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세 깊고 물 좋은 전남 담양 추월산 계곡에 ‘술익는 마을’ 하나가 있다. ‘남도의 젖줄’ 영산강의 시원(始原)을 뒤로하고 앞으로는 널따란 벼논, 산비탈 군데군데 밀밭이 보이는 용면 두장마을. 천년의 역사를 가진 추성주(秋成酒)를 빚는 양조장 ‘추성고을’(대표 양대수·50)이 자리한 곳이다.
#1,000년의 역사 ‘추성주’
추성주는 통일신라 경덕왕 때부터 고려 성종 때까지 250여년간 추성군으로 불린 담양의 지명에서 따온 술 이름이다. 이 술의 역사는 추월산 자락의 천년고찰 연동사에서 시작됐다. 고려초 창건된 연동사는 지금도 건재한데 이곳 스님들이 건강을 지키기 위해 빚어 마시던 곡차가 사하촌으로 전해져 내려온 것이다. 어찌나 맛이 좋던지 마시면 신선이 된다 해서 ‘제세팔선주(濟世八仙酒)’로 불리기도 했다. 1756년 담양부사 이석희가 이곳 풍물에 대해 쓴 ‘추성지’에는 ‘스님들이 절 주변에서 자라는 갈근·두충·오미자 등 갖가지 약초와 보리·쌀을 원료로 술을 빚어 곡차로 마시더라’라는 고려 문종 때 참지정사를 지낸 이영간(담양이씨 시조)의 증언을 담아놓고 있다.
또 이곳 출신으로 조선시대 가사문학의 대가로 꼽히던 면앙정 송순이 과거급제 60주년을 기념하는 연회에서 참석한 손님에게 추성주를 대접했다는 기록이 전해지는 등 조선 말까지 그 명성이 서울 장안에 남아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당연히 진상품이 됐고 고관대작에게 보내는 상납주로도 각광을 받았다.
#4대째 대물림
모든 전통주가 그렇듯이 추성주도 일제시대에 명맥이 끊길 위기를 맞지만 담양의 남원 양씨 가문에서 비법을 고이 간직해온 덕분에 ‘전통 명주’의 반열에 올라 있다.
추성고을 대표 양씨는 20대 초반부터 공무원이던 아버지로부터 추성주 빚는 법을 배웠다. 농협에 다닌 양씨는 업무로 늘 바빴지만 증조부(1870~1957) 때부터 내려온 양조술을 멈추게 할 수는 없다고 다짐했다. 동갑내기 부인 전경희씨와 함께 부친이 들려주는 ‘가문의 비법’을 하나하나 익혀나갔다. 1988년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대(代)를 이어야 하고 확실하게 대물림을 하라”는 유언까지 남기자 본격적으로 인근 대학과 연구기관을 찾아다니며 이론화 작업에 매달렸다. 90년부터 소량생산을 하면서 비방을 다듬은 끝에 2000년말 국내 22번째 ‘전통식품 명인’으로 지정받았다. 두 세기에 걸친 양씨 가문의 ‘술실력’이 드디어 햇빛을 보기에 이른 것이다.
#‘양주보다 뒤끝 좋은 토속주’
추성주의 강점은 무엇보다 뒤끝이 좋다는 것이다. 깔끔한 맛과 향이 양주와 비슷하다. 발효·숙성 기술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전통주 가운데 가장 많은 13가지 약초가 들어가는 약술이기도 하다. 알코올 도수는 25도. 한약재 성분 때문에 실제 체감도수는 30~40도로 느껴진다.
제조과정은 다른 술보다 세심한 손길이 더해진다.
순곡과 약초를 숙성시켜 1차로 약주(발효주)를 만든 후 2번 더 증류를 거친다는 것이 두드러진 특징이다. 재료도 모두 담양에서 난 것만을 쓴다. 우선 깨끗한 찹쌀과 멥쌀을 씻고 졸졸 흐르는 물에 12시간 담가뒀다가 물을 빼고 수증기로 고두밥을 짓는다.
차게 식힌 고두밥에다 엿기름 가루와 술빚는 용수를 넣고 섭씨 55~65도가 되도록 불을 넣어 당화액(糖化液)을 만들어 놓는다. 이것을 25도로 식힌 다음 누룩과 두충·계수나무 껍질·우슬(쇠무릎)·연꽃열매·산약·강활·율무·멧두릅 뿌리 등을 넣고 보름 정도 발효와 숙성 과정을 거치면 알코올 성분 15도의 약주가 된다.
다시 이를 소주고리에 넣고 데우면 알코올 40도짜리 증류주가 나온다. 이 증류주에 홍화·구기자·음양곽·갈근·오미자·상심자 등을 함께 달인 약물을 넣고 30일 숙성시킨 후 걸러내기를 한 후에 섭씨 20도에서 한달 더 숙성시킨 다음 대나무숯으로 여과시키면 25도짜리 미황색의 추성주가 탄생한다.
추성주는 순곡으로 빚고 2번이나 증류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발효주와는 달리 장기간 보관이 가능하다. 차게 보관하면 맛이 더욱 좋아진다. 각종 한약재를 넣은 까닭에 혈액순환과 강장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열·진정·구충·소염·당뇨·신경통에도 좋고 정기적으로 마시면 노화를 막고 피부에도 좋다는 고문헌 기록도 남아 있다. 안주로는 생선회나 생고기가 제일이고 과일이나 죽순회도 좋다. 담양의 대표음식인 떡갈비에 곁들이면 술맛이 더해진다.
〈담양|글 배명재기자 ninaplus@kyunghyang.com〉
〈사진 정지윤기자 color@kyunghyang.com〉
[전통주 기행]‘5대 물림’예약 가문의 자부심
추성고을 대표 양대수씨(사진)는 담양군 의회 의원이다.
