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가 되지 않으려고 피해다니다가 결국 “여러분, 나는 잡혔습니다. 주님께 잡혔습니다. 열심히 도망쳐 보았지만 결국 그분께 잡히고 말았습니다.”라고 고백하며 1984년 제주교구장으로 착좌했던 김창렬 주교. 작년 은퇴하여 한라산 산록 ‘삼뫼소 은총의 동산’에서 이제야말로 주님께 본격적으로 붙잡혀 은수생활을 하신다는 김주교님을 찾았다. 평소 자신을 준마가 아니라 당나귀, 그것도 깡마른 당나귀라면서 ‘나의 성소는 무위(無爲)’라고 고백하고 왜 ‘기도밖에 할줄 모르는 주교’가 되기를 자처했는지 가톨릭다이제스트는 독자들과 그 분의 영성을 나누고자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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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학 주교님은 공식 모임에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안 나오신다고 들었는데 왜 그러신지 궁금합니다. 김창렬 숨을 때는 숨어야 돼. 은퇴는 숨는 거고 물러나는 거야. 나설 때가 있으면 물러설 때가 있어. 나타날 때가 있으면 숨을 때가 있어야 된다. 그게 깨끗이 늙는 겁니다. 은퇴를 철저하게 산다는 것은 활동할 시기에 활동을 많이 한 거나 다를 바 없는 겁니다. 오죽하면 내가 아들처럼 여기던 그 임승빈 신부 죽었을 때 장례미사도 안 갔겠어. 난 그 대신 기도를 많이 하지. 주님은 기도를 좋아하신다는 걸 내가 알았어. 일은 다른 사람들이 더 잘 해. 될 수 있는 대로 그건 나가지 않는 게 좋다고 주님이 말씀하셔. “너는 여기서 가만히 기도하고 지내라.” 모을 때가 있으면 줄 때가 있고, 능동적일 때가 있으면 수동의 때가 있다. 수동의 때가 덜 중요하냐 하면 그렇지를 않아요. 예수님께서도 3년 동안 일하시고, 가르치시고 행하시고. 그러나 때가 되면 당하시는 것 같아요. 그 기간은 끌려가시고, 어디 세우면 서시고, 예수님께서 때리면 맞으시고, 침 뱉으면 맞고, 끌려가시고, 법정에 세우면 서시고, 조롱의 옷을 입히면 입으시고, 사형 언도를 받으시고, 당하셨어요. 거기에 1%도 당신이 행하신 게 없어요.
윤 학 은퇴한 동기 신부님들은 어떻게 지내시나요? 김창렬 요새 보니까 외로워들, 전부. 작년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많이 약해 졌어요. 뭐라 그럴까? 나이 들면 좀 섭섭한 생각이 들지. 어떤 때는 왕따라 그럴까요? 그런데 이게 대단히 좋은 거야. 이게 예수님 가신 길이지. 스승 사제님이 가신 길이 바로 그렇고, 우리 사제뿐 아닙니다. 사실 뭐 자녀를 가진 부모들도…
윤 학 그러면 주교님께서는 이 수동의 때를 어떻게 보내고 계신지요? 김창렬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 이 하루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루는 너무 큰 힘이에요. 내가 여기 지금 앉아 있는 이 자리, 이 시간과 장소, 이게 전부가 그냥 은총의 선물이야. 여기 오자마자 그렇게 마음이 편안하고 좋을 수가 없어.
윤 학 저희 같으면 은퇴 후 늘상 하던 일을 갑자기 뚝 끊고 자주 만나던 사람들도 안 만나고 하면 허탈감이나 소외감이 생길 것 같은데 어떻게 모든 것이 그렇게 편하고 은총의 선물로 느껴지실 수 있을까요? 김창렬 하느님의 사랑이야. 그동안 주님은 나를 살리셨어요. 신부 되어서 4년째 되는 때, 내가 암 선고를 받았어요. 코에 호스를 끼고 누워 있는데 우리 스승 최민순 신부님이 찾아오셨어. “심경이 어떠냐?” “잠이 안 와요. 죽는다니 참 억울합니다. 덕도 닦지 못하고 공도 세우지 못해 아쉽고, ‘동기생들은 앞으로 오래 살면서 일하겠구나!’ 싶어 부럽기도 하구요.” 그러자 담담하게 “신앙이 모자라서 그렇고…” 하시면서 “그러면 얼마나 살면 아쉬움 없이 죽을 수 있겠냐?” 물으시는 거야. “아, 그래도 한 50, 은경축은 지내고 죽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랬더니 글쎄 그게 그렇지 않다는 거야. 은경 아니, 금경까지 살아도 아쉬움이 없어지는 건 아니라고 하시면서 “주님께서 부르신 날이 죽기에 제일 좋은 날이다.”라고 말씀하셔. 그 말씀 듣고 난 다음에는 마음에 아주 평화가 와. 그냥 잠을 실컷 잘 자고, 그 다음날 아주 편안한 마음에 ‘난 죽어도 되겠다. 그렇지만 주님께서 선택하신 날이 뭐 제일 정확하니까.’ 라는 마음으로 수술실에 들어갔지. 마취가 깼는데… 오진이었다는 거야. 결국 오늘날까지 살려 두셨어. 그런데 과연 그 신부님 말씀이 맞아. 내가 50세일 때 넉넉히 ‘나는 됐다.’ 절대 그렇지 않아요. 지금도 난 그때보다 오히려 못하다 싶어.
