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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신실한 삶이 저물어간다
권정희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이 생에서의 마지막 날들을 보내고 있다.
98세로 미국 역사상 최장수 전직 대통령인 그는 지난 수십년 누구보다 생산적인 노년을 보냈다.
하지만 구순 즈음부터 암 발병, 낙상 등으로 어려움을 겪더니
지금은 피부암의 일종인 흑색종이 재발해 간과 뇌로 퍼진 상태이다.
카터 전 대통령은 더 이상 병원치료를 받지 않고 집에서 가족들과 남은 시간을 보내며
호스피스 케어를 받기로 결정했다.
죽음을 담담히 맞아들이겠다는 것이다.
카터센터가 지난 18일 성명을 통해 이 소식을 알리자 매스컴과 소셜미디어에는
이 특별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찬사가 줄을 이었다. 역사학자들, 인권운동가들,
민주 공화 양당 정치인들 그리고 일반국민들이 인류평화에 기여한 그의 공적을 기리고,
사랑과 연민으로 사람 돌보는 일에 앞장서온 그의 인도주의적 유산들에 경의를 표했다.
애틀랜타의 카터센터에는 방문객이 몰리고,
센터 웹사이트에는 그의 평안을 기원하는 메시지들이 쇄도하고 있다.
1980년 재선에 실패하고 초라하게 물러났던 39대 대통령이 이런 칭송의 주인공이 되리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백악관을 떠나 고향 조지아, 플레인즈에서 새롭게 시작한 인생 2막이
그에 대한 평가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퇴임 후 장장 42년이라는 세월이 그의 이미지를
부드럽게 바꿔놓은 측면이 있고, 무엇보다 이전투구의 정치판에서 드러나지 못했던 그의 진면목이
시간의 흐름을 타고 서서히 빛을 발한 덕분으로 보인다.
대통령은 대개 재임 시의 공적으로 평가받는 법인데
그는 퇴임 후의 역할로 존경받는 특이한 케이스이다.
카터 전 대통령의 삶은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준다.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건지, 무엇이 진정으로 승리하는 길인지에 대한 답이 그의 삶 안에 들어있다.
그가 삶을 통해 보여준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어떤 상황에서도 주저앉지 말라는 것일 것이다.
1981년 1월 20일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취임식 참석 후 귀향했을 때 그는 참담했다.
개솔린 가격 등 물가는 치솟고 이란 인질사태가 해결되지 않으면서 임기 말 그의 국정 지지도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덕분에 레이건은 무려 44개 주에서 현직 대통령을 누르며 압승했다.
인기 최악의 실패한 전직 대통령으로 돌아오니 그를 기다리는 것은 부채였다.
워싱턴에 가있는 동안 돌보지 못한 땅콩농장이 빚더미에 올라 앉아 있었다.
최정상의 자리에서 물러난 56세의 그에게 선택지는 없어 보였다. 땅콩농사 지으면서
조용히 노후를 보낼 것으로 짐작되었다. 게다가 실패의 아픔은 얼마나 컸을 것인가.
하지만 그는 놀라운 회복력으로 벌떡 일어나 필생의 과업들을 시작했다.
82년 카터센터를 설립해 세계 평화와 공중보건을 개선하는 일에 앞장서고,
84년부터는 해비탯 포 휴매니티에 참여해 집 없는 가족들에게 집 지어주는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로잘린 여사와 나란히 안전모 쓰고 못질 하는 노부부의 모습은 우리에게 친숙하다.
그렇게 20년이 지난 2002년 그는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세계가 좁다하고 분쟁지역마다 찾아다니며 중재에 나선 헌신의 결실이다.
1994년 6월에는 북한에 가서 김일성 주석을 만나 한반도 긴장완화에 기여하기도 했다.
세계가 분쟁으로 어려울 때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그를 찾은 이유는 신뢰감 때문이었다.
평소 그가 보여준 성실함, 정직성, 겸손함, 검소함 같은 덕목들이 그를 향한 신뢰감을 키웠다.
미국 대통령은 퇴임하면 세상 어디든 가서 풍요롭게 살 수가 있다.
