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공소 문제 후유증으로 나는 모든 봉사직에서 손을 놓아야 했고
주일미사도 본당에 가지않고 수도회 미사에 참례했다.
바울리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상처를 입고
서서히 도전리에서의 정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바울리나 생일 (5.3)
12.26 축일
하나농산 기도 공동체
우리집 위 산기슭에는 2층 연립주택이 6동이 있다.
그곳에는 같은 기도공동체 회원들이 대다수 살고 있다.
각자 생업에 종사하면서 수도자처럼 하루 6번 함께 모여
시간경 기도를 바친다.
그리고 매년 전국의 회원이 2박3일 이곳에서 피정을 한다.
이들도 매일 수도원 성당에서 미사에 참례한다.
이 공동체 총무인 아타나시오 형제는 자녀가 5명이다.
역시 5명의 자녀가 있는 카시아노 형제가 미국으로 가기 전에는
산골 성당에 아이들이 많아 처음 오시는 분들이 놀라곤 했다.
한번은 회원 중 한 분이 임종직전이라는 말을 듣고
평화의 모후 레지오팀이 방문해 기도했다.
고통 중에도 우리의 방문을 미소로 맞아주며
기도하는 내내 함께 동참하는 모습을 보며
임종 순간에도 기쁘게 죽음을 맞는 모습이 참 신앙인 다웠다.
도전리에서는 다양한 모습의 신앙생활을 볼 수 있었다.
2012년
바울리나 생일(5.3)
서울 음식점에서 형님 가족과 식사를 했다.
유나 결혼(8월)
딸을 시집보내며
우리 부부는 그동안 고이 고이 키운 딸을
8월 25일(토요일)시집보내는 大事를 치렀습니다.
오늘은 마음이 무척이나 뿌듯합니다.
딸을 빼앗긴 것이 아니라,
마음 착하고 듬직한 아들을 한 명 얻었다고 생각하니...
저희 딸(유나) 결혼식에 참석해주시고,
멀리서도 축하해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감사한 마음 가슴속 깊이 간직하고, 잊지 않겠습니다.
정말감사합니다.
그간 삼십여 년을 세상을 가르치고, 옳은 심성을 교육시키며,
예의와 교양을 갖춘 요조숙녀로 자식을 키워 왔다고 자부하고 있지만
그래도 잘 할 수 있을런지 걱정됩니다.
한 가정을 이룬다는 것은 커다란 의미가 있습니다.
먼저 부모로부터 독립을 뜻합니다.
부모의 울타리를 벗어나게 되어 일단 자유롭기도 할 것입니다.
부모는 그간 낳은 정 기른 정이 듬뿍 들었고 이제는 독립시킨다는 후련함과
한편으로는 과연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딸아이를 시집보내는 마음이 ‘시원섭섭’하다고 하는가 봅니다.
결혼은 이인삼각(二人三脚)의 경기라고 했습니다.
환경이 다른 사람이 만나 한쪽 발은 각자의 소질을 키워가면서도
다른 쪽 발은 상대와 의견을 맞춰 같이 뛰어가야 넘어지지 않는
이인삼각의 경기라는 말이 사실인 듯싶습니다.
신혼 때는 서로의 감정이 사랑이라는 단어로 이해되지만
좀 시간이 지나면 단점이 서서히 눈에 띕니다.
그럴 때 한눈을 지긋이 감아주는 아량이 때로는 필요하겠지요.
주례신부는 신랑 신부에게서 부부십계명을 숙제로 미리받아
혼배미사 중에 액자로 만들어 전달해 주었습니다.
내용을 보면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며,
상대가 실어하는 말이나 일을 하지 않는다는 내용과
함께하는 노력(가정, 건강, 격려, 대화, 양가의 부모님, 취미)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작은 일처럼 보이지만 가장 중요한 일들이라고 생각됩니다.
많은 하객들을 모시고 두 분의 주례신부님과 약속을 한
부부십계명 주례사는 아주 참신했던 것 같습니다.
이제 우리 부부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이들을 위해 우리 주님께 기도드리는 일만이 우리들의 몫입니다.
하느님의 창조 섭리대로
남녀가 성장하여 부모를 떠나 서로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루기 위해 자식들을 결혼 시켰습니다.
세상적인 근심 걱정 다 하느님께 맡기고
우리 주님 날개아래 건강하고 행복해지기만을 기도드립니다.
지금까지 우리 가족에게 보여주신 그 은혜를 감사하며 믿기에
오늘 시집 간 딸에게도 똑 같은 하느님의 은총이 임하시리라 믿고,
우리 모두를 위해 기도드리는 일만이
우리 부부의 소망이며 여생동안 하여야 할 남은 역할입니다.
외동딸 고이 길러 근심걱정 불사르고
부모는 서운치만 백년손님 사위 얻어
온가족 한데모여서 즐거움이 넘치네
2013년
배티성지 (3월)
5월 바울리나 생일
제주여행(5.9~5.16)
바울리나 환갑을 맞아 7박 8일 일정으로 제주도 여행을 함.
여주집은 딸이 와서 강아지 짱구, 친구를 맡기로 하고.
오랫동안 만나보지 못한 부산 친구들, 은사
그리고 가까이 지냈던 이웃친구들과 형제들도 만나기로 함.
이 여행에서 제주로 이사 할 마음을 굳히게 됨.
바울리나 제주집 방문
12월
세를 얻어 집을 수리해 혼자 생활하고 있는 바울리나를 딸,사위와 방문.
창문마다 방풍테잎으로 막고 난로를 피고
전기매트를 깔았지만 너무 추워
근처 모텔에서 숙박하였다.
*파라 자매
파라 자매는 우리가 도전리에 살기 위해 마을을 돌아볼 때 만났던 자매다.
그 자매는 서울에 살다가 이곳으로 이사를 와 살고 있는데
환자인 남편과 함께 살고 있었다.
우리가 도전리에 터를 잡게 영향을 준 사람 중 한명이다
파라 자매는 여상을 나온 인텔리 여성으로
구역장 할 때의 이야기, 남편이 영화업에 종사했다는 이야기,
자신들은 자식이 없어 지금 살고 있는 집은 파티마 수녀원에 기증했고
남편이 죽으면 자신은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양로원으로 간다고 한다.
사도요한 수녀의 종신서원식 때
용인 본원에서 나오는 길에 또 파라자매님을 만났고
이 후 자주 방문을 했고 신앙심도 아주 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주일에는 양로원 미사를 하지 않고
여주까지 버스(하루 3번 운행)를 타고 나와서 본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본당 공동체에 힘을 실어주는 역할도 했다.
남편이 돌아가시고 나서 급격히 외로움과 몸이 허약해져
몇 년후 자매님도 돌아가셨다.
그 자매님을 보면서 여자의 한많은 일생 같은 것을 느끼면서
그래도 당당하게 신앙생활을 잘 하시며 사셨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