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으로 본 성경의 세계
사마리아와 가자
필리포스의 복음 선포 활동
이창훈 알퐁소 전 평화신문 편집국장
스테파노의 죽음이 신호탄이 되어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박해가 본격화하자 신자들은 사방으로 흩어지며 복음을 전합니다. 박해는 그러나 복음을 널리 전파하는 계기가 됩니다. 사도행전은 예루살렘 교회의 일곱 봉사자 가운데 한 사람인 필리포스(사도 6,5)가 사마리아와 가자 등 인근 지역을 다니면서 복음을 선포한 이야기를 비중 있게 소개합니다(사도 8,1-40).
사마리아에 전해진 복음
사마리아는 이스라엘이 솔로몬 임금 사후에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로 갈라지면서 북 왕국 이스라엘의 수도가 된 도시 이름이자 북 이스라엘 왕국 전체를 가리키는 지역 이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마리아는 아시리아를 시작으로 바빌론, 페르시아 등 이민족의 침입을 받으면서 함께 들어온 이민족 문화와 다신 숭배 사상의 영향으로 하느님께 대한 신앙의 순수함을 잃어버렸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유다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좋지 않게 여겼고, 사마리아인들과 접촉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이런 “사마리아의 고을”(8,5)에 필리포스가 내려가 그리스도를 선포하며 여러 가지 표징을 일으킵니다. 더러운 영들이 큰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많은 병자와 불구자가 나았습니다. 이런 표징들은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전형적인 것으로, 메시아 시대가 왔음을 알리는 표징들이었습니다. 이 메시아 시대의 표징들이 사도들, 특히 베드로를 통해(사도, 6,15-16), 그리고 이제 일곱 봉사자 가운데 한 사람이자 복음 선포자인 필리포스를 통해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고을에는 “큰 기쁨”(8,8)이 넘칩니다. 신앙의 순수성을 잃었다고 유다인들에게 멸시 당하던 사마리아에 복음이 선포되고 구원의 기쁨이 넘쳐나고 있는 것입니다. 사마리아는 복음이 예루살렘을 넘어 땅 끝까지 전파되는 첫 자리가 됩니다.
필리포스가 복음을 전한 ‘사마리아의 고을’은 어디일까요. 학자들은 두 가지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하나는 북 이스라엘 왕국의 오므리 임금(재위 기원전 876~869)이 왕국의 새 수도로 삼은 수도 사마리아입니다. 이 수도 사마리아의 이름을 헤로데 대왕(재위 기원전 37~4)이 ‘세바스테’라고 고쳐 부르지요. ‘사마리아의 고을’이 세바스테가 아니라면, 그 고을은 요한복음에 나오는 시카르(요한 4,5)일 수 있다고 학자들은 추정합니다. 예수님께서 야곱의 우물 옆에서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나누셨다는 바로 그 고을로(요한 4,1-42), 스켐이라고도 부릅니다.
마술사 시몬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하느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소식에 베드로와 요한을 그곳에 보냅니다. 두 사도가 가서 보니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수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지만, 아직 성령을 받지 못했습니다. 두 사람이 성령을 받도록 기도하고 안수하자 사마리아 사람들은 성령을 받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에 내린 성령이 이제 사도들을 통해 사마리아인들에게도 내리게 된 것입니다(8,15-17).
이 모습을 눈여겨본 사람이 있었습니다. 마술사 시몬입니다. 그는 필리포스가 일으킨 표징을 보고 세례를 받은 후 “필리포스 곁을 떠나지 않으면서 여러 표징과 큰 기적을 보고 놀라워하고”(8,13) 있었습니다.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이 내리는 것을 본 그는 사도들에게 돈을 갖다 바치면서 “저에게도 그런 권한을 주시어 제가 안수하는 사람마다 성령을 받을 수 있게 해주십시오” 하고 청합니다(8,18-19). 돈으로 성령을 사겠다는 것입니다. 돈으로 성직이나 성물을 사고파는 행위를 ‘시모니아’(simonia, 영어 simony)라고 하는데, 이 단어의 어원이 바로 마술사 시몬에게서 비롯합니다.
