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1 수호지 - 수호지 71
- 양산박 군사, 드디어 관군이 되다
한달음에 양산박으로 돌아온 네 사람은 그간의 일을 송강 등 모든 두령들에게 하나도 남김 없이 다
들려 주었다.
이규가 심통이 나서 말했다.
"쳇, 연청만 호강 했군. 황제도 다 만나고 ...."
연청은 미안해서 일부러 못 들은 척했다.
한편 연청을 만난 황제는 이튿날 아침 조정 회의 때 양산박 토벌군의 대원수였던 국방대신 동관을 앞으로
나오라 했다.
"그대는 지난해 십만 대군을 이끌고 양산박 토벌을 나갔다가 더위 때문에 되돌아 왔다고 했는데,
내가 다시 듣자니 그대는 단 두 번의 싸움으로 모든 걸 잃고 대패를 했다는데, 무슨 까닭으로 거짓을
보고한 거요?"
동관은 고개를 푹 떨어뜨린 채 옆으로 물러났다.
황제는 다시 고 태위를 앞으로 나오라 했다.
"고 태위, 그대도 그렇다. 많은 군사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마저도 사로잡혀 산채로 끌려갔지만
오히려 대접을 받고 풀려난 주제에 병이 나서 되돌아 왔다고 핑게를 대다니."
고 태위 역시 얼굴을 푹 숙이고 말이 없다. 그러나 속으로는, 도대체 어느 놈이 고자질을 했을까 하고
별의별 생각을 다 하고 있었다.
천자는 여러 대신을 보고 말했다.
"그대들 중 양산박 송강 무리에게 사면 칙서를 전하러 갈 사람은 없는가?"
그 말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예법대신 숙 태위가 고개를 들었다.
"재주는 없으나 소신을 보내 주옵소서."
천자는 그제야 얼굴에 웃음을 띄었다.
"그러면 내가 손수 사면의 글을 쓰겠노라."
글을 다 쓰고 끝에 옥새로 날인한 천자는 어주 1백 8병을 가져오라 하여 숙 태위에게 내렸다.
숙 태위가 양산박을 향해 출발하자 염탐꾼이 바람같이 산채에 보고를 했다.
송강은 기뻐하며 즉시 충의당의 모든 두령에게 명을 내려 칙사를 맞이할 준비를 서둘도록 했다.
오용이 그 명을 받들어, 양산박에서 제주까지 스물네 개의 산봉우리를 만들어 세우고, 그 위를 비단과
꽃으로 장식하는 한편, 아래층에는 젓대, 북 등 악대가 앉을 자리를 마련했다.
한편 숙 태위는 칙서를 받들고 양산박으로 길을 떠났는데, 일행이 제주에 도착하니 장 태수가
성 밖으로 마중을 나왔다.
숙 태위가 장 태수에게 부탁했다.
"수고스럽겠지만 태수께서 산채에 가서 칙서를 받들 준비를 하라고 전해 주시겠습니까?"
"기꺼이 하겠습니다."
장 태수는 곧 몇 명의 부하를 데리고 양산박으로 향했다.
송강은 급히 산채에서 내려와 장 태수를 영접했다. 두 사람은 충의당으로 갔다.
장 태수가 말했다.
"축하합니다. 조정에서는 숙 태위를 사자로 삼아 사면 칙서를 내렸습니다.
천자의 뜻을 받들 준비를 하십시오."
"황공합니다. 저희들은 정말 다시 태어나는 기분입니다."
이리하여 송강은 군사 오용과 주무, 소양, 악화 네 사람을 딸려 장 태수와 함께 제주성으로 가서
숙 태위를 뵙도록 했다.
오용은 숙 태위 일행을 양산박으로 안내했다.
송강과 노준의는 숙 태위와 장 태수를 충의당 가장 윗자리에 앉히고, 왼쪽에는 송강, 오른쪽에는
노준의가 서고, 그 밖의 두령들은 네 줄로 서서 천자가 보낸 사자가 읽는 칙서에 귀를 기울였다.
'송강, 노준의 등이 본디부터 나라에 대해 충성심을 품고 있었음을 알고, 그들의 귀순을 받아 주고
나랏일에 귀중히 쓰기 위해 예법대신 숙원경을 시켜 그간의 모든 죄를 없애는 사면 칙서를 전달하노라'
칙서 낭독이 끝나자 송강 무리는 만세를 부르고, 다시 두번의 절로서 황제의 은혜에 감사를 표했다.
숙 태위는 어주의 봉을 뜯어 은잔에 한 잔을 따르면서 말했다.
"나는 어명을 받들고 어주를 여기까지 가지고 와서 여러 두령 일동에게 드리기로 되어 있지만, 혹시라도
예전과 같은 일이 있을까 해서 내가 먼저 여러분 앞에서 마시겠습니다."
숙 태위는 단숨에 쭉 한 잔을 들이켰다. 두령들은 감사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숙 태위는 자기가 마신 잔에 술을 부어 우선 송강에게 권했다. 송강은 잔을 받자 무릎을 꿇고 마셨다.
