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쭉꽃의 슬픔
올해도 철쭉꽃은 화사하게 활짝 핀 꽃잎사이로 남모르는 서글픔을 살짝 감추고 따뜻한 봄바람에 방긋 거리며 웃고 있다.
우리들 철쭉의 슬픔을 누가 알아 주리오 하며 큰소리로 한번쯤은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 오리라” 같은 종족에 속하는 진달래꽃은 소월 선생님 덕분에 일찌감치 온 세상에 널리 알려져 봄꽃의 대명사가 되어 버렸다.
진달래꽃 뿐 아니라 개나리꽃, 복숭아꽃, 살구꽃, 매화, 벚꽃 등등 이른바 봄꽃의 선두그룹들은 우리보다 조금 먼저 세상에 태어난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온 세상 사람들의 환호와 축복을 받으며 의기양양하게 한껏 그 자태를 뽐내고 있다. 게다가 이 선두 그룹 꽃들은 저마다 다른 색깔 다른 모습으로 여기저기 자기들 끼리 무리를 지어 피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꽃들을 하나하나를 새로운 기분으로 아끼고 축하해 주고 있다.
그러다 보니 조금 뒤늦게 모습을 드러내는 우리 철쭉꽃들은 우선 이미 선두 그룹 봄꽃들의 화려한 축제를 만끽한 사람들의 눈에는 그렇게 놀랍지도, 신기하지도, 참신한 맛도 느낄 수 없는 그저 그런 꽃들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 철쭉꽃은 저 북녘 땅 백두산 정상에서부터 남쪽바다 제주도 한라산 정상까지, 한반도 전체에 산과 들과 거리와 길가 어디를 가리지 않고 방방곡곡 구석구석 떼를 지어 피기 때문에 정말 흔하고 흔한 - 그러다 보니 흔해서 귀한 줄 모르게 된, 그런 존재가 되어 버린 것 같다.
조금 늦게 태어나고 너무 흔해 빠지게 온 천지에 왕성하게 피는 바람에 우리 철쭉꽃들은 마치 옛날 아들 귀한 시절, 딸 많은 집안의 구박받던 서너 번째 딸들같이, 아무런 죄도 없지만 태어 날 때부터 고개 숙이고 눈치 보며 두 리 번 거리는 딱하고 서글픈 신세가 된 셈이다.
더욱이 먹고 살기 힘든 시절 입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라면 가장 대우 받던 때, 진달래꽃은 먹을 수 있는 꽃 이라서 참꽃이라고 대우 받았지만 그 사촌 같은 우리 철쭉꽃은 먹을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개꽃이라고 멸시까지 받았으니 그 당시 우리 철쭉꽃 조상님들 심정이 오죽 서글펐을까 생각하니 지금도 안쓰러운 마음 금할 수 없다.
그렇지만 알고 보면 우리 철쭉꽃처럼 대단한 봄꽃도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우선 역사적으로 신라시대 향가 ‘헌화가’에 등장하는, 어느 노인이 벼랑 끝에 핀 꽃을 힘겹게 왕비에게 드렸다는데 그 귀한 꽃이 바로 철쭉꽃이라고 한다. 왕비에게 드릴 정도로 화사하고 기품 있는 꽃이지만 비탈이나 벼랑같이 험한 곳에 피는 귀한 꽃- 그런 꽃이 바로 철쭉꽃의 역사적 이미지였던 것이다.
그래서 헌화가의 주인공은 바로 철쭉꽃인 셈이다. 현재 한반도에 자생하는 수 많은 식물종자 중에서 철쭉의 한 종류인 산철쭉은 전 세계적으로 한반도와 일본, 대마도에만 분포 되어있는 고유특산품 종이며 그래서 그 명칭도 코리안 아젤리아라고 불리고 있다한다. 그래서 산 철쭉꽃은 해외로 반출 할 때도 법적으로 승인을 받아야 하는 보호 및 관리 대상, 국가 보존품종이라고 한다.
