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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기초 단위인 가정을 바로 세우기_잠언 강해 26 : 정동수 목사, 사랑침례교회, 킹제임스흠정역성경, 설교, 강해 (2022. 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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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26: 사회의 기초 단위인 가정을 바로 세우기
잠언 25번 강해, 오늘 포함해서 2-3번 정도 하면 끝이 난다. 시간이 참으로 빨리 지나간다.
잠언: 인생의 지혜(기술), 분별력, 인생의 다양한 문제, 사례
무언가를 배워야만 한다. 롬15:4
오늘 < >, 메인 아이디어로 푸는 잠언,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연장자
부모를 존경하는 자녀는 기쁨이 되지만 부모를 존경하지 않는 아이들은 고통이 된다. 신실한 배우자와
결혼하는 것은 삶에서 가장 큰 축복이지만 그 관계가 변질될 때는 삶이 끔찍한 것이 되어 버린다.
성경은 옛 세대가 모범이 되어야 하며, 이전 세대를 따르고 존경하는 것은 유익하다고 권고한다.
들어가는 글: 모든 사회의 기초가 되는 가정
가정을 소재로 하는 많은 유머들이 있다. 코미디언이었던 로버트 오르빈(Robert Orbin)은 이런 말을
했다. “윈스턴 처칠의 불후의 명언을 누가 잊어버릴 수 있을까요? '우리는 바다에서 싸웠고, 육지에
오르면서 싸웠고, 들판에서 싸웠고, 거리에서 싸웠으며, 언덕에서도 싸웠습니다.' 그런데 이 말은
우리 가족이 여행을 떠났을 때 일어났던 일과 정말 똑같습니다.”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웃음을 터트린다. 하지만 우리는 본능적으로 사무엘 존슨(Samuel
Johnson)이 했던 말을 정말로 믿고 있다. "가정에서 행복하다는 것은 모든 소망의 궁극적인 결실이
된다. 그것은 모든 경영과 노력이 목표로 하는 최후의 결과이다.” 가정은 모든 사회의 기초 단위이다.
가정이 어떠한가에 따라서 사람들의 모든 것들 다 영향을 받게 된다.
척 콜슨은 그의 책 「기독교적 세계관을 위한 가르침들(Draper's Book of Quotations for the
Christian World)」에서 이런 말을 했다.
“가정을 대체할 수 있는 사회 구조는 존재하지 않는다. 가정이 없다면 우리 아이들은 아무런 도덕적
기반을 갖지 못할 것이다. 가정이 없다면 그들은 자기 자신이 도덕적 기준이 되어 안하무인의
사람이 될 것이다. 인간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구성 요소로 하나님께 책임을 부여받은 가정은
인간으로서의 행동을 배우는 첫 번째 학교다. 부모들은 자기중심적인 작은 괴물들을 받는다.
이들은 많은 시간 반항적으로 소리를 지르고 카펫에 완두콩을 뿌려대는 녀석들이다. 그리고 부모는
이들이 다른 사람과 좋은 것을 나누고,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다른 사람의 것을 존중하도록
가르친다. 이러한 교육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존경과 절제, 규칙에 대한 순종 등으로 바뀌어 나타난
다. 다시 말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수적인 개개인의 도덕성을 배우는 것이다.”
솔로몬은 이 점을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잘 깨닫고 있었다. 그는 자녀들에 대해서,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 대해서 그리고 형제간의 관계에서 가족들에게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이 무엇이고,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날카로운 조언을 통해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
본문 이해
우리는 어디에서 가장 근원적인 행복을 발견할 수 있는가? 그것은 직업적인 성공도 아니고, 부자가 되거나
유명해지는 것도 아니다.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만족의 근원은 다른 사람들과의 돈독한 관계에 있다.
하나님은 자연스럽게 그러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곳으로 가정을 두셨다.
A. 부모와 자녀
(1:8-9; 10:1; 11:29: 15:20; 17:2, 6, 21, 25; 19:26; 20:20; 23:2225; 28:24)
자녀들이 잘 자라는 것보다 부모를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다. 그리고 손자 손녀를 통해 얻는 즐거움은
더욱 크다! 하지만 악한 행동을 일삼는 자녀를 둔 고통보다 더 큰 슬픔은 없다.
1. 1:8-9. 내 아들아, 네 아버지의 훈계를 듣고 네 어머니의 법을 버리지 말라. 그것들이 네 머리에
은혜의 장식이 되고 네 목에 사슬이 되리라.
아들이 자기 부모를 기쁘게 할 수 있는 첫 번째 방법은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다. 잠언은 자주 부모의
말에 순종하라고 말한다(4:1, 10, 20; 5:1, 7; 7:24; 8:32; 19:20;22:17; 23:19, 22).
왜? 부모의 지혜에 순종하지 않는 자녀를 유익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 92
이 구절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두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스승이 제자들에게 하는 교훈이라기보다는
가족에 대한 구체적인 가르침이 틀림없다. 잠언 1장부터 9장은 아버지의 가르침으로 제시되어
있고 어머니의 가르침도 이 속에 포함되어 있다(3:1; 6:20), 훈계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토라'
인데, 이는 종종 '율법' 이라고 번역된다. 하나님이 토라를 직접 주셨을 때 우리는 그것을 '율법'
이라고 부르고, 아버지나 어머니가 그것을 자녀에게 말할 때에는 그냥 법이라고 부른다. 각각의
경우에서 그것은 한 사람의 행동을 지도할 뿐 아니라 동시에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가르친다.
부모의 말에 순종하는 것은 분명한 유익을 얻게 한다. 머리에 쓰는 왕관이나 목에 거는 금목걸이가
그 사람의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그의 성공과 높은 위치를 확인시키는 것처럼 지혜로운
부모의 조언은 다른 사람들의 존경과 부러움을 받는 자녀를 만든다.
2. 10:1; 솔로몬의 잠언이라. 지혜로운 아들은 아버지를 즐겁게 하나 어리석은 아들은 자기 어머니의
근심거리니라. 이 구절은 부모의 행복이 그 자녀의 행동에 의해 큰 영향을 받게 됨을 보여준다. 아버지의
훈계를 듣는 아들은 지혜롭게 될 것이고, 이보다 더 아버지를 기쁘게 하는 것은 없다(23:15; 27:11;
29:3; 요삼 1:4 참고). 반면에 미련하고 어리석은 아들은 어머니와 아버지를 슬프게 만들 것이다
(17:21, 25; 19:13). 그는 너무나 무감각해서 자신의 어머니를 경멸하며 어머니에게 고통을 안겨주
는 것에 대해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못한다.
3. 11:29. 자기 집을 어지럽히는 자는 바람을 상속하며 어리석은 자는 마음이 지혜로운 자의 종이
되리라.
아들이 순종하지 않는 어리석은 자일 때 그는 자기 가족에게 고통을 안겨 주는 자가 된다. 이는 아간(수
7:25-26)이나 아합 왕(왕상 18:17-18)과 같은 자이다. 그는 자신이 아버지의 재산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아버지는 그것을 물려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 아들은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오직 바람만 얻을 수 있을 뿐이다. 그는 부와 종을 상속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결국에는 아무것도 없게 될 것이며, 살아남기 위해 다른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할 것이다.
4. 17:6 자식들의 자식들은 노인들의 왕관이요, 자식들의 영광은 그들의 아버지들이니라.
한 가족이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맺고 서로에게 충실할 때 그 가정은 아름다운 모습을 갖게 되며,
각 세대는 다른 세대를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이다. 부모 세대는 본능적으로 손자손녀들을, 기쁨을
주고 영광의 표시가 되는 왕관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자녀들이 자기 부모를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올바른 모습이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가정을 위해 계획하신 것이며, 하나님의
삼위일체 되심을 나타내는 사랑으로 연합된 모습을 보여준다.
5. 17:21, 25, 어리석은 자를 낳는 자는 그 일로 슬픔을 얻나니 어리석은 자의 아버지는 기쁨이 없느니
라....어리석은 아들은 그의 아버지에게 근심거리이고 그를 낳은 여인에게 쓰라림이니라.
부모들은 자녀들이 지혜를 나타내면 기뻐하지만 자녀들이 어리석은 일을 저지르면 슬퍼한다.
6. 19:26. 자기 아버지를 피폐하게 만들고 자기 어머니를 쫓아내는 자는 수치를 끼치며 치욕을 가져오는
아들이니라. 고대 사회에서 부모에게 함부로 하는 것보다 더 심각한 죄는 없었다. 그것은 권위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었다. 아버지를 피폐하게 한다는 의미는 공격하거나 다른 말로 학대한다는 것이고,
어미를 쫓아낸다는 것은 실제로 가산을 자기가 차지하고 부모를 밖으로 내보내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부모의 훈계를 멸시하는 것처럼 나쁜 일이었지만 사실 부모를 학대한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부모를 학대하는 자는 나중에 자신도 자녀로부터 그런 대우를 받으면서
고통스럽게 살 것이다.
B. 남편과 아내(주로 여인들의 품성)
(11:22;12:4; 14:1; 18:22; 19:13-14; 21:9, 19; 25:24; 27:15-16)
남자는 신실하고 근면한 여자와 결혼하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축복 가운데 하나임을 깨달아야 한다.
하지만 당신이 그러한 관계를 변질시켜 버리면 결혼생활은 비참한 것이 될 것이다!
1. 11:22, 아름다운 여자가 분별이 없는 것은 돼지 코의 금보석 같으니라. 다소 우스꽝스러운 표현으로 - 93
잠언은, 아름다운 여인의 부조화스러운 행동은 도덕적으로 추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스라엘
여인들은 종종 장신구의 하나로 코걸이를 하곤 하였다. 그러나 돼지코에 금고리를 하는 것은 확실히
우스꽝스럽고 역겨운 것이다. 그것이 결코 돼지를 멋있어 보이게 하지는 않는다. 또한 어떤 여인이
삼가지 않는다면(분별력을 잃어버린다면) 단순히 외모로 아름다운 것은 그녀에게서 나타난 도덕적인
흠을 결코 덮어주지 못한다.
2. 12:4. 현숙한 여인은 자기 남편의 왕관이지만 부끄럽게 하는 여인은 그의 뼛속의 썩게 하는 것과
같으니라. 아내의 성품은 그 남편을 전혀 다르게 만든다. 어진 여인은 룻에게서 나타나는 강함과
열심을 보이는데(룻 3:11), 그러한 여인의 모습은 31장 10-31절에서 자세히 그리고 있다. 그녀는
남편의 왕관이 되고, 그의 남편이 위엄과 존경을 얻게 한다. 그러나 욕을 끼치는 여인은 도덕적인
단호함과 곧은 성품이 없다. 그런 여인의 남편은 부끄러움의 고통을 겪게 되고, 그 여인이 점차 남편을
쇠약하게 만들기 때문에 뼈가 썩는 것 같은 무기력함 속에 빠지게 된다.
3. 14:1. 모든 지혜로운 여자는 자기 집을 세우되 어리석은 여자는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무느니라.
이 구절은 아내의 능력이 그 가정을 세울 수도 있고, 흩어버릴 수도 있다고 강조한다. 이 내용은
논리적으로는 집을 건축하는 것에 대해서 말하는 것 같지만 잠언 기자가 말하고자바는 집안 살림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보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지혜로운 여인은 자기 가족을 살피고 번성하게
하지만 어리석은 여인은 스스로 망하는 방식대로 살아갈 뿐이다.
4. 18:22. 누구든지 아내를 얻는 자는 좋은 것을 얻고 주의 호의를 얻느니라.
결혼하는 것은 하나님의 보편적인 뜻
지혜롭고 젊은 사람이라도 훌륭한 아내를 맞이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게 마련이다. 그들은 잘못된 이유로
여성을 선택하게 되고, 나중에서야 자신의 선택이 성급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람이 자신에게
맞는 여인을 찾았다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서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남편이
자신과 함께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갈 수 있는 아내를 만났을 때는 하나님으로부터 귀한 선물을 받았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한다. 야고보서 1장 17절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모든 좋은 선물은 궁극적으로 하나님
께로부터 내려온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과 돌보심의 증표를 받은 것이다. 주님은 그에게 복 주시기를
기뻐하셨다.
19:13-14. 어리석은 아들은 그의 아버지의 재앙이요, 아내의 말다툼은 계속해서 떨어지는 물방울이니
라. 집과 재물은 조상들에게서 상속받지만 분별 있는 아내는 주로부터 오느니라
어리석은 아들을 둔 것은 그야말로 재앙이다. 아버지의 경우, 그것은 자기 인생의 파멸이다. 이와
동일하게 고통스러운 것은 다투는 아내를 둔 것이다. ‘다투는’이라는 단어는 성경의 다른 어떤
곳에서보다 잠언에서 더 자주 나온다. 그 의미는 '싸우는’ (21:9, 19; 25:24; 27:15), '분개하는
' (6:14, 19; 10:12; 15:18; 28:25; 29:22), '논쟁하는(18:18-19), '분쟁하는' (17:14;
22:10; 26:20) 그리고 '불화하는' (23:27)이라고 해석된다. 그런 여인이 일으키는 끝없는 분쟁
은 비새는 천장과 같이 계속해서 당신을 괴롭힌다. 끊임없이 떨어지는 물방울이 사람을 지치게
만들고, 집 자체에 심각한 해를 미치는 것처럼 그런 여인은 가족 관계에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힌다.
그러나 슬기로운 아내를 얻는 것보다 한 남자의 삶을 더욱 소망 있게 만드는 것은 없다. 그녀는 능력
있고, 성실하며, 사람들을 사랑으로 대하는 법을 잘 알고 있다. 그녀는 남편의 가장 큰 재산이다.
집과 토지 등 많은 재산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지만, 그러한 아내는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얻게 된다.
21:9, 19; 25:24, 27:15-16 비슷한 주제
C. 연장자 세대(16:31; 20:29)
서양 문화권에서는 나이 든 사람을 경홀히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성경은 연장자들을 존경하라고
가르치며, 그들을 귀중히 여기라고 당부하고 있다.
16:31. 흰머리를 의의 길에서 얻으면 그것은 영광의 왕관이니라. 구약 사회에서 연장자들은 존경받는
사람들이었다. 백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존경의 표시, 번영과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 94
잠언은, 오래 사는 것은 의로운 삶에 주어지는 보상이라고 가르친다(9:6; 10:27). 비록 예외도
있지만 이 점은 분명하다.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오래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백발을 왕관처럼 생각해도
된다. 그는 그렇게 대우받을 자격이 있는 것이다!
20:29. 젊은 자들의 영광은 그들의 힘이요, 늙은 자들의 아름다움은 흰머리니라.
