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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룩 구슬알
유 영 희
언청이아저씨네 구멍가게 앞마당에서는 벌써부터 구슬치기가 시작되고 있었읍니다.
“야, 니네 벌써 왔냐?”
혁이는 이렇게 물으며 아이들에게로 다가갔읍니다.
“비켜, 비켜 찌아식!”
영일이가 화를 내며 혁이를 쳐다보았읍니다.
장지손가락과 엄지손가락에 구슬을 끼운 영일이는 이쪽을 향해 몸을 쭈그리고 있읍니다.
혁이는 얼른 밟았던 구슬에서 비켜섰읍니다.
“미안해------.”
영일이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장지손가락을 뻗쳤읍니다.
“때그르르------.”
영일이의 구슬이 혁이가 밟았던 준식이의 구슬 옆을 지나 저 만큼 굴러갔읍니다.
“짜아식, 너 땜에 그랬어!”
영일이는 또 혁이를 바라보며 핀잔입니다.
“……”
혁이는 할말이 없읍니다. 하지만 구슬치기도 할 줄 모르면서 남에게 공연히 그런다는 생각이 들었읍니다.
“얼릴래?”
한참만에야 혁이는 싱겁게 대꾸를 했읍니다.
“얼려, 요게?”
영일이는 양복주머니에서 보라는 듯이 구슬을 한줌 꺼내서 두 손으로 움켜쥐고 흔들며 말했읍니다.
“그래, 나 집에 가서 구슬을 가지고 올께.”
혁이는 두 주먹을 부르쥐고 집으로 달렸읍니다.
그리고 대문을 박차고 들어서며 가방을 마루에 동댕이쳤읍니다.
“엄마, 나 일원만!”
혁이는 방안을 향해 어리광스러운 목소리로 졸랐읍니다.
“너는 공부는 하지 않고 벌써 돌아왔니?”
“엄만, 오늘이 어린이날인 줄도 몰라?”
“어린이날이라고 공부도 하지 않을 바엔 가기는 무엇하러 갔었지?”
“음, 엄만 식하는 것도 몰라?”
“식이나 할 바엔 집에서 식하고 말지, 학교에까지 가서 식해?”
“힝, 난 몰라. 빨리 일원 줘이.”
“얻어맞기 전에 저리 가!”
혁이는 어머니의 눈치를 살폈읍니다. 정말 또 빗자루바람이라도 있었다간 야단이라고 생각되어 그냥 발문을 닫고 말았읍니다.
그런데 방구석에서 동생 난이가 마침 구슬을 가지고 장난을 하고 있는 것이 뵈였읍니다. 그것은 알록달록한 구슬이었읍니다.
혁이는 문을 확 열고 들어가자 독수리가 병아리를 채어가듯 동생의 손에서 알룩 구슬을 빼앗았읍니다.
그리고 다시 밖으로 내달았읍니다.
동생의 울음소리와 어머니의 노한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읍니다. 그래도 혁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듯 집 모퉁이를 돌아섰읍니다.
그런데 언청이아저씨네 집앞 넓은 마당에는 언제 모였는지 사람들이 먹 많이
모여 서 있읍니다.
--무얼까?
영일이, 준식이, 허풍선이(보통 그렇게 부릅니다), 짱구 그리고 득준이는 구슬치기를 그만두고 사람들 틈에 끼어 무슨 구경을 하고 있읍니다.
“찍 찍 찍!”
쥐소리 같은 이상한 소리가 사람들이 둘러 서 있는 가운데서 들려옵니다.
“자, 자, 자, 조금씩 물러서렷다!
혁이가 사람들을 뚫고 가까이 가보니 어떤 아저씨가 입에서 이상한 소리를 내면 떠들고 있읍니다.
자, 그럼 제부터 요술, 요술!”
술이라는 바람에 혁이는 다시한번 그 사람을 쳐다보았읍니다.
직도 외투를 입고 있는 그 요술장이는 게다가 서부활극의 카우보이 갈은 모자를 쓰고 있어서 정말 이상하게 보였읍니다.
코밑의 수염도 이상합니다.
--무슨 요술일까?
모여 선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바라봅니다.
“자 깜쪽같이 없어졌다 나타났다 하는 요술!”
