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나누는 신라의 후예/이영숙
부운지는 선덕여왕이 다녀갔다는 전설로 유명하다. 구름이 떠다니는 연못, 이라는 의미만으로도 색다른 공간이다. 그곳을 산책하던 중 정자에 앉아 계시는 할아버지 한 분을 보았다. 할아버지는 적요한 부운지를 응시하며 작고 예쁜 복조리를 만들고 계셨다. 그 장면은 머릿속에 오랫동안 각인되어 있었다. 할아버지는 탈속한 듯 평화로운 표정으로 부운지의 정자를 지키고 계시는 것처럼 보였다. 그 정자의 상단부에는 그가 새겼다는 부운정 浮雲亭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다.
무엇을 만드시는지요?
갑자기 침묵을 깨뜨리는 낯선 이의 목소리에도 전혀 낯을 가리지 않는 할아버지의 대답은 그 안에 세상에 대한 믿음이 가득하여 마음을 편하게 하는 마법을 지녔다.
버려지는 구리로 복조리를 만들어요.
복조리를 만들어 어디에 쓰시는지요?
이웃들과 나누려고 합니다.
신박한 반응에 놀라워 가까이 다가간다. 짧지않는 시간에 작고 긴 모양의 구리줄을 구부리고 엮어내고 하는 모습이 무척 진지하였다. 그의 자세에 힘입은 양 부운지의 연꽃은 천년을 이어온 조상의 맵시를 한껏 드러내고 있었다.
부운지의 연꽃은 사람들이 조성한 인공 단지가 아니라 저수지를 만드느라 땅을 파내던 중 드러난 늪에서 나온 씨앗이 발아되어 조성된 자생적 연꽃 단지로 유명하다. 오랜 옛날 언젠가개흙(뻘) 안에 묻힌 채 세상을 만나지 못하고 있다 환생한 꽃이다. 그래서 그런지 부운지의 꽃은 다른 어느 곳보다 귀하고 아름답다.
무더위가 아직 가시지는 않았지만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산보하기에 적당한 날씨였다. 연못을 한 바퀴 돌아서 나오는데 그 분이 불러세웠다. 할아버지가 그동안 만든 조리들을 가리키며
마음에 드는 것 가져가세요. 차창 앞에 매달아 두면 좋은 일이 생길 겁니다,
덕담도 잊지 않는다. 그 순간 할아버지의 삶의 방식에서 모죽지랑가에서 나오는 죽지랑의 기운을 느꼈다. 죽지랑에 대해 전해온 이야기가 할아버지의 삶과 겹친다.
득오는 죽지랑이 단장으로 있는 화랑무리에 속해 있는 화랑이었다. 열흘 넘게 아무 연락없이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죽지랑은 득오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사유를 알아보던 중 득오의 어머니로부터 군역으로 차출되어갔다는 소식을 듣는다. 죽지랑은 그의 상황을 확인하고 위문하기 위하여 지금 부운지 방향으로 바라다보이는 부산성을 찾았다. 득오를 위하여 맛있는 음식을 장만하고 며칠만이라도 휴가를 얻기 주기 위한 죽지랑의 배려였다. 득오를 만났지만 그 집단의 지도자의 거절로 무리들과 함께 되돌아올 수 없었다. 죽지랑은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보았지만 결국 득오는 혼자 남게 되었다. 하지만 득오는 죽지랑의 노력으로 여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러한 단원에 대한 죽지랑의 관심과 애정을 득오는 가슴 깊이 간직했고 고마워 했다.
세월이 흘러 죽지랑이 세상을 떠났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득오는 자신이 고난에 직면했을 당시 자신에게 은혜를 베풀었던 죽지랑을 그리워하며 슬퍼했다. 그때 득오가 향가를 지었는데 그것이 모죽지랑가이다. 부운지에서 복조리를 만들어서였을까. 나눔을 실천하는 할아버지는 옛날 화랑정신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 다시 할아버지를 찾아 부운지로 발길을 옮겼다. 틀림없이 정자에 앉아 계실 줄 알았던 할아버지는 그날 보이지 않았다. 정자는 주인을 잃은 것처럼 공허해 보였다. 그분을 다시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우려했지만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마을 아저씨에게 사정을 이야기했다. 곧 전화 통화가 되었고 얼마 기다리지 않아 그분이 도착하셨다.