연설 한번에 10만 달러대의 연설료, 대기업에 이름을 올리면 수백만 달러의 자문료는 기본이다.
하지만 카터는 퇴임 후 소박한 옛집으로 돌아갔다. 백악관 경험을 이용해 돈을 벌고 싶지는 않다,
부자가 되고 싶은 야망은 없다고 했다. 그는 욕심 없고 검소하다.
그것이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그의 힘이다.
대부분의 다른 정치인들과 그를 구분 짓는 또 한 가지는 정직성이다.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정치판에서 정직에 대한 그의 신념은 확고하다.
1976년 대선 당시 그는 “만약 내가 한번이라도 거짓말을 한다면, 내게 투표하지 말라”고 단언했다.
거짓말을 하면 대통령 될 자격이 없는 것이라고 그는 못 박았다.
워터게이트 스캔들 직후였던 당시 국민들은 그를 지도자로 택했다.
그가 겉치레와 탐욕의 세파에 휩쓸리지 않고 꿋꿋하게 자기 자신으로 살아낼 수 있었던 비결은
신앙이었다. 신앙이 있어 그는 소명의식을 갖고 살 수 있었다. 노쇠해 찾아드는 질병,
다가오는 죽음에도 신앙이 있어 그는 담담할 수 있다.
2019년 암 진단을 받았을 때 그는 말했다.
“물론 기도를 한다. 하지만 살려달라는 기도는 아니다. 죽음을 맞는 바른 태도를 갖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부탁했다. 그러고 나자 죽음에 대해 완전히 편안해졌다.
죽을지 살지는 내게 전혀 중요하지 않다.”
같은 조지아 출신의 민주당 정치인이자 목사인 라파엘 워녹 연방상원의원은
최고의 경의로 카터를 기렸다. “인생의 계절들을 통과하며 지미 카터 대통령은 위대한 신앙인으로서,
하느님과 동행했다. 이 여린 과도의 시간 중에도 하느님은 분명 그와 함께 걷고 계신다.”
신실했던 한 삶이, 만인의 존경을 받으며, 저물어가고 있다.
<미주한국일보 논설위원/주필 역임/서울본사 외신부 기자(견습31기) 역임/
숙명여고-서울대 사대 불어교육과 졸/LA거주>
마르지 않는 지식의 샘
이효정
존경하는 김승웅방장님,
고맙습니다.
부디,부디,,,오래 오래 건행하시어
마르코글방이 마르지 않는 지식의 샘으로
우리들의 삶이 보다 윤택하게 되기를 감히 고개 숙여 부탁드려봅니다~~^^
감사합니다.
이효정 올림
<세계한인여성회장단 총재, 국제로타리 3640지구 다문화센터 위원장,
business woman. 부군:Dr.게버(독일 물리학 박사)>
우체국 가는 길
김영교 - 소통으로 가는 길
지난가을은 참으로 의미 깊었다.
마음 퍽 조이기도하면서 많이 흐뭇하기도했다. 무엇을 더 바랄것인가. 나에게도 이런 날이 오다니...
나름대로 준령 넘어서 해 낸 책 출판이 그랬다.
준비해 오던 수필집이 세상에 나오게 된 그 안도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내 삶을 담은 마지막 챕터다.
스스로에게 내어 준 문학의 결산이라 볼 수 있다. 서울에서 선적을 알려왔다.
몇 주 후 드디어 가슴설레이는 이웃 롱비치 항에 도착한 것이다.
정박해있는 수많은 화물선들...선상에서 내리는 작업은 한 달 남짓 중단되어 있었다.
부두 인부들의 거부와 부재로 하역이 지연되어 안타까웠다.
눈에 훤히 보이는 옆 동네 롱비치 바다에 떠있는 수많은 저 화물선들,
그 중에 나의 수필집 짐짝이 있는데! 속이탔다. 결론은 책없이 책 잔치를 치러야 했다.
참석을 약속한 그 많은 발걸음들을 '실망시켜서는 않되는데' 였다.
CNN 뉴스에 귀를 쏟아부었다. 하역 일꾼들의 거부와 불응, 소통되지 않는 불시착 유통,
코비나 세태 뉴스에 마음이 쫄아들었다. 이미 예약된 그리고 약속된 계획들을 밀고 나가야 될 황이었다.
