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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 상식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교황 장례 예식의 전례 색깔은 왜 붉은색인가요?
지난 4월 21일, 제266대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선종하셨습니다. 수많은 이들은 슬픔 속에 하느님 곁으로 가시는 교황님을 현장에서 그리고 생중계되는 화면을 통해 배웅했습니다. 그런데 장례 예식에 참여한 모든 사제는 붉은색 제의를 입은 모습이었습니다. 전례를 지켜 보며 ‘어? 장례 미사 때는 보통 흰색 제의를 입지 않나?’라고 생각하신 분, 안 계셨나요? 오늘은, 교황님 장례 예식에서 왜 붉은색으로 전례 색깔을 정했는지 알아보려 합니다.
현재의 장례 예식 지침 22항은 다음과 같이 알려줍니다. “장례 예식에 알맞은 전례 색깔을 결정한다. 이 색깔은 민족의 특성에 적합하고, 슬퍼하는 이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으며, 파스카 신비로 밝혀진 그리스도인의 희망을 드러내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32항에서는 한국 교구들에서는 이 장례 색깔에 대해 흰색이나 보라색이나 검은색의 영대를 매고 같은 색깔의 제의를 입는다고 나옵니다. 특히 오늘날에는 위의 22항에 나온 것처럼 파스카 신비로 밝혀진 그리스도인의 희망, 곧 죽음을 넘어선 부활을 강조하는 차원에서 흰색을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교황님의 장례 예식에서는 붉은색을 사용했습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교황님의 복장을 떠올려 볼까요? 교황님의 고유 색상으로는 흰색과 붉은색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추기경 재임 중 교황으로 선출되어도 추기경때 입던 붉은 옷을 그대로 입었습니다. 흰옷을 입는 전통은 1566년 비오 5세 교황님이 흰옷을 입는 도미니코 회원들의 습관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지요. 추기경은 붉은색 수단을 입게 되는데, 여기서 붉은색은 교회를 위해 기꺼이 피를 흘리고 목숨까지 내놓는 순교의 정신과 교회를 향한 헌신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로마에서는 추기경님들의 장례 예식에 붉은색을 사용 하고, 마찬가지로 교황님도 고유 색상 중 하나인 붉은색으로 장례 예식을 준비하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 교황님의 장례 예식에서는 보라색 및 검은색도 사용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전통은 1978년 성 바오로 6세 교황님께서 <교황 장례 예식>(De funere Summi Pontificis)을 반포하시면서 교황님을 상징하는 붉은색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2024년 교황님의 장례 예식 수정판을 승인하시며 붉은색으로 이어져 온 전통을 그대로 유지하셨습니다.
“(교황의) 시신은, 미사 거행 때처럼 붉은색의 전례 복장을 입고, 주교관과 팔리움을 착용한 채, 교황의 목자 지팡이 없이 나무와 아연으로 된 관에 안치된다. 관 근처의 적절한 장소에는 부활초가 놓인다.”(〈로마 교황의 장례 예식〉, 29항)
붉은색, 곧 그리스도의 피와 순교를 상징하는 빨간색은 피를 흘리기까지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고, 그 사랑으로 교회와 신자들을 사랑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주님의 종, 종들의 종으로서 그러한 순교의 사랑을 끝까지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하느님 곁으로 가셨습니다. 교황님을 기억하며 우리도 그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저는 믿나이다] (30) 유다 타대오와 시몬 사도
열혈당원 출신 유다 타대오와 시몬
유다 타대오
야고보의 아들 유다 타대오 사도에 관해 알려진 바는 거의 없습니다. 그의 이름도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서에선 ‘타대오’(마태 10,3; 마르 3,18)로, 루카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선 ‘야고보의 아들 유다’(루카 6,16; 사도 1,13)로만 소개됩니다. 교회는 초기부터 타대오와 야고보의 아들 유다를 같은 인물로 여겨왔습니다.