철쭉의 종류로 산철쭉 외에도 겹철쭉, 흰 철쭉, 영산홍, 자산홍 등이 있는데 각 종류마다 독특한 색상과 자태가 정말 다채롭고 아름다워서 이제는 산이나 들 보다는 도시의 공원이나 아파트단지의 화단에서 더 흔하게 볼 수 있는 대표적 조경수로서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그리고 선두그룹 봄꽃들은 아시다시피 대부분 꽃만 따로 피고 꽃이 지면서 그때부터 잎이 나기 때문에 화려하게 피지만 뭔가 좀 허전하고 안쓰럽고 되바라진 느낌을 주지만 철쭉꽃은 은은한 연두색 잎사귀와 나란히 피면서 서로 색상과 모습이 조화를 이루어 원만하고 풍성하고 화사한 자태를 보여 주고 있다.
더욱이 우리나라 산 속에서 흔히 큰 자리를 차지하는 소나무 숲에서는 다른 꽃나무들은 그 소나무의 타감물질 때문에 제대로 자라지 못하지만, 철쭉만은 당당하고 씩씩하고 끄떡없이 살고 있으니 참으로 강하고 장한 식물인 셈이다. 계절의 여왕 5월이 되면 한반도를 지배하는 꽃은 진달래도 개나리도 벚꽃도 아니다. 오직 철쭉꽃만이 온 천지를 흐드러진 철쭉꽃 세상으로 빛내주고 있다. 이때가 되면 전국은 벌써 철쭉축제로 들썩 거리고 있다.
4월 하순 흑석산, 제암산을 시작으로 황매산, 지리산, 소백산, 한라산으로 이어지며 그리고 북쪽으로 북쪽으로 철쭉꽃의 장엄한 행진은 백두산 정상까지 계속된다. 해마다 철쭉꽃의 남북통일이 이루어지는 셈이다.
이 정도의 꽃이라면 비록 봄꽃 선두그룹에서 밀리고 진달래꽃같이 먹을 수도 없는 흔하디흔한 꽃이라고 해도 한반도의 대표적인 꽃 중의 하나로써 봄꽃의 왕자 자리 하나쯤은 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어린 시절 나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산중턱마을에 산 적이 있었는데 그 근처 골짜기에서는 봄이 되면 온갖 꽃들이 만발하여 꽃대궐이 되곤 했다. 어느 늦은 봄, 밤새 비바람이 몰아 친 다음 날, 깜쪽 같이 눈 부신 해가 뜨고 청명한 아침이 시치미 떼고 방긋이 웃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틈엔가 그 골짜기 빽빽한 바위들 틈새에 빨갛게 동그란 꽃들이 드문드문 고개를 꼿꼿이 들고 있었다.
진달래꽃, 벚꽃들의 시신들이 땅바닥에 널려있는 어수선한 큰바위,작은 바위 틈새에 난쟁이 같은 올망졸망한 철쭉꽃들이 바위들 틈새에 옹골차게 버티고 서서 간밤 그 험악했던 비바람도 견디고 예쁘고 장한 꽃망울을 터트리고 수줍게 수줍게 웃고 있었다. 바로 그날 그 시간부터 나도 그 귀엽고 당찬 봄꽃의 왕자 철쭉꽃의 영원한 팬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사실 내가 그 이후에도 철쭉꽃을 계속 좋아하게 된 이유는 그 꽃의 근성과 생태를 더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선 [은근]과 [끈기], 이것이 그의 남다른 근성이다. 두드러지거나 별나지 않으면서도 부드럽게 주위와 잘 어울리면서 한번 자리 잡은 곳에서는 악착같이 그 터전을 파고들어가 모질게 삶을 지켜나가는 바로 그 끈질김- 그것이다.
