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국민학교 널따란 운동장에도 봄기운이 무성했다. 반짝이는 봄햇살을 안고 하늘대는 플라타너스 이파리들과 담장 너머 사과나무 밭에서 가물거리는 아지랑이들의 모양새가 여간 고와 보이지 않았다. 웃토계 계상서당 주변을 고즈넉이 소요하고는 퇴계종택 바깥 마당 앞으로 흐르는 도랑 길을 잰걸음으로 휘돌아서 토계번화가 마실까지 달음질한 도산골 개울물은 졸졸졸 봄노래를 부르며 사련진 강가로 바삐 흘러갔다. 사련진은 퇴계구곡으로 들어가는 삽지껄이자 도산 마당으로 봄바람이 불어오는 길목이었다. 대궐 같은 번남댁 위에 고무신 같이 우묵하게 형성된 사련진 낙강 정거장에는 이골저골에서 모여든 도산골 개울물들이 합강을 이루며 반가이 봄소식을 나누고 있었다. 청명절을 맞이한 도산골의 도타운 전경이었다.
하계천 다리 아래 시냇물에서는 피래미와 텅골래와 미꾸라지를 잡는 아이들로 시끌벅적 했다. 땟국에 절인 얼굴들이 물장구와 물방울로 온통 흠뻑 젖었다. 거랑가로 구부러진 늙은 느티나무에 살곰살곰 올라가서 파릇파릇 돋아나는 나뭇잎 속에 몸을 숨기는 응구와 윤칠이 종익이 화자의 시망스러운 모습도 보였다. 늙은 느티나무가 자애로운 이파리 손길로 아이들의 숨결과 머리를 보듬어 주었다. 정문 길 옆에는 물을 댄 논밭에서 참개구리와 청개구리들이 숨바꼭질을 하며 개골개골 울었다. 맞은편 청보리밭에서는 낙동강을 타고 불어오는 부드러운 하늬바람이 애기 청보리들을 간지럽히며 작은 물결 춤을 추게 만들었다. 방앗간 둑 너머에 놓인 징검다리에서는 참꽃을 한 다발 안은 위자와 영자가 가위바위보로 돌다리를 건너며 배시시 웃는 곱단한 광경이 흡사 한 폭의 수채화 같아 보였다.
학교 마당을 가득히 둘러싼 수목들의 잎사귀에도 하루가 다르게 살이 올랐다. 연파랑과 담록색을 띠던 잎새들이 점차 진녹색 빛깔로 변하며 한층 더 두껍고 짙어졌다. 널따란 운동장 가장자리에 있는 그네와 시소 사이를 빼곡이 메운 탱자나무 울타리에는 참새 가족들이 계남댁 오동나무 숲에서 가장 먼저 봄소풍을 왔다. 내살미에서 날아온 까치들은 교감사택 후원에 우거진 키다리 포플러 가지에 예주륵 층층이 앉아서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정겹게 바라보며 지저귀고 있었다.
미끄럼틀 위에는 차례를 기다리는 용철이와 미영이와 선희와 영희와 해수와 순희의 어깨 뒤로 때꼬장물에 저린 흥구와 재락이와 건수와 동승이 재수 종구의 얼굴도 보였다. 용규와 주희는 아이들보고 빨리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가라고 고함을 질렀다. 드넓은 운동장에서는 파란 봄풀이 여기저기서 고개를 내밀고 나왔다. 따스한 봄햇살 속에서 구슬치기와 말뚝박기와 고무줄놀이를 하며 정글짐과 미끄럼틀을 오르내리는 아이들의 얼굴이 뒷동산 자하봉 자락에 만발한 개나리와 참꽃보다도 화사하고 행복해 보였다. 사방팔방 운동장을 누비며 달음박질을 해대면서 마구 재잘대는 아이들의 해맑은 봄맞이 소리에 소사 선생님이 치시는 종소리는 오늘도 벙어리가 되었다. 급기야 이원륜 선생님께서 운동장으로 또 나오셔서 교실로 빨리 들어가라며 연신 손을 흔드셨다♧.
♤1976년 안동댐 준공으로 수몰되어 사라진 토계 도산국민학교 본관 전경.
♤옛날 토계 도산국민학교 정문 앞 길이다. 저 멀리 산 아래 중앙 지점에 토계 다리가 보인다(사진1,2). 사진3은 최근 강물이 빠진 뒤 드론으로 촬영한 토계다리 모습이다(58회 이동운 촬영). 시멘트로 만든 다리여서 그런지 5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견고해 보인다. 1976년 안동댐 준공으로 토계(하계)마을은 완전히 수몰되었다.
♤정문 옆 미영이네 가족분들이 사시던 교감사택 전경(출처: 2019년 필자가 촬영).
♤정문 옆 펌프 우물집 전경.
(출처: 분천동 이재술 소장ㆍ도산국민학교 52회)
♤도산 마당에도 봄이 왔다. 교정 뒷동산 자하봉 산자락에 가물거리는 아지랑이와 반짝이는 햇살을 받아 하늘대는 포플러 이파리들이 완연한 봄기운에 취해 여간 고와 보이지 않았다. 학교 마당을 가득히 메운 플라타너스의 잎사귀에도 하루가 다르게 살이 올랐다. 담록색 애기 빛깔을 띠던 잎새들은 나날이 더욱 짙어졌다. 사면팔방 운동장을 뛰어놀며 마구 재잘대는 아이들의 해맑은 봄소리에 소사 선생님께서 치시는 종소리는 오늘도 벙어리가 되었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독립운동가이자 "청포도"의 저항시인인 이육사 선생은 이 도산골에서 태어나서 도산국민학교를 1회로 졸업한 청랭한 도산 사람이었다. 그림은 필자가 그린 1970년대 수몰 전 토계번화가 전경이다(그림: 2022년 이종구).
♤봄기운은 온 산야에 가득한데 마음은 온통 도산 마당에 홀로 가 있네. 사라진 드넓은 운동장에 봄빛은 무성한데 이를 길이 없어 헤매는 이내 맘 어찌하나...
첫댓글 만물이 소생하는 봄! 봄!
너무 이쁘고 아름답네~
토계다리는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우리들의 추억이 희미해지면 물밖으로 나와 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