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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산의 전설
박연근
1
또 다시 공포의 어두움이 찾아왔다.
명재는 몇일을 두고 환청에 시달리고 있었다.
설 전날 고운 모습으로 흰 떡 썰던 엄마의 칼 질 소리
지붕의 박꽃 하얗게 피던 날 떠나시는 엄마의 상여를 잡고 통곡
하시던 아버지의 피맺힌 절규의 소리
태어난지 사흘만에 어미 잃은 송아지의 엄마찾는 소리
선망의 대상이던 회사의 임원 승진을 앞두고 사표 쓸 때 들려오던
조롱의 소리들 “흥, 조선시대 효자났네 효자났어.”
차라리 이혼장에다 손도장 선명하게 꾸~욱 눌러 찍고 떠나라는
아내의 악바치는 소리 무언의 조소를 보내던 자식들의 소리들
그 소리, 소리, 소리. 떠오르는 비웃음의 환영들 차라리 두 손으로
귀를 막다가 머리를 쥐어짠다.
어젯밤도 그렇게 보냈다. 오늘밤도 달라진 것 없이 달이 뜬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어젯밤 일을 떠올렸다.
달밝은 밤 빈방에 홀로 누워 창밖을 보니 옛일도 그리워라
성장한 자식들 제갈길 가고나니 이내 몸은 홀로라서
서러운데 밤은 길어라. 치매 걸린 늙은 아비 밥달라 보채네
서둘러 쌀씻고 물부어 솥에 붓고 아궁이에 불지피니
수닭은 용마루에 올라가 목청높여 울어대네
바람은 서늘한데 달맞이꽃 피는 그길로 누군가가
와주었으면 좋으련만 서성이는 발자욱에 찬이슬만 내리네
현대사회의 구조상 산골에 홀로 사시는 늙은아비 봉양하러 떠나는
자식을 이해하기는커녕 모이기만 하면 저마다 목청을 높였다.
시설 좋은 요양원이 얼마나 많은데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현실도피다. 도저히 용납되어질 수 없는 일이다.
조용히 밖으로 나오려는데 “명재야 저 암소가 죽거든
꼭 내곁에다 묻어다오.” 하시더니 다시 코를 골며 주무신다.
그러고보면 백세시대가 반드시 좋은 일은 아닌 듯 싶었다.
2
명재의 아버님은 아주 어려서 독립군들의 손에서 자라났다고 했다.
그러다가 조금 철이 들 무렵 또다시 육이오전쟁에 휘말렸다고도 했다.
여기저기 크고 작은 부상을 입고도 용케도 살아오셨다.
이제는 연로하신데다가 치매까지 걸리셔서 어릴적에 불렀다는
독립군 노래를 밤새워 불러대신다. 어디서 그렇게 힘이 나시는지...
명재는 어려서 아버지의 일기장을 몰래 훔쳐 본 것을 기억해냈다.
전쟁의 광풍들이 지나간 발자욱마다 굳은 비가 내렸다.
황토물이 흥건히 고였다.
시절의 모든 것들이 다 젖음이다.
소총아닌 삽자루가 빗물에 젖음이다.
대검아닌 시퍼런 낫 날이 젖음이다.
초저녁이슬 새벽이슬에 젖음이다.
오늘 이 땅에 젖지 않는 것들이 어디있으랴
젖는다는 것은 아주 절망적인 것만은 분명 아닐게다.
전쟁의 상흔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당시의 젊음들!
그 모든 것들이 이땅의 숙명이였을까
아니면 겨울이 끝나지않은 이른 봄의 꽃시샘 추위였을까
명재의 아버지도 그때 그 시절의 한분이시다.
나이오십에 병든 아내를 손수 돌보시며 견디신 아버지
당신은 영원한 별빛 저하늘의 빛나는 제일 밝은 별빛
이마을 저마을 젊은 아낙들이 모이기만 하면 수런, 수런,
“재혼을 하시지, 저 어린 것들을 어찌 키우시려고 츳,츳,츳 딱도 하셔라”
그럴때마다 술 한잔, 담배 한 대, 어깨에 둘러맨 삽이 유일한 친구
그러면서도 칠남매를 잘도 길러내셨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동네에서 용케도 남의 입질에 오르내리지 않고
잘도 견디신 나의 아버지 참으로 존경합니다. 아버지
그렇게 강건하시던 아버지도 세월 앞에서는 어린애가 되셨습니다.
3
명재는 인적 없는 마을길을 걷기 시작했다.
혹시 누렁이라도 뒷따라오려나 싶어 돌아다보니 구부정한 그림자만
홀로 서있다.