또한 대체로 작고 단단한 몸매와 강인한 뿌리의 활착력으로 비탈이건 바위틈이건 절벽 틈새에서도 집터를 일구며 살아나가고 여름철 태풍과 한겨울 북풍한설 모진 추위에도 옹골차게 버티며 살아가는 모습은 볼수록 장하기 이를데 없다. 그렇다 보니 때로는 우리나라[국화]를 무궁화가 아니라 철쭉꽃으로 했으면 어떨까하는 공상마저 해 보곤한다.
올해도 철쭉꽃은 여전히 전국 도처에서 왕성하게 피겠지만, 해가 갈수록 우선 먹을 것이 풍부하니 개꽃소리는 안 들을 것이고, 품종개량 덕분에 키도 커지고 꽂도 크고 실해져서 당당한 모습이 되었으니 좀 늦게 나온 봄꽂이라고 예전같이 무턱대고 소홀하게 대하지는 않을 것 같다. 철쭉꽂의 슬픔도 이제 옛말이 되기를 바라며 올해는 꼭 철쭉꽃축제 한 곳이라도 가 봐야겠다.
첫댓글 좋은글잘읽고갑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감사합니다.
원래 좋아했는데 님 덕분에 철쭉의 새로운 모습을 알게됐네요 감사합니다 ^^
고맙습니다.
철쭉은 참 화려한데 뭔가 분위기가 없어요.
진달래는 소박한데 뭔가 정이가요.
이렇게 얘기하면 철쭉의 슬픔에 소금 뿌리는 건가요? ㅎㅎ
생긴대로 사는거겠지요. 화려하면 화려한대로
소박하면 소박한대로 꽃이면 다 아름답지요.^^
철쭉의 화려함은 아마 [영산홍]계열을 두고 말씀하시는 듯 합니다. 하지만 고유의 철쭉은 바위틈새나 험한 비탈에 다부지게 뿌리를 박고 좀 초라해 보이는 꽃잎과 연두빛 끈적한 잎새를 수줍은 듯이 쏘옥 내밀고 살고 있지요.
촌스러운 [원조 철쭉]을 눈여겨 봐주시기 바람니다. 늘 감사합니다.
우리가 흔히 철쭉으로 알고 있는 품종들은 산철쭉 또는 영산홍입니다.
반면 진짜 오리지널 '철쭉'은 꽃이 크면서도 화려하지 않고 아주 연한 분홍색입니다.
주로 산에서 볼 수 있구요. 소박하면서도 은은하게 아름다운 꽃입니다. ^^
[푸른꿈]님의 말씀이 정답입니다. 제대로 핵심을 정리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산절로나절로
천만의 말씀입니다.
'원조 철쭉'은 산에서 자생하며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반면
'산철쭉'은 도심 한가운데서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는 역설을 애잔해 하던 차에
'철쭉'의 슬픔을 대변해 주신 글을 읽고 외려 반가왔습니다.
다시 한 번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해마다 뒷산에 참꽃꺽어 화병에 꼿았었는데 올해는 지나가버렸어요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살고있는 중국 청도에도 철쭉꽃이 많이 있습니다.잘 읽었습니다.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열심히 살수 밖에 다른 대안ㅇ디 없지요
감사합니다.
철쭉꽃처럼 생명력이 강해야 해요..요즈음은..세상살이가...팍팍해서...
찿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전에는 진달래랑 철쭉이랑 헷갈렸었는데...지금은 구분도하고 철쭉을 더 좋아하게 됐습니다..
안면도 수목원이 철쭉의 시기가 되면 참으로 아름답더군요...추천드립니다..ㅋ
기회가 되면 가 보고싶군요.
진달래꽃은 참꽂이라하기도하며 식용할수있으나
철쭉꽃은 진달래꽂과 닮았으나 식용을할수없어 이를구분하고자 개꽂으로불리우며
경상도지방에서는 " 연달래 "라고도부릅니다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 합니다
고맙습니다.
좋은글입니다.
감사합니다.
잘보구갑니다~~
감사합니다.
잘보았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