복음서들이 사도의 이름을 달리 표기한 것에 대해 여러 성경학자는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서 저자들이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과 혼돈하지 않도록 일부러 ‘타대오’라고 기록했을 것이라 설명합니다. 복음서에 열두 사도 명단 외에 이 유다의 이름이 딱 한군데 있는데, 바로 요한 복음 14장 22절로 “이스카리옷이 아닌 다른 유다”라고 나옵니다. 이 표현으로 미뤄 사도 시대 초기 교회에서도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유다 이스카리옷을 구별하고자 했음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학자들 가운데엔 유다의 그리스식 이름이 ‘타대오’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당시 유다인들은 유다 이름뿐 아니라 그리스식 이름을 갖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타대오는 ‘가슴’을 뜻하는 아람어 ‘타다’에서 비롯돼 ‘넓은 마음’을 뜻한다고도 하고, ‘하느님의 선물’을 뜻하는 헬라어 ‘테오도로스(Θεόδωρος)’의 축약형이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예수님과 유다 타대오와의 대화는 복음서에 딱 한 차례 나옵니다. 마지막 만찬 때 그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에게는 주님 자신을 드러내시고 세상에는 드러내지 않으시겠다니 무슨 까닭입니까?”라고 질문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라고 대답하십니다.(요한 14,22-24)
교회 전승에 따르면 유다 타대오 사도는 시몬 사도와 함께 열혈당원 출신이었다고 합니다. 열혈당원(ζηλωτής, 젤롯)은 ‘토라’ 곧 모세의 율법에 대한 열성이 빼어난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로마 제국의 지배자들과 그 동조자들에 대항해 이스라엘 민족 독립을 쟁취하고 하느님 나라를 세우고자 무력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6년에 갈릴래아 출신 유다가 주도한 반란을 계기로 민족주의 저항단체인 열혈당을 결성했지요. 이 내용은 사도행전 5장 37절에 짧게 소개되고 있습니다.
위경 「시몬과 유다의 수난기」는 유다 타대오 사도가 시몬 사도와 함께 소아시아 지역에서 복음을 선포하다 페르시아에서 창에 찔려(도끼로 참수형을 받았다고도 함) 순교했습니다.
시몬 사도
열두 사도의 명단을 소개하고 있는 우리말 공관 복음서에는 시몬 사도를 모두 ‘열혈당원’으로 옮겨놓았습니다. 하지만 헬라어 본문 성경과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 의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서는 시몬 사도를 ‘가나안 사람’(마태 10,4 ‘Σίμων ὁ Κανανίτης’, ‘Simon Chananaeus’, 마르 3,18 ‘Σίμωνα τὸν Κανανίτην’, ‘Simonem Chananaeum’)이라고 밝힙니다. 따라서 시몬 사도는 가나안 출신 열혈당원이었음을 알 수 있지요. 그래서 시몬 사도가 예수님께서 첫 기적을 행하신 카나 혼인 잔치의 신랑이었다는 이야기가 교회 안에서 전해지고 있습니다. 또 천사에게서 예수님 탄생을 전해 들은 목동 중 한 명이었다는 설도 내려오고 있지요.
복음서의 문맥에 따라 시몬 사도는 베드로와 안드레아·야고보·요한과 함께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고기잡이하다 예수님께 부르심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아울러 그가 부르심을 받기 전에 열혈당원으로 활동한 것으로 보아 유다인으로서 정체성이 분명했고, 율법에 대한 열정이 가득했음을 미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시몬 사도는 로마인의 협력자로 유다인들에게 세금을 거두던 마태오 사도와 분명 결이 다른 인물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열혈당원의 시조는 ‘피느하스’입니다. 그는 우상을 숭배한 한 이스라엘 사람을 모든 공동체가 보는 앞에서 살해했습니다.(민수 25,6-13) 카르멜 산에서 바알 사제들을 죽인 엘리야 예언자(1열왕 18장)나 마카베오 가문의 시조로 유다교 신앙을 말살하려는 셀레우코스 임금 안티오코스 4세에 반기를 들고 무력 항쟁을 벌였던 마타티이스도 젤롯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젤롯 곧 열혈당원이 율법과 이스라엘 백성의 민족성을 지키기 위해 무력 항쟁을 했다면 반대로 철저하게 율법을 준수하며 은둔생활을 한 부류도 있습니다. 바로 ‘하시딤’입니다. 하시딤은 헬레니즘에 저항해 마카베오 시대 때부터 생겨났습니다. 이들은 안식일에 안티오코스 4세의 군대가 쳐들어오자 도망가지 않고 부동자세로 죽음을 맞았습니다. 안식일을 지킨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수천 명이 이렇게 순교한 것이지요.
