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에는 Nadir Divan-begi Madrasah에서 식사를 하면서 공연을 보는 것으로 하여 어제 예약을 하여 두었기 때문에 낮에 부하라 주변의 유적지를 둘러보고 라비 하우스로 오면 된다.아침 식사를 하면서 일행들 끼리 오늘의 일정에 대해서 서로 상의를 하게 되는데 무엇을 어떻게 부하라의 유적지를 볼 것인가에 대해서이다.
랴비 하우스 주변은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곳으로 지도를 보고 다니면 되지만 인솔자가 언급한 수피(이슬람교의 한 분파)교의 지도자의 영묘가 있는 낙쉬반디야(Naqshbandiyyah)와 부하라의 마지막 왕인 아민 칸의 여름 궁전인
시토라이 모히호사 (Sitorai Mohi Hosa), 부하라의 왕을 소련에 팔아 넘기고 스스로 부하라의 왕이 되었던
파이줄라 호자예프의 가옥 (Fayzulla Khodjaev House Museum)은 거리가 멀어서 택시를 타든가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정이 정해지지 않은 자유여행이라면 유유자적 다녀도 되겠지만 일정이 정해진 여행이라면 비용보다는 시간에 우선순위를 둘 수밖에 없다.
어찌하여 네 명이서 택시를 대절하기로 하여 의견이 모아졌고 택시를 대절하기 전에 우즈베키스탄 화폐를 은행에서 환전을 하였다.
우즈베키스탄은 카드나 달러를 쓸 수가 없기 때문에 택시를 타거나 음식을 사먹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즈베키스탄 화폐를 환전하여야 한다.
마침 은행 근처에 택시가 있어서 네 명이서 흥정을 하여 4만 솜(한국 돈 27,000원 정도)으로 위에 언급한 세 군데를 가기로 하였다.
숙소 근처에 있는 은행....아직도 공산주의 시대의 습관이 남아 있어서 서비스에 대한 개념이 부족하다.
이곳에서 택시를 타고....
그런데 택시기사가 할아버지로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이다. 아마도 그 할아버지는 일인당 4만 솜으로 생각을 했다고 생각을 하는데 우리 일행 중에는 일인당이라는 언급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4만 솜으로 세 군데를 다 보고 더 달라고 하면 그 때 조금 더 주자고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말을 듣는 순간 마음속에 분노가 일어나며 같이 다니고 싶은 마음이 없어진다.
가이드가 말하기를 낙시반디야까지 택시를 타고 가면 2만 솜 정도를 받는다고 하였으니 기다렸다가 다시 태우고 기다렸다가 다시 태우면서 세 군데를 다니려면 오전이 그냥 가는데 무슨 도둑놈의 심보인가......
결국 한 군데를 더 들러서 네 군데를 그 택시기사할아버지는 네 시간을 우리를 태우고 다니면서 우리에게 뒤통수를 맞고 말았다.
오전 중에 택시를 타고 다닌 유적지..동선의 순서대로 4시간을 탔는데...순수한 기사 할아버지에게 상처를 주게 되었다.
여행을 하다가 보면 별이 별 사람들은 만나게 되는데 완전체 같은 사람부터 분노조절장애자 양심불량자 등등....
여행을 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당최 알 수가 없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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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쉬반디야(Naqshbandiyyah)는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수피(이슬람 신비주의)학교를 세운 낙쉬반디의 영묘가 있는 곳으로 14세기에 지어졌으며 수피즘 최대의 성지로 낙쉬반디의 영묘와 모스크, 마드라사, 부하라 칸국의 칸들의 영묘들도 많이 있는 곳이다.
그런데 이런 유적지는 이슬람 교리와 수피즘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면 사실 의미가 없는 곳이다.
유럽이나 중동 같은 지역을 여행을 가면서 기독교나 이슬람교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면 여행을 하는 의미가 없다.
인도를 여행하면서 힌두교를 모른다거나 티베트나 미얀마 태국을 가면서 불교를 모른다면 마찬가지로 여행을
하는 의미가 절반은 줄어들게 된다.
낙시반디야는 부하라에서 13km 떨어져 있고 가는 길에는 들판도 있다.
들어가는 정문
이런 길을 따라서 들어가면 모스크와 마드라사 영묘등이 있다.
부하라 유적지를 설명하면서 낙시반디야도 같이 설명되어 있는 안내판
이곳에도 미나렛이...들어가는 문이 보인다.
이들은 수피교(이슬람 중에서 신비주의자들)로 이곳을 참배하러 온 사람들이다.
낙시반디의 영묘 옆에 보이는 무덤들은 수피교 지도자들이거나 부하라 왕족들의 무덤들이다.
이곳은 회교사원도 있고 영묘도 있으며 마드라사도 있는 복합 공간이다.
예배 들이는 곳...
내부에 있는 못에서 이물질을 건져 내는 듯...
이쪽은 마드라사이다.....
화려하게 단청이 된 천정
밖에는 뽕나무 그늘에서 쉬는 사람들이 ...이 중에는 여행의 일행들도 있다.
기둥들...이런 나무들이 어디에서 있는지도 궁금하다.
수피즘은 전통적인 교리 학습이나 율법이 아니라 현실적인 방법을 통해 신과 합일되는 것을 최상의 가치로 여기며, 수피즘의 유일한 목적은 신과 하나가 되는 것으로 이를 위해 춤과 노래로 구성된 독자적인 의식을 갖고 있어서 처음에는 이슬람교단으로부터 이단으로 박해를 받았았었다.
수피교인들은 세마의식(儀式)인 빙글빙글 한 없이 도는 춤을 추는데 춤을 통해서 무아의 황홀경 가운데서 신과 합일의 느낌을 얻기 위해서이다
세마의식을 하는 수피들....2017년도에 터키의 카파도키아에서 찍은 사진
이고을 나오는데 사람들이 많이 들어온다.
