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시장 141 (4권 6. 김홍신. 펌글)
주행시험을 치르고 올라온 다혜는 소리를 질렀다.
"합격했어. 합격야!"
우리는 계속 낄낄대며 웃었다.
합격증을 받아든 다혜가 팔짱을 꼭 끼고 이렇게 말했다.
"기분이 너무너무 좋다. 열두 번 시험보고도 떨어진 아주머니가 막 우는 걸 보니까,
첫번 시험에서 합격한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겠어."
그건 사실이었다.
첫번 시험을 합격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대개 너댓 번씩 시험을 치른 뒤에야 겨우 면허증을 받는 게 통례였다.
"내 공로를 인정하겠니?"
"하구말구."
"그럼 뽀뽀 한 번 해 주라."
"좋아. 그런데 어디서 해 주지?"
"여기서 안 돼?"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입맞춤을 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키스 한 번 하려고 사람없는 곳을 일부러 찾아나설 수도 없었다.
"참, 이놈의 도시가 젊은애들 골 때리게 만들어졌다니까."
"그럼 취소하겠어."
다혜가 노린 점이 바로 그런 것 같았다.
"보류해 두자. 키스할 거 한 번 있다."
"그때 가서 참작은 하겠어."
면허증은 3일 뒤에 나오게 되어 있지만 서울 시내의 운전하는 양반들이 하도 법을 잘 지키고 사람처럼 운전을 해서,
시내연수를 하지 않고는 도저히 시내에서 운전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면허증도 없으면서 다혜의 시내연수를 책임지기로 약속해 버렸다.
다혜가 면허증을 받는 날 나는 다혜가 구입한 승용차를 끌고 다니며 하루 종일 시내연수를 시켰다.
다혜는 이틀만에 조심스럽게 운전대를 잡았다.
"도저히 못하겠어. 초보운전이라고 써붙였는데도 너무들 해. 봐 주는 사람들도 있지만 장난질 치는 사람이 더 많아.
사람들이 왜 그 모양일까? 너무 질서가 없어. 이건 교통질서가 있는 도시가 아니라 살인음모로 꽉찬 도시야."
다혜가 엄살이 아닌 체험을 얘기하고 있었다.
누구나 초보운전을 경험한 사람들은 똑같은 말을 했다.
"누가 아니래. 교통질서 하나 제대로 정리할 줄 모르는 도시교통 행정 때문에 무덤 숫자와 병신 숫자만 늘어나는 거야.
교통행정가들이란 게 저희들만 안 죽으면 그만인 모양야."
딱지를 떼기 위한 함정단속이나 하는 게 어떻게 교통행정일까?
들쭉날쭉한 집중단속이나 벼락치기 단속으로 교통질서를 잡으려는 발상부터가 어거지였다.
대로상에서 버젓하게 경찰차가 법을 위반하면서 무슨 단속할 배짱이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할 수 없다. 자동차에 비상 사이렌을 달든가, 확성기를 달아놓고 소리 빽빽 질러가며 다니든가,
그렇지 않으면 초보운전이란 딱지를 떼고 좀 봐 줘유, 씨! 라고 써붙이는 방법밖에 없어."
"그러지 말고 아예 탱크를 타고 다니는 게 낫겠어. 너무들 해."
다혜는 몸서리를 쳤다.
우리는 즉석에서 붉은 매직잉크로 이렇게 써서 뒤 유리창에 붙였다.
좀 봐 줘유, 씨!
'하나님, 혹시 하나님은 손수 운전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아마 하나님 아니라 하나님 할아버지가 와도 이놈의 서울 바닥에서 운전하려면 장갑차로 개조해야 할 겁니다.
뒤 유리창에 초보운전이라고 써붙여 가지고 다녔다간,
하나님도 별 수 없이 그걸 떼어 내고 좀 봐 줘라, 씨! 라고 쓰실 겁니다.
그렇다고 뒤 유리창에다가, 경고한다 접근하면 발포한다고 쓸 수야 없잖습니까.
