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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각훈(覺訓) : 고려 고종(高宗) 때, 중 해동고승전(海東高僧傳)
강감찬(姜邯贊 948∼1031) : 고려 현종 때(顯宗) 때 장군. 동 왕 9년(1018) 구주대첩(龜州大捷)
강수(强首) : 신라 태종 무열왕(太宗武烈王) 때 한 학자.
특히 외교문서에 능란한 문장가,
나당(羅唐)연합에 큰공이 있다고 함.
신문왕(神文王) 2년(682) 국학(國學)을 일으키매 구경(九經)을 강의
강우규(姜宇奎) : 순국의사(殉國義士).
1919년 제 3대 총독 사이또오(齋藤實)가 새로 부임하여 서울역에 도착하자 폭탄을 던져 죽이려다 실패.
강조(康兆) : 고려 목종 때의 도 순찰사.
목종은 뒤를 이을 아들을 없고 또 병중에 있으매 오촌되는 대량군(大良君)을 맞으려 하고
목종의 어머니 천추태후는 김치양(金]致陽)의 아들을 맞으려 하였다.
이때 왕은 김치양의 음모를 알자 강조를 불러들여 호위를 명하였다.
강조는 변심하여 김 치양의 부자와 목종까지 죽이고 대량군 순(詢)으로 왕(顯宗)을 삼았다.
그후 글안의 침입 때 사로 잡혀 죽음을 당하였다.
강홍립(姜弘立) : 이조 광해군(光海君) 때의 반신(叛臣).
도원수(都元帥)로서 동왕 11년 명(明)을 도와 청(淸)을 치려 북정하였다가
항복하고 도리어 청의 앞잡이가 되어 인조(仁祖) 5년에는 우리 나라로 쳐들어 왔다.
강희맹(姜希孟) : 호 사숙재(私淑齋). 이조 성종(成宗) 때의 한학자.
설화 집 촌담해이(村談解 )를 저술.
강희안(姜希顔 1436∼65) : 호 인재(仁齋).
이조 세조(世祖) 때의 서화가(書畵家), 시(詩), 서(書), 화(畵)를 잘 하였으므로 삼절(三絶)이라 하였음.
거칠부(居柒夫) : 본성은 김(金),
신라 진흥왕(眞興王) 때 고구려를 쳐서 한강이남을 빼앗은 장수.
동왕 6년에 왕명에 의하여 국사를 편찬한 역사가
검모잠(劍牟岑) : 고구려 말엽의 대형(大兄 벼슬이름)으로 고구려를 부흥시키려고 힘씀.
견훤(甄萱) : 후백제(後百濟)의 건국 자.
신라 말엽의 혼란을 틈타 백제의 유민을 모아, 완산(完山, 지금의 전주)에서 나라를 세움(892).
내부의 알력으로 큰아들 신검(神劍)에게 감금당하였다가 도주하여 고려에 귀순하고 신검을 무찌름.
경대승(慶大升). 1154∼83) : 고려 명종(明宗) 때의 장군.
정중부(鄭仲夫)의 전횡을 막기 위하여 그를 잡아죽이고 정권을 잡아 도방(都房)을 설치하고 정치를 하였음.
계백(階伯) : 백제의 장수.
백제 말 의자왕(義慈王) 20년(660) 황산벌싸움에서 신라군을 무찌르다가 전사 함.
출전에 앞서 가족을 죽이고 용감히 전쟁터로 나갔다 함.
고경명(高敬命. 1533) : 호 제봉(霽峰).
이조 선조(宣祖) 때의 유학자. 의병장.
임진왜란 때에 의병을 일으켜 금산(錦山)에서 싸우다가 아들 인후와 함께 전사.
고흥(高興) : 백제 근초고왕(近肖高王) 때의 학자.
백제의 역사적인 서기(書記)를 편수하고 그 뒤 백제게, 백제신찬, 백제본기 등을 저술함.
곽재우(郭再祐) : 이조 선조(宣祖) 때의 유학자.
의병장. 임진왜란 때에 의령(宜寧) 등에서 의병을 일으켜 의병을 크게 무찌르고 진주싸움에서 큰공을 세우고 전사함.
관창(官昌: 645∼60) : 신라의 화랑.
장군 품일(品日)이 아들로서 황산싸움에 단신 적군에 돌입하여 전사함으로써
저하된 사기(士氣)를 북돋우어 마침내 신라의 승리로 돌아가게 됨.
광개토왕(廣開土王) : 고구려 19대 임금.
호태왕(好太王), 영락대왕(永樂大王)이라고도 함.
국력을 크게 발흥시킴. 그의 비(碑)가 만주 통구(通衢)에 있음.
궁예(弓裔) : 태봉국을 건설함.
신라의 왕족으로서 세달사(世達寺)의 중으로 있다가
신라말 혼란을 틈타서 무리를 모아 서울을 송악(松嶽)에다 정하고 나라 이름을 마진(摩震)이라 하였음.
효공왕(孝恭王) 2년(898) 그 후 서울을 철원(鐵圓 : 鐵原)에 옮기고
나라이름도 태봉(泰封)이라 하여 세력을 크게 떨쳤으나(911),
악정을 거듭하여 부하 왕건(王建)에게 자리를 빼앗김(918)
권근(權近 : 1352∼1409) : 호 양촌(陽村),
여말 선초(麗末鮮初)의 학자로 이조의 개국공신.
이조 태종(太宗) 때의 대제학(大提學)이 되었으며 문장가로 유명하였고,
입학도설(入學圖說) 등의 유서(儒書)와 양촌집(陽村集)을 저술함.
권율(權慄 : 1537∼99) : 이조 선조(宣祖) 때의 도원수.
임진왜란 때에 행주(幸州)에서 적군을 대파함.<행주 대첩>
균여대사(均如大師 : 923∼73) : 성은 변씨(邊氏).
고려 광종(光宗) 때의 중.
화엄종(華嚴宗)의 종주(宗主)로 송악산(松嶽山) 귀법사(歸法寺)의 주지.
특히 향가(鄕歌) 작가로 유명함.(균여전에 11수가 전함)
길재(吉再 : 1363∼1419) : 호 야은(冶隱). 고려말의 유학자.
이조초기에 불사이군주의(不事二君主義)로 후배 양성에 노력하고 회고가(懷古歌)의 시조 작품이 있음.