그 뒤로 노준의, 오용, 공손승 순으로 마셨고, 1백 8 명의 두령들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마셨다.
송강은 문참모장을 불러 숙 태위와 만나 보도록 했다. 성대한 잔치가 벌어지고, 술잔이 돌아가는 동안
줄곧 음악이 울려 퍼졌다. 잔치에 모두 크게 취해 밤이 늦자 서로 몸을 의지하며 각자 숙소로 돌아갔다.
다음날도 잔치가 벌어져 모두들 가슴을 털어놓고 평소에 품은 생각을 주고받으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사흘째 되는 날 숙 태위는 떠날 채비를 했다.
양산박 두령들은 북을 울리며 숙 태위를 전송하여, 호수를 건너 30 리 밖까지 바래다 주었다.
숙 태위가 송강의 손을 꼭 잡으며 마지막 당부의 말을 했다.
"군사를 데리고 동경에 올 때에는 미리 사람을 보내 주십시오. 제가 황제께 먼저 아뢰어 환영 사신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야 여러분의 체면이 서지 않겠습니까? "
산채에 돌아온 송강은 소양에게 명하여 앞으로 산채에서 열흘간 시장이 열리니 부근 주민들은 산채에
오라고 방문을 쓰게 했다.
오용은 그 방문을 주귀에게 주어 마을 여러 곳에 붙이도록 했다.
송강은 두령들의 가족을 당분간 산채에 두기로 하고 나중에 각자 형편에 따라 제 고향이나 살 곳으로
데려가도록 했다. 송강은 군사를 데리고 제주성에 도착하여 장 태수를 찾았다.
장 태수에게 작별을 고한 송강은 많은 군사를 이끌고 동경으로 향했다.
대종이 그들보다 한발 앞서 떠나 숙 태위에게 송강군이 곧 도착할 것이라고 일렀다.
숙 태위는 그런 기별을 받고 즉시 입궐하여 천자에게 아뢰었다.
천자는 크게 기뻐하며 근위대 대장을 사자로 삼아 성 밖으로 마중을 내보냈다.
송강의 군사는질서 정연하게 줄을 지어 행군해 들어왔다.
두령들은 모두 군관 차림이었으며, 병사들도 천자가 내린 군복을 입었다.
천자는 송강 이하 108 두령들의 늠름한 태도와 위엄에 몇 번이나 감탄하며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과연 듣던 대로 대단한 영웅 호걸들이로다."
천자를 뵙는 의식이 끝나자 황제는 궁으로 납시고, 송강군은 천자가 마련한 술과 음식을 들며 휴식을 취했다.
궁으로 돌아온 천자는 기분이 좋아 송강 등에게 벼슬을 주라고 칙명을 내렸다.
그러나 채 태사, 고 태위를 위시한 몇몇 대신들은 다음과 같이 상소를 올렸다.
"이번에 귀순한 군사들은 아직 공로가 없으므로 벼슬을 내릴 수 없습니다. 공훈을 세울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중에 상과 벼슬을 내림이 가한 주로 압니다. 지금 수만의 무리가 성 머리에 진을 치고 있는 것은 심히
좋지 않은 일입니다. 그들을 다섯 군데에 흩어져 주둔하게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로 생각됩니다."
그 소문이 송강 군 진영에 퍼지자 모든 두령들은 하나같이 볼멘 소리로 불평을 토했다.
송강으로서는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어제 사열 때만 해도 그렇게 기뻐하던 천자가 아니었던가.
생각 깊고 점잖은 노준의까지 화를 내며 사뭇 흥분해 있었다.
"관직을 주기는 커녕 우리들을 흩어 놓으려 하다니, 우리 형제가 헤어질 사이입니까? 나라에서 굳이
고집을 한다면 우리는 다시 양산박으로 돌아갑시다."
송강은 험악한 공기를 달래며 근위대 대장에게 부탁을 했다.
"아무쪼록 천자님께 아뢰어 우리들의 입장을 다시 보살피는 은혜가 있기 바랍니다."
근위대 대장이 송강의 말을 전하자 천자는 놀라 조정 대신들을 다시 불러모아 대책을 상의했다.
국방대신 동관이 제 의견을 말했다.
"놈들은 겉으로만 귀순하는 척했지 속으로는 아직도 조정에 대해 많은 감정을 품고 있습니다.
소신의 생각으로는 저 무리들을 성 안으로 꾀어들여 백여덟 놈을 한 놈 남김없이 죽여 없애고,
군사들은 해산시켜 버리는 것이 상책인가 합니다."
천자가 그 말을 듣고 어떻게 할 것인가 망설이고 있는데, 한 대신이 벌떡 일어나더니 얼굴을 붉히며
큰소리로 말했다.
"지금 국경에는 아직도 오랑캐들이 들끓어 봉화대에 봉홧불이 그칠 사이가 없는 이 판국에 동경 땅에서
한바탕 난리가 일어나게 할 참이오? 천자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간신 무리들은 이제 그만 입을 다물지어다!"
숙 태위는 계속해서 천자에게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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