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꿈은 시니어복지타운과 어린이집을 함께 지어서 운영하는 거예요. 어려운 어르신들과 부모없는 아이들을 궁전처럼 아름다운 건물에서 살게 하고 싶어요. 이 시설이 문을 여는 날 저는 우아한 드레스를 입고 파티를 벌일 거예요. 그래서 지금 사방팔방 뛰어다니며 사업을 하는 거죠.”
인문학 수업 시간 중 버킷리스트를 묻는 질문에 50대 후반의 한 여성 수강생이 말했다. 그러면서 꼬리 감추듯이 살며시 덧붙이는 말이 버킷리스트 중의 하나이지만, 이건 자신의 노년기 최대의 꿈이나 다름없기에 꼭 이루고 싶은데 잘 이루어질지 모르겠다고 했다. 꿈을 이룰 수 있는 간단한 비법(?)을 말해 주었다.
“꼭 이루어질 겁니다. 단 지금부터 계속해야 할 두 가지가 있어요. 열심히 돈을 모으고 있다고 하니 하나는 이미 하고 있는 셈이네요. 나머지 한 가지는 바로 이겁니다. 소문을 내세요. 특히 가족을 비롯해 가까운 사람들에게, 친구나 지인에게도 말입니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했다. 교통과 통신수단이 열악했던 과거에도 소문만큼 빨리 확산되는 것은 없었다. 그 어떤 바이러스보다도 초스피드로 퍼져 나간다. 더욱이 최근 들어서는 인터넷으로 인해 정치인, 연예인, 스포츠스타들이 자신이 벌인 실수에 대한 대가든 아니면 과소문이나 악소문이든 한순간에 추락하는 시대다. 그만큼 소문은 무겁다. 칭찬이 아닌 남의 얘기라면 더더욱 조심해야 할 수밖에 없다. 입장 바꿔서 자신에 대한 소문을 자발적으로 내는 것은 시쳇말로 ‘도’ 아니면 ‘모’다. 소문이 그야말로 실체없는 소문에서만 끝나면 망신살 뻗히는 일이 될 것이고, 소문을 현실로 만든다면 자기가 한 말에 책임을 지는 멋지고 능력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누구나 인생 2막 버킷리스트를 만들고, 그 중에서도 반드시 일구어 내고 싶은 꿈을 향해 집중한다. 목표를 세우고 노력했다고 해서 100% 실현될 거라는 담보는 그 어디에도 없다. 물론 꿈을 향해 열정을 쏟으면서 말들어가는 그 과정만으로도 그 사람의 시니어 인생은 멋진 일이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토록 간절히 소망했던 자신의 꿈이 실현된다면 나는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말이 저절로 나올지도 모른다.
꿈의 크기와 가치는 사람마다 다르다. 누구에게는 큰 어려움 없이 거쳐 왔던 그리 특별하지 않고 당연했던 것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가슴에 한이 맺힌 일이 되어 죽기 전에라도 꼭 하고 싶은 일, 이루고 싶은 결과일 수 있다. 그것은 대학교를 못 간 것, 가족들과 함께 단 한 번도 해외여행을 못한 것, 웨딩드레스를 입고 제대로 된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것, 고향땅을 밟아보지 못한 것과 같은 일들이 될 수도 있다. 젊은이들에게는 조금만 독한 맘먹고 노력하고 열심히 살다 보면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나이 60을 넘어 노년기로 접어든 이들에게는 시간, 비용, 인내, 노력 등이 함께 따라주어야 하는 일이므로 우주선을 타고 화성땅을 밟는 일만큼이나 쉽지 않은 일이다.
꿈이나 버킷리스트가 정해졌고, 도전이 시작됐다면 일단 소문을 내자. 의도적이든 아니든 가족이나 친구 그리고 가까운 지인들에게 자신의 꿈을 말하는 것이다. 당연히 응원을 해주는 사람이 많겠지만, 누군가는 ‘과연 그럴 수 있을까?’라는 염려의 눈빛을 보내기도 하고, ‘그거 꼭 해야 되는 거야?’라고 시답잖게 여기는 이들도 있을 수 있다. 동조를 해주든 그렇지 않든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이미 자신이 결정한 일이고, 자신에게는 그만큼 소중한 꿈이기 때문이다. 소문을 내는 것은 그 순간 꿈에 대한 자신의 의지를 다시 한 번 더 스스로에게 각인시키는 일인 동시에 스스로에게 책임감을 더 강력하게 부여하는 일이다.