김굉필(金宏弼 : 1454∼1504) : 호 한훤당(寒喧堂). 이조 연산군(燕山君) 때의 성리학자.
김종직의 제자이며 조광조(趙光祖)의 스승으로
연산군 4년(1498) 무오사화(戊午士禍) 때 귀양갔다가 갑자사화(甲子士禍) 때 죽음.
김구(金絿 : 1488∼1534) : 호 자암(自菴). 이조 중종(中宗) 때의 서가(書家). 특히 인수체(仁壽體)로 유명.
김대문(金大問) : 신라 성덕왕(聖德王) 때의 학자.
저서로는 계림잡전(鷄林雜傳), 고승전(高僧傳), 화랑세기(花郞世紀), 樂本), 한산기(漢山記)등이 있음.
김대성(金大城) : 신라 경덕왕(敬德王) 때의 건축가이며 정치가로서 불국사를 증축하고 석굴암(石窟庵)을 만들음.
김만중(金萬重 : 11637∼92) : 호 서포(西浦). 이조 숙종 때의 학자.
소설 구운몽과 사씨남정기를 지었으며 문필집으로 서포만필(西浦漫筆)이 있음.
김문근(金汶根) : 이조 현종(顯宗), 철종(哲宗) 때의 서도 정치가로 유명함.
현종비 순원왕후(純元王后)의 근족(近族)으로 그의 딸을 철종의 비로 삼아 안동김씨의 세도정치를 다시 시작한 사람.
김부식(金富軾 : 1057∼1151) : 고려 인종(仁宗) 때의 학자.
묘청(妙淸)의 반란 때 공을 세웠으며 삼국사기를 편찬하고 인종실록도 편찬.
김상헌(金尙憲 : 1570∼1652) : 호 청음(淸陰).
이조 인조(仁祖) 때의 좌의정으로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한산성에서 항전하기를 주장한 척화론 자(斥和論者).
강화 후 심양(瀋陽)에 볼모로 가서 죽음
김생(金生) : 신라 성덕왕(聖德王) 때의 서가 해동필가(海東筆家)의 비조(卑祖). 신현사품(神現四品)의 한사람.
김수로(金首露) : 가야국(駕洛國)의 시조. 여섯 가야(伽倻)의 주장 중에서 뽑혀 왕이 됨(42)
김수장(金壽長 : 1690∼?) : 호는 노가재(老歌齋). 이조 영조(英祖) 때의 가객. 시가 집 해동가요를 편찬하였음.(영조 38년)
김시습(金詩習 : 1434∼93) : 호 매월당(梅月堂). 이조 세종, 세조 때의 학자.
세조의 찬위를 보고 학문하기를 단념하여 일생을 방탕생활로 보냄.
한 때는 불문(佛門)에 들어갔었으며 저서로서는 불서와 소설작품을 모은 금오신화(金鰲神話)가 있음. 생육신의 한사람.
김안로(金安老 : 1481∼1553) : 이조 중종(中宗) 때의 간신(奸臣)
기묘사화(己卯士禍 : 1519)를 일으켜 조 광조(趙光祖)일파를 살해하고 자신도 후에 사형당함.
김옥균(金玉均 : 1851∼99) : 이조 말기에 있던 개화당(開化黨)의 간부.
일본을 시찰하고 돌아와 독립당을 조직한 후 정부를 개혁하려고 갑신정변을 일으켰으나(1884) 실패하고
다시 일본에 망명하였음. 그 후 상해(上海)에서 암살 당함.
김유신(金庾信 : 597∼673) : 신라 무열(武烈), 문무(文武)왕 때의 장군.
화랑출신으로 충용(忠勇)과 지모(智謀)가 겸비한 무인이며 정치가. 삼국통일의 대업에 큰공을 세움.
김육(金堉 : 1580∼1658) : 호 잠곡(潛谷). 이조 인조(仁祖), 효종(孝宗) 때의 정치가인 동시에 학자.
벼슬이 영의정까지 올랐으며 대동법(大同法)의 실시와 용전(用錢)의 편리를 제창함.
김인문(金仁問 : 629∼94) : 신라 태종 무열왕(太宗武烈王)의 차남(次男)으로 뛰어난 한학자.
삼국통일에 공이 많았음. 특히 친당정책에 크게 활약함.
김인후(金麟厚 : 1510∼60) : 호 하서(河西). 이조 중종(中宗), 명종(明宗) 때의 학자. 하서집(河西集)이 있음.
김일손(金馹孫 : 1464∼98) : 이조 성종 때의 사관(史官).
신진사류(新進士類)로써 세조의 찬탈과 훈고파의 비행을
사초(史草)에 올린 것이 무오사화의 근원이 되어 연산군 때에 처형당하였음.
김정호(金正浩) : 호 고산자(古山者) 이조 철종(哲宗) 때의 지리학자.
30여 년 간 전국을 답사하고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와 대동지지(大東地志)등을 저작함.
김정희(金正喜 : 1786∼1856) : 호 완당(玩堂), 또는 추사(秋史). 이조 헌종(憲宗), 철종 때의 명필가.
청(淸)의 고증학(考證學)을 받아들이었으며, 경학과 금석학에 새로운 권위를 세웠을 뿐만 아니라 명필가로서 이름이 높음.
저서로는 예당금석과안록(禮堂金石過眼錄). 김완당집(金玩堂集)이 있음.
김조순(金祖淳) : 이조 순조(純祖) 때의 세도가. 안동 김씨의 세도를 처음 시작한사람.
김종서(金宗瑞 : 1405∼53) : 호 절재(節齋). 이조 세종(世宗) 때의 무인.
함경도의 여진족을 평정하여 육진(六鎭)을 개척하였으며 후에 정승이 되어 어린 단종을 돕다가 수양대군 세조에게 피살됨.
김종직(金宗直 : 1431∼92) : 호 점필재( 畢齋). 이조 성종(成宗) 때의 성리학자.
벼슬이 형조판서에 이르렀으며, 문하에 김굉필(金宏弼), 김일손(金馹孫) 등의 많은 성리학자가 배출되었음.
영남 학파의 사종(師宗)이며 사림(士林)의 종장(宗匠)임.
김천일(金千鎰) : 이조 선조(宣祖) 때의 의병장.
임진왜란 때의 호남에서 의병을 일으켜 각지에서 접전하고 진주싸움에서 전사함.
김천택(金天澤) : 호 남파(南坡). 이조 영조(英祖) 때의 뛰어난 가객. 최초의 시가 집 청구영원을 편찬.
