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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인-81 : 원종봉(元鍾鳳, 男, 1927年生 충남 천안시 광덕면) | |
*최초증언일: 1995. 10. 8 | *진상규명회 등록고유번호: OFIWE19450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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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땅 파고 굴 파는 일만 했다- |
아버지에게 징용영장이 나왔으니 어쩌겠는가! 아버지가 끌려갈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대를 이어야할 장남이 암흑의 땅으로 갈 수 없다는 것이 어른들의 결정이었다. 그래서 차남인 내가 아버지 대신 가게 되었다. 어머니와 천안에 있는 서양여관에서 3일 밤을 같이 잤다. 아마 모집 인원이 다 차지 않아서 기다렸던 것으로 생각된다. 어머니는 어린 자식을 일본의 전쟁터로 보내면서 하늘이 무너질 듯 걱정했으나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그 때 어린 자식을 남의 나라 전쟁터로 보내는 어머니의 심정과 흘린 눈물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쓰라림이었다는 것을 내가 성장하여 알 수 있었다.
일본으로 가 해군부대에서 일했는데 어느 부대인지 또 어느 곳인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아는 사람도 없었고 어울릴 사람도 없었다. 그저 땅 파고 굴 파는 일만 했다. 산속으로 한번 들어가면 며칠이 지나서야 나왔다. 굴이나 방공호를 몇 개 정도 파야 나올 수 있었다. 모두 전쟁에 쓸 시설들이었다.
마이즈루만에서는 육지가 보인다는 소리가 들리기에 구경할 셈으로 선실에서 갑판으로 나왔는데 다른 사람들도 많이 나와 있었다. 그 때 갑자기 콰광!〜하면서 굉장한 폭발소리가 났다. 사람이 배 밖으로 튕겨 바다로 떨어졌다. 그러더니 배가 두 동강으로 꺾이면서 가라앉기 시작했다. 기름으로 덮인 바닷물 속에서 사람들이 살려달라고 아우성쳤으나 구조를 받지 못했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죽어갔다. 모두 한국 사람들이었다. 민간이 구조선이 다가와 물에서 허우적대는 몇 사람을 태우고 뭍으로 나갔을 뿐이다. 나는 배에 달려 있는 밧줄을 잡고 있다가 민간인이 몰고 온 작은 배에 올라탔다. 그 때 배가 폭발할 때 몸이 튕기면서 머리를 부딪쳐 귀를 다쳤다. 돌아와 치료했으나 잘 낫지 않았다. 그 뒤로 잘 듣지 못했는데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인지 아주 캄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