초조해졌다. 초청,목사님 축하 예배 인도를 선두로 단체장들의 축하와 축가를 포함한 평설문 순서며
또 이미 예약된, 장소와 음식, 맡은 프로그램 순서를 무산시킬 수 없어
밀고 나갈 용기가 나는 필요했다. 가슴 조이며 일을 진척시켜야 했다.
출판기념회가 드디어 열렸다.
재미수필가협회 토랜스 방 주최였다. 급하게 급하게 항공편으로 우송된 수필집 8권이
순서 진행을 그렇게 아슬아슬 넘어가게 해주었다. 마침 언니 김수영 목사의 '잊을 수 없는 스코필드박사와
에델바이스의 추억'은 금상첨화였다. 모두가 입을 모아 순서진행이 그런대로 다 좋았다고,
식사도 좋았다고 다독여줬을 때 그때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내 삶 여정 그 구비구비 문학과 삶이 녹아있는 ‘물처럼, 바람처럼’을 기독교서점에서 받아 안고
한참 눈물이 났다. 아슬 아슬, 얼마나 고맙고 반가웠는지 모른다.
더 지연되지 않은것만도 다행으로 여겼다. 마침 축하객이 남겨놓은 주소록이 있어
이제는 발송할 일만 남았다. 무게가 있어 매일 4, 5권씩 부치러 우체국에 간다.
백팩에 넣어 짊어지고 걸어서 우체국 정문을 들어선다. 줄서서 숨을 고르며 기다림에 쉰다.
우편 멜로 발송한다. 책 송료는 $3달라 85센트다. 큰 봉투에 조심스레 넣어 테이프 눌러
안전하게 봉한 후 예쁜 우표 6장이 탁탁 마침 도장을 받으면 끝이다.
가방에 짊어지고 가는 내 발걸음은 우체국 거리를 조금도 버거워하지 않는다.
등교하는 초등생이 된 기분이였다.
운동삼아 여섯 블럭 남짓 걸어서 가는 거리- 돌아오는 길은 윌슨공원 입구 진입로다.
키 크고 가지 푸른 나무들이 줄서서 지역을 지키는 큰 규모의 공원이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걷는 각종 애완견도 만난다. 그동안 조마조마 걱정 먼지 뒤집어 쓴 내 모습이
확 트이기를 바라며 이 공원 입구에서 부터 탁탁 털어낸다.
폐부 깊이 들여 마시는 맑은 공기는 발뒤꿈치까지 찡하게 흘러내린다.
1마일이 넘는 산책로에는 약간 경사진 언덕도 있어 오르내리는 곳마다
햇볕도 바람도 밟는 흙도 정감있게 따라붙는다. 모두 친근하다.
도시 한복판에 축소된 자연의 일부, 이런 녹지대를 지정해 놓고 웰 리빙 가슴으로 사람을 품어준다.
어느덧 나도 편안한 마음이 된다. 물도 흐르고 구름도 흐르고 음악도 흐른다.
주말에는 뮤지컬이 이 공원 야외 광장에서 자연스럽게 흐른다. 걷다 힘들면 앉아 쉬면서
흐르는 음악에 나도 흘러가게 내버려둔다.
전자악기와 공연음악은 공원 전체를 흔들고 덮을만큼 크게 흘러퍼진다.
얼굴색이 다 다른 산책 꾼들, 옷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다. '하이!'로 인사를 나눈다.
한 목적 건강을 향한 우린 모두는 가까운 지구촌 이웃들이다.
함성과 팀 힘이 약동하는 현장이 이 공원에는 여럿있다. 농구 검도 야구 정구 하키 배드민턴 코트
또 말 발굽 코트와 애들 놀이터에 그네, 그리고 총천연색 미끄름틀도 있다.
여기저기 운동할 때의 함성은 활력을 솟구치게 해준다. 피크닉 테이블도 널널하게 많다.
화요일과 주말에는 화머스 마켓의 무공해 과일과 채소 견과류,
그리고 달걀과 토종꿀 팝콘, 뻥튀기- 공원은 재미있는 야외 가족 단체 휴식 공간이 되기도 한다.