김충의(金忠義) : 통일신라 때의 이름난 화가. 입당(入唐)하여 이름을 떨쳤다 함.
김치양(金致陽) : 고려 목종(穆宗)의 모후의 외척으로서 강조(康兆)에게 피살당함.
김홍도(金弘道 : 1760∼ ?)호 단원(檀園). 이조 영조(英祖) 때의 화가.
산수(山水), 인물(人物), 신선도(神仙圖)로써 유명함.
김효원(金孝元) : 이조 선조(宣祖)때의 정치가.
동인(東人)의 영수(領袖)로서 심의겸(沈義謙)과의 알력으로 동서 분당을 일으킴.
(나)
나옹화상(懶翁和尙 : 1319∼76) : 속성은 아(牙). 고려 공민왕(恭愍王) 때의 국사(國師).
지공(指空). 무학(無學)과 더불어 삼대 화상이라 함.
남구만(南九萬 : 1628∼1711) : 호 약천(藥泉).
이조 숙종(肅宗) 때의 정치가. 유명한 시조 " 동창이 밝았느냐.."의 작가임.
남생(南生) : 고구려 보장왕(寶藏王) 때 사람.
연개소문(淵蓋蘇文)의 아들로서 연개소문이 죽은 후 막리지가 되었으나 형제간의 불화로 당(唐)에 항복함.
남이(南怡 : 1441∼68) : 이조 세조(世祖) 때의 무인.
26세 때에 병조판서가 되었으며 이 시애(李施愛) 난을 토평(討平)하고
건주 야인(建州野人)을 토벌하여 공을 세웠으나 유자광의 무고로 처형됨.
노사신(盧思愼 : 1417∼98) :
이조 세조(世祖) 때 경국대전을 찬정하고 성종 때 왕명으로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을 편찬함.
논개(論介) : 이조 선조(宣祖) 때의 의기(義妓).
임진왜란 때에 진주성이 함락되매 촉석루에서 연회를 하던 중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몸을 던져 순국(殉國)함.
(다)
담징(曇徵) : 고구려의 중이며 미술가.
영양왕(孀陽王) 때에 도일(渡日)하여 오경(五經)과 채화 등을 전하였음.
대사의 그림으로는 나라(奈良)의 호우류우절(法隆寺) 법당의 벽화 등이 유명함.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
대구화상(大矩和尙) : 신라 진성왕 때의 중.
왕명으로 각간(角干)의 위홍(魏弘)과 더불어 향가집 삼대목(三代目)을 편찬함(888)
대원군(大院君 : 1820∼98) : 본명 이하응(李昰應). 흥선대원군.
고종(高宗)의 아버지. 외척의 세력배제 등 여러 가지 약정을 고침.
경복궁을 증축하고 천주교를 배격. 집정 10년 후 하야(下野)함.
대조영(大祚榮) : 발해의 시조. 고구려의 유민과 말갈의 족속들을 모아 발해를 건설함.
도선(道詵) : 신라 말엽의 중.
중국의 음양도참(陰陽圖讖)과 풍수지리(風水地理)를 주로 하여 음양 지리 설을 제창함.
(마)
마라난타(摩羅難陀) : 호승(胡僧), 백제 침류왕(枕流王) 때 진(晋)으로부터 불법을 전함.(384)
마의태자(麻衣太子) :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아들.
경순왕이 고려에 귀순하는 것을 반대, 신라가 망한 후 베옷을 입고 금강산에 들어가 초근목피로써 일생을 보냄.
만적(萬積) : 고려 명종(明宗) 때의 최충헌(崔忠獻)의 종 노비 해방 운동을 제창하다가 피살당함.
목인덕(穆麟德) : 독일사람. 본명은 G.von Mollendorf.
이조 말기 임오군란의 결과로 청(淸) 나라 이홍장(李鴻章)의 추천에 의하여 내아문(內衙門)의 고문이 되었음.
묘청(妙淸) : 고려 인종(仁宗)때의 중.
풍수지리를 믿고 서경천도를 일으키려다가 김부식 등의 반대로 난을 일으킴.
서경에서 국명을 대위국(大爲國), 연호를 천개(天開)라 하였다가 김부식 등의 공격으로 패망함.
무학(無學) : 본명은 박 자초(朴自超).
이 태조의 왕사(王師). 이조 건국에 큰 힘을 썼음. 양주(陽州) 회암사(檜岩寺)에 그의 탑이 있음.
묵호자(墨胡子) : 인도의 중이라고도 함. 실상은 고구려의 고승. 신라 눌지왕(訥祗王) 때에 처음으로 불교를 전함.
문익점(文益漸) : 고려 공민왕(恭愍王)때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들여와서 목면을 편 사람.
민영환(閔泳煥 : 1861∼1905) : 시호 충정(忠正). 이조 고종(高宗) 때의 시종 무관.
을사보호조약(乙巳保護條約)이 체결되자 이를 반대하여 국민과 각국 고사에게 유서를 남기고 자살하여 순국함.
(바)
박세당(朴世堂) : 호 서계(西溪). 이조 인조(仁祖). 숙종(肅宗) 때의 학자.
주자의 학설을 비판 독창적 학구를 하였으며 실학을 주로 하여 농서(農書)의 일종인 색경(穡經)을 저술.
박연(朴淵) : 원명은 Weltervree.
이조 인조(仁祖) 때(1628) 제주도에 표착한 화란인(和蘭人). 훈련대장 구인후(具仁后) 밑에서
대포제작과 그 조정법을 지도하였음.
박연(朴堧) : 이조 세종 때의 음악가. 왕명을 받아 아악을 정리하였음.
박영효(朴泳孝) : 이조 고종 때의 독립당원.
갑신정변을 일으켰다가 일본에 망명 후에 고종 양위를 반대한 죄로 제주도에 귀향 감.
박인량(朴寅亮) : ? ∼1096) : 고려 문종(문종 때의 학자. 신라설화를 모은 수이전(殊異傳)을 저술.
박인로(朴仁老 : 1561∼1642) : 호 노계(盧溪), 이조 선조(宣祖) 때의 학자.
임진왜란 때에 해군에 종군하여 공을 세움. 시가에 능하여 7편의 가사와 60여 종의 시조를 남김.
박제가(朴齊家 : 1750∼ ?) : 호 초정(楚亭). 이조 정조 때의 학자.
