님이 통치하는 세상이 어떤 것인지를 실제로 보게 하고, 사람들을 주께로 돌아오게 하는 기회의 시간이다. 그래서 천사를 보내어 사람과 세상을 미혹하지 못하도록 사단을 묵어 둔다. 그러면 사람을 미혹하는 마귀가 활동하지 못하므로 인간의 탐욕과 악행은 줄어들거나 제한을 받는다. 지상의 세계에서 악의 세력이 활동하지 못하므로 세상이 달라지게 된다. 그러면 세상은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자유와 평화가 넘치는 태평천국을 눈으로 보게 된다.
그래서 천년왕국에서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세상이 변화되는 모습을 보고, 예수를 영접하는 자가 크게 늘어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예수를 이미 영접한 그리스도인들도 크신 능력에 감동을 받고, 자기를 돌아보게 된다. 천년왕국의 경제생활을 훈련을 받아서 천국 백성답게 온전한 성도로 종말을 맞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천년왕국은 마지막 심판에서 사람의 행위대로 내리는 심판에서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므로 천년왕국은 기독인이든, 비기독인이든 구분 없이 필요한 나라다. 이때는 하나님이 성경적으로 다스리는 나라를 실제로 보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와 성경이 정확무오한 것을 실감하고, 만민이 하나님 앞에 복종하는 상태가 될 것이다. 그래서 천년왕국은 하나님과 함께 거룩한 백성들이 되어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이 주신 화평과 자유가 충만한 삶을 누리게 될 것이다(계 5:7~14).
그러나, 이런 천년왕국은 사단이 결박을 당해야만 가능한 것으로(계 20:2) 한시적으로 존속하는 나라다. 천년왕국도 시간이 지나면 인간이 가진 본성과 약점들이 다시 나타날 것이다. 여기에 하나님은 사단을 결박에서 풀어서 백성들을 미혹하게 한다. 다시 전쟁과 환란이 있게 된다. 마귀가 지금처럼 미혹을 해도 희년법을 지켜내는 성별된 신앙을 가진 참 그리스도인을 남기기 위해서다. 이것이 곡과 마곡의 전투일 것으로 본다(계 20:8). 그리고 그다음은 백보좌 심판이 있다.
천년왕국이 필요한 근거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구속사에 천년왕국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하나님이 천국왕국을 세워야 하는 이유를 성경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1) 에스겔서에서 희년왕국이 예언되어 있다. 이스라엘 왕과 백성들, 그리고 외국인에게도 토지를 분배하여 왕은 백성들이 다시는 흩어지지 않도록 하는 희년법 통치를 명령하고 있다(겔 46:17,18, 47:21,22)
(2) 레위기에서 다루는 제사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 제사로 성취가 되었다. 그러나 같은 레위기에 있는 희년법은 나사렛 회당에서 선포된 희년이 청중들의 반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그러므로 제정한 이래 제대로 시행을 해보지 못한 레위기 희년법은 그 내용이 복음적으로 해석이 되고 적용되어 그 실현을 앞두고 있다.
(3) 3대 안식제도 중 희년제도가 아직 실현디지 못하였다. 3대 안식제도는 7일마다 돌아오는 안식일, 7년마다 돌아오는 안식년, 7 안식년 다음 해 돌아오는 희년을 말한다. 안식일과 안식년은 땅과 사람이 쉬는 날과 해다. 그런데 희년은 토지 무르기가 완성되어 사람에게 팔려있는 땅이 속량을 받는 날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땅을 속량하는 희년은 사람에게 무시를 당하여 희년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안식년을 땅의 생산활동을 1년간 정지시키는 해다. 희년은 7 안식년 다음 해가 디기 때문에 연속 2년간 땅의 생산활동을 정지키는 해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이러한 토지 휴경제도를 잘 지키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흔히 희년이 비현실적이며, 지키기 어려운 제도라고 하는 것은 이 토지의 안식제, 특히 2년 연속 휴경을 하는 제도를 말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안식제도는 땅과 자연계를 쉬게 하는 환경보호 측면에서 큰 의미를 두어야 한다. 또 복음시대는 땅의 휴경제도가 불합리한 면이 있다면, 그 취지를 살려서 합리적인 환경보호책을 강구하면 된다. 그리고 땅은 사람에게 영구가격으로 팔려서 사람의 노예처럼 잡혀있다. 그래서 영구가격에 묶여있는 땅으로 인하여 온갖 불균형 가격문제와 부동산 문제가 지속되고 있다. 그러므로 반드시 땅은 사람에게 속량을 받아서 부당하게 매겨져 있는 값을 없애버려야 사람과 땅이 모두 자유함을 얻을 수가 있다.