안타깝게도 시몬 사도에 관해 신약 성경에서 찾을 수 있는 정보는 카나 출신 열혈당원이었다는 것뿐입니다. 위경 「시몬과 유다 수난기」 는 시몬 사도가 유다 타대오 사도와 함께 소아시아 지역에서 복음을 전했고, 톱질로 몸이 잘려 순교했다고 합니다.
[매주 읽는 단편 교리] 성령의 열매(Fructus Spiritus)
성령께서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은총을 베풀어 그 열매를 맺어주십니다. 사도 바오로는 성령의 열매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입니다”(갈라 5,22-23). 여기서 그리스어 “열매”는 단수로 쓰였는데, 이는 성령의 여러 열매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성령의 열매를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맺어지는 열매
① 사랑: 성령의 첫 번째 열매는 사랑입니다. 이는 하느님을 향한 사랑에서 시작되어 순수한 마음으로 이웃에게 봉사하는 사랑입니다. 사랑이란 열매를 더욱 풍성히 얻으려면 하느님을 향한 사랑을 자주 고백하고, 그분께 우리 사랑의 마음을 더해 주시도록 기도하여야 합니다.
② 기쁨: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 그리고 그분의 현존 체험은 우리 안에 기쁨을 불러일으킵니다. 기뻐할 일이 없어도, 심지어 우리가 고통 중에 있을 때도 성령께서는 기쁨을 누릴 수 있게 해주십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언제 어디서든 하느님께 의지하며 희망을 간직해야 합니다.
③ 평화: 성령의 열매인 평화는 세상이 말하는 평화와 다르게 환난 속에서도 유지되는 평화입니다. 평화는 전적으로 하느님의 선물이며, 하느님과 이웃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때 더욱 널리 퍼져나갑니다. 그리스도인은 평화를 깨뜨리는 일을 멀리해야 합니다.
이웃과의 관계에서 맺어지는 열매
④ 인내: 인내는 자기 뜻대로 일이 되지 않더라도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신 때를 기다릴 줄 아는 힘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인내하면서 하느님의 섭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인내가 성장하려면 고통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모든 일이 하느님 안에 있다는 점을 믿어야 합니다.
⑤ 호의: 호의는 이웃을 따뜻하고 우호적으로 대하는 친절함입니다. 성경에는 상대에게 악을 되갚지 않고 용서하며 자비를 베푸는 마음으로 소개됩니다. 예수님과 성인 성녀들의 희생을 본받으려는 마음으로 이웃의 작고 사소한 일에 관심을 기울일 때, 호의는 더 커집니다.
⑥ 선의: 성경에서 말하는 선의는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정도의 소극적 의미가 아니라, 남이 곤경에 처했을 때 기꺼이 도와주는 적극적인 마음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 재능, 재물을 관대하게 하느님과 이웃을 위하여 사용하는 것을 뜻하며, 봉사하는 모습으로 드러납니다.
자신과 관련되는 열매
⑦ 성실: 성실은 시작한 일을 끝까지 완수하는 충실함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약속을 지키고 임무를 완수하는 사람은 믿음직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에게 솔직하고 하느님 말씀에 순종하며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책임감을 갖추어야 합니다.