공원 인구가 많아지고 있다. 애 어른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코비나 때문에
집콕 인구 이제 모두는 걸으며 웰빙에 가까이 가고 있다.
이렇게 공원이 보호 관리되고 있는 것이 지역주민에게는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도시안에 소규모지만 자연의 한 귀퉁이를 세계수준에 맞게 개발하고 발전시키면서 관리하고 즐기며 누리는
자격 있는 사람들 견해가 돋보인다. 햇볕 좋아 걷고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건강에도 관심이 많다.
그 인구가 많아지고 있다. 그 뿐인가. 공원 같은 축소된 자연을 즐기며 보존, 관리하여
다음 세대에 연결 전달하는 사람들, 휴지며 나무막대기 집어 버리며 그렇게 누리며 환경보호,
상생에 앞장 서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이 기쁨과 흥분이 오래 지속 되면 좋겠다.
모자와 마스크를 착용, 나는 내 속도로 쾌보를 유지하며 걸어간다. 해를 안기도 등지기도 하면서.
마침 우체국과 가까운 거리에 공원이란 이름으로 축소된 자연, 바로 이 윌슨공원이 있어 여간 고맙지가 않다.
비행기나 자동차 협조 없이도 지구별의 한구석을 이렇게 즐길 수 있으니 말이다.
책 발송 후 바로 이 공원 산책로 진입은 그래서 맛있는 후식을 만나는 기쁨이다.
우체국 가는 길은 소통으로 가는 길이다.
<시인, 수필가/在美 시인협회 이사 /저서:『하오의 사중주』 제 1집(용글샘 동인지.수필집-동화서적)
『하오의 사중주』제 2집(용글샘 동인지. 시.수필. 단편집-동화서적), 『우슬초 讚歌』(혜화당)제1시집,
『신호등』 한.영시(혜화당)제2시집, 『물 한 방울의 기도』제3시집(혜화당 2002년)/
서울사대부고~이대 영문학과 졸업/2003.1.제 5회 해외문학상 수상>
한 신실한 삶이 저물어간다
권정희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이 생에서의 마지막 날들을 보내고 있다.
98세로 미국 역사상 최장수 전직 대통령인 그는 지난 수십년 누구보다 생산적인 노년을 보냈다.
하지만 구순 즈음부터 암 발병, 낙상 등으로 어려움을 겪더니
지금은 피부암의 일종인 흑색종이 재발해 간과 뇌로 퍼진 상태이다.
카터 전 대통령은 더 이상 병원치료를 받지 않고 집에서 가족들과 남은 시간을 보내며
호스피스 케어를 받기로 결정했다.
죽음을 담담히 맞아들이겠다는 것이다.
카터센터가 지난 18일 성명을 통해 이 소식을 알리자 매스컴과 소셜미디어에는
이 특별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찬사가 줄을 이었다. 역사학자들, 인권운동가들,
민주 공화 양당 정치인들 그리고 일반국민들이 인류평화에 기여한 그의 공적을 기리고,
사랑과 연민으로 사람 돌보는 일에 앞장서온 그의 인도주의적 유산들에 경의를 표했다.
애틀랜타의 카터센터에는 방문객이 몰리고,
센터 웹사이트에는 그의 평안을 기원하는 메시지들이 쇄도하고 있다.
1980년 재선에 실패하고 초라하게 물러났던 39대 대통령이 이런 칭송의 주인공이 되리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백악관을 떠나 고향 조지아, 플레인즈에서 새롭게 시작한 인생 2막이
그에 대한 평가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퇴임 후 장장 42년이라는 세월이 그의 이미지를
부드럽게 바꿔놓은 측면이 있고, 무엇보다 이전투구의 정치판에서 드러나지 못했던 그의 진면목이
시간의 흐름을 타고 서서히 빛을 발한 덕분으로 보인다.
대통령은 대개 재임 시의 공적으로 평가받는 법인데
그는 퇴임 후의 역할로 존경받는 특이한 케이스이다.
카터 전 대통령의 삶은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준다.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건지, 무엇이 진정으로 승리하는 길인지에 대한 답이 그의 삶 안에 들어있다.