젊은 사람들은 자신의 힘에 의존하는데, 그것은 그 자체로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나이
든 사람들은 오랜 기간 쌓인 자신의 지혜와 신실한 성품에 의존한다. 백발은 그러한 구별된 모습의
표지이다. 젊은 사람이나, 나이 든 사람이나 각기 장점이 있다. 이것은 각각 존중되어야 하고, 존경받아
야 한다.
복습
우리는 어디에서 가장 근원적인 행복을 발견할 수 있는가? 그것은 직업적인 성공도 아니고, 부자가 되거나
유명해지는 것도 아니다.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만족의 근원은 다른 사람들과의 돈독한 관계에 있다.
하나님은 자연스럽게 그러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곳으로 가정을 두셨다.
D 결론: “소금 좀 집어달라니까, 안 그러면 때려줄 거야!"
자녀를 기르는 것은 항상 생각처럼 그렇게 뜻대로 되지 않는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주는 즐거움을
누리고 싶다”(I want to Enjoy My Children)의 저자 헨리 브랜트(Henry Brandt)는 젊은
시절 그가 다니던 대학의 총장을 저녁 식사에 초대했을 때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와 그의 아내는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하였고,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또 무엇을 말해야하는지도 연습시켰다.
총장이 왔을 때 그들은 모두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그리고 테이블로 그를 안내하였고, 그 옆에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훈련된 어린 딸을 앉혔다. 그런데 그것이 큰 실수였다. 밥 먹는 동안 그 아이는
총장님에게 낭랑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소금 좀 집어주시겠어요?"
브랜트는 그 장면을 이렇게 기록하였다.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우리는 총장님의 말씀에 한창 귀를 기울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 아이가 다시 말했다. “소금 좀 집어주시겠어요?" 총장님의 말씀에 너무 귀를 기울인 나머지 우린
그 아이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나 세 번째, 곱슬머리를 한 갈래로 딴 이 꼬마 숙녀는 우리가 그렇게 애써서 만들었던 브랜트 가족에
대한 이미지를 산산조각내버렸다. 그 애는 조그만 주먹으로 우리의 귀한 손님인 총장님을 치면서
소리쳤다. "소금 좀 집어달라니까, 안 그러면 때려줄 거야!"
아이를 키우는 과정 속에서 도저히 피할 길 없는 좌절이 있다 하더라도 인격을 성숙시키고 성경적인
원리에 따르고자 하는 부모의 노력은 언젠가 승리하게 될 것이다. 이는 솔로몬이 말한 바와 같다
(22:6). 이것은 확고한 보증은 아니지만 대체로 올바른 원리를 말해주는 것이며, 우리가 신뢰함으로
따를 수 있는 잠언의 원리이다.
삶의 적용
오스왈드 샌더스(J. Oswald Sanders)는 그의 책 「영적 진료소(A Spiritual Clinic)」라는 책에서
과거에 뉴잉글랜드 지방에서 살았던 두 가족에 대해 관찰하면서 그 두 가족이 다음 세대에 끼친 서로
다른 영향력을 기록해 놓았다. 한 가족은 맥스 쥬트 씨 가족이었고, 다른 한 가족은 유명한 신학자이자
미국 초기 건국 시대에 큰 공헌을 한 학자인 조나단 에드워즈의 가족이었다.
맥스 쥬트는 하나님을 믿지 않던 포악한 자였고 역시 그와 비슷한 여성과 결혼하였다. 그들의 자손 중에서
약 1,200명이 연구 대상이 되었는데, 310명은 부랑자가 되었고, 440명은 방탕한 삶을 살고 있었으
며, 130명은 평균 13년 동안 감옥에서 살았고, 그중 7명은 살인죄로 복역하였다. 100명의 알코올
중독자가 있었고, 60명은 도둑이었으며,190명은 매춘부였다. 상업을 했던 20명 중에서 10명은
감옥에서 상업을 배웠다. 그들이 생활하는 데 약 150만 불이 소비되었지만 그들은 사회에 아무런
공헌을 하지 않았다.
비슷한 시대에 살았던 하나님의 사람, 조나단 에드워즈 가문의 경우, 조나단 에드워즈는 비슷한 성품의 - 95
여인과 결혼을 하였다. 결혼 이후에 300명의 목사와 선교사들 그리고 신학 교수가 배출되었고, 100명
이 넘는 대학 교수와 100명이 넘는 변호사가 있었는데, 그중 30명은 판사였으며, 60명의 의사와
60명이 넘는 작가 그리고 14명의 대학 총장이 나왔다. 그들 중에는 미국 산업화에 지대한 공헌을
한 자들이 있었다. 3명은 미국 연방 의회의 상원 의원이 되었고, 한 명은 부통령 자리에 오르기도
하였다.
신실한 아버지와 어머니의 영향력은 무한하며, 많은 세대에까지 이어질 수 있다. 잠언의 원리를 따르면서
신실한 성품으로 뒷받침되는 자들은 영적 유산을 통해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며, 그러한 축복된
삶이 그들 자신에겐 큰 보상이 되고, 세상에는 큰 도움이 되며, 하나님께는 큰 영광이 될 것이다.
1. 1에서 10의 척도에서 10을 최고라고 하였을 때 당신은 자녀로서, 부모로서 혹은 연장자로서의 당신
자신의 역할에 얼마나 충실하다고 생각하는가? 그러한 역할을 행하는 데 있어서 더욱 향상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무엇인가?
2. 당신이 죽었을 때 당신에 대해서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해주기를 원하는가? 그러한 말을 듣기 위해서
지금부터라도 변화되어야 하는 점은 무엇인가?
https://youtu.be/_kkfoFOJ8Uk?list=PL4P6SBDceLgEZLssg4BzG1AiTvdLOoZ67
두 사람의 생각이 한 사람의 생각보다 낫다_잠언 강해 27 : 정동수 목사, 사랑침례교회, 설교, 강해 (2022. 8. 19)
성경말씀: 잠24:6
잠언 27 두 사람의 생각이 한 사람의 생각보다 낫다
지금까지 잠언 26번 강해, 오늘 포함해서 2번 더 하면 끝이 난다. 시간이 참으로 빨리 지나간다.
잠언: 인생의 지혜(기술), 분별력, 인생의 다양한 문제, 사례
오늘 < >, 메인 아이디어로 푸는 잠언, 오늘은 지혜롭게 조언을 주고받는 것, 잠언의 주된 교훈 가운데
하나는 우리가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인생을 잘 살 수 없다는 진리이다. 주의 깊은 사람은 비록
조언이 자신의 계획을 바꾸게 하는 것일지라도 다른 사람을 통해 배울 수 있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노력한다. 잠언은 우리가 늘 배워야만 한다는 것을 가르친다. 목사, 대통령도 마찬가지.
들어가는 글: 두 사람의 생각이 한 사람의 생각보다 낫다
잠언 24장 6절은 이렇게 말한다. "너는 지혜로운 조언으로 전쟁을 할지니라. 조언자들이 많으면 안전이
있느니라." 한 사람이 옳고 그름에 관한 성경의 높은 관점을 다 이해할 필요는 없다. 대통령에게는
내각이 있고, 회사에는 이사회가 있으며, 교회에는 장로회가 있는 것처럼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가능한 최선의 조언을 얻을 수 있다.
우리가 삶의 어려운 고비에 이르게 될 때 하나님의 조언의 말씀을 얻기를 원할 때가 있다. 나(맥스 앤더스)는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무수히 많이 들었다. "저는 하나님이 글로 혹은 꿈으로 또 그 외의
다른 방법으로 제게 뭔가 말씀해주셨으면 좋겠어요.” 하나님은 개별적으로 다가오셔서 어느 학교를
가야 할지 어떤 차를 사야할지에 대해 말씀해 지는 않으시지만 우리를 인도해줄 수 있는 많은 진리를
이미 우리에게 주셨다. 성경은 하나님이 주신 상담자로 우리에게 최고의 조언을 선사한다. 우리가
할 일은 할 수 있는 한 그 말씀을 배우며 그 말씀 가운데서 모든 것을 행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 우리 삶 속에 온전히 나타나기를 원할 때 그분은 분명 그 상황 가운데 세워놓으신
뜻으로 우리를 인도하실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인도>
잠언은 삶의 모든 상황에 대해서 구체적인 설명을 해준다. 이 단락에서 솔로몬은 지혜로운 사람들과
함께하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고 독려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러한 방법을 통해 우리를
인도하신다고 약속하신다.
A. 훌륭한 조언을 통해 배움
(3:1-2; 10:8; 12:15; 19:16, 20, 27; 19:27; 23:9;27:17)
지혜로운 사람은 절대로 배우기를 중단하지 않으며, 그로 인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열매를 얻게 된다.
그러나 자신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은 복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의 구분
3:1-2. 내 아들아, 내 법을 잊지 말고 네 마음이 내 명령들을 지키게 하라. 그것들이 네게 많은 날과
오래 사는 것과 화평을 더하리라.
솔로몬은 자기 아들에게 값을 헤아릴 수 없는 자신의 조언에 주의를 기울이라고 촉구하면서 처음
몇 장을 시작하였다. 그는 이 말들을 결코 가볍게 여기지 말고 마음속에 간직하라고 하였다.
그것들은 단순한 제안 이상의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
잠언 1장: 악한 친구들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라(1:10-15).
지혜에 관한 말씀들은 놀라운 유익을 준다. 십계명의 다섯 번째 명령은 자기 부모를 공경하는 자는
장수하리라고 약속한다. 그리고 잠언은 부모의 말에 순종하는 것(3:16; 4:10;9:11)을 장수와
연결시킨다. 이러한 조언은 단순한 평안이나 번영보다 더 깊은 의미를 내포하는 '샬롬'을 누리게
만든다. 이 말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의 통합성과 건강 그리고 조화로움을 내포한다.
10:8. 마음이 지혜로운 자는 명령들을 받아들이지만 수다를 떠는 어리석은 자는 넘어지리라.
우리가 말을 할 때는 배우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명령들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받아들이며,
그에 따라 행동할 때 지혜를 얻는다. 그러나 수다를 떠는 어리석은 자는 자기 자신의 생각으로만
가득 차 있고, 떠들어대는 데 너무 바빠서 어떤 것도 배우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는 결국 멸망으로
향하게 된다.- 97
12:15. 어리석은 자의 길은 그가 보기에 옳으나 권고에 귀를 기울이는 자는 지혜로우니라.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의 차이는 무엇인가? 어리석은 자는 자신의 행위가 바르다고 생각하고
조언을 통해 배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남들이 다 보는 자신의 부족함을 보지 못하는
유일한 사람이다. 반대로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에 넘쳐 조언을 무시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이 보지 못하는 부분이 있음을 잘 알고 있다.
19:20. 권고를 듣고 훈계를 받으라. 그러면 네가 네 마지막 끝에 지혜롭게 되리라.
훈계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이고 이런 사람은 결국 지혜의 열매를 딸 수 있는
위치에까지 이르게 된다.
23:9. 어리석은 자의 귀에 대고 말하지 말라. 그가 네 말들의 지혜를 업신여기리라.
어리석은 자는 진리에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당신의 말이 아무리 설득력 있다 하더라도 그들은
비웃으며 조롱할 것이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7장 6절에서 돼지에게 진주를 던지는 것에 대해서
경고하실 때 이와 비슷한 개념을 사용하셨다.
27:17. 쇠가 쇠를 예리하게 하는 것같이 사람이 자기 친구의 얼굴을 예리하게 하느니라.
두 개의 쇠를 서로 비비면 한쪽이 다른 쪽을 날카롭게 만든다. 이와 같이 사람들 사이의 상호 작용은
우리를 더욱 세밀하게 만든다. 이 원리는 사업, 학문, 육체적 분야와 영적 분야 등 삶의 모든
분야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사실 히브리어 본문에서는 문자적으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얼굴을
날카롭게 만든다고 말한다. 이는 유익이 그들의 얼굴에서도 나타난다는 뜻이다!
B. 구체적인 책망을 통해 배움
(9:7-9; 13:1, 13; 15:31; 17:10; 19:25; 25:12; 27:56; 29:1)
우리가 살면서 문제를 만나면 좋은 친구가 우리를 바로잡아 줄 수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그러한 충고를
반가워하지만 강퍅한 사람은 그저 화만 낼 것이다.
9:7-9. 비웃는 자를 책망하는 자는 수치를 당하고 사악한 자를 꾸짖는 자는 오명을 얻느니라. 비웃는
자를 책망하지 말라. 그가 너를 미워할까 염려하노라. 지혜로운 자를 꾸짖으라. 그가 너를 사랑하리라.
지혜로운 자에게 훈계를 주라. 그러면 그가 더욱 지혜롭게 되리라. 의로운 자를 가르치라. 그러면
그의 학식이 늘어나리라.
비판은 지혜를 얻을 때 우선적으로 사용되는 방법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고맙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거만하여 비웃는 자(7-8절)는 당신이 그를 훈계하면 폭발해버려서 모욕적인
언사를 내뱉을 것이고, 도리어 흠을 잡으며 당신을 미워하게 될 것이다. 솔로몬은 비웃는 자를
사악한 자와 동일시하면서 거만한 태도는 도덕적 파탄에 이르게 된다고 말한다.
8절 하반절부터 9절의 내용은 지혜로운 사람의 전혀 다른 반응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자신을 도와주려
고 한 것을 깨닫고 당신을 사랑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더 지혜로워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에 당신의 통찰을 더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솔로몬은 지혜로운 자를
의로운 자라고 간주하고 있다. 그 이유는 두 사람의 특징이 서로 비슷하기 때문이다.
13:1. 지혜로운 아들은 자기 아버지의 훈계를 들으나 비웃는 자는 책망의 말을 듣지 아니하느니라.
이 절은 당신이 어떤 지혜로운 아들을 볼 때 그 아버지의 가르침이 아들에게 배어 있음을 알게 된다는
것을 말한다. 반면에 비웃는 자는 어리석음의 극치에 있는 자이다. 아버지의 조언을 듣지 않는
아들은 더욱 고통스러운 삶을 향해 나아간다.
15:31. 생명으로 이끄는 책망의 말을 듣는 귀는 지혜로운 자들 가운데 거하느니라.