규장각(奎章閣)에 참여하여 이덕무(李德懋), 유득공(柳得恭), 이서구(李書九)와 함께 한학사가(漢學四家)로 이름이 높음.
박지원(朴趾源)의 제자로 실학파의 중진이며 저서로서 북학의(北學議)가 있음.
박지원(朴趾源 : 1737∼1805) : 호 연암(燕岩). 영조 때의 학자.
근세 실학파의 대표적학자로 열하일기(熱河日記)를 비롯하여 많은 저서를 남김.
박팽년(朴彭年 : ?∼1456) : 이조 세종(世宗) 때의 학자.
집현전의 학자로 단종(端宗)의 복위를 꾀하다가 세조에게 참살 당함. 사육신의 한사람.
박혁거세(朴赫居世 : B.C 69∼A.D 4) : 신라의 시조 왕.
박효관(朴孝寬) : 호 운애(雲崖). 이조 철종, 고종 때의 가객. 안민영(安玟英)과 함께 시가 집 가곡원류(歌曲源流)를 편찬함.
배중손(裵仲孫) : 고려 원종(元宗) 때의 무인.
삼별초(三別抄)의 난을 지휘함.
후에 진도(珍島)에서 그 세력을 떨치더니 몽고군 및 김방경(金方慶)에게 토벌 당함(1271)
백결선생(百結先生) : 신라 자비왕(慈悲王) 때의 음악가. 특히 방아타령의 곡조를 지어 유명함.
백이정(白 正) : 고려 충선왕(忠宣王) 때의 학자.
원(元)에서 직접 주자학(朱子學)을 배워 와서 이제현(李齊賢), 이충좌(李忠左) 등에게 전수함. 안유(安裕)의 후배임.
보우(普雨) : 이조 중종(中宗) 때의 중 문정왕후의 우대를 받으며 이조 불교의 중흥에 공이 큼.
왕후의 사후(死後) 제주도로 귀향 감.
보조국사(普照國師) : 고려 신종(神宗) 때의 중(지눌 : 知訥), 화엄종리(華嚴宗理)를 받아들여 조계종(曹溪宗)을 개종함.
정혜사(定慧寺 : 松廣寺)를 창설(1200)
봉림대군(鳳林大君) : 이조 인조(仁祖)의 아들(후에 효종).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불모로 갔다가 왔음. 효종이 된 후 북벌을 계획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함. →나선정벌
부견(符堅) : 전 진국(前秦國)의 왕.
고구려 소수림왕(小獸林王) 2년(372)에 중 순도(順道)로 하여금 불상과 불경을 전하게 하였음.
(사)
쌍기(雙冀) : 후주(後周)의 귀화인. 고려 광종(光宗) 때에 처음으로 과거법(科擧法)을 실시하게 함(958)
서거정(徐居正 : 1424∼?) : 호 사가정(四佳亭). 이조 세조(世祖). 성종(成宗) 때의 대학자.
동국통감(東國通鑑), 신찬동국여지승람(新撰東國與地勝覽), 동문선(東文選) 기타 많은 저술을 남김.
서경덕(徐敬德 : 1489∼1546) : 호 부재(復齋). 이조 중종(中宗) 때의 대 성리학자.
송도(松都)의 화담(花潭)에 은거하였으므로 화담 선생이라고 부름. 화담집이 전함.
서재필(徐載弼) : 이조 말의 독립당원.
갑신정변으로 미국에 망명. 귀국하여 독립협회 조직. 독립신문을 발간하고 독립문을 세움.
서희(徐熙) : 고려 성종(成宗) 때의 외교가 글안군이 침입하였을 때 담판으로 국란을 처리함.
설총(薛聰) : 신라 신문왕 때의 학자. 이두(吏讀)와 구결(口訣)을 창안.
성삼문(成三問 : 1418∼56) : 호 매죽헌(梅竹軒). 이조 세종(世宗) 때의 학자.
집현전 학자로 훈민정음 제정에 공을 세움. 후에 단종 복위를 꾀하다가 세조에게 참살 당함. 사육신의 한 사람.
성충(成忠) : 백제 의자왕(義慈王) 때의 충신.
왕이 주색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으매 충언을 하였으나 간신에 의하여 옥사함.
성현(成俔 : 1439∼1505) : 호 용재( 齋). 이조 성종 때 대학자.
유자광(柳子)과 약학궤범(藥學軌範)을 저술. 용재총화( 齋叢話)와 그 밖에 시문이 전함.
세조(世祖) : 이조 7대 임금.
세종의 둘째 아들로 조카인 단종(端宗)을 내쫓고 임금이 됨.
내치 외치를 잘 하였음. 간경도감(刊經都監)을 두어 불경 간행에 힘쓰고 경국대전 등기타 많은 문화 사업을 이룩함.
세종(世宗 : 1397∼1450) : 이조 4대 임금.
가장 뛰어난 임금으로 훈민정음 창제, 악장의 정리, 측우기의 발명 등 허다한 사업으로 민족문화를 개척함.
그리고 김종서(金宗瑞)로 하여금 함경도를 개척하게 하고 일본과의 국교를 조정하였음.
소수림왕(小獸林王) : 고구려 17대 왕.
372년에 불교가 전례. 태학(太學)을 세우고 태학박사를 두고 경학, 문학, 문예등을 지도하게 함.
손병희(孫秉熙) : 천도교(天道敎)교조(1906).
일본에서 돌아와 천도교를 창설. 기미운동 때에 독립선언에 서명한 대표자.
솔거(率居) : 신라 때의 화가. 황룡사(黃龍寺) 법당의 노송(老松) 그림이 유명.
송시열(宋詩烈 : 1607∼89) : 호 우암(尤菴), 이조 효종(孝宗) 때의 성리학자.
노론(老論)의 영수(領袖)로 기사환국(己巳換局) 때 귀양가서 사사(賜死)함(숙종 15년)
순도(順道) : 중국 전진(前秦)의 중,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에 불상과 경문을 고구려에 처음 전함.
신경준(申景濬 : 1712∼81) : 이조 영조(英祖) 때의 실학자.
도로고(道路考), 산수고(山水考) 등을 저술하고 여지승람을 감수, 문헌비고(文獻備考)의 여지고(與地考)를 편찬함.
신돈(辛旽) : 고려 공민왕(恭愍王) 때의 중,
왕의 총애를 받고 왕의 사부가 되어 국사를 총재 함.