배짱 가지고 운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 참담한 현실을 하나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국산 자동차들은 손가락으로 눌러도 움푹움푹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거기다 운전사들은 난폭운전과 곡예운전의 세계적 권위자들입니다.
교통사고율이 세계 제일이라는 건 참으로 영광된 것이겠지요.
단속하는 경찰관이나 순시원들이 공공연하게 돈으로 매수되는 풍토가 지속됐었기 때문에,
운전사들의 의식 속에는 벌금용 잔돈을 아예 준비해 가지고 다녔습니다.
순리대로 운전하는 것보다는 마구잡이로 몰고 다니다가 들키면 몇 푼으로 땜질을 하는 게,
수입면에서 훨씬 유익하다는 택시 운전사들의 말을 하나님은 많이 들었겠죠.
하나님, 도시의 공기오염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 유난히 표나는 것은 자동차가 내뿜는 배기오염치일 것입니다.
주둥아리로 시민과 국민의 건강을 외치는 가짜들을 끌어다가,
자동차 배기관에 코를 박아놓고 단 1분만 끌고 다녀보세요.
그러면 대번에 그 가짜 애국자들은 조금이나마 양심이 숨쉬고 있다면 사표를 쓸 것이고,
그래도 애국자인 척하려는 치들은 개발도상국이 어쩌니 우리나라 현실이 어떠니 할 겁니다.
하긴 목청 크고 애국이 어떻고 민중이 어떠며 양심이 곧은 체하던 치들은 모두 가짜더군요.
하나님, 목청 크고 존경할 만한 사람 가운데 양심을 지킨 사람이 누구란 말입니까?
목청 큰 게 나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목 따는 소리지르는 돼지가 훨씬 애국하는 부류에 속할 겁니다.'
다혜가 초보운전을 떼어내고 붉은 글씨로 '좀 봐 줘유, 씨!' 라고 쓴 걸 붙이고 운전했다.
나는 다혜의 옆자리에 앉아서 초보운전자가 조심해야 할 얘기들을 계속 늘어놓았다.
'좀 봐 줘유, 씨!'
이 커다란 붉은 글씨는 대번에 효과를 보았다.
운전사들이 낄낄대며 웃었고 길거리에서 그 글씨를 본 사람들도 손가락질을 하며 웃었다.
차량들은 확실히 피해 주었고 가능하면 뒤에나 옆으로 붙으려고 하지 않았다.
참으로 별난 일이었다.
"이렇게 써붙였는데도 안 봐 주면 그거야말고 철면피의 표본이겠지."
내가 이렇게 말했다.
"폭탄 매달고 다니면 서울의 교통이 이렇게 엉망진창은 안 될 거야."
우리는 아수라장인 차량의 행렬 뒤를 조심스럽게 빠져나가고 있었다.
다혜가 어렵게 시내연수를 하는 동안 나는 이 기회에 운전면허를 따두고 싶었다.
급한 일이 생길 때마다 면허 없이 운전하고 다니던 불안감을 해소하고 싶었다.
필기시험은 문제은행식이어서 문제집을 한 번 읽고 합격할 수 있었다.
나는 시험을 치며 어쩌면 필기시험은 법규나 자동차의 원리를 깨닫게 하려는 수단으로 만든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험이란 그런 뜻으로 통용되는 게 원칙일 것이다.
세속적인 시험지들처럼 야박하지 않아서 좋았다.
코스 시험도 합격했다.
운전을 해 본 사람이라면 웬만하면 통과 할 수 있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장거리주행에서 나는 허망하게 내 운전실력이 무너지는 걸 알았다.
무면허였지만 한 번도 남보다 운전실력이 미숙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만큼 자신이 있었다.
"면허장 차는 똥차다."
"꼬투리를 잡으려는 시험이지 면허증을 내 주기 위한 시험장은 아니다."
"시험관의 마음에 맞는 운전을 어떻게 하란 말인가?"
면허시험에 떨어진 사람들의 이런 얘기를 들으며 나는,
내가 정말 똥차나 시험관의 비위를 맞추지 못해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아니었다. 내가 떨어진 것은 운전대를 마음놓고 잡았었다는 자만심이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가 불합격된 것은 내 마음 속에 있는 자만심이라는 걸 알았다.