그러다가 이제는 잡풀만 우거지고 달밤에 풀벌레 소리만 처량한
민영감 옛집터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꺼진 담배를 발로 비벼 끄고 다시 새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튀어나온 댓돌에 앉아 깊은 생각에 빠져 들었다.
공포의 대상이던 민영감! 아니지 호랑영감이라 불렸다.
사방 삼십리 땅을 가진 근동의 대지주였다.
부인도 여섯명이나 두었다고 했다.
또 육이오때는 무슨 부대 대장을 했다고도 했다.
또 그의 친동생이 읍내경찰서 높은 간부라고도 했다.
걸핏하면 젊은이들을 아무런 이유 없이 밤이고 낮이고 잡아 들였다.
그리고 그 집의 힘쎈 머슴들을 시켜 몽둥이로 두들겨 팼다.
이 호랑영감님이 지나가시는데 왜 빨리 달려와 구십도 인사를 하지
않았느냐? 매우 건방진 놈들이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그런 일들이 사흘에 한번 꼴로 생겨났다.
어쩌랴!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소작인이 무슨 죄인이라고!
하루는 이 마을로 탁발을 나온 애숭이 젊은 스님이 이 광경을 목격했다.
분기탱천한 이 걸승은 어깨에 메고 있던 바랑을 벗어 던졌다.
겁도 없이 호랑영감에게 눈을 부릅뜨고 삿대질을 하며 달려들었다.
“이보슈! 민영감! 전쟁터에서 살아 남은 것이 무슨 큰 벼슬인 줄 아슈!
비굴하게 혼자 살아 온 주제에 왜 걸핏하면 죄없는 사람들에게까지 매질이요
매질이” 했다.
이에 호랑영감은 목에다 핏대를 세우며 목청을 높였다.
“이놈! 이 비렁뱅이 중놈아! 남의 일 참견 말고 동냥질이나 잘해서
주린 배나 채우고 니놈이 믿는 부처인지 뭔지 하는 놈에게 니미타불이나
잘 할 일이지 왜 남의 일에 참견이야! 참견이! 이 미친놈아
이 놈 오늘 몽둥이 맞고 똥물 맛 좀 보아라 이놈아! 부처는 낮잠이 들었더냐” 했다.
4
명재가 대학 3학년때 휴학을 하고 군대에 들어가 첫 휴가를 나오니
마을이 전에 없이 몹시도 어수선했다. 친구에게 어찌된 일이냐고 캐물었다.
“아! 글씨말여! 그 부인들 여섯년들이 젊은 머슴들과 작당하고 호랑영감
전재산과 땅문서는 물론 몰래 숨겨둔 금덩어리까지 찾아내어
외아들놈까지 데리고 야반도주를 했다.”
경찰서에서는 눈에다 쌍심지를 켜고 이잡듯이 찾고 있는데 벌써 일년이
다되도록 실마리도 찾지 못하고 수사는 종결되었다.
민영감도 민영감이지만 그 동생도 사건 직후 종적을 감추었는데
모두 한 패거리라는 풍문이라했다.
혀를 끌끌 차며 “세상에 믿을 놈이 누구여!
천벌을 받은겨! 암! 천벌을 받은거라구!”
명재가 3년 군대생활을 다 마치고 복학을 하는데는 몇 달의 여유가 생겼다.
잠시 집에 머물때가 추운 겨울이였는데 민영감이 죽었단다.
명절을 열흘정도 남겨 놓고 두문불출 하길래 모두들 수상히 여겼다.
그래도 옆집의 부안댁이 밥이라도 챙겨주려 방문을 열어 보았다가
에~이~그머니나! 놀라 뒤로 넘어질 뻔 했다고 진술했단다.
누가 언제 챙겨준 것인지도 모르는 꽁꽁 얼어붙은 밥상 앞에서
앉은 채로 죽어 있었다.
그 모습은 흡사 자신이 두들겨 패서 앉혀 놓은 사람과 같다고 했다.
그래도 어쩌랴! 경찰의 조사가 끝난 뒤 마을 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추렴을 하여 장례를 치루기로 결정이 난 날
해가 질 무렵 봉고트럭이 마을로 들어오길래 혹시나 그 아들이라도...
그러나 트럭에서 내린 사람들은 그때 그 결승과 장의사 두명이였다.
격식대로 젯상을 차리고 능숙한 솜씨로 소렴,대렴을 걸치면서
민영감은 비로소 수위를 입고 관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걸승은 목탁을 두드리며 낭랑한 목소리로 무상계 염불을 시작할 때
참!스님도 왜 저런 악인에게 자비를 베푸십니까
허~허~허~ 똥 물 값이라오! 똥물 값 말이오!
