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 요한복음4장31~42절
제목 : 예수님의 양식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자와 대화를 통해 복음을 전하고 ‘참 예배의 본질’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제자들과 대화를 통하여 예수님의 양식과 분담과 협력, 참된 전도의 의미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동네에 음식을 구하러 갔던 제자들이 돌아와서 음식 잡수시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제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습니다.
1. 제자들과의 대화(31~33절)
여인이 우물을 떠나 동네로 가서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동안에 음식을 사 가지고 돌아온 제자들과 예수님 사이에 오간 대화 내용입니다.
1) 제자들이 예수님을 청하여 음식 잡수기를 권합니다(31절).
“[31] 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이르되 랍비여 잡수소서”
제자들이 마을로 가서 구해온 음식을 가져와 예수님께 내어 놓고 잡수기를 권합니다.
2)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다고 말씀합니다(32절).
그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는 것에 놀랐을 뿐만 아니라(27절) 제자들이 모르는 먹을 음식이 있다는 말씀에 놀랍니다(32절).
“[32] 이르시되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주님께서 피로하고 시장하실 때 음식을 거절한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주님은 음식을 거절하는 것보다 다른 의도가 있었습니다.
주님은 다만 무엇이 먼저 와야 하며,
무엇이 두 번째 와야 하는지를 지적하고 있을 뿐입니다.
아버지께서 그에게 명하신 임무가 너무나 긴박한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는 음식을 뒤로 미루고 있습니다.
3) 제자들은 누군가 음식을 가져다 준 것이라고 오해했습니다(33절).
“[33]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하니”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양식이 있다고 한 말씀을 듣고는 누군가 음식을 가져다준 것이라고 오해했습니다(33절).
여인이 생명수(生命水)를 우물에서 얻을 수 있는 자연수로 오해했듯이,
제자들도 예수님이 말씀한 음식을 육적인 음식으로 오해한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오해하는 제자들에게 그가 말한 양식이 무엇인지를 설명했습니다.
2. 예수님의 양식.
제자들의 의문에 예수님께서 예수님의 양식에 대하여 설명합니다(34절)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예수님이 말씀한 예수님의 양식이란 자기를 보내신 자의 뜻을 행하고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육신의 양식만을 양식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적 양식을 참된 양식이라고 생각하셨습니다.
영적 양식은, 그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구속 사업을 완성하심입니다.
슐라텔(Schlatter)은 이 귀절에 대하여 해석하기를,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므로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되는 것은 그의 생명의 근거가 되며, 그의 능력의 원천이 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에게 있어서 특수한 의미로 그러합니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는, 일반 신자도 ‘하나님의 일’을 하므로 하늘의 생명력을 받습니다.
음식을 먹음으로도 육신이 생명력을 얻음과 같이,
신자는 ‘하나님의 일’을 참되이 할 때에 영적 생명력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일을 하는 자에게 한하여 이런 귀한 은혜를 주십니다.
1)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라고 하였습니다.
2015년도에 우리 교회는 표어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교회’로 정하고,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14회에 걸쳐 설교 한바 있습니다.
거룩한 삶, 구원을 받으라, 구원을 이루라, 주안에 서라,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부르심에 합당하게 하라, 성령으로 하나 되라, 믿음으로 살라, 소망 중에 즐거워하라 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뜻 행하는 것’을 덧붙임으로 자기가 헌신해서 섬기고 있는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를 더 확실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에게 맡겨진 직분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맡겨진 직분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고, 왕, 제사장, 선지자의 직분을 감당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왕으로서 우릴 통치하시는 분이시고,
제사장으로서 우리의 죄를 위해 자신의 몸을 제물로 드리신 분이시고,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분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부를 때는,
이 3가지 의미를 모두 포함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전도하시고 설교하신 것은 선지자로서의 직책을 수행하신 것이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제사장으로서의 직책을 수행하신 것이고, 예수님이 지금 하나님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것은 왕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계신 것입니다.
본문은 특히 사마리아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장면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입니다(눅4:43)
*눅4: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고 하였습니다.
