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5월 이후
그해 5월에 나는 죽었어야 했다고
목숨을 던질 용기도 없고
세상에 대한 미련도 많았지만
구차하고 비굴하게 사느니
저 세상으로 가야 했었다고
한참 동안 아주 한참 동안 생각했다
남대문 앞까지 진출해서
보도블럭 몇 개 깨서 던지고
그날 밤 회군을 하고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보낸 며칠 뒤 해장국 먹으러 간 식당에서
받아든 신문 1면에 대문짝만한 글씨
계엄 확대 휴교령 천여 명 체포 수배
휴교령이 내려지면 지역마다 모여서
싸우겠노라던 말도 총칼 앞에 꼬리 내리고
잡히지 않겠다고 숨어 다니던 어느 날
받아든 문건 숨가쁜 글씨로 씌어진
'전두환의 광주시민 살육작전'
너무나 참혹했다 두려웠다 부끄러웠다
여기저기서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다
부끄러움을 새기고 두려움을 이겨내며
더이상 피하지 말자고 비겁하지 않겠다고
싸우다 끌려가고 분신하고 투신하고
아아 나도 살아남은 자가 해야 할 일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두려움 속에서도
그해 가을 나는 여전히 두렵고 부끄러웠지만
더이상 피하지 않겠다는 벗들과 함께
먼저 가신 이들의 아픔을 새겨 가면서
눈물을 흘리며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썼다
살인마 전두환을 민족의 이름으로 처단하자!
44년이 지난 오늘 또다시 쳐들어온 계엄령
그해 5월 이후 강도 건너고 산도 수없이 넘었다
수많은 이들의 피와 고통 속에 이른 오늘을
그 해 5월로 되돌리려는
사악한 미치광이의 적반하장
그러나 시민들은 그것을 온몸으로저지했다
내 삶이 헛되지만은 않았음을 가르쳐 주는
저 많은 불빛을 바라보며
더이상 두려워하지 않기 위해
더는 부끄러울 일이 없기 위해
쓴다 그해 5월에서 올해 12월까지 흘린 피로
살아남은 자의 온몸을 던져 쓴다
내란수괴 윤석열을 시민의 힘으로 처단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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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그해 오월 이후
벽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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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2.21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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