귀족세력을 구축하고 노비를 해방시키는 등 세력을 떨치더니 왕의 시해를 음모하다가 주살 당함.
신사임당(申師任堂) : 이조 중종(中宗)때의 여류화가이며 문필가. 이율곡(李栗谷)의 어머니.
신숙주(申叔舟 : 1417∼75) : 호 보한재(保閑齋). 이조 세종(世宗). 성종(成宗)때의 학자.
집현전학사로 훈민정음 제작에 참여하는 등 경사와 문장에 저명한 정치가.
그러나 후에 성삼문(成三問)등의 동지와 헤어져 세조 편에 붙음.
신윤복(申潤福) : 호 혜원(惠園) 이조 영조(英祖), 정조(正祖) 때의 화가. 특히 풍속화로 유명함.
신립(申砬 : 1546∼92) : 이조 선조(宣祖) 때의 장군.
온성부사(穩城府使)로 있으며 북진을 수비하여 공을 세웠으나 임진왜란 때 충주(忠州) 탄금대(彈琴臺)에서 패전하여 자살함.
신흠(申欽 : 1566∼1682) : 호 상촌(象村). 이조 선조(宣祖), 인조(仁祖) 때의 한학자.
이 정구(李廷龜), 장유(張維), 이식(李植)등과 더불어 한학 4대가(四大家)라 함.
심유경(沈惟敬) : 이조 선조(宣祖) 때의 명(明)나라 사신.
임진왜란 때 일본과의 화평을 맺으려고 노력하였으나 실패함.
심의겸(沈義謙) : 이조 선조(宣祖) 때의 정치가.
서인(西人)의 두목으로 동인(東人) 김효원(金孝元)과 대립하여 이조 당파의 시초가 됨.
(아)
아좌태자(阿佐太子) : 백제 말기의 화가.
왕자로서 일본에 건너가 쇼오도꾸 태자(聖德太子)의 초상을 그려 주어 유명함.
아직기(阿直崎) : 백제의 한학자. 왕인(王仁)과 더불어 일본에 한문을 전함.
안견(安堅) : 이조 세종(世宗), 세조(世祖) 때의 서화의 명장(名匠).
산수화에 능하며 몽유도원도(夢遊桃園圖)는 유명한 작품임.
안유(安裕 : 1243∼1306) : 고려 충렬왕 때의 대 성리학자.
원에 유학하여 문교 부흥에 힘을 씀. 말년에는 주자를 숭배하여 동방 최초의 주자학도가 됨.
안정복(安鼎福 : 1712∼92) : 이조 영 정(英 正) 때의 실학파. 저술로는 동사강목(東史綱目)등이 있음.
안중근(安重根 : 1881∼1910) : 의사(義士).
1909년 하르빈에서 일제(日帝)침략의 원흉인 이또오(伊藤博文)를 쏘아 죽임. 다음 해에 여순감옥에서 사형 당함.
안창호(安昌浩 : 1879∼1938) : 호 도산(島山).
일생을 독립 운동과 민족운동으로 일제(日帝)와 투쟁한 흥사단(興士團)을 조직하여 민족 정신을 고취시켰음.
일제(日帝)에 피검되어 옥환(獄患)으로 순국함.
안평대군(安平大君) : 세종(世宗)의 3남으로 서가(書家).
원(元)나라 조맹부(趙孟 )의 필법인 송설체(松雪體)를 체득함.
사대서가 중의 한 사람이며 계유정란(癸酉靖亂) 때에 죽었음.
양규(楊規) : 고려 현종(顯宗) 때의 장군. 글안군의 침입을 막아 구주(龜州)에서 대파시킴(1010)
양만춘(楊萬春) : 고구려 보장왕(寶藏王) 때의 장군.
야사(野史)에 나오는 인물로서 당군(唐軍)을 안시성(安市城)에서 무찔렀다 함.
양사언(楊士彦 : 1514∼84) : 호 봉래(蓬萊).
이조 명종(明宗), 선조(宣祖) 때의 서가 및 학자. 특히 큰 글씨와 초서를 잘 썼음.
연개소문(淵蓋蘇文 ?∼666) 고구려의 장수.
영류왕(榮留王)을 죽이고 보장왕(寶藏王)을 세운 후 스스로 막리지(莫離支)가 되어 정권을 잡고 당나라의 침공을 막음.
옥보고(玉寶高) : 신라의 음악가. 거문고의 신조(新調) 30곡을 지음.
왕건(王建) : 고려를 건국함.
신라 말 궁예의 부하로 공을 세웠으며, 신숭겸(申崇謙) 등의 추대를 받아 고려 태조가 됨.
계백료서(誡百寮書), 훈요십조(訓要十條)등을 지음.
왕산악(王山岳) : 고구려 장수왕(長壽王) 때의 국상(國相). 거문고를 만듦 악곡 100 곡을 지었음.
왕인(王仁) : 백제 중엽의 학자. 논어(論語) 10권과 천자문(千字文) 1권을 일본에 전하고 그 곳 왕자(稚郎子)의 스승이 됨.
우륵(于勒) : 가야금(伽倻琴)을 창제한 악성(樂聖).
본래 가야국사람으로 신라 진흥왕(眞興王) 때 귀화하여 왕의 보호를 받으며 가야금과 곡조를 전수하였음.
원광법사(圓光法師) : 신라 진평왕(眞平王) 때의 명승.
중국 수(隋)나라로부터 성실종(成實宗)을 전함. 세속오계(世俗五戒)를 지음.
원효대사(元曉大師) : 신라 문무왕(文武王) 때의 명승. 법성종(法性宗)의 개조.
위만(衛滿) : 위만조선을 건국한 중국 연(燕)나라 신하로 조선에 망명하여 나라를 세움(194).
후에 한무제(漢武帝)에게 망함.
위홍(魏弘) : 신라 진성여왕(眞聖女王) 때의 각간(角干).
왕명으로 대구화상(大矩和尙)과 향가집 삼대목(三代目)을 편찬함.
유길준(兪吉濬) : 이조 고종(高宗) 때의 국어학자.
서유견문(西遊見聞)을 저술하여 최초로 국한문(國漢文) 혼용체의 문장을 보급시킴. 또 대한문전(大韓文典)이 있음.
유성룡(柳成龍 : 1542∼1607) : 호 서애(西崖): 이조 선조 때의 정치가.