할아버지는 경주 토박이로 경주에서 초중고를 다니시고 성장한 후 고향을 떠나 부산에서 직장 생활을 하셨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초등학교 동창을 만나 결혼을 했고, 자녀를 두셨다. 부산에서 퇴직을 한 후 고향에 사시던 손위 누이가 그를 다시 부른 게 경주에 다시 거주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누이는 혈육이 모여 같이 살자고 했고 경주시 서면 운대리 부운지 근처에 정착하였다. 그 후 누이도 세상을 떠나고 홀로 빈집을 지키며 지금까지 살고 계시다.
할아버지를 바라보고 있으면 세상을 향해 풍겨나오는 모습이 속세를 초탈한 듯하시다. 말씀으로는 소일거리로 복조리를 만든다고 하시지만 복조리를 만드는 일이 도를 닦는 행위이리라. 알고 보니 복조리 제작자로 이미 매스콤을 탔다고 하신다. 그 말을 전하면서도 자신의 일이 아니라 3자의 입장에서 사실을 전달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의 손을 거쳐 완성된 복조리는 이웃들, 지인들의 손으로 돌아가 작은 기쁨과 더불어 살아가는 연대감을 함께 주었을 것이다.
할아버지의 집 대문은 파란색이다. 파랑은 사람들에게 밝은 미래를 준다. 복조리 나눔 활동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희망을 나눠주시는 듯하다. 할아버지 집의 문을 열고 들어서니 특별한 세계가 마련되어 있다. 텃밭에는 상추가 자라고 깻단은 가을햇살에 말라가고 있다. 할아버지는 복조리를 만드는 중에도 자신만의 작은 텃밭을 일구고 있었다.
조심스레 한 발자국 내딛어 실내로 들어서니 복조리 제작을 위한 작업실이 펼쳐져 있다. 방에는 구리로 만든 소품들이 구석구석 쌓여서 할아버지의 일상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구리로 만드는 것은 복조리만이 아니었다. 냄비 받침. 작은 장난감 등이 앙증맞게 여기저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벽에는 갈대로 만든 빗자루가 걸려 있었다. 빗자루를 만들어 마을 주민들에게 나누어 주려고 했는데 추석 때 코로나를 앓으시는 바람에 목표로 잡은 수량을 못 맞추어 아쉽다고 하신다.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도 연신 손을 움직이신다. 연세가 88세임에도 불구하고 손가락은 젊은이처럼 능숙하다. 어느새 구리를 잡는가 했더니 뚝딱 복조리 하나가 만들어진다. 신기하게 여기며 따라 해보지만 쉽지 않다.
그 때 전화벨 소리가 들렸다. 헌 텔레비전을 갖다주겠다는 전화다. 복조리를 만들기 위한 재료는 구리이다. 이것은 예전 TV 본체에 들어있다. TV를 분해하면 나오는 구리로 복조리를 만드는 데 이제는 구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간혹 친구들이나 이웃들이 구해주기는 하지만 언젠가는 재료가 없어서 이 일을 그만 둘 수밖에는 없을지도 모른다고 하신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데 빗자루와 복조리를 주신다. 뒤가 불룩한 구형 텔레비전을 구해 할아버지가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널리 소문을 내어야겠다는 마음이 앞선다. 마을회관에 가신다며 자전거를 지팡이인 양 기대어 밀고 가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은 서쪽으로 지는 노을처럼 따뜻하고 심오하다.
첫댓글 인생을 달관하신 할아버지와 그를 알아보신 우리 릴리님!!!
릴리님께서도 본인의 글을 올리시는 것 만큼
다른 사람의 글에 댓글을 달아주시는 소박함이 있었으면...
부디 용서하세요.
급하게 글을 올리고 나가 저녁답에 돌아옵니다. ㅠㅠ
@릴리 '저녁답에'라는 사투리가 너무 망미동스럽네요 ...
환생한 꽃다. → 환생한 꽃이다.
몇해전 부운지 연꽃 보러 간적이
있어요.
초여름 부운지는 참 좋았어요.
74번 또 삭제했네요???
선생님 저 삭제할줄 몰라요. ㅠㅠ
@릴리 글은 본인과 운영자 아니면 삭제가 되지 않는데...
하기야 릴리 선생님은 본인이면서 운영위원이니... ㅎㅎㅎ
@릴리 모르니까 실수로 삭제했을 가능성이 더 높아 보여요. ㅎㅎㅎ
수필과 글이 어우러져 시너지 효과를 맛봅니다. 부운지 연꽃 피면 한번 보러 가고 싶습니다. 복조리 할배가 내내 건강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