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는 사도 바울이 1차 선교여행을 마치고 가장 먼저 세운 갈라디아 지역의 교회를 향해 쓴 편지입니다. 갈라디아교회는 이미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복음이 훼손되어 그들이 ‘다른 복음’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사도 바울이 참지 못하고 보낸 것이 갈라디아서입니다. 그는 갈라디아서에서 다음과 같은 충격적인 말을 합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 갈 1:6-7
갈라디아서 1장 7절에 ‘그리스도의 복음’은 헬라어 소유격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이다”라고 주격으로도 해석이 가능합니다. 그러니까 그들에게 임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인데, 예수 그리스도만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여기는 자들이 무언가를 더했다는 것입니다. 예수 더하기 무엇입니다.
신앙은 명확합니다. 아무리 중요해 보이는 것도 예수 외에는 복음의 무게를 담아낼 수 없고, 예수보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늘 교회 안에 성령이 떠나신다면 몇 분이나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겠습니까? 성령이 떠나셔도 우리는 여전히 예배라는 이름으로 예배를 드릴 것이고, 가진 물질과 이 건물을 이용하여 무언가를 할 것입니다. 성령이 떠나시든 말든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는 것이 오늘의 교회의 현실은 아닌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예수로 충분하다는 것은 소극적인 신앙이 아닙니다. 그것은 가장 급진적인 고백입니다. ‘예수 더하기 아무것도’가 아니라 ‘예수만으로 전부’라는 선언입니다. 이 고백 위에 교회가 세워질 때, 그 교회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저는 한국 교회를 ‘겨울나무’에 종종 비유합니다. 겨울나무는 참으로 지혜롭습니다. 날씨가 추워질 것을 대비하여 가을부터 잎사귀를 다 떨어뜨립니다. 잎사귀만이 아닙니다. 꽃도, 열매도 다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습니다.
우리 눈에 겨울나무는 마치 죽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나무는 죽지 않았습니다. 모든 활동을 정지하되 뿌리는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잎사귀와 꽃과 열매가 있다면 이것들을 살리기 위해 뿌리에서부터 양분이 올라와야 하는데, 영하 10도, 20도에서는 나무의 몸통이 얼어버리기 때문에 뿌리에서 양분을 끌어올릴 수 없다는 것을 잘 아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겨울로 들어갈 준비를 하며 모든 것을 내려놓고 뿌리를 살리는 것입니다.
‘뿌리’를 뜻하는 영어 단어의 어원은 라틴어 ‘radix’입니다. 여기서 ‘radical’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원어적 의미로 보면 이것은 “본질로 돌아간다”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왜 한국 교회에 겨울이라는 계절을 허락하셨을까요? 목적은 분명합니다. 가짜 꽃, 가짜 잎사귀를 붙인 채 화려해 보이는 척하지 말고, 뿌리에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적으로 말하면 “복음으로 돌아가라”, “예수로 충분하다”는 고백으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사치하고, 힘의 논리로 무언가 하려는 시도를 다 내려놓고 뿌리를 돌보십시오. 뿌리가 살아 있는 나무는 훈풍이 부는 봄날에 반드시 잎사귀가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렇게 하십니다.
저희 교회는 건물이 없이 대학 강당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성전이 있는 교회에 갈 때마다 마음 한편에 부러운 마음이 올라옵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는 뿌리가 있다고 스스로 위로합니다. 오랜 역사를 가졌고 좋은 환경 속에서 신앙생활 하십니까? 그럴 때 오히려 예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고백할 위험이 더 클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겨울의 시즌을 맞은 이 때에, 한국 교회가 뿌리를 지켜 예수로 충분하다는 이 복음을 반드시 붙잡기를 바랍니다.
- 예수로 충분하다, 박광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