5
명재는 복학을 하고도 주말이면 집에 내려와 아버지를 도왔다.
방학을 하면 아예 한 철을 집에서 보냈다.
민영감이 그렇게 죽은 후 마을은 재앙이 끊어질 날이 없었다.
멀쩡하던 아낙들이 당산나무에 목을 매고 자살을 했다.
남정네들이 불치병에 걸려 불과 이년동안 다섯명이 죽었다.
마을 앞 개울에서 미역감던 애들 셋이 익사를 했다.
마을이 생긴이래로 큰 홍수가 마을을 덮치는가 하면 큰 가뭄이 닥쳤다.
하루도 조용히 넘어가는 날들이 없다시피했다.
요사스러운 아낙들이 무녀 불러 사흘 밤 낮 큰 굿을 했다.
신부님이며 목사님을 불러 철야기도를 해봤다.
자칭 고승을 불러 백일불공도 드려보았다.
모두 돈만 날리고 하루에도 몇가구씩 짐을 꾸려 정든 고향을 등진다.
앗 뜨거워라, 담배가 다 타서 꽁초의 불이 명재의 입술에 닿았다.
이런, 우라질! 그 세월이 얼마인데 겨우 담배 몇 대 피울 시간에 불과
하다니... 다시 발길을 돌렸다. 암소는 눈을 감고 되새김질을 하고 있었다.
달이 밝다 못해 은빛인데 누렁이는 달빛을 즐기는지 코를 골며 잠이
든 듯 했다. 풀을 슬그머니 밀어주고 잠든 누렁이를 안고 방으로 들어섰다.
얼핏 시계를 보니 재깍재깍 초침이 새벽 두시로 넘어가고 있다.
천장은 누렇게 변하여 흡사 지렁이 기어가는 듯 했다.
그래도 낡은 창문살에 달은 밝다.
피식 웃으며 날짜를 집어 보니 오늘이 구월하고도 보름이다.
옛날 대학시절은 구월과 시월이면 공연이 마음이 들뜨고는 했지
지금의 아내를 꼬시려고 잔머리도 참 많이 굴렸는데
대학가요제의 여왕이던 미선이와 창식은 영국에서 잘 살고 있겠지
죽기 전에 한번쯤은 만나 볼 수 있으려나
다들 제 갈길 찾아가고 지금쯤 이 달을 보고들 있겠지
산다는 것들이 다 그런 것 아니겠어
자신을 스스로 달래보는 밤은 정말 길고도 길었다.
6
지난 추석에는 실로 오랜만에 칠남매 가족들이 다모였다.
그것도 명재가 혼자서 차례상을 차려 차례를 다 마친 뒤였다.
관광차를 몰고 왔으니 삼십명은 족히 넘는 듯 했다.
그날도 명재는 몹시 불쾌했으나 참는 것 이외는 달리 뾰족한 수가 없었다.
늙은 아비를 찾아 오는 자식들이 마치 관광이나 온 듯이 집안을
여기저기 들쑤셔 놓았다.
뒷뜰에 밤나무 잣나무 호두나무가 장대로 두들겨 맞는다.
앞뜰에 감나무 대추나무가 역시 장대로 두들겨 맞는다.
그리고 웃음소리가 앞산에 메아리친다.
명재가 정말로 화가 난 일이 생겼다.
중방골 먼 친척아저씨 집에 인사를 올리고 집안에 들어서다가
꽥! 하고 소리를 질렀다.
“이놈의 새끼들 뭣하는 짓들이야! 엉!”
애들이 놀라 주춤했다.
힘없이 누워있는 암소 앞에서 몇놈은 작대기로 눈을 쑤시고 몇놈은
암소의 똥구멍을 작대기로 쑤시며 연실 깔깔대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작대기를 빼앗아 등짝을 후려쳤다.
애들은 울고불고하더니 울음소리에 뛰쳐 나온 지애미들에게 쪼로록
달려가 하는 말이 참으로 기가 차서 말이 나오질 않는다.
“엄마! 저 늙은 못생긴 일꾼아저씨가 우리를 몽둥이로 막 때려!
혼 좀 내줘~ 응 엄마~!
아주 나쁜 늙은 일꾼 아저씨야!“
그런데 애미란 것들이 하는 말에 명재는 마치 쇠망치로 얻어 맞은 듯 했다.
아무리 떨어져 살았어도 그렇지 즈그들 할아비를 몰라보다니...