어떻게 사람이 지혜 있는 자들의 무리 속에 거할 수 있는가? 가장 빠른 길 가운데 하나는 책망의
훈계를 귀 기울여 들음으로써 배우는 것이다. 1장 33절, “그러나 누구든지 내 말에 귀를 기울이는
자는 안전히 거하며 재난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평온하리라.” 조언과 질책은 당신이 사망으로
가는 길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므로 당신이 지혜의 공정한 교훈에 순종할
때 지혜로운 자의 무리에 들게 되고 평안할 것이다.- 98
17:10, 지혜로운 자를 한 번 책망하는 것이 어리석은 자를 백 번 채찍질하는 것보다 더 깊이 박히느니라.
지혜로운 사람은 훈계에 즉각적으로 올바르게 반응한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영혼에 뿌리박혀 개선의
방법을 찾는 그의 행동을 평가한다. 하지만 강퍅하고 어리석은 자는 그런 말들을 무시해 버린다.
사실 매를 대는 것과 같은 극단적인 방법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할 수도 있다. 율법은 일반적으
로 40대 이상은 때리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백 번이라는 말은 당신이 어리석은 자에게 무슨
짓을 하더라도 변하지 않을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25:12. 순종하는 귀에 대고 지혜롭게 책망하는 자는 금귀고리 같으며 정금 장식 같으니라.
책망은 그리 좋게 들리지는 않지만 잠언은 그것을 금귀고리나 그 외 다른 보석에 비유하고 있다.
지혜로운 사람이 당신에게 훈계를 할 때 당신이 조금만 신경 쓴다면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할 수
있는 조언이 될 것이다. 그의 조언이 당신의 삶을 더욱 윤택하게 할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모습으로 살아갈 것을 요청하고 있다(딛2:10). “이것은
그들이 모든 일에 우리 구원자 하나님의 교리를 아름답게 장식하게 하려 함이니라.” 베드로는
자매님들에게 온유하고 안정된 심령의 아름다움을 갖는 일에 노력하라고 말했다(벧전 3:3-4).
너희는 머리를 땋고 금으로 치장하거나 옷을 차려입는 그런 외적 단장으로 단장하지 말고 오히려
마음의 감추어진 사람으로 단장하라. 그것은 하나님의 눈앞에서 지극히 값진 것이요, 썩지 아니하는
것이니 즉 온유하고 조용한 영의 장식이니라. 그리스도인의 덕목
27:5-6. 드러내어 꾸짖는 것이 은밀하게 사랑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친구가 주는 상처는 믿음직하나
원수의 입맞춤은 속임수가 가득하니라.
5절은 어떤 것을 다른 것보다 '더 낫다' 라고 설명하는 잠언의 내용 가운데 하나로서 사랑의 대화와
표현의 필요성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책망하는 것은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바람직한 면책은 사랑을
표현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약간은 불편한 관계가 될지라도 아예 상대하지 않는 것이나 전혀
나타나지 않는 사랑보다는 더 나은 것이다.
6절은 순수한 사랑과 거짓된 사랑을 비교하고 있다. 당신의 감정에 상처를 주는 책망은 마치 원수가
한 일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의 책망은 신뢰할 수 있다. 반면에 자주
입 맞추는 사람은 친한 친구처럼 여겨질 수도 있지만 당신을 싫어하는 사람의 입맞춤이라면 가룟
유다의 입맞춤과 같은 의미일지도 모른다.
설교 코칭(*), 나의 설교 개선 사례
C. 조언자의 도움의 가치(11:14; 15:22; 20:18;24:5-6)
훌륭한 조언을 따르는 것은 삶의 여러 영역에서 성공과 실패를 결정한다.
11:14. 조언이 없는 곳에서는 백성이 넘어지나 조언자들이 많으면 안전이 있느니라.
일반적으로 나쁜 결정은 당사자를 고통 속에 온 밤을 지새우게 만든다. 그러므로 훌륭한 조언을 얻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 조언이라고 표현된 단어는 때로 배의 키를 의미하는 가치중립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만약 키로 배를 조종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그 배는 곧 가라앉고 말 것이다. 안전을
위해서 지도자는 많은 조언자들의 지혜를 사용해야만 한다. 이는 승리를 놓쳐버리게 만드는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15:22. 조언이 없으면 계획들이 좌절되나 조언자들이 많으면 그것들이 굳게 서느니라.
개인적인 상황에서도 이와 같은 원리가 작용된다. 우리가 상담을 받으며 의논을 하지 않으면 우리의
목표는 사라져버릴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많은 상담을 받고자 할 때에는 우리의 목표가 다시
세워질 것이다.
예수님은 가장 큰 조언자, 사9:6
20:18. 모든 목적한 바가 의논함으로 굳게 세워지나니 좋은 충고를 가지고 전쟁하라.
잠언은 종종 왕에 대해서 말한다. 그래서 전쟁에 대한 언급은 문자 그대로 다루어져야 한다. 만약
우리가 조언을 듣고자 한다면 우리의 계획이 성공하기가 쉬울 것이다. 그러나 무작정 전쟁에 뛰어들
려 한다면(전쟁의 준비), 미약한 준비로는 승리의 기회를 얻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 99
할 수 있는 한 최선의 조언을 받아야만 한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4장 31절에서 이와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 “어떤 왕이 다른 왕을 대적하여 전쟁을 일으키려 할 때에 먼저 앉아서 자기를
대적하여 이만 명을 거느리고 오는 자를 자기가 만 명으로 당해 낼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해
보지 아니하겠느냐?”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원리를 영적 전투에서도 유익하게 사용할 수 있다(엡6:10-13).
24:5-6. 지혜로운 자는 강하고 참으로 지식 있는 자는 힘을 늘리나니 너는 지혜로운 조언으로 전쟁을
할지니라. 조언자들이 많으면 안전이 있느니라.
이 구절들은 군사력만으로는 전쟁에서 승리를 얻기에 불충분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역사는 교묘한
작전으로 압도적인 군사력을 물리쳤던 많은 전투들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지혜로운 장수는
결코 지식이 많은 참모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않는다.
결론: 아직 본향 집에 돌아온 게 아니잖아요.
때로는 한 마디 말이 우리의 마음을 정리하게 하고, 평정심을 갖게 하며, 혼란스럽던 생각을 명확하게
만들기도 한다. 당신은 아마 간단한 진리의 힘을 실례로 보여주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이야기를 들어보
았을 것이다.
한 선교사 부부가 아프리카 오지에서 평생을 사역한 후에 본국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런데 루즈벨트
대통령도 그 배에 타고 있었다. 그는 사냥 여행에서 돌아오는 중이었고, 군악대가 갑판 위에서 축가를
연주하고 있었다. 많은 고위 인사들과 엄청난 규모의 인파가 그곳에 모여 그를 환영하고 있었다.
"이건 너무 불공평해." 선교사가 말했다. "그는 기껏 사냥 여행이나 하러 아프리카에 간 것뿐인데 세상은
이렇게 떠들썩하게 그를 반겨주는군. 하지만 우리는 아프리카에서 그리스도를 위해서 평생을 바쳤는데
환영해주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잖아."
그러나 그의 아내가 그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을 때 그 생각은 말끔히 사라져버렸다. "알아요, 여보,
그렇지만 당신은 아직 하늘나라 본향 집에 돌아온 게 아니잖아요.”
이것이 지혜로운 상담자들의 능력이다. 그들은 혼란 속에서 정신을 바로 차리며, 복잡함 속에서 올바른
관점을 제시하고, 각 사람의 발이 든든한 반석 위에 서게 만든다. 지혜로운 사람은 지혜로운 상담자를
찾으며, 그들이 말하는 바에 귀를 기울인다.
▣ 진리 알기
• 항상 자기 혼자서 판단을 내리고 언제나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을 만큼 완전한 지혜를 가진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 때로 지혜는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것이 옳다면 반드시 따라야만 한다. • 지혜는 결코
성경 말씀을 거스르지 않는다.
삶의 적용: 경고에 주의하라!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과 우리 삶 가운데
보내주신 사람들의 조언에 마음 문을 여는 것이다. 때로 지혜로운 상담은 세상이 멸시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오기도 한다. 우리는 우리에게 정직하고, 책임감을 느끼며, 우리가 올바른 길에서 멀어질
때 경고하는 사람들을 가까이하고 그들을 귀히 여겨야 한다.
1889년에 일단의 토목기술자들이 펜실베이니아주의 존스타운 상류에 있던 댐을 조사하고 나서 그 댐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그 지역 관청에 보고하였다. 그 댐은 유지 보수 관리가 소홀했고, 여기저기
생겨난 균열들은 댐이 위험하다는 신호였다. 그러나 그런 일은 언제나 있어 왔고, 예상되는 위험에
대한 우려는 한낱 농담에 지나지 않았다. 결국 그 경고는 무시되었다. 그해 5월 31일 오후 4시
7분에 그 댐은 붕괴되었고, 도시로 연결되는 좁은 강줄기를 따라 그 안에 있던 2천만 톤의 물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엄청난 양의 부유물들로 넘치면서 강 수면은 순식간에 19미터 높이에 육박하
였고 시속 70킬로미터의 물살이 마을을 덮치면서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파괴시켰다. 30분이 채
되지 않아 존스타운은 완전히 파괴되었고, 2,209명이 사망하였다. 그들은 이런 일을 전혀 예상치
못했기에 그 경고를 무시했던 것이다.- 100
계속해서 배워야 한다(조언과 권고).
결론
유익이 되는 비판을 겸손히 수용해야 한다.
모든 일에 조언이 많으면 안전하다.
조언자: 부모, 교사, 목사, 성경, 좋은 친구
https://youtu.be/vxGwvxKv1jU?list=PL4P6SBDceLgEZLssg4BzG1AiTvdLOoZ67
친구를 사랑하고 우정을 쌓는 교제의 중요성_잠언 강해 28 : 정동수 목사, 사랑침례교회, 설교, 강해 (2022. 8. 26)
잠언 28: 친구를 사랑하고 우정을 쌓는 교제의 중요성
성경말씀: 잠1:8-9
잠언 27번 강해, 솔로몬의 잠언은 여러 주제를 말한다. 그중 하나가 좋은 친구를 사귀고 나쁜 친구를
멀리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친구들에 대한 것이며 또 주변 성도들과의 교제에 대한 것이다. 이것
역시 매우 중요한 주제라 오늘은 < >, 친구를 사귀는 것, 형제/자매들과 교제하는 것, 인간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역시 <메인 아이디어로 푸는 잠언>
들어가는 글: 바울의 친밀함
우리는 사도 바울에 대해서 생각할 때 대개 그를 열정이 있고, 똑똑하며, 독립심이 강하고, 자립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그러한 인상은 어느 정도 맞는 부분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동시에 그는
인간관계에 능통한 사람이었다. 고든 맥도날드(Gordon MacDonald)는 그의 저서 「당신의 영적
열정을 회복하라(Restoring Your Spiritual Passion)」에서 바울에게 많은 친구가 있었음을
지적하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도 바울은 분명히 신실한 친구들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그들이 어디 있는지를
알고 있었고, 정기적으로 자신의 영적 목표에 그들이 얼마나 도움을 주었는가에 대해 감사를 전하였다.
그의 친구들은 분명히 그가 의지하는 힘의 근원이었으며, 그들이 없었다면 그는 많은 위험으로부터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와 돈독했던 친구들 가운데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있었는데 바울은 그들과 함께 일하고 살았으며(행
18:3), 오네시보로(딤후1:16), 빌레몬(몬1:7), 누가 그리고 그 외의 다른 친구들이 있었다. 바울의
친구들은 다양한 연령대와 출신 배경을 가졌으며 그는 그들을 돌아보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친구를 사모하는 바울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우리 자신을 으스대며 남에 대한 칭찬에
인색한지를 알 수 있다. 바울은 사람들에 대한 칭찬과 확신과 감사를 표현하는 일에 인색하지 않았다.
그 결과 그는 많은 좋은 친구들을 갖게 되었다. 우리 역시 많은 친구들을 갖고 싶다면 바울의 자세를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
오늘 강해에서 솔로몬의 지혜는 좋은 친구들을 사귈 수 있도록 하며, 진실한 친구가 아닌 자들에게 속지
않도록 도움을 준다.
본문 이해: 사랑과 우정의 조건, 유지
잠언은 지혜에 초점을 두면서도 사랑이 하나님과 가족 혹은 친구들 간에 좋은 관계를 이룰 수 있는 근본
토대라고 말한다.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데 필요한 사랑은 잠언에서 긍휼로 표현되어 있다.
긍휼은 인자한 마음으로 불쌍히 여기는 것이다.
사랑은 하나님과 가족 혹은 친구들, 성도들 사이에서 좋은 관계를 갖기 위한 본질적인 요소다. 진실한
사랑은 사람들과의 실제적인 상호 교류 속에서 나타난다.
친구는 더할 나위 없이 삶을 풍성하게 한다. 좋은 친구는 계속해서 관계가 유지되어야 한다. 그리고
악한 사람은 선한 친구를 만들 수 없다. 그러므로 친구를 사귈 때에는 지혜롭게 선택하고, 관계를
잘 유지해야 한다.
친구: 히브리어 '레아'는 친구를 가리키는 가장 일반적인 단어로 구약에서 약 180회 사용되었다. 이것은
'친구'나 '이웃'으로 해석된다(12:26; 17:17; 27:9-10). 욥의 세 친구, 자주 만나 익숙해진 사람(출
2:13; 삿7:13), 아주 가까운 친구, 이웃으로도 번역된다. 레위기 19장 18절, “네 이웃을 너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가정의 형제자매, 교회의 형제자매 등
A. 사랑, 우정의 근본 토대
(3:3-4; 10:12; 11:16-17; 12:10, 25; 15:17; 16:6;
17:5;20:6; 21:10; 24:17-18; 25:19, 21-22)
어떤 관계는 편리성이나 목표의 공유 혹은 사업적인 유익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진정으로 서로 만족하는 - 102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사랑과 신뢰성의 수준을 더욱 높이는 것이다.
3:3-4. 긍휼과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들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 판에 기록하라. 그러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의 눈앞에서 호의와 선한 명철을 발견하리라.
3장은 일련의 명령과 약속의 관계로 시작되고 있다. 한 구절이 명령에 대한 설명을 하고 나면 그
다음 구절이 그 명령에 따르는 사람이 얻는 보상에 대해서 설명한다. 먼저 잠언 기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긍휼과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긍휼은 히브리어 헤세드(chesed)로서
이미 성립된 언약이나 헌신을 지속하게 만드는 충성스러운 사랑이다. 상대방을 이해하며 불쌍히
여기는 것, 그리고 진리는 믿을 수 있는 진실함, 신뢰성을 의미한다. 구약의 핵심적인 두 가지
덕목은 14장 22절과 16장 6절 그리고 20장 28절에서도 나타난다.