윤 학 평소 주교님께서는 예수님을 형님이라고 말씀하시던데 저는 상상이 잘 안 갑니다. 김창렬 내가 철이 나고 배울 걸 다 배우고 다 섭렵했다 하더라도 하느님 앞에서는 어린애라는 생각을 해서야. 나는 그냥 발가벗은 어린애처럼 예수님하고 함께 지내는데 예수님은 아주 마음 넓으시고 나를 위해 모든 걸 다 하시는 형님으로 느껴져. ‘예수님은 나를 당신 동생으로 삼기 위해서 그 목적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 난 이렇게까지 생각돼요. 죽은 뒤에 나를 데리고 아버지께로 가셔서 “아버님, 이놈이 내 동생인데 아버님 아들로 좀 삼아주십시오.” 사실 아버지도 그것 때문에 아들을 보낸 거거든. 기다리고 계셨다가 “그래, 너 이놈아! 나 아빠다. 그래, 아빠. 넌 내 아들이야.” 성부와 나 부자관계, 또 예수님과 나 형제관계, 이렇게 한 가족이 되는 거야. 그게 성령 안에서 이루어져요. 항상 내 안에는 하느님의 가족이라는 생각이 있어. 이 세상에서는 그림자지만 죽은 다음에야 완전한 가족이 되지. 기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도 이러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야.
윤 학 주교님은 구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김창렬 어렸을 때부터 연옥에서 단련을 좀 받아야 천당에 갈 거라는 생각에 우리는 그냥 콱 배겼어. 그런데 소화데레사는 그게 아니야. 연옥 안 가고, 바로 주님을 뵌다는 거야. 연옥을 거쳐야 한다던 어떤 수녀가 돌아가셨는데 어느 날 소화데레사한테 나타났어요. “나를 위해서 기도해 다오. 나 지금 연옥에 있다”고, 그래서 기도를 해주셨죠. 이제 승천했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대. 아버지가 얼마나 좋은데…. 그분의 ‘한 영혼의 일기’를 읽으면 그냥 구구절절 ‘아, 이게 정말 그거구나!’ 이렇게 느껴져. 소화데레사는 너무 작아서 잘 못 올라가지. 다른 성인들은 용감하게 계단을 올라가는데 자기는 계단 올라갈 힘이 없어. 앉았다 일어나서 올라가고 쉬었다 일어나서 또 올라가는데 자기는 힘이 없어. 그런데 주님께서 엘리베이터를 내려 주시고 그걸 타고서 쭉 올라가. 그 성인성녀들 헉헉대는 걸 보면서 올라가. “예수님 당신 팔이 엘리베이터입니다.” 구원에 대해서 절망을 하면 안 돼. 주님은 그렇게 좋으신 분이야. 그분 아들처럼 굴어야 돼, 어린애처럼. 고민하지 말고 그분이 원하시는 것, 그때그때 성령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것 그게 바로 예수님의 길이야. 예수님 당신이 그 길을 가셔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거야. ‘난 구원받았다. 내가 잘 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이 원하셔서 그렇게 된 거다.’ 난 그런 믿음 가지고 사는 거지.
윤 학 주교님께서는 하느님의 현존을 어떻게 느끼고 계신가요? 김창렬 예전에 난 ‘육신이 없는 그분이 어떻게 인간관계, 시련, 여러 가지 고통을 어떻게 아시는가?’ 이런 생각도 한 일이 있는데 그게 아니야. 그분은 모든 고통을 실제로 느끼시는 거야. 아버지는 아들을 통해서 아시는 겁니다. 우리가 당하는 고통쯤 그분이 당하시지 않은 게 없어. 그분이 우리 때문에 그렇게까지 하시는 구나. 그래서 하느님을 믿을 수가 있었지. 멀리 느껴지고, 뭘 물어도 대답이 없는 침묵만 지키시는 하느님이라고들 하는데 그게 아니야. 하느님은 언제나 계시지.
박수아 ‘이것만은 꼭 하시고 싶다.’는 개인적 소망은 없으세요? 김창렬 없어. 아, 난 정말 기도나 제대로 했으면 좋겠어. 그게 내 전부 같아. 마지막 소명은 기도하는 것, 다른 건 하느님께서 내게 기대하실 게 없어. 그저 ‘넌 나하고 가까이 있어라. 난 그걸 원한다.’ 내가 느껴요. 우선 그렇게 함으로써 나 자신도 그렇고, 그분이 인연 맺어준 사람들에게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도야. 아무래도 난 신자들보다는 기도를 좀 더 해. 근데 예수님께서는 나더러 기도 좀 한다고 의식하지 말라고도 하시지. 예컨대, 물리적으로 시간을 재면 나는 1시간하고 저 사람은 10분했다고 쳐. 하지만 기도는 그렇게 따지는 게 아냐. 난 성직자로서 기도하기에 제일 좋은 조건에 있고, 더구나 교구에 있는 것도 아니지. 그러나 신자들은 일해야 되니까 그가 10분 한 기도는 내가 1시간 2시간 한 것보다도 더 가치가 있는 거지. 가난한 과부가 와서 동전 한 닢 봉헌한 게 더 소중한 것과 같은 이치야.