(4) 3대 무르기 중 토지 무르기가 성취되지 않았다. 레위기에서 3대 무르기는 죄 사함, 노동이 자본가격인 몸값 무르기, 토지임료의 자본가격인 땅값 무르기 이렇게 세 가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죄 사함은 십자가의 희생 제사로, 몸값은 오늘날의 노동시장의 임금으로 자본가격이 제도상 소멸하였으므로 무르기가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땅값은 무르기를 하지 않아서 자본가격이 소멸은커녕 커질대로 커져서 시장과 경제에서 폭군 같은 형세를 하고 있다.
(5) 3대 절기 중 초막절이 성취되지 않았다. 3대 절기는 첫 명절인 유월절, 중간 명절인 칠칠절(오순절), 그리고 마지막 명절인 초막절이다. 그런데 유월절의 초실절은 신약시대에 부활절로 성취되고, 중간 명절 칠칠절은 초대교회의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온전하게 성취가 되었다. 그러나 마지막 명절은 우리의 무지와 불순종으로 인하여 아직 그 성취 여부를 잘 모르고 있다.
초막절은 보통 예수의 재림이나 세상 종말에 있을 명절로 보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초막절의 신약적 성취는 부활절(초실절)과 성령강림절(오순절)처럼 7월 15일로 날짜가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가 날짜를 알 수 없는 재림의 때나 종말의 시기와는 그 시기나 의미가 다르다고 보아야 한다. 그래서 초막절의 성취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성탄절)으로 성취가 되었거나 아니면 천년왕국에서 분명하게 성취되고 완성될 명절로 보고 있다. 베들레헴 기업의 상속권을 가진 요셉과 마리아가(눅 3:23) 기업을 되찾기 위하여 베들레헴으로 이주한 상태에서 아기 예수가 태어났다. 기업을 다찾는 무르기는 초막절 행사를 맞는 7월 절기에 있다.
그런데 (1)번에서 (5)번까지는 모두 시기가 같다. 초막절 7월 15일, 토지 무르기 7월 10일, 희년 선포일 7월 10일이다. 그러므로 이 절기는 모두 7월 절기로 하나다. 그리고 이 절기는 모든 추수를 마치고 가지는 추수 절기이고, 추수기 잔칫날이다. 그래서 도래할 천년왕국은 이 초막절이 있는 7월 절기가 성취되고, 완성되어 천국 잔치를 하게 되는 시기다(슥 14:16).
(5) 희년법은 완벽하며, 세상을 능히 구원할 수가 있다. 희년법, 특히 희년법에 들어있는 현재물, 미래물, 그리고 영구물에 대한 거래 방식의 규정은 땅과 물질이 가진 고유 성질에 따른 것이다. 그래서 이 물질이 가진 세 가지의 거래 방식은 세상의 경제문제를 근본에서 바로 세울 수가 있다. 물질의 성질에 따른 거래(소유) 자유, 거래 제한(한시 거래와 무르기), 거래 금지 제도가 그러하다.
(6) 이방(바알)제도는 1부다처제, 군주제, 노예제, 지주제 등으로 세상에 계급과 신분, 빈부의 격차를 만들어 내는 제도들이다. 바알은 가정에서 남자가 주인이 되는 신이다. 그리고 남성 신 바알이 거느리는 여성 신이 아세라 우상이다. 이들은 제사에서도 음란한 행위를 한다.
그래서 이방 신을 따르는 가족제도는 남자가 우위에 있는 1부다처제를 옹호한다. 그래서 이 지구상에서 오랫동안 남녀의 신분은 차별이 심하였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는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하여 왔었다. 그러나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가족제도에 1부1처제를 근본으로 한다. 지금 사회는 선진 민주국가 중심으로 보면 제도상으로 여성과 남성의 신분이 동일하다.
인간의 정치적 자유를 제약했던 군주제도가 폐지되어 정치적 자유가 보장된다. 사람의 신체의 자유, 신분의 자유를 제약했던 노예제도가 폐지되었다. 그런데 이 사회는 아직 나쁜 제도 하나가 남아 있다. 이것이 성경 희년법을 정면으로 어기고 있는 지주제도다. 이 세상은 지주제도를 임대제도로 바꾸어 주어야 비로소 온전한 시장경제와 자유 사회가 도래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 경제제도의 개혁은 우리 역사에서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다. 아직도 이슬람 같은 종교 국가는 일부다처제를 하기도 하고, 여성에 대한 신분의 차별이 심하다. 기독교 국가에서도 여성에게 투표권이나 참정권의 자유를 부여한 시기는 불과 얼마 되지 않는다. 미국의 노예제도 폐지도 150년 역사 밖에 되지 않았다. 군주제도를 폐지하고, 민주제도를 도입한 것도 20세기에서나 일반화되었다.