긍휼과 진리가 왕을 보존하며 그의 왕좌는 긍휼로 떠받쳐지느니라(20:28).
이 두 개는 하나님 자신에게서 능동적으로 나타나는 성품이기도 하다.
그 다음 절은 이 명령의 긴급함을 시각적인 언어로 강조하고 있다. 신명기 6장 8-9절에서처럼 이
구절은 독자에게 긍휼과 진리가 삶 속에 영원토록 떠나지 말게 하라고 말하면서 이 둘을 단단히
목에 매며 석판 위에 새기듯이 마음판 위에 새겨놓을 것을 요청하고 있다.
만약 긍휼과 진리가 한 사람의 삶 속에 영원히 나타나는 덕목이 된다면 그 보상은 호의와 선한 명철이
될 것이다. 호의는 때로 '은혜' 혹은 '친절'로도 번역되고, 선한 명철은 문자적으로 현명함 혹은
수행 능력을 의미한다. 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좋은 평판을 얻게 될 것이고, 하나님 자신도
이러한 자질을 귀하게 평가해주실 것이다.
긍휼과 진리가 인간관계 형성의 토대
11:16-17. 은혜로운 여자는 명예를 유지하며 강한 남자들은 재물을 유지하느니라. 긍휼을 베푸는 자는
자기 혼에 선을 행하나 잔인한 자는 자기 육체를 괴롭게 하느니라.
어떤 사람들은 고집을 부리고 가혹하게 밀어붙이는 것이 성공의 유일한 길이라고 믿는다. 어쩌면
그것이 재물을 얻는 방법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성공이 한계에 이르게 되면 결국에
그들은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얻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유덕하고 은혜로운 여자는 악한 자들이 결코 따를 수 없는 존경을 얻게 된다.
겉으로는 그녀가 영리해보이지 않을지라도 말이다.
마찬가지로 충성스러움과 헌신적인 사랑을 가진 남자는 자신의 충성심이 신임과 존경이라는 유익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반대로 잔인한 사람은 자신의 잔혹함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12:10. 의로운 사람은 자기 짐승의 생명을 중히 여기지만 사악한 자들의 친절한 긍휼은 잔인하니라.
긍휼은 의로움과 함께한다. 신실한 사람은 자신의 짐승의 생명을 돌아보며 자신이 돌보는 사람들에게도
동일하게 행동한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긍휼히 여김을 받고 그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 긍휼을
베푼다. 반면에 악한 자는 자기 수하에 있는 사람이나 동물을 학대한다. 그나마 그가 행한 가장
친절한 행위도 사실은 자신의 이기적인 동기에서 나온 것들이다.
12:25. 사람의 마음속 근심은 마음을 웅크리게 하나 선한 말은 마음을 기쁘게 하느니라.
우리 모두는 때로 불안으로 인해 고통스러워한다. 불안은 우리를 불편하게하고, 위축되게 하며, 때로는
우울함에 빠지게 한다. 우리의 내적 자아는 그런 스트레스를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 그러나
친밀한 말(선한 말)은 우리에게 용기를 불러일으키며, 다음 상황에 맞설 수 있는 격려가 된다는
것이 정말 놀라운 일이다.
15:17. 채소를 먹으면서도 사랑하는 것이 외양간에 소를 가지고 있으면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이 구절은 무엇이 진실로 선한 것인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해 주는 일단의 비교 단락 가운데 하나다
(15:16-17; 16:8). 만약 당신이 좋은 음식과 좋은 인간관계 사이에서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어떤 것을 선택하겠는가? 잠언은 가난한 가족이라도 사랑으로 채워져 있다면 채소만 먹는 것도
견딜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미움으로 가득 찬 가족이라면 부자들의 연회에서나 나올 수 있는 - 103
살진 소를 먹는 즐거움조차 헛된 일이 될 것이다.
B. 우정, 매일의 사랑 실천
(12:26; 13:20; 14:7; 17:17; 18:24; 24:1-2; 25:16-17;27:8-10; 29:24)
사랑(긍휼)은 우리 삶의 어떤 상황에서 나타나는가? 순수한 사랑은 서로간의 매일의 상호 작용 속에서
드러난다. 진실한 우정은 사랑을 공급해주는 가장 좋은 토대가 된다.
12:26 의로운 자는 자기 이웃보다 더 뛰어나지만 사악한 자들의 길은 그들을 유혹하느니라.
우정은 놀랍고 좋은 것이다. 하지만 친구를 선택하고 찾을 때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만약 당신이 악한 자를 친구로 선택하고 그의 길을 따른다면 그는 당신이 길을 잃어버리도록
만들 것이다.
13:20. 지혜로운 자들과 함께 걷는 자는 지혜로울 것이나 어리석은 자들의 벗이 되는 자는 멸망을 당하리
라.
우리는 친구를 지혜롭게 잘 선택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우리에게 주는 영향력은 지대하기 때문이
다. 지혜로운 자와 함께 다니는 사람은 더욱더 지혜로워지지만 미련한 자와 함께하는 사람은 점차
그들과 같아질 것이고 그들의 삶 속에 따르는 문제들을 함께 겪을 것이다. 잠언은 자주 다른
사람들의 치명적인 영향력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1:10-11; 2:12; 4:14-17; 16:29;
22:24-25; 23:20-21; 28:7).
14:7. 어리석은 자에게 지식의 입술이 있음을 네가 보지 못하거든 그의 얼굴 앞에서 떠나라.
어리석은 자와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은 아무런 유익이 없다. 왜냐하면 그는 나눌 수 있는 좋은 것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당신은 그의 말에서 지식이나 지혜로운 조언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런
사람으로부터는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현명하다. ‘
17:17. 친구는 언제나 사랑하며 형제는 어려운 때를 위해 태어났느니라.
이 구절의 요점은 친구나 형제가 귀중한 도움이 되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위기 속에서도 진실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특별히 교회 친구들(*)
18:24. 여러 친구를 두는 자는 반드시 자신을 다정한 자로 보여야 하나니 형제보다 더 친밀한 친구가
있느니라.
친구를 얻으려면 다정함을 먼저 보여야 한다. 그러면 형제보다 더 친밀한 친구를 얻을 수 있다.
24:1-2. 너는 악한 자들을 볼 때에 부러워하지 말며 그들과 함께하기를 바라지도 말라. 그들의 마음은
멸망을 연구하고 그들의 입술은 악한 일을 말하느니라.
악한 자들을 사랑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피해야 한다. 잠언 기자는 죄인들의
마음속에는 악한 의도가 가득 차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런 사람은 끊임없이 포악한 일을 계획하혀
하고 그의 말은 계속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문제를 일으키는 계획을 내어놓을 것이다.
25:16-17. 네가 꿀을 발견하였느냐? 네게 족한 만큼만 먹으라. 그것으로 배가 차서 네가 토할까 염려하노
라. 네 이웃의 집에서 네 발을 뒤로 물리라. 그가 네게 싫증이 나서 너를 미워할까 염려하노라.
이 잠언은 꿀과 친구들에 대해서 동일한 조언을 하고 있다. 이 둘은 모두 좋은 것이다. 하지만 너무
많이 먹거나 너무 많이 두면 괴로움을 얻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즐길 수 있도록
꿀과 같이 달콤한 먹을 것을 창조하셨다. 그러나 적당히 취해야 한다. 너무 많이 먹으면 나중에는
보기도 싫을 것이다.
이와 동일한 원리가 우정에도 적용된다. 친구들의 방문은 즐거운 일이지만 만약 당신이 너무 자주
친구 집에 방문한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당신은 결코 보고 싶지 않은 상대가 되어버릴 것이다.
27:9-10. 향유와 향수는 마음을 기쁘게 하며 달콤한 친구의 애정 어린 권고도 그렇게 마음을 기쁘게
하느니라. 네 친구와 네 아버지의 친구를 버리지 말고 네 재난의 날에 네 형제의 집으로 들어가지
말라. 가까이 있는 이웃이 멀리 있는 형제보다 나으니라.
향유와 향수는 잔치 때나 즐거운 기념일에 사용된다(계 2:10), 동일한 원리로 좋은 조언을 하는 - 104
친구는 기쁨과 만족스러움이 된다.
27장 10절은 가족에 대한 비난이 아니라 친구들에 대한 설명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까운 가족들과
의 관계를 친밀하게 유지하였다. 그래서 사람은 재난의 순간에도 친척에게로 쉽게 갈 수 있다.
그러나 이 구절은 좀 더 합리적인 설명을 하고 있다. 형제는 돕기에는 너무 멀리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웃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이치에 맞고 지혜로운 것이다.
29:24. 누구든지 도둑과 짝하는 자는 자기 혼을 미워하나니 그는 저주를 듣고서도 그것을 드러내지
아니하느니라.
레위기 5장 1절에 의하면, 만약 어떤 사람이 죄악에 대한 결정적인 정보를 알고 그 일에 대해 증언하도록
부름을 받았다면 그는 반드시 그 증언을 해야 한다. 만약 그가 가지 않으면 그는 하나님과 재판장
앞에서 동일한 죄가 있다. 그런 사람에게는 저주가 임한다. 도적과 짝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엄청난 재난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자신을 속이기 때문에 거짓 증언하는 것도 두려워하
지 않을 것이다. 만약 그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저주에 빠지게 될 것이다. 악한 자와
친한 관계를 갖지 않아서 그런 고민을 피할 수 있다면 그 얼마나 유익한 일이겠는가!
결론: 대통령보다 친구를 선택함
20세기 중반에 미국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백악관 대변인을 했던 샘 레이번(Sam Rayburn)은 분명한
우선순위를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의 친구 가운데 한 사람의 십대 딸이 어느 날 밤 갑작스러운 교통사고
로 사망하는 일이 일어났다. 다음 날 아침 일찍 그 친구는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고, 문을 열어
보니 거기에는 레이번이 서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뭔가 도와줄 일이 있을까 해서 왔네." 그 친구는 큰 슬픔 속에서 대답했다. "자네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을 것 같네. 지금 우리는 모든 장례 수속을 다 밟아놨다네." "그렇군." 레이번이
말했다. "그럼 자네 모닝커피는 했는가?” 그 친구는 아직 아침을 먹지 않았다고 말했고, 레이번은
자신이 커피를 만들어줄 수 있다고 했다. 그가 친구의 집 부엌에 들어가 커피를 끓이는 동안에 그
친구가 다가와 물었다. "여보게, 그런데 자네는 오늘 아침 백악관에서 아침을 먹기로 되어 있지 않았
나?" "그랬지." 그가 대답했다. "하지만 대통령께 전화를 드려서 지금 곤경에 처한 친구가 있어서
오늘은 갈 수 없다고 말해놓았네."
솔로몬은 "친구는 언제나 사랑하며"(잠17:17)라고 했는데, 바로 이런 것이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친구란 다른 사람들이 다 걸어 나갈 때 걸어 들어오는 사람이다." 진실한 친구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도움이 필요한 친구가 있을 때 그의 삶 속에 걸어 들어갈 것을 준비해야만 한다.
꿀은 벌을 끌어들이고, 순수하며 성경적인 사랑은 친구를 끌어 모은다.
이기심은 친구 사이를 망가뜨린다.
좋은 친구 없이는 아무도 온전히 즐겁거나 만족스럽거나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없다.
당신의 배우자는 당신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 그와 혹은 그녀와의 관계를 잘 유지하라. 그렇게
하면 당신의 남은 삶은 더할 나위 없이 풍성할 것이다.
오래된 친구와의 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라.
새로운 친구와의 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라.
삶의 적용: 포로 생활에서의 우정
삶에서 즐거움을 누리고 성공을 이루고자 한다면 친구가 필요하다. 우리는 종종 이점을 잊어버리거나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만약 자신에게 친구가 필요하다고 한다면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게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쟁 포로의 상황에서는 친구가 너무나 중요해서
반드시 친구를 만들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죽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우정의 소중함을
바로 그들에게서 배우기도 한다. 「인생의 가장 힘든 전투 속에서 승리하는 것(Winning Life' s - 105
Toughest Battles)」이라는 책에서 저자인 줄리어스 시갈(Julius Segal)은 베트남 전에서 전쟁
포로로 2,714일간을 영웅적으로 버티고 살아난 해군 중장 제임스 스탁데일(James B. Stockdale)
의 경험담을 기록하고 있다.
그중 한 장면으로 스탁데일은 양손이 뒤로 묶여져서 수갑이 채워졌다. 그리고 발에는 철사가 감겨져
수용소 마당의 내리쬐는 햇빛 한가운데 던져졌다. 다른 포로들에게 협력하지 않는 자들이 겪게 될
일을 보여 주기 위해 베크콩들이 한 짓이었다.
거기에 누워 있는 3일 동안 뜨거운 열기가 그의 체력을 고갈시켰다. 그가 잠이 들려고 할 때마다 보초들이
가혹하게 그를 때렸다. 그가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생명의 한계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그는 ‘타월로
딱딱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포로들이 사용하는 암호로서 'GBUJS'를 의미하는 소리였고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였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복을 주시기 원합니다. 짐 스탁데일(God Bless
You Jim Stockdale).' 그것은 결코 잊을 수 없는 메시지였고 그가 다시 견딜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시갈은 이렇게 말했다.
“최근의 미국 역사 가운데 있었던 모든 포로 생활에 관한 기록을 살펴보면 전쟁포로와 납치 포로들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기발한 의사소통의 생명선에 의해서 생명의 의지를 유지했다. 베트남전에서
교묘한 박수 소리 암호는 박수치는 소리의 숫자와 쉬는 길이로 영어 알파벳을 의미하였는데, 이는
포로들이 의사소통을 하는 주된 수단이었다. 그것이 바로 짐 스탁데일을 끝까지 견딜 수 있게 한
암호였던 것이다.”
인간적인 관계와 동료애는 주변 환경이 열악할 때 생존을 위해 가장 필수적인 것이다. 시갈은 정신적
충격과 신체적 학대, 강간 혹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견디고 살아난 2천 명의 사람들에 대한
연구를 정리하여 보고하였다. 그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 사건에 대해서 다른 어떤 사람과 신뢰 관계를
가지고 서로 이야기를 하였을 때 더욱 건강할 수 있었다. 자신의 경험을 다른 사람과 나누지 않았던
사람들은 두통에서부터 폐질환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병에 시달렸다.
이 진리에 직면해 볼 때 그리스도인들도 때로 친구가 없는 외로움에 시달린다. 척 스윈돌(Chuck
Swindoll)은 최근에 기독교로 개종한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그 사람은 개종한 이후의
삶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내 삶에서 잃어버린 것 가운데 유일하게 그리운 것은 선술집에서 사귀었던 모든 친구들과의 관계였습
니다. 우리는 함께 둘러앉아서 웃고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하면서 하루의 피로를 풀었지요. 나는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는 그런 친구 관계를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술집을 그리워하지 않지만 친밀한 관계는 그리워한다.