그가 삶을 통해 보여준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어떤 상황에서도 주저앉지 말라는 것일 것이다.
1981년 1월 20일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취임식 참석 후 귀향했을 때 그는 참담했다.
개솔린 가격 등 물가는 치솟고 이란 인질사태가 해결되지 않으면서 임기 말 그의 국정 지지도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덕분에 레이건은 무려 44개 주에서 현직 대통령을 누르며 압승했다.
인기 최악의 실패한 전직 대통령으로 돌아오니 그를 기다리는 것은 부채였다.
워싱턴에 가있는 동안 돌보지 못한 땅콩농장이 빚더미에 올라 앉아 있었다.
최정상의 자리에서 물러난 56세의 그에게 선택지는 없어 보였다. 땅콩농사 지으면서
조용히 노후를 보낼 것으로 짐작되었다. 게다가 실패의 아픔은 얼마나 컸을 것인가.
하지만 그는 놀라운 회복력으로 벌떡 일어나 필생의 과업들을 시작했다.
82년 카터센터를 설립해 세계 평화와 공중보건을 개선하는 일에 앞장서고,
84년부터는 해비탯 포 휴매니티에 참여해 집 없는 가족들에게 집 지어주는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로잘린 여사와 나란히 안전모 쓰고 못질 하는 노부부의 모습은 우리에게 친숙하다.
그렇게 20년이 지난 2002년 그는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세계가 좁다하고 분쟁지역마다 찾아다니며 중재에 나선 헌신의 결실이다.
1994년 6월에는 북한에 가서 김일성 주석을 만나 한반도 긴장완화에 기여하기도 했다.
세계가 분쟁으로 어려울 때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그를 찾은 이유는 신뢰감 때문이었다.
평소 그가 보여준 성실함, 정직성, 겸손함, 검소함 같은 덕목들이 그를 향한 신뢰감을 키웠다.
미국 대통령은 퇴임하면 세상 어디든 가서 풍요롭게 살 수가 있다.
연설 한번에 10만 달러대의 연설료, 대기업에 이름을 올리면 수백만 달러의 자문료는 기본이다.
하지만 카터는 퇴임 후 소박한 옛집으로 돌아갔다. 백악관 경험을 이용해 돈을 벌고 싶지는 않다,
부자가 되고 싶은 야망은 없다고 했다. 그는 욕심 없고 검소하다.
그것이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그의 힘이다.
대부분의 다른 정치인들과 그를 구분 짓는 또 한 가지는 정직성이다.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정치판에서 정직에 대한 그의 신념은 확고하다.
1976년 대선 당시 그는 “만약 내가 한번이라도 거짓말을 한다면, 내게 투표하지 말라”고 단언했다.
거짓말을 하면 대통령 될 자격이 없는 것이라고 그는 못 박았다.
워터게이트 스캔들 직후였던 당시 국민들은 그를 지도자로 택했다.
그가 겉치레와 탐욕의 세파에 휩쓸리지 않고 꿋꿋하게 자기 자신으로 살아낼 수 있었던 비결은
신앙이었다. 신앙이 있어 그는 소명의식을 갖고 살 수 있었다. 노쇠해 찾아드는 질병,
다가오는 죽음에도 신앙이 있어 그는 담담할 수 있다.
2019년 암 진단을 받았을 때 그는 말했다.
“물론 기도를 한다. 하지만 살려달라는 기도는 아니다. 죽음을 맞는 바른 태도를 갖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부탁했다. 그러고 나자 죽음에 대해 완전히 편안해졌다.
죽을지 살지는 내게 전혀 중요하지 않다.”
같은 조지아 출신의 민주당 정치인이자 목사인 라파엘 워녹 연방상원의원은
최고의 경의로 카터를 기렸다. “인생의 계절들을 통과하며 지미 카터 대통령은 위대한 신앙인으로서,
하느님과 동행했다. 이 여린 과도의 시간 중에도 하느님은 분명 그와 함께 걷고 계신다.”
신실했던 한 삶이, 만인의 존경을 받으며, 저물어가고 있다.
