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15,15-20; 1코린 2,6-10; 마태 5,17-37
+ 오소서, 성령님
한 주간 동안 주님 은총 안에서 잘 지내셨어요? 지난 주일에 새 구역장 반장님들 임명장 수여식이 있었고, 성탄에 세례받으신 분들의 첫 고해성사가 있었습니다. 또한 7년간 제대에서 봉사해 준 두 학생의 복사 졸업식이 있었습니다. 보이는 곳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주님을 섬기시는 모든 분의 수고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지난 주일에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빛과 소금인 우리가 세상에 하느님 사랑을 드러내기를 바라십니다. 오늘 복음은 그 구체적 방법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율법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이제 율법을 새롭게 하시며 오늘은 구약의 계명 중 네 가지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첫 번째로, ‘살인하지 마라’는 계명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형제’입니다. 우리는 세례를 받고 하느님의 아들, 딸이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서로 형제자매들입니다. 그런데 형제들끼리 서로 싸우고 성을 내면 누가 제일 속상해하실까요? 바로 부모님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대하면서 ‘우리 아버지가 누구이신지’를 먼저 기억해야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자기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학생이 ‘신부님, 그러면 또라이는 되나요?’라고 질문했었는데, ‘또라이도 안 된다’고 말씀드렸어요~
‘바보’로 번역된 ‘라카’는 ‘머리가 빈 사람’이라는 뜻이고, ‘멍청이’로 번역된 ‘모레’라는 단어는 ‘하느님도 모르는 사람’이라는 뜻인데요, 예수님은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에게 이 단어를 쓰신 적이 있습니다. (마태 23,27) 그러므로 오늘 복음은, 이 단어들을 절대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 아니라, ‘자기 형제에게’ 인격적으로 비하하는 말을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두 번째로 ‘간음해서는 안 된다.’라는 계명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행위뿐만 아니라 행위의 근원이 되는 마음을 살펴, 음욕과 사랑을 구분하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하느님의 거룩한 피조물로, 형제자매로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네 오른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던져 버려라. … 또 네 오른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던져 버려라.”라고 하십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이 말씀을 이렇게 해석하시는데요, 우리의 두 눈은 우리에게 조언해주는 사람을 상징하고, 두 손은 우리의 행실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오른쪽 눈은 ‘거룩한 일들에 대해 알려주는 조언자’이고 왼쪽 눈은 ‘육신의 필요와 관계있는 세상일에 관한 조언자’를 상징하는데, 우리를 거룩함으로 인도해 주어야 할 영적 조언자가 걸림돌이 되거나 악으로 이끈다면, 그와의 관계를 끊으라고 성인은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세 번째로 함부로 아내를 버려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아내가 남편을 버리는 것은 아예 불가능했던 시대에, 남편들은 소박법을 악용하여 아내를 함부로 버릴 수 있었습니다. 소박법은 신명기(24,1)에 근거한 법으로서, 수치스러운 일을 저지른 아내를 남편은 손에 이혼장만 쥐어 주고 소박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수치스러운 일이 무엇인가가 문제인데요, 간음, 풍기 문란, 음식을 태우는 일, 계명을 어기는 행위, 심지어 남편의 눈에 거슬리는 행동 등이었습니다.
당시 모든 권리는 성인 남성들만을 통해 행사되었기에 아내는 쫓겨나면 혼자 살아가기 어려웠습니다. 그렇기에 남편의 눈에 거슬리지 않기 위해 눈치를 살피고 남편에게 종속된 채 살아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내를 내쫓는 일을 엄격히 금하심으로써 여성들의 권리를 보호하십니다.
네 번째로, 예수님은 함부로 맹세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너희는 말할 때에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예수님께서는 맹세하신 적이 없습니다. 최고 의회에서 심문 받으실 때 대사제가 “내가 명령하오. ‘살아 계신 하느님 앞에서 맹세를 하고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 메시아인지 밝히시오.’”라고 말했지만 예수님께서는 “네가 그렇게 말하였다.”라고 대답하십니다.
한편, 맹세한 이는 베드로였습니다. 베드로는 “당신도 저 사람과 한패가 아니냐”는 질문에, 거짓이면 천벌을 받겠다고 맹세하며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자기 말에 거짓이 없으면 굳이 맹세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맹세하지 말고 진실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집회서는 “네가 원하기만 하면 계명을 지킬 수 있으니 충실하게 사는 것은 네 뜻에 달려 있다. 그분께서 네 앞에 물과 불을 놓으셨으니 손을 뻗어 원하는 대로 선택하여라.”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물은 생명을 상징하고 불은 파괴를 상징합니다.
어떤 할아버지께서 손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얘야, 내 안에서는 두 마리 늑대가 싸우고 있단다. 한 마리는 악이야. 그 녀석은 화, 질투, 후회, 욕심, 오만, 죄책감, 열등감, 거짓말, 헛된 자존심이야. 다른 한 마리는 선인데, 기쁨, 평화, 사랑, 희망, 겸손, 자비, 공감, 너그러움, 진실, 연민이야. 이 두 마리 늑대가 끊임없이 내 안에서 싸우고 있어. 그리고 네 안에서도 싸우고 있단다.”
“할아버지, 그럼 어떤 늑대가 이기나요?” 손자가 묻자 할아버지는 답했습니다. “네가 먹이를 많이 주는 쪽이 이긴단다.”
우리 마음 안에는 하느님 뜻대로 살려는 욕구가 있고, 이기적인 욕심대로 살려는 욕구가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욕구는 자주 충돌합니다. 그 둘 중 승리를 거두는 것은 내가 힘을 더 실어주는 쪽입니다.
물론 언제나 쉽지는 않습니다. 그렇기에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주십니다.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어떠한 눈도 본 적이 없고 어떠한 귀도 들은 적이 없으며 사람의 마음에도 떠오른 적이 없는 것들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마련해 두셨다.’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그것들을 바로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 성령께 의지하여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오늘 복음에서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라는 말씀을 이렇게 주해하십니다. “그대의 원수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의 죽음을 바라지 말고, 그대 안에 있는 미움이 죽기를 바라십시오.”
오늘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번 한 주간 내 안에서 열매 맺기를, 이번 명절에 만나는 분들에게 주님의 은총이 빛과 소금인 나를 통해 전해지기를 빌어주시는 설 명절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프라 안젤리코, 산상 설교, 143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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