사도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눔을 통해서 유익을 누리게 된다.
오네시보로 딤후1:16-17
에바브라디도 빌2:25-27
요일2:10, 4:20-21
https://youtu.be/1YelxBtlwM0?list=PL4P6SBDceLgEZLssg4BzG1AiTvdLOoZ67
위선과 거짓 없이 진실하게 살기_잠언 강해 29 : 정동수 목사, 사랑침례교회, 설교, 강해 (2022. 9. 16)
잠언 29: 위선과 거짓 없이 진실하게 살기
잠언 28번 강해, 솔로몬의 잠언은 여러 주제를 말한다. 지혜란 인생을 살아가는 기술
오늘은 <위선과 거짓을 버리고 진실하게 살기 >, 사람들과의 관계, 하나님과의 관계
역시 <메인 아이디어로 푸는 잠언>
사도 바울의 고백, 고후1:12, 우리가 세상에서 생활할 때에 단순함과 하나님께 속한 순전함으로 하였고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하였으며 너희를 향해서는 더욱더 그리하였노니 이것이
우리의 기쁨이요 우리 양심이 증언하는 바라.
들어가는 글: 진실함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은 우리가 신뢰할 만하고 진실하며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자가 되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그분은 위선과 거짓에 분노하신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서 불성실함이 나타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예수님이 가장 미워하신 자들: 위선자, 종교 지도자들
예화: 돈이 많고 사회적으로 저명한 한 중년 부인이 자신의 자서전을 내기로 결심하였다. 그런데 이
일을 위해 그녀가 고용한 유명한 자서전 작가는 그녀의 할아버지가 살인자였고 유명한 일급 죄수
수용소인 뉴욕주의 싱싱 수용소에서 전기의자(electric chair)에 의해 사형당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
다. 그는 그 할아버지가 자서전에서 도저히 뺄 수 없는 인물이라고 판단하여 그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새롭게 각색하였다. "그녀에게는 여러 명의 할아버지가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연구소에서 전기를 담당하는 자리(chair)에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일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결국 그 일을 하다가 숨을 거두었다."
우리 모두는 자신과 관련된 일에서 어떻게 해서든 최고의 유익을 누리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그러나
솔로몬은 우리에게 진실함(순수함, 한결같음)이 중요하다고 가르친다. 하나님은 우리가 내면적으로
어떠한 자인지를 알고 계신다. 그리고 사람들도 그것을 언젠가 알게 될 것이다. 잠언의 여러 구절들은
하나님이 마음속을 들여다보신다는 것과 겉으로 포장된 모습을 꿰뚫어보신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
고 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는 다른 사람들의 불성실함을 간파해낼 것이다.
진실한 섬김: 미모는 오직 한 꺼풀 피부일 뿐이다. 어떤 경우에는 정직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받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모두가 다 진실한 사람은 아니다. 하나님은 진실한 마음을 꿰뚫어보신다. 그리고 우리는 외면과
내면이 일치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A. 내면을 들여다보시는 하나님
(15:11; 16:2; 17:3; 20:11, 27; 21:2; 27:19)
진실함(순전함)은 숨겨진 우리의 내면의 동기가 밖으로 드러나는 우리의 표현과 일치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마음이 주님께 완전히 열려 있음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진실함으로 그분께 나아가야 한다.
15:11. 지옥과 멸망이 주 앞에 있거든 사람들의 아이들의 마음은 얼마나 더 그러하리오?
지옥과 멸망을 뜻하는 히브리 단어들은 ‘스올(Sheol)'과 '아바돈(Abaddon)'이다. 구약에서 스올은
죽은 자들이 거하는 곳(특히 불신자들)이다. 아바돈은 ‘소멸하다, 죽다' 를 의미하는 동사에서
파생되었고, 그 이름 자체가 '멸망'을 의미한다. 그것은 죽은 자들의 운명을 일컫는 또 다른 이름이며
그곳의 성격을 어느 정도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요한계시록 9장 11절은 이것을 사탄의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잠언 27장 20절과 욥기 26장 6절에서는 이 두 단어가 함께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잠언에서의 의미는 무엇일까? 만약 하나님이 죽은 자들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아신다면 분명 그분은 우리의 마음속 은밀한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다 보실 것이다!
개역 음부와 유명(사람이 죽은 뒤에 그 혼이 가서 산다고 하는 세상), 둘 다 불교, 샤머니즘 용어
16:2; 21:2. 사람의 모든 길이 그가 보기에는 깨끗하나 주께서는 영들을 저울에 다시느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옳다고 생각한다. 우리도 우리 스스로를 아무 죄가 없는 사람으로
여긴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속마음을 달아보시거나 시험하신다. 그분은 동기의 근원을 판단하신- 107
다. 단지 우리가 한 일에 대해서가 아니라 왜 그런 일을 했는가를 판단하시는 것이다. 그분은
사무엘에게 말씀하신다. "주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나 키의 크기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주는 사람이 보는 것처럼 보지 아니하나니 사람은 겉모습을 보나 주는 마음을
보느니라," (삼상16:7).
17:3. 도가니는 은을, 용광로는 금을 제련하나 주께서는 마음을 단련하시느니라
잠언 기자는 하나님이 어떻게 마음을 연단하시는가를 보여주기 위해 귀금속의 제련 과정을 비유로
사용한다. 도가니와 풀무는 엄청난 열을 통해 금과 은을 제련하고, 하나님은 어려운 환경이라는
열을 통해 우리 영혼의 참된 모습을 드러내신다. 그 연단은 힘이 들지만 바로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이다(약 1:2-3; 벧전 1:7).
20:11. 아이의 경우에도 그가 행한 것들에 의해 그가 행한 일이 순수한지 옳은지 사람들이 아느니라.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법칙은 아이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어린 시절 우리는 우리의 성격을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나타내곤 하였다. 아이들도 어른들처럼 자신이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분명하게
진실함과 의로움을 나타낼 수 있다.
20:27. 사람의 영은 주의 등잔불이므로 배의 모든 속 부분들(inward parts)을 살피느니라.
이 구절은 주님이 이 방 저 방 등불을 들고 다니시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처럼 주님은 인간의
영혼에 대해서 샅샅이 살피신다. 그래서 주님이 살펴보지 못하시는 은밀한 부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의 깊은 속 부분은 때로 '마음' 이라고 번역되고, 마음과 감정과 의지를 포함한 내적인
전 존재를 의미한다. 여기서 '사람' 을 뜻하는 히브리어는 '아담(adam)' 이고, '영'이라는 단어는
또한 '숨쉬다' 의 의미로도 번역되는데, 이는 하나님이 생명의 호흡을 아담에게 불어넣으심을
기록하는 창세기 2장 7절과도 놀라운 조화를 이룬다.
27:19. 물 위에서 얼굴과 얼굴이 일치하는 것같이 그렇게 사람의 마음도 사람과 일치하느니라.
우리가 연못을 구푸려 들여다보고 그곳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때 물속의 영상이 우리의
실제 모습과 들어맞는 것임을 깨달을 수 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속사람(마음)은 우리의 전 존재
(사람)의 모습과 일치하는 것이다. 약 그 사람의 속사람이 선하다면 그는 속과 겉이 동일하게
선한 사람일 것이다.
B. 거짓 희생과 예배를 꿰뚫어보시는 하나님(15:8, 29; 21:3, 27)
사람들은 수세기 동안 하나님께 경배드림을 나타내는 의식을 거행해 왔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정결한
마음으로 그분께 나아가는지 아니면 그저 종교 예식을 실행하는 것인지를 알고 계신다.
예배 요4:22-24
15:8. 사악한 자들의 희생물은 주께 가증한 것이나 올바른 자들의 기도는 그분께서 기뻐하시는 것이니라.
구약의 대언자들은 겉으로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음속으로는 악을 키워가고 있는
위선자들을 하나님이 미워하신다고 일관되게 경고해 왔다(암5:21-24; 미 6:6-8). 그들이 비록
희생 제사(예배)를 드릴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얻기에 부족하다. 하지만 정직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에는 우리의 기도가 주님을 충분히 기쁘시게 한다.
15:29. 주께서는 사악한 자들을 멀리하시나 의로운 자들의 기도는 들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악을 싫어하시기 때문에(잠 15:8-9, 26) 악한 자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계신다. 사실
그분은 그들로부터 너무나 멀리 계시기 때문에 그들의 기도도 듣지 않으신다. 그렇지만 그분은
의로운 자들에게는 가까이 오신다. 그래서 그들의 속삭이는 기도라도 들으시고 응답하신다(시
34:15, 17; 벧전 3:12).
21:3. 정의와 판단의 공의를 행하는 것이 희생물보다 더 주께서 받으실 만하니라.
주님은 제사보다 순종을 더 기뻐하신다(삼상 15:22; 호 6:6). 그리고 우리는 결코 금으로 그분의
은혜를 살 수 없다. 물론 예배 의식은 우리에게 적절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옳은 것과 정직한
것을 행하고자 하는 신실한 마음을 대신할 수는 없다.
21:27. 사악한 자들의 희생물은 가증한 것인데 그가 사악한 생각으로 그것을 가져오면 얼마나 더 가증하겠- 108
느냐?
하나님은 회개하지 않는 경배자들의 희생 제사와 헌물은 싫어하신다는 주제를 다시 반복하고 있다.
주님은 그들의 헌물이 악한 의도로 드려질 때(기복 신앙, 샤머니즘, 오순절 은사주의 록음악 등)
더욱 가증한 것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신다. 그 악한 의도가 어떤 것인지, 어떤 유형이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아마 그런 사람은 자신의 자비로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또 어쩌면 자신의 악한 계획에 하나님이 복을 주시도록 뇌물을
바치는 것일 수도 있다!
C. 이중성의 위험을 아는 지혜로운 사람
(6:12-15; 10:10; 11:3; 16:30; 20:14;23:6-8, 23-26)
이중성은 위선 혹은 비뚤어진 것
지혜로운 사람은 진실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위선과 거짓을 싫어하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중한 사람은 거짓 행세를 통해서 자신을 이용하려는 자들을 알아내는 데 주의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6:12-15. 이 단락은 불량배나 악한에 대한 6가지 설명을 보여 준다. 불량배는 문자적으로 '사악한
자'이며 타락한 사람에 대한 지칭어이다(삼상2:12; 왕상 21:10), 그 단어는 한 사람의 타락성을
언급하기도 하고(느 1:11, 15; 시 18:4), 나중에는 사탄의 이름으로도 사용되었다(고후 6:15).
그러한 사람의 특징은 무엇일까? 그는 타락하거나 비뚤어진 말을 하는 사람으로서 속이는 말을 많이
하는 자로 나타난다.
그는 자신의 몸을 언어로 자유롭게 사용한다. 예를 들어, 눈을 부릅뜨기도 하고(잠 10:10; 16:30;
시 35:19), 발로 강포함을 표시하기도 하고, 손가락으로 어떤 의미를 보이기도 한다. 또 이러한
행동들은 자신의 동료들에게 무엇인가를 의미하는 신호로도 여겨진다.
그렇지만 이러한 간교하고도 약은 행동 이면에 그 악한 자는 속임이 가득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의 마음은 악한 술책으로 넘치고 있고, 그의 외부적인 행동은 그 이면에 있는 속마음을 전혀
드러내보이지 않기도 한다. 그러면서 그가 지나가는 곳마다 불평이 가득하게 만들고 다른 사람들이
더욱 화내서 서로 싸우게 만든다.
불량한 사람이 혹시 성공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우리는 하나님이 그에게 갑자기 생기는 재난과,
빨리 망하는 재난을 가져오시고 피해를 만회하지 못하게 하시리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11:3. 올바른 자들의 온전함은 그들을 인도할 것이나 범법자들의 비뚤어짐은 그들을 멸하리라.
이 구절은 도덕적 행위의 결과를 강조하고 있다. 온전하고 도덕적으로 흠이 없는 정직한 사람은 양
떼를 인도하는 목자와 같이 자신을 인도해줄 생명의 길을 따른다. 말 그대로 정직한 삶은 요셉의
삶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가장 지혜로운 처신이 된다. 보디발의 아내 유혹 사건,
반면에 신실하지 않은 사람은 자신이 행한 속임수나 이중성(비뚤어진 것)으로 인해서 망하게 된다.
16:29-30. 난폭한 사람은 자기 이웃을 꾀어 좋지 않은 길로 인도하나니 그는 비뚤어진 일들을 꾀하려고
자기 눈을 감으며 자기 입술을 움직여 악을 이루느니라.
신중한 사람은 누군가를 신뢰하기 전에 매우 주의 깊게 비언어적인 요소들을 주시한다. 당신이 듣는
말들은 미혹하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눈짓을 한다든지 입술을 깨문다든지 하는 행동들은
그 사람이 간교한 술책으로 당신을 얽어매려 하고 있다는 단서가 될 수 있다.
20:14. 사는 자가, 형편없다. 형편없다, 하고 말하지만 자기 길로 가서는 자랑하느니라.
사람들이 협상하는 때를 자세히 살펴보라. 그러면 당신은 곧 사람들이 그 순간에 자신에게 유익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말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사는 자는 가격을 깎기 위해서 그
물건의 가치를 폄하할 것이다. 그런 뒤에 집에 가서는 자신이 좋은 것을 샀다고 자랑한다. 이
구절은 영적 보화에 적용될 수 있는 경고를 말하고 있다. 팥죽 한 그릇으로 자신의 장자권을
팔아버린 에서의 경우가 좋은 예가 될 것이다.
26:23-26 - 109
23절은 비유의 형식을 따른 경고를 담고 있다. 그리고 24-26절은 그 개념을 더욱 확장해서 설명한다.
토기장이의 선반에는 부드럽고 광택이 나는 그릇이 있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은
얇게 은을 입힌 값싼 토기일 뿐임을 알게 될 것이다. 동일하게 어떤 사람은 처음 만났을 때 매우
매력적이거나 말을 유창하게 잘 하는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그의 열정적이고 강렬한 언변은 경계심
을 버리게 만든다. 그러나 그러한 좋은 말들은 악한 마음을 숨기고 있을 수 있다.
24-25절은 실제로 마음이 악한 사람은 부드러운 말로 그의 악함을 숨긴다는 것을 설명한다. 그의
말은 그럴 듯하지만 그 안에는 어떤 신뢰도 없다. 그의 속사람의 실체는 추악함과 가증스러운
성품으로 가득하다(6:16-19 참고).