이런 역사를 되짚어 보는 것은 긴긴 역사에서 사회의 발전이 그래도 조금씩은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다. 특히 이런 제도의 개혁은 최근 300년 이내에 이루어진 짧은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사회 발전에는 그래도 복음을 받아드린 기독교의 역활이 가장 크다고 할 수있다(레 25:23). 그래서 이제 마지막 남은 지주제도의 혁파도 그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지주제도의 혁파는 인류가 해야 할 마지막 과제라고 본다. 지주제도의 혁파는 개방된 오늘날의 사회에서도 가장 저항이 강하고, 오래 버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노예제도의 폐지나 군주제도를 폐지한 시민혁명처럼 지주제도의 혁파에는 그만큼의 희생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알이 세운 지주제도를 혁파하고, 성경 희년법을 실현하기 위하여 지상에서 큰 이변과 환란을 겪게 할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에스겔서가 말하는 곡의 전투가 아닐까 한다(겔 38:1 이하).
필자는 하나님의 땅을 사람의 것이라고 보는 지주제도가 있는 한 천년왕국은 도래할 수가 없다고 본다. 지주제도가 혁파되어야 천년왕국이 도래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어 세상을 미혹하는 사단의 세력부터 먼저 결박하고(계 20:1,2) 시작할 것이다.
(7) 복음전파로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막 1:14,15)와 희년 선포로 시작된 은혜(수용)의 해(눅 4:19)가 실현되고 완성되어야 한다.
희년법의 불변 성질과 완벽성은 천년왕국의 통치 수단이다.
성경 희년법이 말하는 현재물, 미래물, 영구물은 물질이 가진 기본 성질에 따른 분류다. 그래서 이 물질의 성질에 맞추어진 거래 방식을 따라 재화와 서비스를 팔고 사야 한다. 이것은 낮과 밤이 천체의 물리적 성질에 따른 것이므로, 사람은 낮과 밤의 성질을 따라 살아야 하는 것과 같다. 사람은 낮과 밤을 바꿀 수가 없으므로 밝을 때는 일하고, 어두운 밤에는 쉬는 것이다(예외는 있음). 희년법이 가르쳐 주는 물질의 성질과 거래 방식은 이와 같다.
성경 희년법은 제도상 100% 자유재산제이며, 이론상 온전한 자유시장론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비유로 가르쳐 준 포도원 천국경제법은 구약의 희년 거래법보다 더 간단하고 쉬운 제도다. 그래서 천년왕국에서는 사람이 밤과 낮을 구별하여 살아야 한다. 사람이 도로에서 도로교통법을 지켜야 하는 세상이라면, 성경 희년법과 예수 그리스도의 포도원 천국경제법은 천년왕국에서도 필수적인 통치 방식이 될 것이다.
성경 희년법이 천년왕국의 통치 수단이 되어야 할 이유를 일곱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① 희년법은 하나님이 지으신 땅과 그 땅의 다스림에 대한 주인과 청지기의 생활 관계를 가장 잘 나타내고 있다.
② 희년법은 사유재산제와 시장경제를 근본 통치 철학으로 한다.
③ 희년법은 토지의 안식과 생태계를 배려하는 제도로 환경보호의 시작이다.
④ 희년법은 거래를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분명하게 구분한 시장경제의 경전이다.
⑤ 희년법은 실물 거래와 비실물 거래를 과학적으로 구분하고, 거래 방식까지 알려준 금융거래의 교과서다.
⑥ 희년법은 토지 무르기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예표하는 성경 말씀이다.
⑦ 희년법은 세상 어느 문헌에도 없는 사람의 육과 영을 동시에 살리는 구원의 유일수단이 들어 있다.
①~⑦의 이유로 천년왕국은 희년법 통치를 하는 나라이어야 한다. 어떻게 보면 희년법 통치는 천년왕국보다 더 현실적으로 절실하고, 거룩한 생활을 위한 필수 수단이다. 천년왕국은 사람을 심판하려는 것이 아니고,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수단으로 필요한 하나님의 도구다.
** 15회로 마칠 예정이었으나 양이 늘어나서 한번 더 쓰겠습니다. 다음은 천년왕국의 본문(계 20:1~8) 설명과 천년왕국의 통치 수단이 될 포도원 천국경제법(마 20:1, 21:33)을 다루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