임진왜란 때에 권률, 이순신 등을 나라에 천거하여 왜적을 막게 함.
저서로 징비록(懲毖錄)등 왜란 때의 기록이 전함.
유정(惟政 : ?∼1610) : 성은 임(任). 호는 사명당(四溟堂).
이조 선조(宣祖)때의 명승. 임진왜란 때에 승병(僧兵)을 지휘하여 공을 세웠으며, 일본에 건너가 강화를 맺음.
서산대사의 제자.
유형원(柳馨遠 : 1622∼73) : 호 반계(磻溪).
이조 효, 현종(孝, 顯宗) 때의 학자로
실학(實學)의 조종(祖宗). 음양(陰陽), 농정(農政), 지리(地理), 천문(天文), 병사(兵事), 의약(醫藥) 등에 걸쳐
정통한 불출세(不出世)의 학자임.
저서로 반계수록(磻溪隧錄), 동사강목조례(동사강목조례(東史綱目條例) 등 다수가 있음.
유희(柳僖 : 1773∼1837) : 호 서파(西坡). 이조 순조(純祖) 때의 국어학자. 언문지(諺文志)를 저술함.
윤관(尹瓘) : 고려 예종 때의 장군, 여진을 쳐서 9성을 축성함.
윤봉길(尹奉吉 : 1907∼32) : 순국의사(殉國義士).
상해(上海) 홍구공원(虹口公園)에서 폭탄을 던져 총사령관 시라가와(白川義一) 등을 죽였음(1932. 4. 29)
윤선도(尹善道 : 1587∼1671) : 호 고산(孤山). 이조 인조(仁祖), 효종(孝宗) 때의 시조의 대가.
역대 단가 작가 중에서 제 1인자로 그의 작품은 고산유고(孤山遺稿)에 전함.
대표작은 오우가(五友歌), 어부사시사 등이 있음.
을지문덕(乙支文德) : 고구려 영양왕(孀陽王) 때의 장군.
수(隋)의 양제(煬帝)가 거느리고 온 30만 대군을 살수에서 맞아 전멸함.
을파소(乙巴素 : ?∼199) : 고구려 고국천왕(故國川王) 때의 명재상. 박식하여 국가를 부강하게 함.
의상(義湘 : ?∼199) : 신라 문무왕(文武王) 때의 명승.
입당 구법(入唐求法)하여 화엄종(華嚴宗)을 신라에 전하고 태백산(太白山)에 부석사(浮石寺)를 창건함.
의천(義天 : 1055∼1101) : 시호 대각국사(大覺國師). 고려 문종(文宗)의 아들.
송(宋)에 유학하였으며 학문이 높은 승려임. 속장경(續藏經)을 박아냄(1096)
이괄(李适) : 이조 인조(仁祖) 때의 장군.
인조반정(仁祖反正)에 큰공을 세웠으나
논공 행상의 불공평에 불만을 품고 있던 중 외방(평안병사)에 있게 되매 반란을 일으킴.
그 위세가 일시에 서울을 점령하였으나 곧 관군에게 진압되었음.
이규보(李奎報 : 1168∼1241) : 호 백운거사(白雲居士). 고려 명 고종(明 高宗) 때의 학자.
문집으로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이 전하고 작품으로 백운소설(白雲小說), 국선생전(麴先生傳)등이 있음.
이긍익(李肯翊) : 호 연려실(燃黎室). 이조 정 순조(正 純祖) 때의 학자. 저서로는 연려실기술(燃黎室記述)이 있음.
이또오 히로부미(伊藤博文 : 1841∼1909) : 일본 메이지(明治) 때의 정치가.
한국침략의 원흉(元兇)으로 안중군(安重根)의사에게 피살당함.
이문진(李文眞) : 고구려 영양왕(孀陽王) 때의 태학박사(太學博士). 신집(新集) 5권을 저술함.
이봉창(李奉昌 : 1901∼32) : 순국의사(殉國義士).
상해(上海) 임시정부 주석 김구(金九)의 지도로 일본에 건너가 일본 천황을 저격하였으나 실패함.
이사부(異斯夫) : 성은 김(金). 신라의 공신.
지증왕(智證王) 때에 가야(伽倻)를 쳐서 항복 받고, 진흥왕(眞興王)에게 진언하여 국사를 편찬하게 함.
이상설(李相卨 : 1871∼1917) : 이조 고종(高宗) 때의 지사(志士).
고종의 밀사로 이준(李儁)과 함께 헤이그 만국 평화 회의에 파견됨. 뜻을 이루지 못하고 미국으로 망명함.
이색(李穡 : 1328∼95) : 호 목은(牧隱). 고려말의 성리학자.
야은(冶隱) 길재(吉再),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한 사람. 유집으로 목은집(牧隱集)이 있음.
이성계(李成桂) : 이씨조선을 건국하여 이조의 태조가 됨.
이수광(李 光 : 1536∼1628) : 호 지봉(芝峰). 이조 선조(宣祖) 때의 학자.
서양문물을 많이 소개, 저서로 지봉류설(芝峰類說)이 있으며, 그 속에 천주실의(天主實義)를 논하였음.
이순신(李舜臣 : 1545∼93) : 시호 충무(忠武). 이조 선조(宣祖) 때의 장군.
임진왜란 때 해군을 거느리고 적군을 막아 나라를 구함. 노량해전(露粱海戰)에서 전사함.
이승훈(李承薰) : 이조 정조 때의 천주교(天主敎)신자,
일찍이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천주교를 유포 시켰으며 신유사옥(辛酉邪獄) 때에 순교(殉敎)함.
이승휴(李承休 : 1234∼1300) : 고려 충렬왕(忠烈王) 때의 문사. 저서로는 제왕운기(帝王韻紀)가 전함.
이시애(李施愛) : 이조 세조(世祖) 때 사람.
호족(胡族)으로서 회령(會寧)부사에 이르렀으며, 북도인(北道人)의 차별대우에 반대하여 난을 일으켰음.
이여송(李如松) : 명(明) 나라 장군.
임진왜란 때에 구원병을 거느리고 조선에 옴. 평양을 탈환한 후 벽제관에서 대패함.
이영(李寧) : 고려 인종(仁宗) 때의 화가. 송(宋)에 건너가서 예성강도(禮成江圖)를 그려 유명함.
이완용(李完用 : 1858∼1926) : 이조 말엽의 매국노(賣國奴)로 을사오적(乙巳五賊)의 한 사람.