윤 학 그런데 일체 어떤 활동도 안 하시고 기도만 하셔도 정말 괜찮을까요? 김창렬 어차피 일은 내가 하는 게 아니거든. 명동성모병원 책임자 시절에 강남성모병원 지을 때 일이야. ‘네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그들이 채우지 못한 점을 채워라. 기도를 해라. 너는 일보다도 기도를 해라.’ 하셔서,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못할 일을 기도로 했어. 그것도 아주 쉽게. 아침에 일어나서 일을 좀 할 것 하고, 오후에는 그때도 주로 그냥 조용히 기도했어요. 그러면 이상하게 일이 그렇게 잘 돼. 어느 날 시장한테서 연락이 오기를 “사람 하나만 보내십시오.” 하기에 병원장으로 있던 교수를 보냈더니 지도를 펼치고 짚어보라고 하더래. 그래서 지금의 강남성모병원 자리를 짚었대. 대략 3만 6천 평이고 서른 몇 사람이 지주였어. 그것도 쉽게 흥정이 되어서 제일 큰 땅 가지고 있던 사람이 대표로 다 승인을 받아왔습디다. 내가 언제 그런 일을 해 봤나? 근데 11억에 그 사람들도 넉넉히 받았다고 다 만족했어요. 주님께서 또 내게 느끼게 해주시기를 ‘너는 이제 그렇게 너 할 걸 했으니까 건축하는 데 있어서는 아이디어는 주더라도 괜히 거들먹거리고 거기 관계하지 마라. 거기 관여 안하고 무관심 할수록 난 집을 좋게 해줄게.’ 하시는 거야. 그래서 내가 안 가봤어요. 짓는 동안에 한번도 안 가고, 어떨 때는 가보고 싶어서 좀이 쑤셔도 참았어. 병원 옆을 지날 때도 일부러 스쳐 지나가고 그랬다니까. 다 됐다는 소식이 와서야 추기경님께 “자, 이제 다 됐는데 축성 좀 해주세요.” 했지. 함께 모시고 가서 보니까 이건 꿈만 같아. 나도 추기경님도 상상도 못했어.
윤 학 이렇게 홀로 계시니까 가끔 외로우실 때 있으시죠? 김창렬 그걸 걱정들 하는데 그런 게 없어. 그냥 뭐 항상 이렇게 그득한 기쁨 같은 게 있어. 미카엘씨는 외로울 때가 있어요? 윤 학 있죠. 오히려 사람들 속에서도…. 김창렬 인생이라는 게 고독이 그게 한 가지 약입니다. 그것 또한 주님께서 주시는 기회야, 기회. 고독은 본래 우리 수도자들이 원하는 거예요. 사람은 함께 모여서 살면서도 개인으로는 고독하지. 고독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 뭐든지 이상하게 생각하면 안 돼. 그리고 거룩하고 신성한 일, 심각한 일, 중요한 일도 장난삼아 하는 게 좋아. 박수아 주교님께서는 기도하시면서 항상 기쁘게 지내시잖아요. 그렇지만 가끔씩 두렵다거나 걱정하시는 때는 없으신가요? 김창렬 그래, 현세와 내세가 거꾸로 꼴찌가 첫째 되고, 난 그게 제일 겁나. 이 세상에서 잘 된 사람은 천당에 가서는 그렇게 안 돼. 지위 높은 사람이 보통 낮아져. 돈 많이 가진 사람은 거기서는 가난한 사람보다 낮은 자리야. 그래서 우리 교회가 가난에 대해서 너무 예수님의 정신을 잘못 가르치고 있다 싶어. 예수님은 가난은 이게 전부 축복이라고 그랬거든. 이 세상에서 가난을 잘 받아들이는 게 거기서도 행복이다. 하느님은 그분들에게 “나를 찾아라. 나와 함께 있자.” 하시거든. 분명히 축복 받은 사람인데 자꾸 저주받은 사람처럼 얘기를 하는 거야. ‘얼마나 고통스럽습니까?’ 하면서. 물론 도와줄 것은 도와줘야 돼. 그러나 “당신은 하느님께 가까이 있습니다. 저 사람들보다 오히려 가까이 있습니다. 축복입니다. 기쁘게 사십시오.”라고 해야지. 내세에 가면 깜짝 놀랄 일들이 생길 거야. 누구누구가 이만큼 올라가 있을 걸로 알았는데 아니야, 오히려 ‘저 무명의 저건 누구야?’ 이러겠지.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 되고. ‘밥 주시니까 감사히 먹습니다.’ 하면서 가난에 대해서도 철부지여야 빈부를 초월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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