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1월 28일 월요일 맑음
“아이구, 얘. 좀 셨다 가자” 하시고는 길바닥에 주저 앉으신다.
내가 부축해 드리는데도, 잔뜩 구부러진 허리로 땅만 바라보시며 몇 걸음 디디시더니 또 주저 앉으시는 거다.
“엄마, 허리가 아퍼 ?” “아녀. 안 아퍼” “그런데 왜 허리를 못 세워요 ?” “몰러. ” “다리는 ?” “안 아픈디 힘이 읎어”
모자가 대전역 건너편 대로에 주저앉았다. 오가는 사람들이 힐끗힐끗 바라보며 스쳐 지나간다. 가슴이 무너진다. “우리 엄마 어떡하나 ? 이대로 무너지고 마시는 건가 ?” 엄마를 안고 앉아있었지. 남 부끄러울 거도 없더라.
“엄마, 저기 간판 보이지. 세기보청기라고 쓴 거 ?” “이. 보여. 아이구 저기까지 가야 혀 ?” 20m나 될까 ? 그 거리도 한 참 멀어 보이시나 보다.
역전 앞 한약 거리 백제당에 차를 세우고, 보청기 집을 찾아가는 길이다.
100m도 안 되는 거리를 세 번이나 쉬어가며 도착한 거지.
근데 더 큰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보청기하면 ‘세기보청기’가 좋다고 해서 찾아왔는데 가파른 계단 위 2층에 자리잡고 있었다.
“엄마, 내가 부축해 드릴게” 엄마 팔을 잡았지.
“아녀 아녀. 여긴 내가 올라갈 수 있어” 내 팔을 뿌리치시더니 두 팔까지 사용하시며 기어 올라가시네. 걷기보다는 훨씬 편하시게 보이지만, 바라보는 내 마음은 찢어지는데.... ‘엄마 !’
긴 긴 겨울 엄마는 아산 집에서 혼자 계셨다.
기름 아낀다고 썰렁한 집에서, 전기세 나간다고 불도 켜지않고, 침침한 굴 속 같은데서 이불 속에 쏙 들어갔다 나왔다 하시는 게 전부였더라.
잘난 큰 아들은 농사 일이 바쁘다고 전화를 드리는 게 전부였지.
“엄마, 잘 있어 ?” “그럼, 밥도 잘 먹고, 잘 있어. 요샌 경노당도 나가고, 마실꾼들도 잘 와. 걱정 마. 난 니가 힘들게 일 하는 게 맘이 아퍼”
우리 엄마는 거짓말도 잘 하신다. 언제나 자식 걱정이 전부였지.
엄마를 대전으로 모시고 오려해도 극구 반대를 하셨다. “난 아파트에 갇혀서 못 살어. 길 잊어버릴까봐 나 댕기지도 못 허구.... 난 여기가 편햐. 걱정 마”
나도 자신이 없었지. 나라도 집에 있으면 괜찮을 텐데, 정산의 농사일을 그만 둘 수도 없고, 안사람은 교무부장이라고 맨날 출근이고, 애들도 학교다, 학원이다, 도서관이다 집에 붙어있질 않으니, 엄마 혼자 집에 계시라 할 수 없잖은가. 항상 혼자 계신 엄마가 마음에 걸렸지.
“엄마, 겨울에라도 우리 집에 가서 있자.” 사정해서 모셔왔다.
“얘, 잘왔어. 충희, 충정이만 봐도 배가 불러. 내 걱정은 말어” 하루 세 번 전화를 드리면 언제나 정월 초하루시더라. 하루 종일 혼자 계시면서도, 사람의 온정이 빈 자리를 채워드리는 걸 테지. 정산에 떨어져 있지만 내 마음도 편하고.... ‘진작에 모셔올 걸.’
오늘은 마음먹고, 일찍 출발해서 대전에 왔다. 엄마를 모시고, 보청기 집에 한약방에, 치과에 들릴 생각이었다.
청력이 약한 노인분들에게 국가에서 보청기 값을 보조해 준다니 그 혜택을 받아야 겠더라.
“장애등급이 나올지 아닐지 경계선 상에 있어요.” “테레비 볼륨을 최고로 해야 들리실 정돈데, 그 게 경계선이라면 누가 받을 수 있나요 ?” “장애인 등급을 받을 수 있어야 해요. 혹시 모르니 이비인후과에 가셔서 세 번을 검사 받으시고, 되겠다고 하면 신청서를 동사무소에 내시고 한 달을 기다리시면 결과가 나와요. 장애인 등급이 나오면 국가에서 보청기 값의 90%를 부담해 줍니다”
‘참 이것도 쉬운 일이 아니네. 병원을 세 번씩이나 가야 하고....’
차가있는 백제당으로 돌아오는 길에 또 세 번을 쉬신다.