요술장이아저씨는 주머니에서 무엇을 찾는지 자기의 아래위 양복주머니를 더듬고 있읍니다. 그러더니 혁이가 만지작거리는 구슬을 보며 손을 벌렸읍니다.i
“좀 빌려줘.”
혁이는 어쩔까 하고 잠깐 망설였읍니다.
“괜찮아, 요술로 구슬 많이 만들어줄께.”
혁이는 구슬을 내주었읍니다.
“자, 이것 보셔요. 어린이들처럼 귀여운 존재가 또 어디 있겠읍니까?”
구슬을 받아든 요술장이아저씨는 혁이의 잔등을 두드려주었읍니다. 그리고는 혁이의 알룩 구슬을 어른들이 담배를 손가락에 끼어쥐듯 손가락 끝에 끼우고 요리조리 앞뒤로 손바닥을 돌려보였읍니다.
“분명히 여기 구슬 한 알이 있읍니다.”
혁이도 사람들도 혁이 동무들도 혁이의 알룩 구슬을 바라보았읍니다.
“그런데 요놈이 간데온데 없이 바랍처럼 훗, 훗!”
요술장이아저씨는 촛불을 끄듯 손끝의 구슬을 두어 번 불었읍니다. 그러자 구
슬은 정말 없어졌습니다.
혁이는 참으로 신기하다고 생각했읍니다.
요술장이아저씨는 두 손바닥을 딱딱 쳐보이며 확실히 없어졌다는 증거를 보였읍니다.
“깨끗이 없어졌읍니다. 이처럼 여러분께서도 깨끗이 없어져야 할 것이 있읍니다. 그것을 아시는 분에게는 요술로 돈을 많이 만들어드리겠읍니다.”
사람들은 돈을 탈 수 있을까 해서 토끼처럼 모두 귀를 쭝긋거리는 모양이었읍니다.
“저, 아저씨!”
요술장이아저씨는 이쪽에 서 있는 신사아저씨를 향해 물었읍니다.
“오늘이 무슨 날이지요?”
신사아저씨는 서슴지 않고 대답했읍니다.
“월요일이유우------.
“아아니, 무슨 날이냐 말입니다.”
“무슨 날이긴 봄날이지 뭐유우?”
사람들은 그 대답에 배꼽을 뽑듯이 웃었읍니다.
“자, 이런! 봄날인 줄이야 누가 모를까? 5월 5일 오늘은 어린이들을 위한 〈어린이날〉이란 말이유. 어린이들을 업신여기는 마음을 다 없애야 할 날이란 말이유.”
요술장이아저씨는 아까 그 사람의 흉내를 내며 안타까운 듯이 말했읍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또 웃었읍니다.
“자, 그럼 다시 현상문제를 법니다.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읍니까?”
“저사람은 약장수인 줄 알았더니 어린이날 선전원인가봐.”
누가 이렇게 큰소리를 질렀읍니다.
이 소리에 사람들은 또 소리내어 웃었읍니다.
“그래요, 나는 약장수요, 그렇지만 오늘은 어린이날 선전원도 됩니다.”
요술장이아저씨는 〈어린이 현장〉이라는 아홉 가지를 일일이 외우며 예배당 목사처럼 설교를 하였읍니다.
“자, 설교 그만하고 요술요!”
어느 대학생인 듯한 청년이 이야기 도중에 소리쳤읍니다.
“옳소! 요술장인 어디 갔소?”
우락부락한 사람들이 맞장구를 치며 떠들었읍니다.
“아, 요술장언 여기 있으니 염려 마오. 그럼 여길 봐요.”
아까처럼 그 아저씨는 빈 손가락을 이리저리 뒤져보였읍니다. 그리고는 또,
“훗!”
하고 센 입김을 손끝에다 불어넣었읍니다. 그러자 이상합니다. 그 손끝에 알록달록한 구슬이 매달렸읍니다.
“야!”
사람들은 다 감탄하며 소리를 냈읍니다.
“그것 보슈, 날 보고 그러다간 요술로 해치을 테유.”
요술장이는 일부러 충청도 말씨로 말하며 사람들을 둘러보았읍니다. 사람들은 입을 벌리고 웃었읍니다. 요술장이아저씨가 무슨 약을 팔았는지는 모릅니다. 요술이 끝나자 혁이는 구슬알을 달라고 하였읍니다. 요술장이아저씨는 혁이의 어깨를 툭 치고 한 눈을 감았다 뜨며 말했읍니다.