그런 사람은 악독함이나 미움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자신의 이러한 감정을 얼마 동안은 숨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마침내 드러나게 된다. 그러면 그는 회중앞에서 자신이 노출된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아마 유대 사회에서 회중은 이렇게 공의를 드러내기 위해서 모였던 것
같다.
아름다움은 오직 한 꺼풀 피부일 뿐이다. 어떤 경우에는 정직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받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모두가
다 진실한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진실한 마음을 꿰뚫어보신다. 그리고 우리는 외면과 내면이 일치하는
지, 그렇지 않은지를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결론: 저울 위의 손가락들
오래전 〈새러데이 이브닝 포스트(The Saturday Evening Post)>지의 표지에 유명한 삽화 작가인
노먼 락웰(Norman Rockwell)이 그린 추수감사절 칠면조를 사는 중년 여성의 모습이 실렸다.
칠면조는 저울 위에 올려져 있었고, 정육점 주인은 저울이 있는 계산대 뒤에 서 있었다. 그 여인은
60세쯤 되어 보였는데 저울의 눈금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 그림의 중심은 사람들의 얼굴에 있었고,
그들은 만족스런 모습이었다. 별로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런데 좀 더 자세히 보면 그 여성은 아래에서 자신의 손가락으로 저울을 올리고 있었고, 정육점 주인은
엄지손가락으로 위에서 저울을 누르고 있었다. 그것을 보는 사람은 웃음을 터트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 저울 위에서 보이지 않는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이 그 거래에서
'본전' 만 찾고, 아무도 이긴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유익을 얻기 위해서 그런 수단을 사용한다면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분명한 죄를 짓는 것이다. - 110
정직만이 최선의 방책이다.
진리 알기
• 당신은 하나님을 속일 수 없다..
• 당신은 다른 사람들을 오랫동안 속일 수 없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신이 정말로 어떠한 사람인지가
모든 사람에게 알려질 것이다. 참된 모습을 숨길 수 없는 것은 우리가 말하고 행동하는 것으로 그것이
나타날 뿐만 아니라 우리가 말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은 것에 의해서도 나타나기 때문이다.
• 현명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정직하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에 주의를 해야만 한다.
적용하기
●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 그리고 당신 자신에게 솔직해져라. 진리는 삶에서 행복을 향해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다.
• 진실함으로 하나님을 섬겨라. 속임수나 깨어진 마음은 이중성의 열매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대하는
당신의 방식이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당신의 방식이 될 것이다.
•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라. 한 사회에서 부정직이 만연하게 되면 모든 사람이
해를 입게 된다.
https://youtu.be/ivh9s4BApIk?list=PL4P6SBDceLgEZLssg4BzG1AiTvdLOoZ67
돈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돈이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_잠언 강해 30 : 정동수 목사, 사랑침례교회, 설교, 강해 (2022. 10. 7)
잠언 30: 돈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돈이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
성경말씀: 잠3:9-10
잠언 29번 강해, 잠언 31장, 오늘 30번째,
솔로몬의 잠언은 지혜와 명철의 책, 지혜란 인생을 살아가는 기술,
여러 주제를 말한다. 여러 주제 중 돈도 중요한 문제
오늘은 <돈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돈이 할 수 있는 것, 없는 것, 태도 등
역시 <메인 아이디어로 푸는 잠언>
“돈은 결코 인간을 행복하게 할 수 없고 그렇게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 자체로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더 많은 것을 가질수록 더 많은 것을 원한다. 공허함을 채우는
대신에 공허함을 만드는 것이다. 만약 그것이 누군가의 욕심을 채울 수 있다면 그 다음엔 욕심을
다른 방식으로 두 배, 세 배 더 크게 만들어 버릴 것이다.” 벤자민 플랭클린
돈은 끔찍한 굴레이다
미국 남부의 한 교회에서 설교를 하던 어떤 목사님이 설교 시간이 거의 끝날 때쯤 되어 점차 목소리가
고조되면서 이렇게 말했다. "절름발이와 같던 우리 교회는 이제 일어서서 걸어야 합니다!"
그러자 회중들이 대답했다. 아멘! 이제 일어서겠습니다."
여기에 만족한 목사님이 다시 외쳤다. "우리 교회는 갈멜산에 서 있던 엘리야와 같이 달려가야 합니다."
“아멘 아멘. 이제 달려가겠습니다."
“우리 교회는 독수리가 날아가는 것같이 날개를 달고 산 위로 날아가야 합니다.” "날아갑시다, 목사님,
날아갑시다."
그러고 나서 목사님은 다음과 같은 말로 끝을 맺었다. “이제 우리 교회가 날고자 한다면 많은 돈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자 "목사님 그러면 우리 교회는 그냥 걸읍시다. 걸읍시다!"
이 이야기는 주일 오전 예배가 끝난 뒤에 교회 문을 나서던 한 남자가 목사님께 다음과 같이 말했다는
이야기와 흡사하다. "목사님, 저는 목사님이 이 교회를 운영할 수 있는 돈이 어디서 나올지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을 때 기뻤습니다. 저는 목사님이 저희들에게 돈을 내라고 할까 봐 걱정했거든요.”
우리는 우리가 가진 돈에 마음을 두고 살기 쉽다. 우리는 더 많은 돈이 우리를 행복하게 할 것이라는
본능적인 개념을 가지고 있고 돈이 적으면 우리가 덜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솔로몬은
돈에 대한 성경적인 관점을 보여 준다. 그는 우리가 하나님의 관점으로 물질을 바라보게 한다. 그는
살기 위해서 돈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돈을 위해서 산다면 결코 돈에 만족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솔로몬은 돈을 위해서 사는 대신에 올바른 관점을 가지고 돈을 관리하라고 가르친다.
그것은 악한 주인의 모습이 아니라 놀라운 청지기로서의 모습으로 가능하다.
돈에 대한 헛된 노력
인생을 살아가는 데는 돈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돈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다.
우리는 대개 많은 수입을 얻게 되는 일에 기뻐하고, 우리가 그렇게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즐거워한다. 그러나 그 물질의 한계와 위험성을 기억해야만 한다. 돈은 우리의 영적인 필요를
채워줄 수 없고, 우리가 그것에 너무 몰두하게 되면 우리의 성품은 변질되어 버린다.
A. 돈이 해줄 수 있는 일
(3:9-10; 10:15; 13:8; 14:20; 18:11; 19:4, 6-7)
아무도 재물의 유익을 부정할 수는 없다. 낡은 자동차가 멈춰 서 버리면 차를 바꿀 수 있는 돈이 있어야
좋은 것이다. 또한 재물은 인생의 수많은 계획을 쉽게 세울 수 있도록 한다. 심지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도 돈이 필요하다.
1. 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도시요, 가난한 자들의 궁핍은 그들의 멸망이니라(10:15)
. 재물은 어느
한도 내에서 보호 수단이 될 수 있다. 사실 이 구절의 상반절은 부자들이 자신의 재물을 견고한 성과
같이 생각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가난은 결코 낭만적으로 생각할 것이 못 된다. 가난은 그로
인해 고통받는 자에게는 멸망에 이르게 하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돈의 잠재력은 쉽게 과장될 수 - 112
있다. 부자들은 재물이 그들과 위험 사이에 도저히 넘어설 수 없는 성벽을 세워 준다고 상상한다.
그러나 유일한 난공불락의 요새란 오직 주님뿐이고, 그분의 이름만이 의인들에게 든든한 성벽이 되어주
신다. 주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니 의로운 자는 거기로 달려가 안전을 얻느니라.(18:10)
.
2. 사람의 재물은 그의 생명의 대속물이지만 가난한 자는 책망의 말을 들을 일이 없느니라(13:8)
, 이스라
엘에서 부자는 몸값을 받아내기 위한 납치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몸값이 지불될
수 있는 충분한 여력이 있을 때 비로소 안도할 수 있게 된다. 반면에 가난한 사람은 그러한 위협을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 왜냐하면 아무도 그를 납치해서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부자는 가난한 사람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위험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돈을 소비하게 된다. 가난한 자는 다른 사람을 실족할 말도 대개는 하지 않는다, 그래서 책망이나
비난의 말을 들을 일이 거의 없다.
3. 가난한 자는 자기 이웃에게도 미움을 받으나 부유한 자는 친구가 많으니라(14:20); 19:4
. 돈은
또한 사람이 소외당하지 않게 해주기도 한다. 부자는 항상 친구가 많다. 비록 그들의 동기가 불순하다
하더라도 역시 친구가 많은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가난한 자들은 자신의 이웃이나
친구들조차도 자신과 어울리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것은 14장 21절에 나오는 대로
잘못된 행동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렇게 한다. 가난은 그 자체로 힘든 것이다. 그렇지만 그로
인해 친구를 잃어버릴 때 더욱 고통스러운 것이 된다.
4. 19:6-7. 이 구절은 바로 위의 두 구절에서 나온 원리를 더욱 확장하고 있다. 6절은 부자들의 강력한
영향력에 대해서 설명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호의를 구할 것이다.친구가 되기를 원한다. 반면에
가난한 자는 친구를 얻을 수 있는 아무런 방법도 없다. 그의 끊임없는 물질적인 결핍은 그의 가족들을
부끄럽게 하고 화나게 만든다. 사람들은 그가 자꾸만 자신을 도와달라고 강제적으로 요구하기 때문에
점차 그를 피하게 된다.
5. 3:9-10. 부요함은 또한 주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이 구절은 명령을 주고
또 순종에 대한 보상을 약속한다. 신실한 사람은 소출의 맨 처음 것을 주님께 헌물로 드림으로써
그의 재물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 사용한다. 이 내용은 모세의 율법에도 나타나 있다(신26:1-3,
9-11). 자기 소출의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믿음과 경배의 표현이었다. 하나님은
그러한 자에게 풍성한 수확으로 복을 내리시고, 그의 창고가 가득히 차며, 그의 포도즙 틀에 새로운(신
선한) 포도가 넘치도록 축복해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이와 비슷한 내용으로 빌립보서 4장 19절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는 일에 충성스러운 자들에게 그 모든 필요를 공급해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B. 돈이 해줄 수 없는 일(11:4, 28; 15:16; 17:16; 22:2; 28:6, 11)
재물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일은 쉬운 일이다. 그리고 그런 일은 오직 사람을 미혹에 빠뜨릴 뿐이다.
돈은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를 호전시켜 주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구원해
주지도 않는다. 그것은 인간의 인격이나 지혜를 강화시켜 주지도 못한다. 그리고 문제로 가득 찬
인생을 변화시켜 주지도 않는다.
1. 재물은 진노의 날에 유익을 끼치지 못하나 의는 죽음에서 구출하느니라(11:4)
. 돈으로는 결코 죽음을
면할 수 없다. 오직 의로움만이 그것을 얻을 수 있다(10:2 하). 사실 장수할 수 있는 방법은 돈을
쌓음으로써가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 속에서 이루어진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진노가 터져
나오는 때 즉 그분이 삶과 죽음을 판단하시는 날에는 재물이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누가복음 12장, 16장 부자, 마19:24, 막10:25, 눅18:25 말씀을 기억하라.
2. 자기 재물을 신뢰하는 자는 넘어질 것이나 의로운 자들은 나뭇가지처럼 번성하리라(11:28)
. 돈을
갖는 것은 합법적인 일이다. 그러나 돈을 신뢰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잠언 기자는 이 점을 설명하기
위해서 나무의 예를 사용하고 있다. 자신의 부요함을 의지하는 사람은 한쪽으로 쓰러져 말라 죽어가는
나무 같아서 패망할 수밖에 없다. 성경은 반복해서 가르치기를, 돈은 쉽게 사라져버릴 수 있다고
한다(시 62:10; 잠 23:5; 27:24;약 1:11). 그렇지만 의로운 사람은 푸른 잎사귀와 같다. 이것은 - 113
시편 1편 3-4절, 92편 1215절, 예레미야 17장 7-8절에서 반복되고 있는 개념이다.
3. 적게 가지고도 주를 두려워하는 것이 많은 재산을 가지고 그것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15:16). 이것은 잠언에서 많이 다루고 있는 형식 가운데 하나로서 두 가지 경우를 비교하면서 어느
것이 더 나은가를 말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가 가난보다 더 좋다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해보자. 부요하지만 그 속에 많은 문제와 혼란과 괴로움이 있다면 어떨까?
가난하지만 주님을 경외하면서 살아간다면 또 어떨까? 여기에 대한 선택은 분명하다.
4. 어리석은 자는 지혜에 마음을 두지 아니하는데 그가 어찌하여 자기 손에 값을 가지고 지혜를 얻으려
하는가?(17:16). 재물이 사람을 지혜롭게 만들지는 못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그 값이 얼마가 되더라
도 결코 지혜를 사지 못한다. 그는 지혜를 가지려는 마음도 없다( '관심도 없다'). 그는 그저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을 살 수 있더라도 지혜롭게 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5.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가 함께 만나지만 주께서는 그들 모두를 만드신 분이시니라(22:2)
. 재물이
있다고 해서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특별한 지위를 차지하는 것은 아니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동일하게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일 뿐이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손으로 만들어진 창조물일 뿐이다. 그분은 우리 모두를 만드셨다. 그래서 특별히 자랑하거나
절망할 필요가 없다. 우리 각 사람은 우리가 창조주께 어떠한 존재인지를 기억할 때 겸손해야만 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 모든 창조물들을 돌아보시기 때문에 소망을 가질 수 있다.
6. 자기의 올바름 속에서 걷는 가난한 자는, 부유하지만 자기 길들이 비뚤어진 자보다 나으니라(28:6),
재물은 사악한 도덕성을 정당화시켜주지 않는다. 여기서 잠언 기자는 의롭지만 가난한 사람을 악하지만
부자인 사람과 비교하고 있다. 한 사람은 빈 지갑을 가지고 있지만 매일의 삶을 건실하게 살고 있으며,
흠 없는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2:7,21; 11:5; 28:10, 18 참고). 다른 사람은 부자이지만 그의
삶은 패역하고 타락하였다. 그래서 그는 선을 악이라고 하고, 악을 선이라고 주장한다. 이 구절은
거룩함이 세상의 부귀로 항상 보상받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더 좋은 길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7. 부자는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나 명철이 있는 가난한 자는 그를 살펴 아느니라(28:11)
. 어떤 부요한
사람들은 자신의 재물이 지성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자신들이 더 뛰어나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더 지혜로운 것 같고, 자신들이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난하지만
통찰과 분별력이 있는 사람만이 그 허상을 깨닫고 진정한 인품이 무엇인지를 분별할 수 있다. 시편
139편 23절, 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고 나를 시험하사 내 생각들을 아시옵소서.
