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개노래(075)-반의반이 잘리다(180211 연중6주일 나해)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마르 1,40).
섣달 스무엿새 새벽에 늙은 달이 떴다.
외상술 먹다 잡혀먹었는지,
누구한테 쥐어뜯겼는지,
밤마다 냉천을 떠도느라 야웠는지, ....
얼굴이 반의반쪽이다.
볼꼴 못 볼꼴 다 보다 속이 썩어 떨어져 나갔나?
‘카파르나움에서의 하루’(마르 1,29-39)를 보내신 다음날 나병자들이 사는 곳을 찾으셨다.
카파르나움에서 마주친 영·육적 환자들은 ‘나>너’라는 병을 앓고 있었다.
그러나 나병자들은 ‘나<너’라는 병을 앓고 있었다.
나병은 사회성을 갖는 질병이다.
밤에는 소외를, 낮에는 고립을 앓는다.
병증이 심해질수록 손·발가락, 귀·코가 떨어져 나간다.
섣달 스무엿새 달처럼 뜯기고 떨어져 반의반이 되어 간다.
그렇게 되어 가는 자신의 모습을 하운(何雲)은 담담하게 절규했다.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 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삼거리를 지나도
수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 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가도 천리길
전라도길.
- 한하운 詩 ‘전라도 길’
예수님은 그런 나병자를 친구로 맞으신다.
가엾게 여기시고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인생산천 찬바람 따라 돌며
이리 뜯기고 저리 뜯기고
이리 잘리고 저리 잘려
아프지만
식구한텐 말도 못한다.
“아직도 내겐 꿈도 있고 희망도 있다”고 말했다간
“지원금도 못 받는 병신!” 소리만 듣는다.
오늘도 내일도
집에서 사업장에서
나병자만도 못한 ‘상병신’들이 쑥쑥 태어날 것이다.
신리 강개를 실실 웃으며 오가던 챙겨, 희자 같은 시절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