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도서에서 책을 샀지만 사는 동시에 난 이 책을 다 읽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예상했던 내용과 한 치의 오차도 없으니까.
6년 전 [골든타임]이란 드라마 최인혁의 모델이라는 이국종 교수.
현대판 허준 이국종 교수는 사실 생각과는 달리 얼떨결에 외상외과를 맡게 되었다. 지도교수가 그에게 외상외과를 권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이국종 교수는 없었다는 말. 누군지 모르지만 외과과장님께 감사를 드려야 할 듯요.
......그 시절 나는 간 조직 재생, 연구에 집중했고, 이 연구 테마를 바탕으로 학위 논문과 연구강사 과정을 마쳐가고 있었다. 그러나 간담췌 외과를 비롯해 모교 병원 외과의 어느 분과에도 취직자리는 없었다. 지도교수였던 외과과장이 나를 불러 병원 내에 신설되는 분과인 외상외과를 권했다. 외상외과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일단 과장의 권유에 따랐다. 큰 수술은 성취감이 컸고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공부도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나는 그저 살아남기 위해 외상외과를 선택했다.
외상외과는 원시시대부터 시작된 외과의 가장 초기 모습으로서 외과 전체의 뿌리이기도 했으나 국내 의학계에서는 별다른 진전 없이 지지부진했다. 외상외과를 이야기할 때마다 나는 길게 설명해야 했다. 이미 잘 세분화되어 있던 외과의 여러 세부전공들과는 달랐다. 이 분과는 한국 의료계 내에서 존재 자체가 없었다. 사람들은 응급의학과와 외상외과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했고 구분하려 하지 않았다 실전에 투입되어 수많은 중증외상 환자를 치료해 온 주한미군의 군의관들만이 외상외과 의사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묻지 않았다.....
나의 일은 수많은 블록들 사이에서 맞는 조합 하나를 찾아내는 것과 같았다. 이것이 가능하면 저것이 불가(不可)했고, 저쪽에서 합(合)하면 이쪽에서 불합(不合)했다. 대형 병원 응급실에 실려 온 중증외상 환자들은 죽어 나가거나 다른 병원으로 전원되었다. 환자들은 응급실과 응급실 사이를 떠돌다 길바닥에서 예정에 없던 죽음으로 들어섰다. 시비(是非)를 떠나서 다들 그래왔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서 의사들은 다른 선택지를 떠올릴 여지가 없었다. 중증외상 환자들을 치료하는 것이 나의 업(業)인데도 환자들은 자꾸 내 눈앞에서 죽어나갔다. 살려야 했으나 살릴 방법을 찾지 못했다. 필요한 것은 시스템이었다.....
환자를 헬리콥터로 이송하는 것이나 의료진이 헬리콥터에 탑승하는 것은 한국에서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방금 전 수술한 환자도 한국이었다면 앰뷸런스로 이송되었을 것이고, 병원 도착 전에 이미 사망했을 것이다. 나는 수술을 마친 포텐자 교수에게 위험을 무릅쓰고 헬리콥터로 현장에 출동하는 의사들에 대해 물었다. 그의 답은 선명했다 네가 환자에게 가까이 접근할수록 환자를 살릴 기회가 많아질 거야. (The closer you get to the patient, the more likely you'll save the pati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