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기 23
류인혜
* 베드로의 발등과 피에타
- 성 베드로 성당
시스티나 예배당을 나와서도 누가 볼까 봐 몰래 뒤돌아서서 계속 흐르는 눈물을 닦는다. 눈물 고인 흐릿한 눈으로 바티칸 성당과 연결된 통로를 지나서 베드로 성당으로 건네 왔다.
들어가는 입구에는 다섯 개의 문이 있는데 오른쪽의 문은 희년의 문이다. 그 문은 희년에만 열린다. 그 문으로 들어가면 죄 사함을 받는다. 죄가 많은 사람은 문이 열리기를 기다린다. 죄 사함도 받지 못하고 죽거나 50년을 기다리기가 너무 길다. 그래서 25년을 희년으로 하고 50년을 대희년으로 정했다. 2000년도가 대희년이었다.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이 그 문을 통과하기만 해도 죄가 없어진다면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크다. 이미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흘린 피로 인간의 죄는 사해졌기에 믿기만 하라는 것이 아닌가.
메디치가의 레오 10세에 의해서 시작되어 네 사람의 교황에 의해 1506년부터 오랜 세월 동안 건설되었다는 성당은 규모가 대단하다. 멀리 보이는 비둘기 모자이크 상의 날개가 1m가 넘는다고 하는데, 벽에 붙어 있는 조각상이 들고 있는 펜의 길이가 그보다 길다고 한다.
마침 인도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평생 봉사하며 살다가 돌아가신 데레사 수녀(잠시 그분의 이름을 잊어버렸다.)의 무슨 행사가 있어서 많은 사람이 모였기에 그 넓은 성당 내부에 사람으로 꽉 차 있다. 사진기 속에는 사람들의 머리만 보이니 기념으로 간직할 온전한 모양을 제대로 찍을 수 없다.
유럽여행에서는 맨 마지막에 봐야 할 곳이다. 이곳을 먼저 보면 다른 유적은 시시하게 여겨진단다. 얼마나 넓은지 공간에 대한 개념이 전혀 잡히지 않는다. 성당 한편에 또 다른 작은 성당이 있어 그곳에서는 예배가 진행되고 있다.
앞쪽 중앙에 침대 모양의 거대한 장치물이 있다. 그 밑에 베드로가 묻혀 있다고 한다. 그 오른편 가까운 곳에 베드로의 동상이 벽에 붙어서 조각되어 있다. 13세기의 조각가 ‘아르놀로 다 캄비오’가 만든 청동상이다. 머리털과 수염이 곱슬곱슬하고 얼굴이 검다.
줄을 길게 선 사람들이 그의 발에 손을 대고 입을 맞춘다. 그래서 발등이 패여 있다고 한다. 누가 사진을 찍어 준다면 줄을 서서 참배를 하고 싶었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고 일행은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베드로의 유해를 모시려고 성당을 짓기 시작한 것이 베드로 성당의 시초이다. 16세기경에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재건 계획에 따라 점차로 지어진 것이 120년에 걸쳐 1626년에 완공되었다. 그동안 ‘브라만테’,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베르니니’ 등이 참여했다. 중앙의 둥근 돔은 미켈란젤로에 의해서 완성되었다.
유명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상’ 은 성당 입구 우편에 유리로 보호해 두었다. 피에타는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인데 성모 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안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그림이나 조각상을 뜻한다.
1498년 프랑스 추기경의 의뢰를 받아 바티칸의 성 피에트로(베르도) 대성당에 <피에타 Pieta> 조각을 완성(1500년)한다. 그가 만든 네 개의 피에타 중에서 맨 처음이다. 23세에 만든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조각의 완성도가 높다. 미켈란젤로는 사람들이 자기의 작품이란 것을 믿어주지 않으니 화가 나서 마리아의 어깨띠에 ‘M. Buonarotti가 했다’라고 사인을 했다. 유일하게 사인이 들어가 있는 작품이다. 후에 정신을 차린 그가 자신의 감정을 자제하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고 한다.
당시 미켈란젤로는 피에타를 다른 예술가들과는 다르게 해석하였다. 성모마리아를 상심에 가득 찬 나이 든 여인으로 표현하고 있는 기존 작품과는 달리 젊고 평온한 모습으로, 비록 아들의 죽음이지만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영원성이 담긴 표정으로 그리고 있다. <최후의 심판>을 그리는 사이에도 <피에타>를 3개-두오모의 피에타(피렌체 두오모 성당 박물관), 팔레스트리나의 피에타(아카데미아 미술관), 론다니니의 피에타(스포르체스코 성)나 만들었다.
우리 일행이 방문했던 피렌체 두오모 성당 박물관의 피에타는 세 사람이 조각되어 있다. 미켈란젤로가 자신의 무덤을 장식하기 위해 만든 조각으로 성인 Nicodemus를 자신의 얼굴로 표현하고 있다. 죽기 6일 전까지 작업을 계속한 론다니니의 피에타는 그의 생애 마지막 작품이다.
50여 년의 세월의 차이가 나지만 한 사람의 조각가가 만들었다는 작품이라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다른 분위기를 표현하고 있다. 이번 여행에서는 베드로 성당과 두오모 성당 박물관에서 두 개의 피에타를 만났다. 나머지 두 개의 피에타는 언제 볼 수 있을까. 피에타뿐만이 아니라 베드로 성당 내의 모든 조각품과 장식들이 각기 하나의 예술품으로 보였다.
가이드는 자유롭게 구경하다가 지하를 통해서 밖으로 나와 오른편 회랑의 원주 밑에서 모이자고 했으나 지하로 내려가는 길에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 있어서 우리가 들어왔던 입구에 모여 있다가 나갔다. 그전에 주 선생님이 갑자기 꼭 봐야 하는 베드로 상을 보지 않았다고 해서 가이드가 따로 모시고 갔다.
계단을 내려가서 기념품 가게에서 자유시간을 주었다. 수녀님이 봉사하는 곳이다. 메달이 예뻐서 물어보았더니 “십팔 케이”라고 우리나라 말을 한다. 10만 원에 가까운 금액이어서 포기했다. 잔돈이 있는 대로 1유로짜리 책갈피만 7개 샀다. 검은색 나무로 만든 마리아상은 현대적인 감각이다. 마음에 들었지만, 필름을 사느라고 벌써 예산이 초가 되어 포기했다.
아직도 약속장소로 나오지 않는 일행을 데리러 가이드가 또 들어갔다. 모두 모이자 병아리가 어미 닭을 따라가듯 줄을 지어 회랑을 거쳐 광장으로 나왔다. 건물 양편의 회랑은 284개의 원주를 세웠고, 140명의 성인상이 꼭대기에 줄을 지어 서 있다. 성인들은 그곳으로 모이는 사람들에게 시위하는 듯 당당하다.
베드로 성당의 광장은 넓다. 한꺼번에 렌즈 안에 다 넣을 수 없어서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담았다. 멀리 동산 위에 소나무가 줄을 지어 있는 장면을 넣어서 찍었다. 로마의 소나무를 찍은 유일한 사진이다. 나중에 책을 만들 때, 알맞게 사용했다. 광장은 어둠에 묻히는데, 은은히 울려오는 종소리가 평화롭다. 이탈리아 관광 중에는 자주 종소리를 들을 수 있어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