“자, 요술 구슬이다.”
그리고 또 사람들에게 말했읍니다.
“아까 드리려던 그 현상은 잘만 하면 여러분이 누구나 다 각각 타 가질 수 있읍니다.”
“거, 가르쳐줘유.”
아까 그 양복장이 신사아저씨가 또 말하였읍니다.
“암, 가르쳐드리고 말고요. 여러분의 댁에서나 동네에서 〈어린이 현장〉을 잘 지키면 이런 구슬 따위가 아니라 커다란 복구슬이 마구 굴러들어읍니다. 아시겠어요?”
“엉터리군, 그 요술장이.”
“천만에, 천만에, 내 말대로만 해보시오.”
사람들은 재미가 없는지 하나둘 훝어지고 아이들만 남았읍니다. .
그래서 다시 구슬치기가 시작되었읍니다. 아이들이 굴리는 구슬은 범의 구멍 을 향해 굴러갔읍니다. .
혁이도 구슬을 장지손가락과 엄지손가락에 끼우고 범의 구멍을 향해 웅크렸읍니다.
어째 그런지 아까 그 요술장이아저씨의 손에서 요술을 피우던 구슬이라 또 요술을 피을 것만 갈습니다.
“한다!”
“해, 빨리!” .
아이들은 혁이를 독촉했읍니다.
“때그르르”
혁이의 손에서 굴러떨어진 구슬은 요술을 부리듯 구명 옆의 돌을 이리저리 박 차고 구멍으로 멋지게 들어갔읍니다. 알록 구슬에 질렸는지 영일이의 구슬은 옆 에도 못 오고 한 자쯤이나 먼 곳에 맺고 말았읍니다.
“짱구, 해!”
짱구는 구술치기 선수입니다. 혁이는 늘 짱구에게 구슬을 먹힙니다.
“문제 없어.”
짱구는 자신있게 겨누었읍니다.
“팽그르르------.”
짱구는 얼어서서 구슬 뒤를 따랐읍니다. 그러나 구슬은 영일이의 구슬 옆에서
맺었읍니다.
득준이와 허풍선이의 구슐도 다 그랬읍니다. 혁이는 처음으로 이겼읍니다
“다시 해!”
창구가 분해서 혁이를 쳐다보었읍니다. 혁이는 또 해주었읍니다. 혁이의 구슬은 정말 요술 구슬이 되었는지 이번애도 문제없이 이겼읍니다. .
“맞히기 해!”
준석이는 맞히기를 잘하니까 맞히기를 하자고 합니다.
“그래, 먹기 해!”
준식이는 구슬을 한줌 꺼내들었읍니다.
----할까?
혁이는 한 알밖에 없는 알록 구슬을 먹혀버리면 더 할 수가 없읍니다. 그래도
얼려주기로 했읍니다. 준식이가 저만큼 구슬을 던졌읍니다.
아이들은 두 아이를 번갈아 바라봅니다. 준식이는 그렇지 않지만 혁이는 얼굴
이 약간 근심스러워 보입니다.
“네 차례야.”
준식이가 던진 구슬이 혁이의 구슬을 못 맞히고 한두 발자국 앞에 맺었읍니다. 혁이는 구슬을 집어들고 준식이의 구슬을 겨누었읍니다.
“어? 자식, 요술 부린다!”
혁이가 하도 조심스럽게 겨누는 것이 우스웠던지 아이들이 놀렸읍니다. 그러나 혁이의 구슬은 준식이의 구슬을 멋지게 맞혀버렸읍니다. 혁이는 얼른 준식이 각 구슬을 집어서 주머니에 넣었읍니다.
“자아·---”
준식이는 다른 구슬 하나를 또 발앞에 떨어뜨렸읍니다.
혁이는 다시 알룩 구슬로 준식이의 구슬을 겨누었읍니다.
“재까닥------”
이번에도 또 먹었읍니다. 준식이는 울상이 되어서 또 다른 구슬을 대었습니다. 그러나 대는 대로 혁이의 알록 구슬은 총알처럽 딱딱 맞혀버혔습니다. 준식이 거의 구슬은 거의 다 혁이의 주머니 속에 들어갔읍니다.
혁이는 이제 누구하고나 얼려주고 싶었읍니다.