학부 및 총리대신 등을 거쳐 헤이그 밀사사건을 계기로 고종(高宗)을 양위시키고
융희(隆熙) 4년에 전권 위원으로 한일합방에 조인함.
이용구(李容九 : 1868∼1912) : 시천교(侍天敎)의 교주.
송병준(宋秉畯)과 더불어 일진회(一進會)를 조직하여 일본의 주구 노릇을 함.
이이(李珥 : 1536∼84) : 호 율곡(栗谷). 이조 선조(宣祖) 때의 대 성리학자.
임진왜란을 예측하여 군비확장을 제안하고, 동서분당의 조정에 힘씀.
학설로는 이기일원적이원론(理氣一元的二元論)이며
저서로는 성학집요(聖學輯要), 경연일기(經筵日記) 등 다수가 있음.
이인로(李仁老 : 1152∼1220) : 고려 고종(高宗) 때의 학자.
시문(詩文)과 초예(草隸)에 능통하였으며 저술로 문집이 있으나 지금은 파한집(破閑集)만이 전한다.
이인직(李人稙 : 1854∼1916) : 신소설 작가.
최초의 신소설 혈의 루(血淚)를 지었으며, 대표작은 귀의 성(鬼聲), 치악산(雉岳山) 등.
이제현(李齊賢 : 1287∼1367) : 호 익재(益齋). 고려말기의 대학자.
정치가. 충선왕(忠宣王) 때 북경에 가서 원(元)의 학자와 교우하여 문명이 높았음.
역옹패설(?翁稗說)과 익재란고(益齋亂稿)가 있음.
이준(李儁 : 1858∼1907) : 이조 고종 때의 열사(烈士).
광무(光武) 11년 고종의 밀사로 이상설(李相卨). 이위종(李瑋鍾)과 함께 헤이그 만국 평화 회의에 참석하여
일본의 침략을 호소하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매 통분하여 죽음.
이중환(李重煥) : 이조 영조(英祖) 때의 학자. 저술로는 택리지(擇里志)등이 있음.
이차돈(異次頓 : ?∼528) : 성은 박(朴). 법흥왕 때의 고승.
왕15년 불교를 위하여 순교함. 이후 신라에서는 불교가 공인됨.
이홍장(李鴻章 : 1842∼1901) : 중국 청나라의 명신.
북청 사변과 청일 전쟁에 외교관으로 공을 세웠고 북양 대신, 내각 태학사(內閣太學士)를 지냄.
이황(李滉 : 1501∼70) : 호 퇴계(退溪). 이조 명종(明宗) 때의 대 성리학자.
주자학을 대성하고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을 주장. 저서로는 주자절요(朱子節要), 성학십도(聖學十圖) 등이 있음.
일연(一然 : 1206∼89) : 속명은 김견명(金見明).
고려 충렬왕(忠烈王) 때의 중.
학식이 높아 많은 저술을 남김. 삼국유사는 역사, 민속, 문학 등에 걸쳐 가장 중요한 저서임.
임경업(林慶業) : 이조 인조(仁祖) 때의 장군.
의주부윤(義州府尹)으로서 병자호란 때 백마 산성을 굳게 지킴. 후에 간신의 음모로 인하여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죽음.
(자)
자장(慈藏) : 신라 선덕왕(善德王) 때의 중.
입당구법(入唐求法)하여 문물제도를 전래하고 계율종(戒律宗)의 개조가 됨.
장보고(張保皐) : 신라 흥덕왕(興德王) 때의 장수. 청혜진 대사로 해적을 소탕하고 해상권을 쥐고 무역을 실시함.
장영실(蔣英實) : 이조 세종(世宗) 때의 과학자. 왕명을 받아 해시계, 물시계, 혼천의(渾天儀), 천문도 등을 제작함.
전봉준(全琫準) : 이조 고종(高宗) 때의 동학교(東學敎)의 접주(接主) 동학란을 일으킴(1894)
정도전(鄭道傳 : ?∼1498) : 호 삼봉(三峰). 이조의 개국 공신, 배불론자(排佛論者). 후에 왕자의 난으로 피살당함.
정두원(鄭斗源) : 이조 인조(仁祖) 때의 사신으로
명(明)에 가서 화포(火砲), 천리경(千里鏡), 자명종(自鳴鐘), 천문서(天文書), 만국지도(萬國地圖) 등을 얻음.
정몽주(鄭夢周 : 1762∼92) : 호 포은(圃隱). 고려말기의 뛰어난 성리학자. 여말 삼은(三隱)의 한사람.
정약용(丁若鏞 : 1762∼1839) : 호 다산(茶山). 이조 정 순조(正 純祖) 때의 대 실학자이며 저술가.
천주교(天主敎)를 믿은 죄로 강진(康津)에 유배됨.
저서로는 목민심서(牧民心書), 경세유표(經世遺表), 흠흠신서(欽欽新書)등을 비롯하여
300여 권과 문집으로 여유 당전집(輿猶堂全集) 등이 있음.
정인지(鄭麟趾 : 1396∼1478) : 호 학이재(學易齋). 이조 세종(世宗), 세조(世祖) 때의 학자.
집현전(集賢殿)학사로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하였고, 후에 세조를 섬겼음. 저서로는 고려사 등 많이 있음.
정중부(鄭仲夫) : 고려 의종(毅宗) 때의 무신.
천대에 분개하여 난을 일으키어 문신을 모조리 죽이고 무인정치를 시작함.
정철(鄭澈 : 1536∼93) : 호 송강(松江). 이조 선조 때의 시인.
정치가로 가사 작품에 뛰어남.
작품에 관동별곡(關東別曲), 사미인곡(思美人曲), 속미인곡(續美人曲), 성산별곡(聖山別曲) 등,
시조 70 여 수가 문집 송강가사에 전함.
조광조(趙光祖 : 1482∼1519) : 이조 중종(中宗) 때의 성리학자.
왕의 총애로 등용되어 혁신적 도학정치를 하다가 오히려 남곤(南袞) 일파에게 몰려 사형 당함.
조엄(趙 ) : 이조 영조(英祖) 때 통신사로 일본에 갔다가 대마도(對馬島)에서 고구마를 처음 가져와 재배법을 알림.
조준(趙浚) : 이조의 공신. 고려 말 전제개혁(田制改革)을 하여 이씨 왕조의 경제적 기반을 닦음.