"당신, 엊그제 난리치던 사람 아뇨?"
시험관 제복의 깃에는 잎사귀 계급장 두 개가 달려 있었다.
다혜를 합격시키기 위해 장난질 치던 걸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떨어뜨린 겁니까?"
"당신은 운전을 너무 잘해. 시내 갖다 놓으면 일급일 거요."
"그런데 왜 떨어뜨린 겁니까?"
"당신 생명을 구해 주고 싶어서요."
"뭐요?"
"담에 오쇼."
시험관이 피식 웃었다. 나도 웃고 말았다.
내가 운전실력이 있는 건 인정하지만 합격시켜 주지 않겠다는 그의 말이 충격처럼 뒤통수를 때렸다.
모처럼 괜찮은 경찰관을 만난 기분이었다.
나는 돌아서 나오다 말고 거수경례를 붙였다.
경찰관이 모자를 벗고 인사를 했다.
그 길로 다시 서류를 만들어 넣었다.
규정상 재시험에 응시하려면 이것저것 날짜를 감안해 보아도 한 달 정도 걸렸다.
나는 그렇게 오래 기다릴 만큼 참을성을 길러 주지 않았다.
무공 스님한테 참을성을 배운 것은 다른 경우였다.
3일 후에 나는 다시 면허시험장으로 갔다.
그 경찰관이 차창으로 고개를 내밀고 씨익 웃었다.
"몰라 줘도 좋습니다."
내가 큰소리로 대답했다.
내 차례가 되었지만 뒷사람에게 양보하며 그 경찰관 차를 타기 위해 기다렸다.
내가 뒷자석에 올라타자 뒤를 흘끗 쳐다보고 말했다.
"또 떨어질 텐데 왜 이 차를 타죠?"
"언제 붙더라도 붙을 거 아닙니까? 누가 이기나 한 번 해 보겠습니다."
"3일 전에 떨어진 사람이 또 온다는 건 규정위반이란 걸 아쇼?"
"압니다."
"그런데 또 내 차를 타는 이유가 뭐요?"
"다른 차 타고 면허증 받으면 재미가 없겠습니다. 아저씨한테 꼭 면허증 받을 참입니다."
"난 면허증 주는 사람 아니오."
"그렇게 될 겁니다."
"차암, 되게 물렸네."
나는 출발선 앞에 서서 이렇게 말했다.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 맞으면 떨어뜨리세요."
"내 마음 안 내킨다고 떨어뜨리는 게 아니오."
"그럼 실력이 모자란다 생각되면 봐 주지 마십시오."
"그렇게 자신 있소?"
"내 오깁니다."
"어디 오기 한번 봅시다."
자동차가 정해진 코스를 돌아 합격선까지 왔다.
"내가 졌소."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부탁 하나 합시다."
"그러시죠. 아저씨 얘기라면 다 듣겠습니다."
"합격은 시켜 주겠소. 면허증은 보름 정도 기다렸다 찾아가쇼."
"왜요?"
"사실은 아까 당신이 내 차를 탈 때 거절했어야 옳았소.
모르면 몰라도 알고 있는 마당에 그냥 태운 게 잘못이었소. 그러니 보름 정도 기다려 달라 이거요."
"그래야 마음이 편합니까?"
"그렇소."
"그러겠습니다."
"고맙소."
나는 합격증을 받아가지고 나오며 기분이 썩 좋았다.
그 경찰관이 아직도 잎사귀 두개밖에 달고 있지 않다는 게 뭔가 잘못 된 것 같았다.
나는 평소에 경찰관 제복만 보아도 나이에 경찰관에게 시달린 경험 때문이기도 했지만,
내 뇌리 속엔 지팡이로 보이지 않고 몽둥이로 보이는 잠재의식이 숨어 있었다.
사람들은 괜히 경찰관 제복을 싫어하는 것 같았다. 물론 괜히는 아닐 것이다.
그동안 국민들 가슴에 그런 인상을 지울 수 없게 만들었다는 건 천하가 아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