<미주한국일보 논설위원/주필 역임/서울본사 외신부 기자(견습31기) 역임/
숙명여고-서울대 사대 불어교육과 졸/LA거주>
마르지 않는 지식의 샘
이효정
존경하는 김승웅방장님,
고맙습니다.
부디,부디,,,오래 오래 건행하시어
마르코글방이 마르지 않는 지식의 샘으로
우리들의 삶이 보다 윤택하게 되기를 감히 고개 숙여 부탁드려봅니다~~^^
감사합니다.
이효정 올림
<세계한인여성회장단 총재, 국제로타리 3640지구 다문화센터 위원장,
business woman. 부군:Dr.게버(독일 물리학 박사)>
우체국 가는 길
김영교 - 소통으로 가는 길
지난가을은 참으로 의미 깊었다.
마음 퍽 조이기도하면서 많이 흐뭇하기도했다. 무엇을 더 바랄것인가. 나에게도 이런 날이 오다니...
나름대로 준령 넘어서 해 낸 책 출판이 그랬다.
준비해 오던 수필집이 세상에 나오게 된 그 안도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내 삶을 담은 마지막 챕터다.
스스로에게 내어 준 문학의 결산이라 볼 수 있다. 서울에서 선적을 알려왔다.
몇 주 후 드디어 가슴설레이는 이웃 롱비치 항에 도착한 것이다.
정박해있는 수많은 화물선들...선상에서 내리는 작업은 한 달 남짓 중단되어 있었다.
부두 인부들의 거부와 부재로 하역이 지연되어 안타까웠다.
눈에 훤히 보이는 옆 동네 롱비치 바다에 떠있는 수많은 저 화물선들,
그 중에 나의 수필집 짐짝이 있는데! 속이탔다. 결론은 책없이 책 잔치를 치러야 했다.
참석을 약속한 그 많은 발걸음들을 '실망시켜서는 않되는데' 였다.
CNN 뉴스에 귀를 쏟아부었다. 하역 일꾼들의 거부와 불응, 소통되지 않는 불시착 유통,
코비나 세태 뉴스에 마음이 쫄아들었다. 이미 예약된 그리고 약속된 계획들을 밀고 나가야 될 황이었다.
초조해졌다. 초청,목사님 축하 예배 인도를 선두로 단체장들의 축하와 축가를 포함한 평설문 순서며
또 이미 예약된, 장소와 음식, 맡은 프로그램 순서를 무산시킬 수 없어
밀고 나갈 용기가 나는 필요했다. 가슴 조이며 일을 진척시켜야 했다.
출판기념회가 드디어 열렸다.
재미수필가협회 토랜스 방 주최였다. 급하게 급하게 항공편으로 우송된 수필집 8권이
순서 진행을 그렇게 아슬아슬 넘어가게 해주었다. 마침 언니 김수영 목사의 '잊을 수 없는 스코필드박사와
에델바이스의 추억'은 금상첨화였다. 모두가 입을 모아 순서진행이 그런대로 다 좋았다고,
식사도 좋았다고 다독여줬을 때 그때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내 삶 여정 그 구비구비 문학과 삶이 녹아있는 ‘물처럼, 바람처럼’을 기독교서점에서 받아 안고
한참 눈물이 났다. 아슬 아슬, 얼마나 고맙고 반가웠는지 모른다.
더 지연되지 않은것만도 다행으로 여겼다. 마침 축하객이 남겨놓은 주소록이 있어
이제는 발송할 일만 남았다. 무게가 있어 매일 4, 5권씩 부치러 우체국에 간다.
백팩에 넣어 짊어지고 걸어서 우체국 정문을 들어선다. 줄서서 숨을 고르며 기다림에 쉰다.
우편 멜로 발송한다. 책 송료는 $3달라 85센트다. 큰 봉투에 조심스레 넣어 테이프 눌러
안전하게 봉한 후 예쁜 우표 6장이 탁탁 마침 도장을 받으면 끝이다.
가방에 짊어지고 가는 내 발걸음은 우체국 거리를 조금도 버거워하지 않는다.
등교하는 초등생이 된 기분이였다.