우리는 흔히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해놓고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이들에게 ‘허풍쟁이’라는 닉네임을 달아준다. 허풍쟁이로 낙인찍히면 그 후로 다른 어떤 말을 하더라도 상대는 이미 신뢰감을 갖지 않게 된다. 자신을 잘 알고 자주 소통하는 사람들에게서 허풍쟁이라는 불명예스러운 훈장을 받고 싶겠는가. 그러니 자신의 꿈을 자발적으로 소문을 내는 일은 곧 그것을 이루기 위한 의지와 열정을 불사르도록 종용할 것이다. 실행으로 옮기지 않으면 안 되게끔 만들어주는 스스로에 대한 강요이자 속박이 되며, 그 과정은 힘들고 어려울 것이다. 내가 왜 소문을 내서 이 고생을 자청했는가에 대한 후회감도 종종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자신을 위한 일이고, 또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니 즐거움과 만족이 뒤따르게 된다.
지인 중 한 사람은 ‘소문내기’를 통해 자신이 정한 버킷리스트를 하나 둘씩 실행으로 옮기는 사람이 있다. 10년 전의 일이다. 연초에 친구들을 만나 그해 첫 모임을 하던 날이었다. 중소기업에 재직 중이던 그는 가을에 유럽여행을 따나겠다고 했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유럽여행은 대부분 패키지 중심이었고, 20대 대학생들의 배낭여행이 주를 이루었다. 40대 중반의 직장인이 3주 동안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코스를 그것도 자유여행으로 다녀오겠다고 하니 현장에 있던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들로서는 엄두도 못내는 선언을 한 그에 대해 부러움의 시선을 보내는 동시에 한편으로 쉽지 않은 일이라고 수근거렸다. 그해 10월 그는 자신이 말한 대로 떠났다. 여행을 다녀와서 그가 말했다.
“사표를 내고 갔다 왔어. 매너리즘에 빠져드는 나 자신이 싫어서 새로운 변화의 시기를 갖고자 모험을 한 셈이지. 혼자서 생각만 하고 있었다면 못 갔을 거야. 열 달 동안 가족들은 물론이고, 지인들에게 말했지. 난 3주간의 유럽여행을 갈 거라고. 그렇게 해서라도 나 자신과의 약속을 굳힌 거지. 그런데 말이야. 얼마나 다행인지. 사장님이 다시 출근하라고 하더라. 그리고 우리 회사에도 3년에 한 번씩 동남아 여행과 경비를 주는 포상휴가 제도가 생겨났지 뭐야.”
그는 새로운 직장을 찾느라 애쓸 필요 없이 다시 전 직장으로 돌아갔고, 자신으로 인해 직원들을 위한 포상휴가 제도까지 생겨난 것에 대해 매우 만족해했다. 그 후로도 여전히 그는 대학원 입학, 스킨헤드, 아들과의 스페인여행, 책 쓰기, 어학공부와 같은 다양한 버킷리스트를 소문내고 실행으로 옮겼다. 물론 그가 해마다 공개적으로 말한 버킷리스트 테마 중 한두 가지는 실행하지 않은 것도 있고, 도전은 했으나 성공적이지 못한 것도 있지만, 비교적 많은 것들을 실행으로 옮기면서 즐거운 삶을 살고 있다.
꿈을 소문내는 것은 사실 용기 없는 사람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당신이라면 어떡하겠는가? 소문을 내겠는가? 혼자서 머릿속에만 담아두고 차일피일 미루겠는가? < ‘살아있는 동안에 한 번은 꼭 해야 할 것들(박창수, 새론북스, 2017.)’에서 옮겨 적음. (2019.05.23. 화룡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