베드로는 시몬을 질타하면서 “그 악을 버리고 회개하여 주님께 간구하시오”(8,22) 하고 권고합니다. 베드로와 요한 두 사도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면서 사마리아의 많은 고을에 복음을 전합니다(8,25).
에티오피아 내시
한편 주님의 천사가 필리포스에게서 나타나 ‘예루살렘에서 가자로 내려가는 외딴 길을 따라 남쪽으로 가라’(8,26)고 일러줍니다. 가자는 오늘날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의 중심 도시 가자를 말합니다. 예루살렘에서 서남쪽으로 70㎞가량 떨어져 있는 지중해 연안 도시인데, 본래 구약에 나오는 필리스티아인들의 도시였습니다. 오늘날 팔레스타인(라틴어로 팔레스티나)이라고 부르는 지명이 바로 이 필리스티아에서 나왔지요.
주님의 천사 말에 필리포스는 길을 가다가 ‘에티오피아 여왕 칸다케’의 모든 재정을 관리하는 고관 내시를 만납니다. 그는 하느님께 경배를 드리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이사야 예언서를 읽고 있었습니다(8,27-28). ‘칸다케’는 여왕의 이름이 아니라 이집트 왕을 가리키는 ‘파라오’ 에티오피아 여왕을 가리키는 명칭입니다.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 나일강 상류 청나일강의 발원지가 있는 나라입니다.
에티오피아의 고관 내시가 하느님께 경배를 드리러 예루살렘까지 다녀갈 뿐 아니라 이사야 예언서를 읽고 있었다는 것은 아프리카 땅 에티오피아에도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께 대한 신앙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유다인들은 이집트뿐 아니라 에티오피아에서도 디아스포라를 이루어 살았습니다.
성령의 지시에 따라 필리포스가 내시에게 달려가 보니 내시는 어린양의 희생에 관한 이사야 예언서의 구절(53,7-8)을 읽고 있었지만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필리포스는 내시에게 예수님에 관한 복음을 설명해 줍니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설명을 들으면서 마음이 타올랐듯이(루카 24,37 참조), 필리포스의 설명에 마음이 불타오른 내시는 물이 있는 곳에 다다르자 세례받기를 청했고 필리포스는 물로 내려가 내시에게 세례를 줍니다.
두 사람이 물에서 올라오자 주님의 성령께서 필리포스를 잡아채듯 데려가셨고 내시는 “기뻐하며 제 갈 길을”(8,39) 갑니다. 내시가 세례를 받아 구원의 기쁨을 안고 제 갈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을 경배하고 하느님의 뜻을 추구하려는 마음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올바른 마음으로 진리를 찾고 선을 추구하는 이들에게는 하느님께서 가까이 계심을 에티오피아 고관 내시는 우리에게 일깨웁니다.
필리포스는 아스돗에 나타나 카이사리아에 이르기까지 모든 고을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합니다(8,40). 아스돗은 가자 북쪽에 있는 해안 도시입니다. 카이사리아는 그보다 훨씬 북쪽에 있는 또 다른 해안 도시인데, 나중에 더 살펴볼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필리포스는 성령께 열려 있었기에 성령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었고 고관 내시에게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줄 수 있었습니다. 또 성령께 열려 있었기에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팔레스티나의 해안 지방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선포할 수 있었습니다. 복음 선포자는 성령께 열려 있어야 합니다.
<사진설명(위로 부터)>
_ 하늘에서 내려다본 지중해 연안 도시 아스돗 남부의 모래 언덕(BiblePlace.com 제공)
_ 사마리아 고을 세바스테의 유적. 헤로데 대왕이 세운 신전 유적의 일부다.(BiblePlace.com 제공)
_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시카르로 알려진 사마리아 고을 스켐 전경. 오른쪽 산이 사마리아인들이 하느님을 경배했다는그리짐산
_ 필리포스가 내시에게 세례를 준 곳으로 전해는 필리포스의 샘 예루살렘 서남쪽에 있다.(BiblePlace.com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