“영일이두 얼릴려면 얼려.”
영일이는 주머니 속얘 손을 넣어서 잘가락 잘가락 구슬 만지는 소리를 냈읍니다.
“얼릴래?”
혁이는 영일이를 다시 쳐다보았읍니다. 영일이는 마지못해 하는 표정입니다.
“그래애!”
왜 그런지 영일이의 구슬이 땅에 떨어지는 대로 알룩 구슬은 실수없이 스트라이크를 합니다.
어쩌나 영일이가 맞힐 차례가 되었어도 이상하게 헛탕을 칩니다.
“자식아, 요술 구슬이라는 걸 몰라?”
혁이는 영일이를 보고 까불었읍니다. 그래도 영일이는 풀이 죽어서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얼굴이 빨개집니다. 그러는 동안에 영일이의 구슬은 하나씩 하나씩 영일이의 주머니에서 혁이의 주머니 속으로 건너가 교실 안의 아이들처럼 재잘거립니다.
“얼릴래?”
영일이가 있는 구슬은 다 잃고 물러서자 혁이는 허풍선이를 바라보았읍니다.
“싫어!”
요술 구슬이 무서웠던지 허풍선이는 얼른 구슬이 든 주머니를 가리며 돌아섰읍니다.
혁이는 처음으로 왕초가 된 셈입니다. 혁이는 득준이를 쳐다보았읍니다.
“얼려?”
득준이도 벙어리처럼 대답을 하지 못하고 얼굴만 붉힙니다. 혁이는 얼려주는 사람이 없자 심심해서 견딜 수가 없읍니다.
득준이도 몇 알 없나봅니다.
“이봐! 내 이 구슬 너희들에게 다 나눠줄께.”
울상이 되어서 말도 하지 못하고 섰던 영일이와 준식이의 얼굴이 활짝 빛났읍니다.
혁이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잡히는 대로 한 줌씩 꺼내 영일이와 준식이에게 나눠주었읍니다. ’
영일이와 준식이의 입이 금세 헤 하고 벌어졌읍니다.
“자, 너두.”
찔룩이와 병철이도 주었읍니다.
“우리 구슬치긴 이따 하고 산에 을라가 놀지 않을래?”
이제는 혁이가 완전히 왕초가 되었읍니다.
“그래.”
영일이도 고분고분 혁이의 말을 들었읍니다. 아이들은 팔을 끼고 옆 공원으로 올라갔읍니다. 맘은 하늘이 환하게 되어서 한없이 높아 보입니다.
어디선가 새 울음 같은 아름다운 소리도 들려옵니다.
“어디서 들리냐?”
아이들은 사방을 둘러보았읍니다.
“저것 봐!”
짱구가 새를 찾았는지 소리쳤읍니다.
“어디?”
짱구는 나뭇가지에서 돋아나는 어린잎을 가리켰읍니다.
“파릇파릇 새싹이 돋고 하늘에는 종달새가 운다!”
“엉털아, 어디서 종달새가 울어?”
허풍선이가 짱구의 머리를 쥐어박았읍니다.
“히히히, 이런 때는 그러는 거야.”
“짜아식,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이런 땐 눈을 감고 가만히 무슨 소리를 들어보라더라. 그리고 킁킁” 이렇게 봄 냄새도 맡아보고------“
“그래, 그래 보자.”
아이들은 장난삼아 눈을 감고 벙벙 돌며 콧소리를 킁킁 냈읍니다.
“에이, 이젠 그만두고 이리 와.”
혁이가 아이들을 불렀읍니다. 아이들은 혁이가 서 있는 곳으로 가보았읍니다.
동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먼곳 가까운 곳이 그림처럼 보입니다.
“어어 이!”
“와아 아!”
“아! ”
아이들은 저마다 소리를 질렀읍니다.
“우리 그러지 말고 노래나 부르자.”
이번에도 혁이가 먼저 채의를 하였읍니다.
“그래, 그러자.”
아이들은 유쾌하게 노래를 시작하였읍니다.
하늘은 말고나 어린이 세상
꽃봉오리 내 동무 자라며 크자
앞날의 대한은 우리들 차지
오월은 회망의 달 어린이 명절
아이들의 고운 합창소리가 오월의 하늘로 멀리멀리 번져갔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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