2)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고, 잃어버린 영혼의 생명을 회복하고,
복음의 빛을 전파하여 한 가지로 세상에 구원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1) ‘아버지의 일’이 첫째 자리에 차지하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아버지의 일이 첫째 자리를 차지한다고 말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가 더 좋아하는 일이 없고, 그가 더 기쁜 마음으로 열심을 내어 하시는 일이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다윗이 하나님의 율법을 사모하는 것이 꿀보다 더 달다고 했던 것과 같습니다(시19:10).
*시19:10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우리는 부지런히 자신을 포기하고 하나님께 드릴 것이며,
주님의 명령을 기꺼이 순응하는 가운데,
불평이 없이 주님을 섬겨야 할 것입니다.
(2) 신자들이 이룰 ‘하나님의 일’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습니다.
곧,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요 6:29에 말하기를, "하나님의 보내신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금보다 귀합니다(엡 2:8; 벧전 1:7).
*엡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벧전1: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우리가 전쟁하듯이 힘쓰지 않으면 믿음을 지킬 수 없습니다.
딤전 6:12에 말하기를,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하였으며,
히12:4에는 말하기를, 피 흘리기까지 죄를 대적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신갑주를 입고 대적하여야 합니다.
*엡6: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엡6:14~17)”고 하십니다.
그리고 신자는 믿음으로 남들을 위하여 행해야 될 선한 일들도 책임 지고 있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실상 죽은 믿음입니다(약 2:17,26).
*약2:17,26 “[17]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26]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엡 2:10에 말하기를,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양식은 자기를 보내신 자의 뜻을 행하고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에게 맡겨진 직분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택하시고, 자녀 삼아주시고, 귀한 직분 주셨으니, 우리도 예수님처럼 주신 직분 잘 감당하여 하나님께 영광돌리시기를 축원합니다.
3. 분담과 협력(35~38절)
예수님의 양식에 대한 말씀에 이어서 곧바로 하신 말씀은 임박한 풍성한 추수에 관한 것입니다.
1)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35절)
“[35]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아직도 추수하려면 넉 달이 남았다고 말한다고 지적하면서, 임박한 추수를 기다리는 들판을 볼 수 있는 시각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너희가 넉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주님은 아버지의 일을 마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주님의 일’이 얼마나 무르익었는지를 추수에 비교함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곡식이 여물었을 때 우리는 추수를 연기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곡식이 땅에 떨어질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인 열매가 익었기 때문에
더 이상 기다릴 것이 없다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수확을 연기한다면 열매를 망치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자기가 서두르는 것을 설명하기 위하여
이러한 비교법을 쓰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 아니하느냐?'라는 문귀를 통하여
아직도 넉달이 지나야 추수 할 때가 이르다고 하는 인간의 겨으름과
인간의 마음이 하늘에 속한 일보다 땅에 속한 일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있음을 암시하기를 원했습니다.
추수하기를 학수고대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달수와 날수를 세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하늘의 열매를 거두는데 대하여
얼마나 게으른지를 생각하며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매일 매일의 경험은 이러한 패역함이 우리 마음에 내재(內在)하고 있으며 우리 마음에서 쉽게 떼어낼 수 없는 것임을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지상 생활의 장래를 위해서는 열심히 준비를 갖추지만,
하늘에 속한 일을 생각하는 데는 무관심합니다.
*눅12:56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2) 영적 사역일수록 분담해서 협력하는 것이 지혜롭습니다(36~38절)
(1)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합니다(36절).
“[36]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은 풍성한 추수를 위해 씨를 뿌리는 자이며,
그의 제자들은 그 씨앗이 맺은 열매를 거둘 자들입니다.
사마리아인들의 구원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사마리아까지 찾아온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자신을 씨앗으로 뿌릴 것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뿌릴 씨앗은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이 죽음을 통해 많은 열매가 맺힐 것을 예고합니다.
우리는 이미 상을 받은 사람입니다.
"삯도 받고"란 말씀은
"삯"은 다른 것이 아니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받음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복음을 전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믿게 하여 영생에 들어가도록 인도함입니다.
믿음에 순종하여 돌아오는 자들은 그 전도자에게 상급이 됩니다.
그러므로 바울도 복음으로 돌아온 자들을 가리켜 말하기를,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이라고 하였고(빌 4:1),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라고 하였습니다(살전 2:19).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자에게 주는 상금이 있습니다.