조헌(趙憲 : 1544∼93) : 이조 선조(宣祖) 때의 의병장(義兵將).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금산(錦山)에서 싸우다가 700 의사와 함께 장렬한 죽음을 함.
주문모(周文謀 : ?∼1795) : 중국인 선교사.
이조 정조(正祖) 때 우리 나라에 와서 비밀히 천주교를 선교하다가 발각되어 순교함.
주세붕(周世鵬 : 1495∼1554) : 이조 중종(中宗), 명종(明宗) 때의 성리학자.
풍기(豊基)군수로 있을 때 죽계(竹溪)에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세우니 우리 나라 서원의 시초가 됨.
주시경(周詩經 : 1876∼1914) : 호 한인샘. 갑오경장(甲午更張) 이후의 국어학자.
일생을 국어 연구와 보급에 힘씀. 저서로는 국어문전음학(國語文典音學), 말의 소리. 국어문법 등이 있음.
지석영(池錫永 : 1855∼1934) : 이조 고종(高宗) 때의 의학자.
고종 22년(1885) 우두신설(牛痘新說)을 저술하고 우두를 널리 보급시킴.
(차)
척준경(拓俊京) : 고려 인종(仁宗) 때의 무신.
이자겸(李資謙)의 반란에 가담하였다가 변심하여 그의 일파를 잡아 귀양보냄.
그 후 정권을 잡고 횡포가 심하매 정지상(鄭知常) 등에 의하여 귀양감.
최만리(崔萬里) : 이조 세종(世宗) 때의 학자. 훈민정음창제를 반대.
최무선(崔茂宣) : 고려 우왕(禑王) 때의 무신.
화약 제조법을 원(元)나라 사람에게서 배워, 조정에 설치함.
전함(戰艦), 화포(火砲) 등을 제작하여 왜구(倭寇)를 대파함.
최세진(崔世珍) : 이조 선조(宣祖) 때의 학자.
이두(吏讀), 중국어 음운(音韻)에 능함.
저서로 훈몽자회(訓蒙字會), 사성통해(四聲通解), 노걸대언해(老乞大諺解) 등 수 편이 있음.
최승로(崔承老) : 고려 성종(成宗) 때의 한학자. 고려의 정치조직을 완성함.
최영(崔瑩 : 1316∼88) : 고려말의 장군.
친원파(親元派)이며 왜구공멸(倭寇攻滅)에 공이 많음.
우왕(禑王) 14년(1388)에 명(明)을 치려고 군사를 일으켰으나 도리어 친명파(親明派) 이성계(李成桂)에게 주살 당함.
최제우(崔濟愚 : 1824∼64) : 동학 교조(東學敎祖).
이조 말 동학을 창시하여 광제 창생(廣濟蒼生)을 부르짖다가 철종(철종(哲宗) 14년 대구(大邱)에서 사형 당함.
최충(崔庶 : 983∼1068) : 시호 문헌(文獻). 고려 정종(靖宗). 문종(文宗) 때의 학자.
구재(九齋)를 두어 청년을 가르치니 우리 나라 사학(私學)의 시초. 해동공자라 함.
최충헌(崔忠獻) : 고려 명종(明宗), 고종(高宗) 때의 무인정치가
집정초기에는 애국충성을 다하여 선정(善政)을 함.
도방(都房)정치를 실시함. 최씨 무인집권의 시초임.
최치원(崔致遠 : 857∼?) : 호 고운(孤雲). 신라 말기의 한학자로 우리 나라 한학계의 시조라 함.
12 세에 입당(入唐)하여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28세 때 귀국함.
말년에는 지리산, 가야산 등지로 은거생활을 함. 저서로는 계원필경(桂苑筆耕)과 시문 약간이 있음.
(타)
탄연(坦然) : 고려 인종(仁宗) 때의 선승(禪僧)으로 글과 글씨에 능하였음.
특히 글씨를 잘 써서 신현사품(神賢四品)의 한 사람이 됨.
태고화상(太古和尙 : 1301∼82) : 속성은 홍(洪). 이름은 보우(普愚).
여말의 선장(禪匠). 원(元)에서 선종(禪宗)의 일파인 임제종(臨濟宗)을 배워 와서 우리 나라 선종의 주류를 이룸.
(하)
하멜(Hendrich Hamei) : 화란인(和蘭人).
이조 효종(孝宗) 4년(1653) 제주도에 표류하여 우리 나라 관원에게 잡혔다가
현종(顯宗) 7년(1666) 탈출하여 귀국함. 하멜 표류기를 써서 유명함.
한백겸(韓百謙 : 1552∼1615) : 이조 명종(明宗) 때의 고증학자.
우리 나라의 역사와 지리를 고증학적으로 연구한 선각자.
저서로는 선조(宣祖) 때 된 동국지리지(東國地理志) 한 권이 있음.
한치윤(韓致奫) : 이조 정조(正祖) 때의 학자. 저서로 해동역사(海東繹史)가 있음.
한호(韓濩 : 1543∼1605) : 호 석봉(石峰). 이조 선조(宣祖) 때의 명필가.
허균(許筠 : ?∼1618) : 이조 선조(宣祖), 광해군(光海君) 때의 소설가.
서자로서 사회적 천대에 불평을 품고 동지들과 결합하여 혁명을 일으키려다가 발각되어 죽음.
작품으로 홍길동전(洪吉童傳)이 있음.
홍경래(洪景來 : 1780∼1812) : 이조 순조(純祖) 때의 혁명가.
서북인(西北人)의 차별 대우에 반감을 품고 반란을 일으킴.
황진이(黃眞伊) : 이조 중종(中宗), 명종(明宗) 때의 개성(開城) 명기
시가(詩歌)에 유명하였으며, 6수의 뛰어난 시조가 전함.
황희(黃喜 : 1362∼1452) : 호 방촌( 村). 세종(世宗) 때의 유명한 재상(宰相).
청렴결백(淸廉潔白)하고 학문을 좋아하여 이름이 높음.
휴정(休靜) : 서산대사(西山大師)의 법명.
속성은 최(崔). 이조 명종(明宗), 선조(宣祖) 때의 명승. 임진왜란 때에 승병을 일으킴.
홍수(興首) : 백제 말기의 충신.
성충(成忠)과 함께 의자왕에게 백마강과 탄현(炭峴)을 방비할 것을 진언하였으나 듣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