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6. 5.
내 고향 진천 백곡 저수지에는 동양에서 유일한 사이폰식
댐이 있었다.
장마철 물을 뺄 때는 사이폰(syphon) 원리에 의해 물이
수십 m 이상 하늘 높이 솟구치는데 그 장관(壯觀)을 보려
많은 인파가 몰리기도 했다.
사이폰(syphon)식 댐은 물의 방출구가 수면 이하에
있으면 포화증기압의 힘으로 수면보다 높은 장애물을
넘어서 물을 방류하게 되는 역 U자 관을 말한다.
진천이 행정수도 후보 유망지로 떠올랐을 때,
1981년부터 1984년까지 백곡 저수지 확장용 댐 축조
공사를 하였고, 댐은 게이트식 댐으로 바뀌며 사이폰식
댐은 허물지 않고 물속으로 수몰되었다.
진천 미사일 기지에 주둔하던 미군들이 여름에는 사이폰
댐 근처에서 '전투수영'을 하기도 했는데,
그곳에선 수시로 일반인들의 익사자가 발생하였다.
익사자의 사체를 건지면 발목이나 신체 등에 다른 사람의
머리카락이 걸려 나왔기에 동네 어른들은 그곳에 '물귀신'
이 산다고 했다.
물에서 죽은 영혼을 말하는 물귀신이 거기에 진짜로
있었을까.
또 다른 의미로는 남을 물고 늘어지는 사람을 물귀신
이라고 하는데 나에게도 요즘 귀여운 '물귀신'이 생겼다.
< 고들빼기 >
08;20
출근하여 베란다로 나가자 고들빼기, 개망초, 바랭이,
깻잎이 싱싱한 모습으로 나를 반긴다.
어제 베란다에 나갔다가 깜짝 놀랐다.
풍매화(風媒花) 흉내를 낸 개망초, 고들빼기 씨앗이 바람
타고 8층까지 올라와 탄생하였고,
그동안 잘 자라던 개망초, 고들빼기 등이 축 늘어지고
말라 죽기 직전이다.
금전수, 마가목, 고무나무 등 관상용 나무와 동양란 등
화초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물을 주는데,
잡초(雜草)로 분류되는 얘네들한테는 알아서 크라고
그간 물을 주지 않았던 거다.
여긴 8층이다.
이놈들은 비가 오지 않고 화분에 수분이 마르면 땅과
달리 물을 확보할 수 없어 말라죽는다는 평범한 사실을
내가 간과(看過) 한 거다.
옆의 관상수에게는 물을 주면서,
목마른 자기네들한테는 물 한 방울을 주지 않았으니
얼마나 서운했을까.
식물도 사람이나 동물처럼 감정이 있는데 말이다.
< 개망초 >
어느 학자는 식물은 외부 자극으로 인해 내부적으로
전기 신호를 발생하고,
외부에서 자극을 주지 않더라도 꾸준히 자신을 괴롭힌
사람을 식별할 수 있다고 주장을 했다.
'라울 프랑세'라는 생물학자는 식물도 인간처럼 자기
몸을 움직일 수 있고,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감지
하고 반응을 보인다는 거다.
또한 그는 식물은 방향이나 미래에 대한 지각 능력이
있으며, 인간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소리,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적외선이나 자외선 같은
색깔의 파장까지 구별하며,
엑스레이나 텔레비전 같은 고주파에 민감하다는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다른 학자인 '클리브 벡스터' 박사는 거짓말 탐지기를
이용하여
식물은 생각할 줄 알고, 자기 방어를 하기도 하며,
외부로부터의 신호를 알아낼 수 있고, 기억할 수 있으며
교감능력이 있고, 세포의식이 있다는 걸 밝혀냈다.
오늘은 관상수에게 물을 주지 않고,
이름이 있어도 잡초로 분류하는 개망초 등에게만 물을
주며,
"너희들에게 계속 물을 줄 테니 생명이 다할 때까지
잘 살고 나를 미워하지 말라"고 마음속으로 당부를 한다.
산야(山野)에서 흔하게 피는 야생화, 귀한 야생화,
자라는 초목(草木)에 관심을 갖고 임서기(林棲期) 흉내를
낸 지 15년이 넘었다.
그동안 잡초(雜草)에게는 열린 마음이 없었다.
그러나 어제 물을 주었다고 오늘 싱싱한 모습으로 변한
개망초, 고들빼기를 보며,
내가 눈길을 주지 않았던 이놈들이 오히려 나에게 생명체에
대한 에너지를 주고 건강한 힘을 준다는 걸 비로소 깨달았다.
8층에서 태어나 내가 물을 주지 않을 수 없게 만든 잡초들,
소나무 못지 않게 물을 많이 잡아먹는 이녀석들이 어쩌면
나의 발목을 잡는 또 다른 물귀신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2024. 6. 5.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