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렌합복(주님의 때 , 네게 복주고 복주시기를 원하며)
추운 것은, 차가운 것은 너무나 싫다.
가을의 지나친 포근함 때문에 ‘겨울이 오기는 할까?’ 라며 더디게 오는 겨울을 의심했던
마음이 무색하게 올해는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이었다.
차가운 바람은 여전히 볼을 스치고, 어설픈 겨울 외투를 더욱 여미면 솟은 어깨가 한참 작
게. 단단하게 느껴지는 겨울의 끝자락에 어느덧 와있다.
매년 봄은 새롭게 한 살 한 살 늘어나는 나이와 함께 나에게 어김없이 찾아오지만 잔인한
4월의 봄은 아픈 기억과 슬픔 속에 머물러있다.
그 봄이 너무나 밝고 너무나 화려해서 내가 누릴, 내가 느낄 빈틈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벚꽃이 흩날리던 그 봄 . 그 찬란한 꽃잎들 사이에서 감히 ..
앞으로 어찌될지도 어떻게 살아야할지도 알 수 없던 그 막막함 가운데서 현실을 부정하고
싶지만 그럴수록 더 슬픔과 아픔과 속상함이 나를 헤집고 들어와 무거운 슬픔들이 눅눅하
게 나를 누르던 시간들이 있었다.
겨울은 가고 또 봄은 온다.
매년 농도가 다르게 느껴지는 그 봄의 무게를 재어본다면 지금은 내게 얼마만큼의 무거움
의 무게가 내게서 덜어져 나갔을까 싶다. 가벼워지고 있는 것이 맞는가?
아니면 내 마음이 단단해 지고 있는 것일까?
둘째 아이가 군 입대를 앞두고 있다.
어느 순간 장성해서 입대를 앞둔 아이의 엄마가 된다는 게 너무나 낯설다.
시간은 훌쩍 널뛰기를 한 것처럼 초등학교 1학년 그 코흘리개 아들에게 닥쳤던 아빠의 사
고소식이 어떤 충격이었을까 싶다. 그 상처를 보듬을 새도 없이 어느덧 훌쩍 미래로 와버
린 듯 한 이 낯선 기분...
지금까지 많은 봄과 겨울을 보내고 또 새로운 봄을 맞는 문턱에 서 있다.
우리는 어떻게 이 시간들을 기억하고 또 새롭게 추억할까?
견디어내는 것 인내해 내는 것 이겨내는 것 내가 가지고 있는 힘을 힘껏 주며 살아내는
것.
내 마음의 온도를 재어본다면 내 마음의 기쁨의 크기를 재어본다면 지금 맞이하는 이 봄과
얼마만큼 닮아 있을까?
겨울이 긴 자취를 남기고 물러나려는 지금. 이 봄. 다가올 찬란한 봄 , 흐드러지는 벚꽃을
마음껏 누리고 즐길 수 있을 만큼 상처가 아물어졌나?
돌아보면 느린 것 같고. 더딘 것 같고. 다 아픈 것 같고.. 그 상처 속에서 감히 못나올 것
같았는데 새 봄을 맞이하려는 지금 돌아보니, 새 살들이 상처를 몰아내고 자라나고 있었다.
감히 앞을 알 수도 볼 수도 없는 그 막막함과 두려움 , 불안 속에서 한줄기 빛처럼 주님은
늘 나와 우리가족과 동행하고 계셨던 것을.
세 아이들을 두고 단 한가지 기도. 주님안에서만 자라게 해달라고 기도.
내가 돌보고 키우지 않아도 주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 가운데 우리 자녀들을 인도하시고 예쁘고 강하게 자라게 하셨음을 고백한다.
어리고 작고 연약하던 우리 아이들, 상처와 함께 커왔지만 단단하게 추운 겨울을 뚫고 나
온 새싹들처럼 어느덧 이렇게 반짝이며 자라나있다.
부족한 엄마의 기도와 아빠의 돌봄 가운데서도 아이들은 그렇게 소망이 되어 빛나고 있었
다.
군입대를 앞두고 있는 우리 아들에게 찬란한 봄을 기억하라고 소중히 간직하라고 얘기해줘
야겠다. 늘 주님의 섭리는 완전하고 또 선하시고 온전하시니 그 때가 내가 아는 때가 아닐
지라도 늘 돌보시고 우리를 인도하고 계시다는 확신을 아들이 갖도록, 주님을 품고 살길
기도한다고 말이다.
무엇을 위하여 우리가, 내가 살아가야 하는지 묻고있는 나는 아직도 인생의 사춘기 시절
가운데에 멈춰져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여전히 그 치열하게 기쁘고 행복함을 누릴 그때에 그 아름다운 봄을 찬찬하게 누리지 못한
그 억울함이 내게 남아 있나보다.
온전히 내 온몸 구석구석 , 숨결 구석구석 다 뒤집어서 깨끗한 찬란한 그 볕에 탈탈 털어
서 말리고 싶다.
따뜻하고 또 포근하고 밝고 찬란한 그 빛 앞에 온전히 덮이고 싶다.
깊숙이 묵어있고 켜켜이 눌려있던 슬픔의 아픔의 물기를 바짝바짝 이 봄이 오면 말리고 싶
다.
긴 겨울이 지나가고 또 주님이 허락한 계절 . 찬란한 봄은 이렇게 슬며시 또 찾아온다.
주님의 때에 . 주님의 시간표에..
주님이 욥을 통해 주었던 그 고난의 시간표를 인내하고 또 인정하고 주님께 찬양을 드리던
그 때에 주님은 갑절의 은혜로 축복으로 더해주셨던 것처럼 감히 기대하고 또 기다려본다.
새로운 봄의 이름을 , 새로운 봄의 가정을 , 찬란하게 빛나는 봄의 공기를 누리는 날을 .
새 생명을 주신 주님께 주님의 눈에 예쁜 가정을 나를 보여드리기를 원한다.
내가 무엇을 해서가 아니라 있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주님은 기뻐하시고 사랑스러워하신
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여전히 의심과 불신앙 가운데 있었다.
계속 주님은 나와 우리 가정을 빚어 가시고 주님은 계속 주님께 내어드리기를 고백하기를
친밀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내가 뭐줄까? ’ 나지막히 들리는 그 음성.
내가 고백하고 부탁하기까지 기다리고 계신다는 그 애타는 마음을 이제 아주 조금..
알 것 같다.
나또한 부모로 어미로 여전히 자녀들을 그리워하고 애절해하고 있으니..
올 봄 찬란하고 아름다운 봄이 되길 . 묵은 내안의 먼지와 상처, 오물이 깨끗해지는 따뜻
한 봄이 되길 살며시 기도하고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