① 백 배의 상금을 받습니다(막10:29~30).
“[29]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30]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②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납니다(단12:3).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③ 썩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보상이 있습니다(요15: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전도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눅15:7,10).
“[7]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10]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습니다.
(2)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둡니다(37절)
“[37]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38] 내가 너희로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이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느니라”
이것은 사람이 흔히 다른 사람이 수고한 열매를 받아먹는다는 의미로 쓰였던 격언입니다.
심은 자는 수고할 뿐이고 거두지는 못합니다.
그것은 선지자들과 예수님의 수고에 해당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거둔다"함은 제자들의 수고에 해당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말씀을 통하여 복음의 사역자들에게 공통된 목적을 위하여 각자 헌신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그래서 일군들 사이에 악한 시기심을 갖지 않도록 원하셨던 것입니다.
먼저 어떤 일을 하도록 보냄을 받은 사람은 그가 하고 있는 일을 집중적으로 충성되이 돌봄으로써 자기 뒤에 오는 사람에게 더 큰 축복이 주어진다 해도 이를 부러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 익은 열매를 추수하도록 보냄을 받은 사람도 똑같은 즐거움으로 자기 일에 임해야 할 것입니다.
3. 예수님은 온 세상의 구주로 믿는 사마리아인들(39~42절)
1)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39절).
“[39] 여자의 말이 내가 행한 모든 것을 그가 내게 말하였다 증언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복음서 저자는 여기서 그 여인이 자기 동네 사람들에게 전파한 것이 얼마나 힘 있게 역사했는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이에서 우리는 사마리아인들 사이에 메시아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과 기대가 있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믿는지라'라는 말은 그 동네 사람들이 그 여자의 말에 감동되어
그리스도가 하나의 선지자임을 인정하게 되었다는 의미로 쓰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믿음은 어떤 의미에서 마음이 가르침을 받을 준비를 갖추었다는 점에서 믿음의 시작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직 가르침을 받지도 않은 사람들의 가르침을 받으려는 태도 하나를 보시고 이를 굉장히 높이 평가하시는 것을 보임으로 우리가 그의 말씀을 경외하는 것을 얼마나 존귀하게 여기는가를 배우게 하기 위하여 그저 믿음으로 마음 문을 연 것을 믿음이라고 확대하여 표현하셨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좀 더 진전 있기를 바라는 그들의 욕망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들과 함께 머물기를 간청했던 것입니다.
2)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시기를 청하니 이틀을 유하십니다(40절).
[40]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시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이것은, 마치 루디아라 하는 여자가 바울에게 한 말과 같습니다.
그 여자는 말하기를,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고 하였습니다(행16:14-15).
전도자를 귀하게 아는 그들 자신도 귀합니다.
3) 예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가 더욱 많아졌습니다(41절).
“[41] 예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가 더욱 많아”
그 후의 결과를 볼 때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청에 순응한 것은 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그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그곳에 머무셨던 이틀 동안에 많은 열매를 맺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킬 수 있을 때 결코 멈추어서는 안다는 교훈을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준비된 마음이 비방을 받게 될까 염려가 될 때나,
또는 쓸모없이 끝날 것 같아 걱정스러울 때는,
그리스도로부터 우리를 인도하여 줄 명철을 구해야 합니다.
'믿는다'는 말은 이제 그들이 믿을 준비를 갖추었을 뿐 아니라 실제로 참된 믿음으로 충만해졌다는 의미에서 다른 뜻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4)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줄 알았습니다(42절)
“[42]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하였더라”
이 믿음이 하나님의 말씀 자체로 잉태된 것이라는 믿음의 특징을 더 잘 표현해 주는 말입니다.
이제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선생으로 모시게 되었다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권위뿐입니다.
그는 지금 눈에 보이게 우리와 함께 계셔서 얼굴을 맞대고 우리와 대화하시는 것은 아니지만, 누구를 통하여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듣던 간에 우리의 믿음은 주님의 말씀에만 의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언급한 지식이 다른 데서 올 수도 없는 것입니다.