운동삼아 여섯 블럭 남짓 걸어서 가는 거리- 돌아오는 길은 윌슨공원 입구 진입로다.
키 크고 가지 푸른 나무들이 줄서서 지역을 지키는 큰 규모의 공원이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걷는 각종 애완견도 만난다. 그동안 조마조마 걱정 먼지 뒤집어 쓴 내 모습이
확 트이기를 바라며 이 공원 입구에서 부터 탁탁 털어낸다.
폐부 깊이 들여 마시는 맑은 공기는 발뒤꿈치까지 찡하게 흘러내린다.
1마일이 넘는 산책로에는 약간 경사진 언덕도 있어 오르내리는 곳마다
햇볕도 바람도 밟는 흙도 정감있게 따라붙는다. 모두 친근하다.
도시 한복판에 축소된 자연의 일부, 이런 녹지대를 지정해 놓고 웰 리빙 가슴으로 사람을 품어준다.
어느덧 나도 편안한 마음이 된다. 물도 흐르고 구름도 흐르고 음악도 흐른다.
주말에는 뮤지컬이 이 공원 야외 광장에서 자연스럽게 흐른다. 걷다 힘들면 앉아 쉬면서
흐르는 음악에 나도 흘러가게 내버려둔다.
전자악기와 공연음악은 공원 전체를 흔들고 덮을만큼 크게 흘러퍼진다.
얼굴색이 다 다른 산책 꾼들, 옷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다. '하이!'로 인사를 나눈다.
한 목적 건강을 향한 우린 모두는 가까운 지구촌 이웃들이다.
함성과 팀 힘이 약동하는 현장이 이 공원에는 여럿있다. 농구 검도 야구 정구 하키 배드민턴 코트
또 말 발굽 코트와 애들 놀이터에 그네, 그리고 총천연색 미끄름틀도 있다.
여기저기 운동할 때의 함성은 활력을 솟구치게 해준다. 피크닉 테이블도 널널하게 많다.
화요일과 주말에는 화머스 마켓의 무공해 과일과 채소 견과류,
그리고 달걀과 토종꿀 팝콘, 뻥튀기- 공원은 재미있는 야외 가족 단체 휴식 공간이 되기도 한다.
공원 인구가 많아지고 있다. 애 어른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코비나 때문에
집콕 인구 이제 모두는 걸으며 웰빙에 가까이 가고 있다.
이렇게 공원이 보호 관리되고 있는 것이 지역주민에게는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도시안에 소규모지만 자연의 한 귀퉁이를 세계수준에 맞게 개발하고 발전시키면서 관리하고 즐기며 누리는
자격 있는 사람들 견해가 돋보인다. 햇볕 좋아 걷고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건강에도 관심이 많다.
그 인구가 많아지고 있다. 그 뿐인가. 공원 같은 축소된 자연을 즐기며 보존, 관리하여
다음 세대에 연결 전달하는 사람들, 휴지며 나무막대기 집어 버리며 그렇게 누리며 환경보호,
상생에 앞장 서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이 기쁨과 흥분이 오래 지속 되면 좋겠다.
모자와 마스크를 착용, 나는 내 속도로 쾌보를 유지하며 걸어간다. 해를 안기도 등지기도 하면서.
마침 우체국과 가까운 거리에 공원이란 이름으로 축소된 자연, 바로 이 윌슨공원이 있어 여간 고맙지가 않다.
비행기나 자동차 협조 없이도 지구별의 한구석을 이렇게 즐길 수 있으니 말이다.
책 발송 후 바로 이 공원 산책로 진입은 그래서 맛있는 후식을 만나는 기쁨이다.
우체국 가는 길은 소통으로 가는 길이다.
<시인, 수필가/在美 시인협회 이사/저서:『하오의 사중주』 제 1집(용글샘 동인지.수필집-동화서적)
『하오의 사중주』제 2집(용글샘 동인지. 시.수필. 단편집-동화서적), 『우슬초 讚歌』(혜화당)제1시집,
『신호등』 한.영시(혜화당)제2시집, 『물 한 방울의 기도』제3시집(혜화당 2002년)/
서울사대부고~이대 영문학과 졸업/2003.1.제 5회 해외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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