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남
68/가정 김숙자
열이 올랐다 내렸다 하고, 머리가 빙빙 돈다.
시야가 가물가물하고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꼭 일을 하기 싫을 만큼 아프고 의욕이 없다.
2박 3일 동안 북적대든 손녀 손자들이 모두 가니 집안은 적막강산이다.
남편은 주전자에다 옥수수 차를 끓인 물과 약국에서 사온 약을 가지고 온다.
"당신, 이 약을 먹어보고 차도가 없으면 내일 아침 일찍 천안으로 내려가세."
구정(명절)을 보내고 몸살과 방광염, 거기에 치과 치료까지 겹쳐서
1월~2월 두 달을 이 병원, 저 병원으로 예약 날짜 맞춰 병원 가는 것이
노부부의 일상이었다.
노부부는 이른 아침부터 병원에 갈 준비를 한다.
입원할 소지품을 챙기고, 여기 저기 집 단속을 한다.
거실 앞에 있는 온실 속의 나무들도 살핀다. 화분에 손을 넣어보니 물기가 촉촉하다.
'병원에 다녀와서 물을 주어도 되겠지?'
경부고속도로는 언제나 달려가도 정이 가고 마음이 놓인다.
이 길을 몇백 번이나 달렸을까? 친정이 온양이고, 고등학교를 대전에서 다녔으며 시댁이 전남 화순이니
이 도로의 통행은 내 생의 통로가 안닌가 싶다.
대학교에 유학한 후 부터 서울에 안주하며 이 고속도로를 1960년대 초부터 오르내렸으니
서울과 천안 사이는 각 지역 요소의 건물들과 농지의 변천 과정을 눈을 감아도 훤히 알 것 같다.
요즈음은 평택과 안성의 황금벌판이 사라지고 도롯가에 우후죽순처럼 펼쳐지는 건축물들이 낯설기만 하다.
병원(단국대학교 병원)에 도착하니, 아들(호흡기 내과 교수)이 기다리고 있다.
"병실이 없어서 특실로 예약을 하였어요"
"아니 중병도 아닌데........ 입원료가 많이 나오겠네?"
입원할 환자가 120명이 대기하고 있단다.
1월부터 호흡기 환자가 많아서 끼니도 제때 먹지 못한단다.
제 처(며느리)의 내조도 못 받고 저렇게 바빠하는 아들을 보니 어미의 가슴은 아리다.
좀 무심한 듯 보이는 며느리에 대한 불만을 내비치면 일언 제하에 말문을 막아버린다.
"어머니, 제가 불만이나 불편이 없는데.......걱정하지마세요."
산부인과 의사인 제 처에 대한 신뢰와 이해가 무엇에다 비유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하다.
하긴 산부인과 의사로서 세 아이를 키우며 병원에 다니는 며느리는 얼마나 힘들까?
시어미의 가슴이 또 아려진다.
병실을 안내받고, 환의로 갈아입는다.
외양적인 차림새 하나로 꼭 중병 환자 같다.
사실은 그럴 필요도 없는데 보조 의자에 의지하며 각종 검사를 받았다. 일사천리로 결과가 나온다.
독감(신종 풀루)이라고 한다. 검사 결과가 나오니
아들의 적극적인 치료와 남편의 병간호로 몸의 상태가 확연히 달라지고 있다.
남편과 둘이서 머무는 병실은 호텔 Room처럼 편안하고 아늑하다.
꼭 여행을 온 가분이다.
가끔은 바쁘고 힘든 일상에서 벗어나서 의사의 건강 진단을 받으며 편히 쉬며 치료받는 것도 좋을 듯싶다.
의사( 레지던트), 간호사들의 극진한 보살핌과 치료로 열도 내리고 정신이 맑아졌다.
의사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실감한다.
젊었을 때는 몸이 아프거나 몸 상태가 안 좋아도 병원엘 가지 않고 쉬고 나면 치유가 되었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병원에 가지 않고는 더 크게 탈이 생겨서 가족에게까지 불편을 주게 된다.
나이 탓인 것 같다.
남편은 운전하고 옆 자석에 앉아서 서울로 오는 길은 상쾌하다.
입장, 안성, 평택, 오산,.....온 시야가 평화롭다.
고속도로 가엔 그 넓었던 허허벌판이 보이지 않는다.
군데군데 보이는 하얀 비닐하우스가 햇빛에 반사되어 깨끗하고 아름답게 보인다.
안성을 지나서부터는 새로운 고층 건물들이 줄지어 들어서고 있다.
이 고속도로를 오르내릴 때마다 느끼는 것은 달라져 가는 농촌의 풍경이다.
들판은 좁아지고, 없어지고, 논과 밭의 넓이는 손바닥만큼 적어진다.
낯서른 건물들이 들어차서 시골도 아닌 어쭙잖은 도시가 되어간다.
이 고속도로로 다닐 수 없을 만큼 늙어버린 후의 길가의 모습은 어떨까?
인간의 한 세대가 사라지고, 서울과 천안 사이의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이 사라지고.......
그러나 새로운 역사가 이루어질 것이다.
넓은 벌판 위엔 더 높은 고층 빌딩의 숲이 생기고,
사계절의 자연의 풍경이 사라지고, 고속도로 위엔 차량으로 가득 덥히지 않을까?
그리고 또 다른 길이 생기겠지.......
장남의 손을 붙들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이 바로 어제 같은데......
성장하면서 부모를 기쁘게 해주던 일,
그리고 의사가 되기까지의 뒷바라지,
부모의 기대만큼 잘 성장하여 의사가 된 훌륭한 사회인의 장남,
삼 남매를 거두어야 하는 다섯 식구의 가장,
진주 김 씨의 장손.......
한 해, 두 해마다 달라져 가는 아들의 위상이다.
어느 사이, 노부부는 좀 힘든 일이나 어려운 일이 닥치면 자식들을 찾는다.
그리고 그들에게 의존을 한다.
그들은 노부부가 어려워하는 일을 거뜬히 해결하여 준다.
"여보세요, 우리는 자식들에게 든든한 보험을 잘 들어서 노후의 건강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자식에게 부담을 주면 안 돼, 우리는 스스로 건강을 지키도록 노력하세. 그것이 자식을 돕는 거야."
2월 28일(음력 정월 그믐날), 장남에게 치료받고 건강해진 몸으로 장을 담근다.
남편은 무거운 소금물과 메주를 항아리에 옮겨 준다.
4월 중순 경에 된장과 간장을 갈라서 네 집으로 나눌 참이다.
된장국을 제일 좋아하는 장남과, 딸네 집, 막내아들 집에 보낼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장독을 열어보며 갈색으로 울어나는 간장을 찍어 먹어 본다.
된장 맛이 좋기만을 마음 가득 빌며, 4월이 오면 햇된장으로 장남에게 맛있는 아욱국을 끓여줄 것이다.
2014년 3월 1일 연희동에서 김숙자
명절(구정)날 아침 친 손들과 함께
겨울 속의 장독대
거실 앞의 온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