두 번째는 골목길 가의 도장 파는 집에서 내놓은 의자에 앉았다. “잠깐 앉아서 쉬어도 되겠습니까 ?” “응, 앉아요” 나이 지긋하신 노인께서 선뜻 허락하신다.
“어르신께서는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 “나 슬 세면 여든 다섯이 되지”
“엄마, 엄마하고 네 살 차이밖에 안 되시는데 저렇게 정정하시잖아요.”
“얘, 네 살이면 어딘디.... 나이 먹으면 한 해가 달러”
‘그럼 내년에는 우리 엄마가 어떻게 되실까 ?’ 시커먼 걱정이 밀려 온다.
“아녀. 우리 엄만 십 년은 더 사실 거야” 엄마 양 볼을 쓰다듬어 드렸다.
“얘, 끔찍한 소릴 말어.” 하시면서도 밝게 웃으신다. 이럴 땐 꼭 애기 같다.
“엄마, 여기 백제당이 용하기로 유명한 집이야. 보약 하나 짓자”
“아녀, 안 먹어. 보약 많이 먹으면 죽을 때 고생한댜” 극구 고집이시다.
자식이 돈을 쓸까봐 그러실 테지. 부모는 자식에게 있는 속, 없는 속까지 다 빼주면서, 받을 생각은 눈꼽만큼도 안하신다. 간신히 모셔들였지.
“속에 뭉쳐있는 게 있어요. 살아오는 동안 분하고, 억울한 것들이 많으셨죠. 욱하고 치밀어 오를 때가 있을 거예요. 그래도 젊었을 때는 괜찮았지만, 나이 들으셔선 위험한 거예요. 한 달치 약을 지어드릴 게요. 하루 두 번씩 드세요”
진맥을 하시더니 술술 풀어 놓으신다. 너무 용하게 맞추셔서 그런지 아무 말씀 않으시더라. “난 보약 안 먹어두 된대니깨....” 만 되풀이 히신다.
하긴 우리 엄마처럼 한 많은 세상 사신 분이 몇이나 계실까 ?
“기력이 없으셔서 걷기를 어려워 하세요. 보약도 같이 지어 주세요”
이제 남은 건 치과 하나다. 엄마 틀니를 다시 해드려야 한다. 십여년 전에 틀니를 했지만 아래쪽은 잇몸이 아프시다고 빼놓고 안 쓰셨지.
음식을 그냥 우물우물 삼키시는 게 너무 마음에 걸렸었다.
‘음식을 잘 드셔야 오래 사실 수 있지. 우리 엄마 십 년 더 사시기 프로젝트의 핵심이다’ 그동안 여러번 사정 사정해서 겨우 허락을 하셨으니 기대가 컸지.
둔산동 이용화치과를 찾아갔다.
“아래쪽은 틀니도 안 끼셔서 잇몸이 평평해 지셨어요. 그래서 틀니가 걸칠 곳이 없어요. 정 하시려면 임프란트 두 개를 심으시고, 틀니를 걸치셔야 해요.”
“여든 아홉이신데 임프란트를 견디실 수 있을까요 ?”
“신경이 적게 있는 앞쪽 잇몸에다 하면 가능하실 거예요. 사무장과 의논하세요” 나도 임프란트를 여러 개 해봐서 잘 알지만, 보통 일이 아니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를 병원에 들려야지, 찌르고 뚫고, 심고, 한 일년을 견뎌야 하는 일이 결코 쉽지를 않았는데.... 우리 엄마가 견디실 수 있으려나 ?
‘틀니도 못해 드리는 거 아냐 ? 진작 해드릴 걸....’ 눈 앞을 가로 막은 거대한 장벽에 가슴 한 쪽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었다. 엄마 얼굴이 다시 쳐다봐지더라. ‘엄마, 미안해요’
“사무장님. 연로하신 분들께서도 임프란트를 많이 하시나요 ?”
“가끔요. 많으시지는 않지요.” 어째 적극 권유하는 모양새가 아니더라.
“그리고, 이가 하나도 없으셔서 틀니도 임프란트도 보험 적용이 안돼요. 전액 본인 부담입니다.”
“이가 하나도 없으면 보험이 안돼요 ? 하나 있는 사람보다 더 딱한 사정인데 왜 안돼요 ?”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
“법이 그래요.” 할 말이 없지.
“오빠, 우리 가게에 오시는 할머니 한 분도 임프란트를 하시는데 먹지를 못하셔. 지레 돌아가실 것 같으시대. 우리 엄마 임프란트는 하지 말자”
엄마도 펄쩍 뛰시고, 동생들이 알고선 극구 반대를 하네.
‘이 걸 어쩌나. 오늘 종일 바빴는데, 보약 하나 해드린 거밖에 없으니....’
피곤하시다고 누워계신 엄마를 쳐다보았다.
‘엄마가 안 계신 세상, 어떻게 살아갈까 ?
가슴이 꽉 막혀오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