제일 먼저 달려든 것은 여시 막내 제수씨였다.
”철없는 애들이 한 짓이니 잘 타일러서 알아듣게 말을 해야지요!
애들을 때리면 아동학대죄로 경찰에 고발 될 수도 있어요!“
할애비가 잘못한 손주놈들 때리는 것이 경찰 고발감이라니 참......!
7
조금 머리가 큰 놈들은 모여 앉아 증조 할배의 재산이 얼만큼 되고
그 재산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 분배방식을 놓고 얼굴을 붉힌다.
며느리들은 이제 그만 요양원에다 모시고 누가 그 비용을 어떻게
분담할 것인가를 두고 서로 가시 돋힌 대화가 오고간다.
명재 위로는 두형이 있으나 태어나면서부터 허약체질이던 그들은
이미 가장의 실권을 아내와 자식들에게 모두 빼앗기고 요양원에서
죽을 날만 기다린지 이미 오래이다.
아래로 두 동생들은 큰 회사의 초급간부들이지만 역시 아내와 자식들의
눈치만 보면서 살아가는 신세가 되었다.
어쩌다가 이 세상이 여존남비 세상까지 왔을까?
두 제수씨들은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복부인들이다.
거기에는 명재부인도 한패란 것을 명재는 다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이혼 아닌 이혼을 하게 된 것이다.
그저 서류상의 부부일 뿐이다.
삼동서가 의기투합했으니 두 형수는 언제나 아랫 동서들의 눈치만
살피는 신세가 되었다.
공연히 윗사람이라고 말 한번 잘못했다가는 그야말로 국물도 없을
테니까 말이다.
이런 집안을 일러 흔히들 말하는 콩가루 집안이라 했던가?
그럴 수 밖에 더있나 생각했다.
두분 형수는 겉으로는 좋은 척하면서 속내는 잘 들어내지 않는다.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자신들은 머릿속에 들은 것이 없다는 것을...
그래서 둘이 한패가 되어 속으로는 칼을 갈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런데 여동생 명자까지 가세한 듯이 눈치가 이상했다.
그러나 막내 여동생 명순은 명재와 성격이 비슷해서 중립적 성격이다.
더구나 그의 시아버지가 모 대학 총장이시며 엄격한 유학자 집안이다.
그래서 아버지가 서둘러 그 집안과 혼인을 하지 않으셨던가!
8
언제였던가, 두 형수가 시아버지 문안을 드리러왔다가 날이 저물어
하룻밤 묶게 되었다.
그들이 묵는 방 앞을 지나치다가 본의아니게 그들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
”형님! 글쎄 요것들이 우리들을 아주 우습게 알고 있어요.
제년들이 명문대 출신이면 그 값을 해야지요. 값을요.
“동서! 그냥 두고만 봐! 이 세년들 언젠가는 큰코 다칠거야!
”형님하고 저는 겨우 전문대 출신이지만 인간성을 잃지는 않았다구요!“
”우리들에게는 막내 시누이가 있잖아!”
“흥! 막내 시누이 남편이 머지 않아 검찰 고위직에 오르게 될거야!”
“요년들이 땅에다 코를 처박고 살아가니 그런 일들을 알 턱이 없지!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마, 동서! 내가 이미 작업을 시작했어!”
삼동서는 명문대 선후배사이이다.
결혼 전 대기업 노른 자의 부서에서 근무를 했다.
결혼을 하고서도 사십이 넘도록 같은 부서에 근무를 했으나 여자들에게는
직장의 한계란 것이 있었다.
그래서 그동안 조금씩 모아둔 돈과 은행대출을 받아서 부동산 투기에
뛰어들었다. 머리가 남달리 좋아서인지 아니면 운이 따라 준 것인지
몇 년 지나지 않아서 그 바닥의 타짜중의 타짜가 되었다.
이제는 강남에 웬만한 건물 한채씩을 소유했다.
또 자식들 명의로 수십평짜리 아파트도 몇채씩 소유했다.
또 힘있는 정치인들과도 깊숙이 인맥이 형성되고 기업의 총수들과도
사돈관계를 형성하고 있다고 했다.
삼동서가 노리는 것은 단순이 돈많은 거부가 아니라 사대부 집안이라 했다.
명재는 생각했다. “어리석은 졸부들아! 사대부가 뭔지나 알고 하는 소리여!
흥! 명문대 먹물들이라 확실히 노는 물이 다르긴 다르군!” 했다.
먹물은 먹물이 가야 할 길이 따로 있다는 것 조차 모르다니! 에이~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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