그의 술 빚는 정성과 집념에 감동한 지역민이 심부름꾼으로 내세운 것이다. 양씨는 “투잡(two job)을 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추성주가 널리 인정을 받고 있다는 보람 때문에 피곤할 겨를이 없다”고 말했다.
아버지 유지를 받들어 직장을 그만두고 양조장을 차렸지만 그때만 해도 자신이 없었다. 부인 전경희씨의 격려가 언제나 버팀목이 됐다. “지문이 지워질 만큼 멥쌀을 씻고 산비탈을 오가며 약초를 캐온 아내가 없었다면 추성주는 없었을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부부의 술사랑은 금방 명주(名酒) 탄생을 예고했다. 1991년 정식으로 정부로부터 주류제조 면허를 얻고 이듬해부터 소량이지만 시장에 내놓을 만큼 상품성도 평가받기 시작했다. 96년부터 일본수출 길도 열렸다. 드디어 본격 가업을 꾸린 지 12년 만에 ‘명인’이란 칭호까지 얻자 사업 규모가 불어났다. 전남지역에서 술명인은 양씨 단 한사람뿐이다.
벌이는 점차 나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경쟁력 있는 대형 주류업체의 틈바구니에 끼여 있고 시설 현대화에 투자한 자금 때문에 아직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민속주’ 가운데 유일하게 일본 판매망을 갖고 있고 우리 술에 대한 젊은층의 관심이 높아지는 데 희망을 걸고 있다.
든든한 것은 객지생활을 하던 딸 소영씨(27)가 대를 잇겠다고 나선 것이다. 대학에서 상업예술을 전공한 그가 만든 상표 디자인은 추성주의 품위를 한 단계 높였다.
전자공학을 배우다 군입대한 아들 재창씨(23)마저도 전공을 발효학으로 바꿔 ‘5대 물림’을 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현재 추성주는 대나무형 도자기와 육각 유리병에 넣어 8가지 세트로 팔리고 있다. 가격은 1만~5만원대. 추성주보다 도수가 낮은 대잎술도 2000년 5월부터 내놓아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쌀과 현미·대나무 잎을 주원료하고 대추·구기자 등 10여 가지 약재를 넣어 만든 발효주로 병당 알코올 도수 12도짜리는 2,500원, 15도짜리는 3,000원이다. 술빛이 대나무잎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초록색이다. 추성주 못지않게 뒤끝이 개운하고 부드러워 여성들이 즐겨 찾는다.
양씨는 “추성주 재료가 워낙 비싸 소비자에게 높은 가격으로 내놓을 수밖에 없는 고민이 있다”고 말했다. 구입은 (061)383-3011이나 홈페이지(www.chusungju.co.kr)에서 할 수 있다.
〈담양|배명재기자〉
[전통주 기행]가을달 기절시킨 ‘팔선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랑노래는 고려속요 ‘만전춘’이다. 지금까지 이렇게 멋지고 절절한 애정표현을 접한 적이 없다. 로미오와 줄리엣에도, 춘향전에도, 금병매에도 이런 도수(度數)의 사랑고백은 나오지 않는다.
‘얼음 위에 댓잎 자리 보아 임과 나와 얼어죽을망정,
얼음 위에 댓잎 자리 보아 임과 나와 얼어죽을망정,
정둔 이 밤 더디 새오시라 더디 새오시라’
5년 전인가. 대나무골 담양의 추월산에 가서 양대수 도가의 대잎술을 들면서 취기와 치기에 젖어 이런 ‘노가바’를 흥얼거렸다.
‘댓잎 가을달 띄워 벗과 나와 뻗어버릴망정
댓잎 가을달 띄워 벗과 나와 뻗어버릴망정
취한 이 밤 더디 새오시라 더디 새오시라’
그 가을 밤, 소설가 이지흔씨의 반흥정(半欣亭)에서 우리는 반만 즐기자는 정자 주인의 금계를 깨고 흥청망청으로 즐겨버렸다. 정자 주인도 종내는 신선이 된 양 기꺼워했는데, 그 어느 석심철장(石心鐵腸)이라도 그때는 그리 될 수밖에 없었다.
상상해보라. 대숲에 가을달이 휘영청 떠 있고 숲을 흔들며 밤바람 소리가 초로의 벗님네들 상심을 훑고 지나갈 때, 댓잎 잔에 넘쳐 흐르는 팔선주를 일배 부일배 수작하며 가을 시름을 달래는 그림 같은 정경을.
이렇게 만난 추성주는 2년 뒤에 연동사라는 절터에서 나를 또 한번 기절시켰다. 금성산성 자락에 있는 연동사는 바로 추성주가 그 독특한 향미를 얻은 탯자리로 몇 년 전에 한 스님이 폐허를 일으켜 잘 가꾸어놓았다.
그곳 암혈 아래 지장보살이 계시는데 아주 시린 겨울날 스님 몰래 보살의 거처로 숨어들어 25도짜리 추성주로 몸을 덥히면서 육포를 씹었다.
좋은 술이 다 그렇듯 추성주는 빨리 취하고 천천히 깬다. 바위 틈에서 칼바람을 피하면서 한 모금 두 모금 기울인 술병이 발 아래 세 병째 뒹군 것을 본 뒤로 나는 기억을 놓쳐버렸다.
꿈속을 헤매듯 담양 인근의 벗님들을 차례차례 만나 정배를 나누고 기분 좋은 상태로 명정에서 깨어난 것은 그로부터 사흘 뒤. 눈이 펄펄 내리는 창평 오일장의 포장국밥집에서 국수를 말아 속을 풀면서 곁들인 술은 12도 짜리 ‘대잎술’이었다.
〈한송주|언론인〉
*출처: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