죽을 인생에서 나온 말은 우리의 귀를 채우고 만족시켜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말은 우리의 영혼을 잔잔한 구원의 확신 가운데 쉬게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 가운데 우선적으로 먼저 알아야 할 것은 그의 일군들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분은 그리스도라는 사실입니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영광을 그리스도에게 돌리는 일입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신실하고 참되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확실한 권위를 신뢰함으로 우리는 그의 가르침에 안전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의 사역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구주라고 선포할 때, 그들 자신도 그리스도께 들음으로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이로부터 우리는 이곳에서 이틀 동안에 그리스도께서 복음의 요점을 그때까지 예루살렘에서 가르치신 것 보다 더 분명하게 가르치셨음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자기가 세상에 전하는 구원은 온 세상에 공통적으로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정당한 상속자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나그네 된 이방인을 하나님이 권속으로 맞아들이고 먼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기 위하여 오셨다고 가르치셨습니다.
4. 참된 의미의 전도
마지막으로 우리는 사마리아 여인의 전도를 받고 나온 사람들이 변화되는 모습에서 교회 성장의 진정한 모델을 봅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예수님께 인도하는 모습은 요한복음에서 표현하는 성실한 제자도의 모습입니다.
안드레와 빌립이 그러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여인의 역할은 그들의 역할을 합친 것보다 더 큽니다.
많은 사람들을 한 번에 인도해 냈기 때문입니다.
1) 교회가 성장하는 교회가 되려면 두 단계가 필요합니다.
(1) 교회는 진정으로 예수님을 만난 사람으로 가득 차야 합니다.
예수님을 확실하게 만난 사람이라야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증거할 수 있고, 예수님에게 인도해 올 수 있는 자석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점에서 교회가 예수님을 계속해서 만나는 사람으로 채워져야 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2) 교회로 인도받은 사람은 예수님을 만나는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처음에 예수님께 나온 것은 변화된 수가성 여인의 말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녀의 지난 과거를 전부 알고 있다는 말을 들었기때문입니다(39절).
그랬던 그들이 예수님을 직접 만나고 함께 이틀을 지내는 동안 그의 말씀을 듣고 나서 수가성 여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42절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하였더라”
2) 여기에서 우리는 전도의 두 단계를 볼 수 있습니다.
(1) 첫 번째 단계, 안 믿는 자를 예수님께 데리고 오는 단계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신자의 모범적인 삶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이때 예수님께 나온 자(전도받은 자)의 믿음은 전도한 자 때문에 교회에 나오는 수준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전도한 자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믿음이 좌우됩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부족합니다. 진정한 전도에는
(2) 두 번째 단계, 즉 전도를 받아 교회에 나온 자가 예수님을 만나 체험하는 단계가 있어야 합니다.
만일 이 단계에 이르지 못하면 참된 의미의 전도가 있을 수 없고 참된 이미의 신자가 될 수도 없습니다.
예수님을 친히 자기의 구주로 믿고 말씀을 깨달아 자기 발로 서서 믿을 수 있는 단계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전도자는 자기가 전도했다고 해서 자기의 사람으로 만들려들지 말고 예수님께 인계해주어야 합니다.
만일 이런 과정이 없으면 전도한 사람이 다른 교회로 가면 전도 받은 사람도 그를 따라가게 될 것입니다.
전도한 사람이 무슨 일이 있어 낙심하여 교회에 안 나오게 되면 그도 역시 낙심하여 교회를 그만 나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바로 이 점을 조심해야 합니다.
만일 교인의 절대 다수가 “나는 누구 때문에 이 교회에 나온다”고 말한다면 이 교회는 아직 예수님을 참으로 만난 자가 적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 자신이 그런 말을 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교회에는 나오나 아직 예수님을 만나 구주로 영접한 경험이 없는 사람일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만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기도와 양육이 필요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제자들이 마을로 가서 구해온 음식을 가져와 예수님께 내어 놓고 잡수기를 권하지만,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다하면서, 예수님의 양식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어 임박한 풍성한 추수에 관한 말씀을 하시면서 것입니다.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고 하시면서 ‘분담과 협력’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참된 의미의 전도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우리에게 건강과 지혜와 물질 주었을 때에 우리의 사명을 깨달아 열심 다하므로 충성하는 자에게 주시는 생명의 면류관(계2:10), 썩지 아니할 면류관(고전9:25), 자랑의 면류관(살2:19), 의의 면류관(딤후4:8)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