시인은 하나님이 자신의 마음을 살피셔서 제3자적인 시각으로 엄밀하게 살펴보고, 자신의 마음을
깨우쳐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C. 돈에 대한 태도(18:23; 22:7; 23:4-5; 27:7; 28:8, 20-22)
돈이 자동적으로 사람을 행복하게 하거나 기분 좋게 만들지는 않는다. 사실 재물은 많은 경우 자만심이나
인색함 그리고 불만족 등 자기 파괴적인 태도를 갖게 만든다.
1. 가난한 자는 간청하는 말을 사용하나 부자는 거칠게 대답하느니라(18:23)
. 가난한 사람은 공정한
대우를 요구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그래서 그는 종종 그런 대우를 받지 못한다. 그가 자비를
구할 때 부자는 그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할 의무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비 대신에 더 거칠게
대답한다. 그 간청은 빌린 돈의 상환 기일을 연장해 달라는 것이거나 어떤 종류의 법적 소송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정당하지 않은 이 세상 사람들의 악한 태도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2. 부유한 자는 가난한 자들을 다스리고 빌리는 자는 빌려주는 자의 종이 되느니라(22:7)
. 부요한 사람은
때로 정부 관리의 권력에 상응하는 능력을 갖기도 한다. 그래서 그들은 가난한 자들을 다스릴 수
있고, 가난한 자들은 자신을 지배하는 사람들의 권력에 항의하지도 못한다. 가난은 종종 빚으로 이어지
고, 그것은 채권자에게 더 많은 권력을 갖게 한다. 잠언 기자는 돈을 빌리게 되면, 나중에는 채권자의
노예나 종이 되는 것으로 이어진다고 말하고 있다. 심리적인 면에서도 그렇지만 고대 사회에서는
실제로도 그런 일이 이루어졌다(왕하 4:1).
3. 배부른 혼은 벌집도 싫어하나 굶주린 혼에게는 쓴 것도 모두 다니라(27:7)
. 사람들은 종종 부자들은 - 114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인생을 즐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부귀는 너무 많이 갖게 되었을 때 그 매력을
잃어버린다. 꿀은 고대 이스라엘에서 가장 단 음식이었지만 그 맛에 익숙해지면 곧 그것이 지겨워진다.
그러나 주린 자에게는 쓴 음식이라도 달게 느껴진다. 배고픔은 우리가 얻는 모든 것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한다.
4. 28:20-22
.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복을 받는 길은 진실하고 신뢰할 만한 사람이 되어서 자신의
책임에 충성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악하고, 부정직한 방법으로 빨리 부자가
되는 것을 더 선호한다. 그러한 비윤리적 편법들이 하나님께 혹은 사회법상으로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 것은 아니다. 22절에서 악한 눈을 가진 사람, 잠 23:6; 마 20:15)은 재물을 얻는 데만 혈안이
되어 그 노력이 자신에게 전혀 유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깨닫지 못한다. 만약 당신이 자신의 정직을
팔아버린다면 가난하게 될 뿐이며, 당신 내면의 가난은 물질적인 풍요가 이어진다고 하더라도 계속해서
당신을 괴롭힐 것이다.
복습
인생을 살아가는 데는 돈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돈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다.
우리는 대개 많은 수입을 얻게 되는 일에 기뻐하고, 우리가 그렇게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즐거워한다. 그러나 그 물질의 한계와 위험성을 기억해야만 한다. 돈은 우리의 영적인 필요를
채워줄 수 없고, 우리가 그것에 너무 몰두하게 되면 우리의 성품은 변질되어버린다.
결론: 돈은 당신을 만족시킬 수 없다
「로빈슨 크루소(Robinson Crusoe)」는 우리가 잘 아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모험 이야기다(1719년 발표
됨).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은 그것이 원래 기독교인의 삶에 대한 비유로 쓰였다는
사실이다. 그 이야기는 의도적이면서도 강력하게 그리스도인이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저자 다니엘
디포(Daniel Defoe)의 이해를 보여주고 있다. 크루소는 외딴 섬에 고립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그 섬에서 쉽게 탈출할 수 없으며, 어쩌면 영원히 못 나갈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 섬에는 아무도 없었고, 섬을 빠져나갈 방법도 없으며, 지나가는 배도 없었다.
그 절박하고 소망 없는 상황을 순순히 받아들인 크루소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가 처한 상황 속에서 밝은 면을 더 많이 보고, 어두운 면은 덜 보는 방법,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보다는 내가 즐거워하는 것을 더 많이 생각하는 법을 배웠다. 이것은 내게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은밀한 위로를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나는 여기서 불평 많은 사람들을 이해하는 법을 배웠다.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것을 편안하게 즐길 수 없는 자들인데, 그 이유는 하나님이 주시지 않은
것만을 바라보며 부러워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에 대한 모든 불평은 우리가 가진 것에 대한
감사가 부족해서 생기는 것들이었다.”
빌4:11-13
이것은 다른 많은 사람들이 했던 말을 효과적이면서도 구체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딤전6:3-11
만족은 하나의 좋은 덕목이고, 반대로 '더 많이 얻고자 하는 채워지지 않는 욕심은 하나의 악덕이다.
솔로몬은 우리에게 경고하기를, 우리의 소망을 물질에 두지 말고, 하나님께 두며, 그분이 말씀을
통해 나타내시는 진리 가운데 두라고 한다.
● 당신을 승리하게 만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 살 것을 결심하라.
● 하나님이 당신에게 주시지 않은 것에 대한 불평이 아니라 하나님이 당신에게 주신 것에 대한 감사를
깨달아라
교회 사역의 필요와 다른 사람의 필요를 따라 당신의 돈에 대해서 관대해져라, ‘주는 것' 은 이기심을
버릴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다.
삶의 적용
존 록펠러(John D. Rockefeller)는 당대의 가장 인기 있는 사람이었고, 가장 부유했던 사람 가운데 - 115
한 사람이다. 그가 죽은 뒤에 어떤 사람이 그의 재산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그는 얼마나 많은 재산을
남겼습니까?" 그러자 지혜로운 회계사가 말했다. “그는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남겼습니다. 그는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했습니다.”
존 록펠러는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수백 만 불을 벌었지만 그 돈은 내게서 행복을앗아가버렸다."
앤드류 카네기(Andrew Carnegie)는 "백만장자들은 거의 웃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헨리 포드
(Henry Ford)는 “나는 기계 수리공 시절에 더 행복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예수님의 놀라운 가르침은 우리가 미리미리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가진 것을 나눌 수 있다고 말씀하신
다.
기억하라. 당신의 기본적인 필요가 충족되었을 때 돈은 당신을 더 이상 행복하게 하지 않는다.
당신은 복권에 당첨되기 전보다 당첨되고 난 뒤에 더욱 비참하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어봤을 것이다.
그들이 꿈꾸었던 재물이 그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한 것이다.
만약 우리가 가지려고만 하지 않고 주고자 한다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에 투자한다면, 그래서
하늘에 우리 보호를 쌓아둔다면 결코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 쌓아두는 보화는
그것이 얼마든 나중에는 다 두고 떠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 세상에서 맡겨두시는 돈은
영원한 세계를 위한 투자 자본이다. 매일의 시간은 그분의 영원한 나라에서 더 많은 부분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분명, 이것이 솔로몬이 잠언서를 통해서 우리가 얻기 원하는 돈에 대한 올바른 관점이다.
https://youtu.be/3VE6gK7o9S8?list=PL4P6SBDceLgEZLssg4BzG1AiTvdLOoZ67
생명을 택하고 사망을 피하는 지혜_잠언 강해 31 : 정동수 목사, 사랑침례교회, 설교, 강해 (2022. 10. 21) - 끝 -
잠언 31: 생명을 택하고 사망을 피하는 지혜
잠언 30번 강해, 잠언 31장, 오늘 31번째, 잠언을 마치고 전도서를 5-6회 강해하려고 한다.
솔로몬의 잠언은 지혜와 명철의 책, 지혜란 인생을 살아가는 기술, 명철은 분별력
특별히 오늘은 < > 4장 전체 강해, 3가지 주제
A. 다음 세대에 지혜를 전해줌(4:1-9), B. 올바른 길을 선택함 (4:10-19), C. 마음을 지킴
(4:20-27), 메인 아이디어로 푸는 잠언
솔로몬
잠1:1, 솔로몬의 잠언, 나도 많은 것을 배웠다
.
솔로몬: 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웠던 사람
당신은 이제까지 들은 지혜에 관한 이야기 중에서 가장 놀라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왕상3장, 두 여자가 한 아기를 데리고 왕께 나아와 둘 다 자신이 그 아이의 진짜 어머니라고
주장하였다. 두 여자 다 상대편이 밤중에 자다가 모르고 자기 아기를 등으로 눌렀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기 아기가 질식해 죽은 것을 발견한 뒤에 다른 여자의 아기를 훔쳐다가 그 아기가 자기 아기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은 왕은 그 아기를 반으로 잘라서 두 여자에게 각각 반씩 나누어주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첫 번째 여자가 말했다. "저는 좋습니다! 만약 제가 가질 수 없다면 다른 사람도 갖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여자는 공포에 질려 울음을 터트리면서 왕에게 그 아기를 상대편 여자에게 주라고
애원하였다.
지혜로운 왕은 이렇게 말했다. “저 아기를 두 번째 여자에게 주어라. 그녀가 진짜 어머니다."
왕이 내린 판결에 대해서 듣고 사람들은 모두 다 놀랐다!(왕상3:28) 이런 종류의 지혜가 갖는 의미는
사실 굉장한 것이었다. 마치 왕이 그 여자들의 영혼을 꿰뚫어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 사람의
눈을 속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순간은 진정 정직과 고결함이 나타나는 순간이었다!
이러한 지혜로운 판단을 후대에 전해준 왕이 바로 솔로몬이었다. 그는 이 세상에 살았던 사람 중에서
가장 지혜로웠던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지혜는 하나님께 받은 선물이었다. 그는 왕위에 올랐을
때 하나님께 부귀나 원수들에 대한 승리를 구하지 않고 오직 지혜를 구했다. 하나님은 그 간구를
기쁘게 여기셨고, 그리스도를 제외한 다른 어떤 인간보다 더 뛰어난 수준의 지혜를 그에게 허락하셨다.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더 지혜로웠던 사람으로 알려진 솔로몬이 바로 잠언서를 기록한 저자이다. 그는
자신이 무엇에 대해 말하고 있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가 말할 때는 바로 귀 기울여 들어야 하는 때이다.
이제 그는 오늘 다음 세대를 위해 귀중한 잠언을 준다.
지혜의 긴박성
젊은 사람들이, 어른들은 시대에 뒤떨어지고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역사상 처음으로
자기들이 모든 것을 정확히 보게 되었다고 판단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모든
세대가 자신들의 전 세대는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게 마련이다. 마크 트웨인(Mark Twain)은 자신이
열여덟 살 때까지는 아버지가 너무나 무식해서 한 번도 아버지에게 순종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스물 한 살이 되었을 때는 겨우 3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아버지가 놀라운 정도로 지혜로워졌다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했다. 물론 달라진 것은 아버지가 아니라 그 자신이었다.
젊은 사람들은 절박한 상황에서 지혜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막상 지혜 앞에서는 순종하기를 거부해
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는 자녀들에게 지혜를 전수하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그 당시에는
그러한 부모의 노력을 자녀들이 고마워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에는 부모의 조언과
충고를 귀중하게 여길 것이다. 솔로몬은 자기 아이들이 지혜에 귀를 기울이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하고 있다. 아마 그 절박함은 자기 가족들에게서 지혜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형 암논은 자기의 누이 동생 다말을 겁탈하였고, 또 다른 형인 압살롬은 그 겁탈한 형 암논을 살해하였
다. 그리고 살인자인 그 형은 아버지를 폐위시키기 위해 죽이려고까지 하였다. 솔로몬은 이런 상황 - 117
가운데서 지혜의 필요성을 절감하였고, 지혜가 없으므로 그러한 비극이 일어났음을 알았다.
아버지가 줄 수 있는 선물 중에서 지혜에 대한 갈망을 심어주는 것보다 더 큰 것은 없다. 그로 인해
자녀들이 삶 가운데서 올바른 길에 설 수 있게 된다.
A. 다음 세대에 지혜를 전해줌(4:1-9)
솔로몬은 지혜 얻는 것을 삶의 목적으로 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아버지 다윗으로부터 배웠다.
4:1-2. 이 장은 아버지가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고 자기 아이들에게 권면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러한 주위 환기가 잠언의 처음 여덟 장에서 자주 나타나지만 특별히 이 구절은 아이들에 대한 아버지의
절실한 마음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또한 여기서 아이들이라는 복수형을 사용한 것은 솔로몬이
왕위를 이을 아들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에게도 지혜에 대한 교훈이 전해지기를 원했음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10절에서 그는 다시 단수형을 사용하고 있다. 이 아버지는 아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선한
가르침이라는 선물을 주고자 하였고, 그 아들은 아버지의 가르침을 저버리지 않도록 주의해야만 했다.
여기에서 가르침이라는 것은 2절의 내 법이다. 히브리어로 '토라(torah)' 인데, 대개 '율법' 으로
번역되며 때로는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신 율법을 지칭하는 말이기도 했다(28:9-29:18). 그러나
나의 토라' 와 같은 구절에서는 '가르침' 이라는 뜻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선한 교리(2)
4:3. 솔로몬은 자신이 어린 아이였을 때 받았던 사랑을 그리고 있다. 그는 다윗의 아들로서 왕의 궁정에서
살았으며 끊임없이 아버지와 유대 관계를 맺으며 자랐다. 어머니 밧세바는 이후에 많은 자녀들을
두었지만(대상 3:5) 처음 몇 년 동안은 솔로몬이 유일한 자식이었다. 분명히 그의 부모는 그를 교육시키
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다.
4:4. 이 구절에서부터 솔로몬은 계속해서 아버지 다윗의 말을 인용하고 있는데, 이것이 9절까지 진행되고
있다. 솔로몬은 어린 시절 자신의 경험을 들어 왜 자신이 이러한 지혜의 유산을 자기 아들에게 물려주려
고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다음 구절은 여러 가지 명령들로 가득 차 있다. 우선 아들은 아버지의
말을 온 마음으로 붙들어야 한다(간직해야 한다). 그 다음으로 이러한 명령들을 지키기 위한 삶을
살아야 한다.