이곳의 정식명칭은 Baha-ud-din Naqshband Bokhari Memorial Complex로 긴 이름이다.
낙시반디야를 구경하고 부하라의 마지막 왕인 아민 칸의 여름궁전인 로 가면서 이건 아니지 않나 하고 이야기를 했지만 양심에 털이 났는지일인당이라는 언급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한다.....
어쨌든 그 택시를 타고 여름궁전을 갔는데 시토라이 모히 호사 (Sitorai Mohi Hosa)의 의미는 타지크어로 ‘달과 별의 정원’이라고 한다.
모히 호사 정문
부하라 왕국은 1864년도에 러시아의 침략으로 러시아의 통치를 받게 되었고 부하라왕국은 러시아로부터 대리통치 위임을 받는 처지에 있었으며, 1920년 러시아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하면서 부하라왕국도 소련에 합병을 하려고 하자 부하라의 마지막 왕인 알민 칸은 반기를 들고 저항을 하다가 1931년에 폐위를 당하고 부하라왕국은
사라지게 되었다.
이 여름궁전은 부하라의 마지막 왕 알민 칸에 의해서 1911년에 지어졌는데 31년에 폐위를 당했으니 얼마 살아보지도 못한 셈이다.
여름궁전을 이곳에 짓게 된 것은 부하라의 마지막왕 아민칸은 여러 곳에 양을 방목해둔 후 가장 양이 뚱뚱해져 있는 장소가 가장 좋은 터라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일설에는 아르크 성에 살고 있던 알림 칸을 전략상 성에서 내몰아 고립시키기 위해 도시외곽에 궁전을 짓게 해서 살게 했다고 한다.
아민칸은 궁전이 완성되자 궁전의 건축에 참여한 모든 건축가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아 아름다운 궁전을 완성하느라 고생했다며 큰 상을 내리고는 한사람씩 궁전을 건설하는데 쓰였던 커다란 절단기 앞으로가서 양손을 올리라고 지시하고 손목을 절단기로 잘랐다고 하는데 다른데 가서 똑 같은 건물을 짓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이런 이야기는 타지마할에서도 나오고 샤흐리삽스의 궁전을 지을 때도 등장하였는데 믿거나 말거나가 아닐는지...
궁전의 주인이자 부하라의 마지막 왕인 알민 칸...사과를 던지고(이건 사실) 장인들의 손목을 자른
(이건 거짓으로 소련이 속국이었기 때문에 불가) 왕이다.
아민 칸은 궁전의 연못에서 매일 아름답고 어린 여자들만 엄선해서 나체로 수영을 하게 만들고, 테라스에서
그 모습을 감상하다 마음에 드는 여자아이에게 사과를 집어던져서 머리나 몸에 사과를 맞은 여자아이들을
침소로 불렀다고 한다.
아민 칸의 여름궁전으로 사용했던 모히호사의 하렘에는 300명이 넘는 후궁들이 살고 있었다고 하며 모히 호사에 있는 후궁들만 그 정도였고, 다른 곳에는 더 많았다고 한다.
정문으로 들어가면 기념품을 파는 사람들이 반긴다.
궁전 건물들
화려하기는 한데 무엇인가가 약간 어설프다.
궁전 내부...타일이 아니고 천이다.
아민 칸의 초상화가 있는 방
러시아의 표토르, 대제...부하라는 러시아의 속국이었기 때문에 러시아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만들었을까?
벽에는 부하라의 산업과 특산물에 대한 그림도 있다....
전통의상을 입고 패션쇼를 하는 모델들의 그림도 있고
칼란 모스크 앞 광장에서 실크와 향신료 축제를 했다는 포스터
진열된 도자기들..
세공된 그릇 들 ..부하라에서 생산되는 것들이다.
천정..화려하기는 하지만 이곳도 양간 어설프다.
벽에 이렇게 화려한 문양들이 그려져 있다.
사과를 던지고 놀았다는 연못...
누각
누각 아래는 이런 물건을 판다
지금은 이 건물이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중인데 부하라를 찾는 여행객들이 반드시 들르는 곳이다.
아마도 사과를 던졌던 누각과 어린 후궁들이 목욕을 하던 연못 때문을 보기 위해서는 아닌지....
우리가 갔을 때는 이곳의 어린이들도 견학을 왔었다.
이곳을 방문하는 브아피를 위한 집이라고
게스트 홀이라는 간판
왕궁건축의 책임자인 우스토 쉬린 무라도프 흉상...우즈배키스탄 정동양식과 서양식의 절충약식으로 지었다고 한다.
집무실...바닥과 벽은 우즈벡식이고 천정의 산들리에는 러시아식이라고...
견학 온 꼬마들
밖에서 한 컷
뜰에는 공작들이 돌아다닌다.
여름궁전 구경을 마치고...
이곳에서 구경을 마치니 12시 반으로 두 시간째 택시를 이용하고 있는데 다시 세 번째 장소인 파이줄라 호자예프의
가옥 (Fayzulla Khodjaev House Museum)으로 가는데 택시 기사 할아버지는 손님들이 어떤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지
모르는 체 기분 좋게 우리를 모시고 다음 장소로 간다.
파이줄라 호자예프의 가옥으고 가는 길의 부하라 시가지 모습
유적지를 구경하면서도 이것이 마음에 걸려서 일행들에게 이것은 아니지 않는가 하면서 일인당 2만원 조금 넘는 돈 때문에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고 하여 사기를 쳐서는 되지 않는가 하며 동의를 구했으나 씨알이 먹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