4:5. 아들은 자신의 목표를 정해야 한다. 그것은 지혜를 얻고 그 지혜를 이해하는 것(명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혜를 얻고자 한 다윗의 마음이 나중에 솔로몬이 지혜를 구하게 된 동기가 되지 않았는가
우리는 추측해 볼 수 있다(왕상 3:5-14). 아들은 또한 지혜를 얻고자 하는 노력을 계속 유지해야만
한다. 다시 말해, 그는 삶의 원리를 잊어버리거나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4:6, 6-9절에서는 지혜를 자애롭고 친밀한 여성의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이는 잠언 초반부(1-9장)의
다른 부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방식이다. 주변의 여성들이 아닌 지혜라는 여성에게 열정을 쏟는다
면 얼마나 유익한 일이겠는가! 6절은 지혜를 사랑하는 자가 지혜 가운데서 보호되리라는 약속을 보여주
고 있다.
4:7. 지혜는 인생에서 으뜸가는 것(최우선)이다. principal thing, 지혜를 얻는 첫 번째 단계는 그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기로 결심하는 것이다. 지혜와 명철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재산이므로
인생에서 그것을 얻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4:8, 지혜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그럴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높이라는 것은 경매에서 구매자가
자신의 매매 호가를 계속 높이는 것처럼 가치를 점점 더 높인다는 뜻이다. 당신이 지혜를 높일 때
지혜가 사람들 가운데서 당신의 위치를 보장하면서 당신을 계속 높일 것이다. 애정을 가지고 지혜를
품으라. 그러면 지혜가 당신을 영화롭게 할 것이고, 다른 사람들이 존경심을 가지고 당신을 대할
것이다.
4:9. 지혜라는 여성과 사랑에 빠지는 것은 분명 당신에게 유익할 것이다. 8절에서 나온 것처럼 그녀는
당신의 머리에 왕관을 씌워주면서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다. 당신은 은혜의 표상인 아름다운
관을 쓰게 될 것이다. 또한 그녀는 당신에게 영광의 왕관을 줄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인생에서 구체적으
로 설명되지 않은 축복이므로 당신은 삶 속에서 이러한 축복을 얻을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정신을
바짝 차려야만 한다. 우리는 이러한 일들이 이 세상에서 대통령 궁에 초대되는 것과 같은 영예나 - 118
그런 류의 영광으로 나타날지 모른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구절은 일상생활의 삶 속에서
좀 더 사소해 보이는 것들 가운데서도 실현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B. 올바른 길을 선택함 (4:10-19)
우리는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과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우리는 반드시
생명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
모세의 유언: 신30:19-20
4:10-11. 아버지는 주의를 기울여야 할 자기의 당부를 새롭게 하면서 새로운 부분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만약 아들이 자기가 들은 바를 받아들이고 적절하게 사용한다면 그는 인생의 많은 시간들을
즐기면서 살게 될 것이다. 아버지의 이러한 충고를 받아들이는 아들은 재난이나 신속한 멸망으로
가는 길을 피하게 될 것이다. 11절에서는 인생을 일종의 여행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그곳에는 올바른
길과 행로를 선택해야 하는 수많은 순간이 존재한다. 아버지는 어떻게 지혜에 따라 분명하게 구별되는
길을 선택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면서 그 아들이 바른 행로를 따르도록 인도한다. 이러한 길은 도덕적으
로나 실제적으로 모두 올바르다고 판단되는 길이다. 이제 그 아들은 자신이 나아갈 길을 선택해야만
한다. 10-13절에서는 생명의 길이 어떤 것인지를 설명하고 있다.
4:12. 당신이 올바른 길을 걷고 있을 때는 그 길을 걷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 죄에
걸려 넘어지는 일이 없을 것이다. 언제든지 새로운 유혹이 생길 수는 있다. 그렇지만 올바른 길로
열심히 달린다면 장애물은 사라지게 될 것이고, 잘못된 길로 가지 않게 될 것이다.
4:13. 지혜의 촉구에 대한 올바른 반응은 매우 분명하다. 그것은 당신이 받은 훈계를 굳게 지키는 것이다.
그것을 놓치지 말고 굳게 지키라! 이 명령은 사실 '그녀를 굳게 지키라'는 인격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이는 지혜가 흠모할 만한 여성으로 그려지고 있음을 다시 상기시킨다. 4절과 10절의 강조를 다시금
상기시키면서 솔로몬이 그 아들에게 되새기게 하는 것은 이러한 교훈이 생명 그 자체를 붙드는 열쇠가
된다는 점이다.
4:14-15, 14-17절에서는 지금까지의 논의가 생명의 길에서 사망의 길로 바뀌고 있다. 솔로몬은 악한
자의 길에 대해서 경고하면서 실제적인 주제 그 이상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위험의 근원은 무지함이
아니라 악이다. 이 두 구절은 주로 여섯 가지의 중요한 명령으로 이루어져 있다. 악의 길로 들어서는
것은 너무나 위험하기 때문에 아버지가 여러 가지 경고를 큰 소리로 외치고 있는 것이다. 그 뒤를
따라 들어가지 말며 동조하지도 말라. 그 주변으로 걸어가지도 말라. 결코 닿지 않는 곳에 머물러
있으라. 그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 길을 향하여 나아가지 말고 그 길에서 벗어나라.
악한 길로 나가는 것은 생각도 하지 말고 원래 가고 있는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라.
4:16-17. 그 길이 왜 그렇게 위험한가? 그 길을 따르는 자들은 악인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도덕적으로
죄를 짓는 것이 의무처럼 되어 있는 완전히 뒤바뀐 세계에서 살고 있다. 그들은 스스로 악을 행하고
다른 사람들을 망가뜨리지 않으면 편안히 잠을 잘 수가 없다. 그들의 쉼 없는 악은 또 다른 천성이다.
그것은 마치 매일 먹는 떡과 술 같은 것이다.
4:18-19. 아버지는 두 가지 길을 비교하여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하나는 빛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어두움의 길이다. 의인들의 길은 마치 새벽녘의 서광과 같아서 처음에는 어두움 가운데 시작되지만
점차 밝아져 태양이 떠오르면 결국 한낮의 넓은 길로 행하게 된다. 그러나 악인들의 길은 끝없는
어두움 속에서 점차 꾸불꾸불해져서 자신들을 걸려 넘어뜨리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깨닫지 못한다.
빛 가운데서 걷는 것에 관한 비유는 성경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다(요일 1:7),
C. 마음을 지킴(4:20-27)
만약 마음이 정결하다면 몸의 나머지 부분들도 동일한 상태가 될 것이다.
4:20-22. 아버지는 아들에게 주는 세 번째 교훈에서 자기가 하는 중요한 말들에 주의를 기울일 것을
다시금 당부하고 있다. 다음에 이어지는 몇 구절의 내용은 너무나 중대해서 당신 마음속에 깊이 간직해
두어야 한다. 그것을 당신의 눈에서 떠나지 않게 하라(21절). 당신의 마음 한가운데서 그것을 지키라.
솔로몬은 4절과 10절 그리고 13절에서 지혜를 통한 생명을 약속하였고 여기에서 다시 그 주제로 - 119
돌아온다. 만약 당신이 생명을 원한다면 지혜에 모든 주의를 집중하라. 그렇게 하면 당신은 삶을
즐기게 될 뿐만 아니라 육체의 건강을 누리게 될 것이다. 잠언의 다른 약속들처럼 이것 역시 모든
질병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많은 질병이 사실은 어리석은
행으로부터 생겨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4:23. 여기서 매우 중요한 개념이 나타난다. 그것은 말 그대로 모든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마음을
지키라는 것이다. 영어에서 마음(하트)' 은 대개 온몸에 피를 공급하는 육체적인 기관이나 감정의
처소를 의미한다. 그러나 구약 히브리어에서의 '마음' 은 더 폭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마음은 정서
(mood, 삿 16:15)나 슬픔(grief, 느 2:2), 두려움(fear, 창 42:28), 분노(anger, 잠 19:3),기
쁨(joy, 삼상 2:1) 그리고 평화(peace, 창 343)와 같은 감정과 연결되어 있다. 또한 마음은 의지의
근원(잠 11:20; 14:14)이자 양심의 본질(사 59:13)이기도 하다. 더욱이 그것은 지성을 의미하기도
한다(잠 3:3; 6:32; 7:7). 마음에 대한 히브리적 개념은 사실 한 '인간'의 모든 내면세계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잠언에는 마음이라는 단어만 50번 정도 나타나고, 성경 전체에서는 마음에 대해 설명하는
더 많은 어휘들을 찾아볼 수 있다.
마음은 삶의 모든 것(산물들)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마음은 말과 행동의 근원이
자(눅6:45), 행동을 다스리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이 구절은 요한복음 7장 38절에서 한 인간의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생명 샘물의 근원에 대한 말씀의 배경이 되기도 한다. 솔로몬은 지금까지 생명에
대해서 가르쳐 왔는데, 그에 따르면 마음은 인간의 모든 부분으로 생명이 흘러넘쳐 들어가게 하는
근원이다. 심장의 피를 생각하라.
4:24. 일단 마음이 지켜지면 우리의 관심을 외적인 행동으로 돌릴 수 있다. 이어지는 구절들은 특히
입에서부터 시작되는 우리 몸의 각 부분들을 언급한다. 우리는 거짓으로 왜곡되거나 혼란스러움으로
점철된 말을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만 한다.
4:25 길을 걷는 비유로 다시 돌아와 아버지는 아들에게 그의 시선이 똑바로 앞을 향하기를 독려한다.
당신의 시선이 유혹으로 인해 잘못된 방향으로 향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4:26-27. 만약 시선이 흔들린다면 발은 곧 길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마지막 구절은 악인의 길을
걷는 것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다. 평탄케 하다라는 말은 때로 '주의하다, 심사숙고하다' 의 뜻을 갖기도
하지만 자신의 길을 주의 깊게 선택하는 장면에서도 쓰일 수 있다. 우리는 주의 깊게 길을 선택할
때 가는 길이 안전한지를 확신할 수 있다.그러나 그 길을 주의 깊게 생각하지 않아서 좌로나 우로
치우친다면 우리는 곧 심각한 어려움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는 아무런 유익도 없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보수도 진보도 되지 말라. 어리석은 자들
여기는 하나님의 법에서 떠나지 말라는 뜻이다.
결론: 당신도 예외가 아니다!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다른 사람들의 실수를 통해 배우라. 당신에겐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 이것은 바로 솔로몬이 이 장에서 말하고자 하는요점이다. “내 말에 귀를 기울여라,
아들아. 나의 교훈을 받으라. 나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고, 네가 내 말을 따른다면 많은 고난을
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물론 문제는 젊은 사람들이 이 말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스스로를 더 잘 안다고
생각한다. 한 소녀가 아기 너구리를 발견하고서 데려다가 집에서 애완동물로 키웠다. 그녀는 수의사로
부터 그 너구리가 자라면 통제가 되지 않을 것이고, 언젠가는 난폭해질 것이라는 경고를 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 너구리는 절대 난폭해지지 않을 것이라고 응수하였다. 다른 너구리들은 다 그럴지라
도 자기 너구리는 그렇지 않으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그 너구리가 갑자기 난폭해지더
니 아무 이유 없이 그녀를 공격하였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에 성형 수술이 필요할 만큼의 깊은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우리는 어리석게도 우리보다 더 많은 경험과 지식과 지혜를 가지고 있는 자들의 경고를
무시한다. 우리가 역사를 무시한다면 그 역사를 반복하는 결과를 피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르치는 위치에 있다면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 경고하며 그들이 지혜의 삶을 살도록 - 120
촉구해야 한다. 만약 우리가 배우는 위치에 있다면 반드시 그러한 경고를 들어야 한다. 그런 일은
결코 우리에게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어리석음은 항상 그 주변을 서성이는 자들로 하여금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한다.
진리 알기
• 삶은 원인과 결과의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어떤 행동은 반드시 그 결과를 낳게 되어 있다.
• 지혜는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얻을 수 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스스로 경험해볼 필요가
없다.
• 지혜는 자동적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노력하고 간절히 얻고자 하는 자에게 주어진다.
솔로몬의 요약: 잠1:7, 주를 두려워하는 것이 지식의 시작이나 어리석은 자들은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
라.
갈림길에서는 하나를 선택하라
맞는 말이다. 하지만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하는가?
솔로몬은 이 장에서 두 가지 갈림길을 제시한다. 하나는 지혜와 조화로운 삶을 위한 길이고, 다른 하나는
어리석음과 멸망으로 가는 길이다. 그는 자기 아들에게 올바른 길로 가라고 간청한다. 우리는 인생
가운데 항상 선택의 상황에 직면하게 되고, 또 끊임없이 이러한 선택을 강요받는다. 여기서 솔로몬은
합리적인 올바른 선택이 무엇인가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다. 지혜를 선택할 때 우리는 영광과 축복과
성공을 얻게 될 것이다.
만약 당신이 전 세계를 항해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나침반의 지침을 따라야 한다. 그 나침반과 같은 것이
바로 하나님의 지혜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인 지혜에 철저히 순종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며 전 세계를 자유롭게 항해할 수 있다. 그러나 지혜의 법을 무시하면 어리석음이라는
암초에 부딪쳐 우리 자신과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불필요한 고통과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이것은 칫솔질을 꾸준히 하면 충치가 생기지 않지만 칫솔질을 꾸준히 하지 않으면 충치가 생기는 것과
같은 원리다. 하지만 칫솔질을 전혀 하지 않을 수는 없고 또 전혀 충치가 생기지 않을 수도 없다.
이러한 종류의 절대적인 인과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우리는 하나님의 법도를 무시할
수 없고,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을 수도 없다. 그러므로 지혜를 구하라. 지혜를 선택하라. 지혜의
길을 걸을 수 있는 사려 깊은 판단을 하라. 당신의 삶과 당신의 영향을 받는 주변 사람들의 삶이
바로 이것에 달려있다.
정동수 목사님 프로필
- 학 력 -
인하대학교 기계공학 학사(1982)
캐나다 뉴브런스윅 주립대 기계공학 석사(1984)
미국 매리랜드 주립대 기계공학 박사(1988)
미국 펜사콜라 신학대학원 석사(2001)
목사 안수(2001)
- 경 력 -
현, 인하대학교 기계공학과 교수(1992-현재)현, 사랑침례교회 담임목사
http://www.cbck.org/html/ 사랑침례교회
http://cafe.daum.net/Jesus-bible 예수그리스도안에서(카페)
http://www.keepbible.com/ 킵바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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