⑧ 온유: 온유는 약자나 자신에게 해를 입힌 사람을 부드럽게 대하는 힘입니다. 가난과 겸손을 담은 온유는 지혜로운 사람의 모습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내면의 강한 힘과 스스로 자제할 수 있는 용기를 지닙니다.
⑨ 절제: 절제는 자기의 생각과 말, 감정과 욕망을 내려놓고 예수님께 순종하는 능력입니다. 이는 감정과 욕망의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는 걸 의미합니다. 하느님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정화를 위한 기도를 바치며, 극기하는 보속을 실천할 때, 절제의 덕이 성장합니다.
오늘은 성령 강림 대축일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맺어주시는 좋은 열매를 소중히 받아들이며 우리 모두 그분께 협력하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교회, 하느님 백성의 친교] (16) 교회는 가시적이고 영적이다 ① 「교회헌장」 8항 전반부
「교회헌장」 1장은 제목에 나타난 것처럼 ‘교회의 신비’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그리고 1장의 마지막 8항에서는 교회가 영적이면서 동시에 ‘가시적 구조’를 가진 공동체라고 말합니다. 이는 교회의 신비가 교회의 신적 공동체성만을 가리키지 않고, 교회의 사회적인 구조 차원도 포함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이 세상에 가시적 구조로 세우시고, 그 교회를 통하여 모든 사람에게 진리와 은총을 베푸시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가시적 구조란 교회가 “교계 조직으로 이루어진 단체”이며 “가시적 집단”이고 “지상의 교회”라는 것입니다. 이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비체”이며 “영적”이고 “천상의 보화로 가득 찬” 교회와 달라서, 두 개의 교회가 아니라 “인간적 요소와 신적 요소”를 함께 갖고 있는 하나의 교회입니다. 이는 교회를 조직과 공동체로 구분하여 보는 시각으로, 조직은 공동체에 봉사하도록 설립되었습니다. 교회의 ‘구조’는 교회를 조직의 측면에서 바라본 것이고 그 조직은 그리스도에게서 비롯되었습니다. 이 가시적 조직이 영적인 공동체와 “하나의 복합체”를 이루는 것입니다. 강생의 신비가 그러하듯 교회의 “사회적 조직”도 그리스도의 성령께 봉사하여 그 “몸”(공동체)을 자라게 합니다.
이러한 가시적이고 영적인 교회가 “그리스도의 유일한 교회”(unica Christi Ecclesia)이며, 신경에서 고백하는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 오는 교회입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베드로에게 교회의 사목을 맡기셨고, 사도들에게는 교회를 온 세상에 전하고 다스리는 임무를 주셨으며, 교회를 영원한 “진리의 기둥이며 기초”(1티모 3,15)로 세우셨습니다. 이 유일한 교회는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황과 그와 친교를 이루는 주교들이 다스리는 “가톨릭 교회 안에 존재”(subsistit in Ecclesia catholica)합니다. 「교회헌장」의 초안에는 ‘가톨릭 교회이다’(est)라고 되어 있었지만, 공의회는 가시적 실재인 교회와 영적 실재인 교회가 지니는 ‘차이’를 표현하기 위해서 ‘이다’(est) 대신 ‘안에 존재한다’(subsistit in), 곧 ‘가톨릭 교회 안에 있다’(existit in)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신학위원회의 보고서는 ‘교회의 신비’가 이상적이거나 비현실적인 상(像)이 아니라 구체적인 가톨릭 사회 자체에 존재한다(existit)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존재한다’라는 단어가 사용되었고, 실로 이 표현으로 인해서 가톨릭 교회가 아닌 다른 곳에 있는 교회적 요소들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갖게 됩니다. 따라서 이어지는 “그 조직(compago) 밖에서도 성화와 진리의 많은 요소가 발견”된다는 표현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집니다. 그리고 그 요소들은 ‘그리스도의 교회’에 주어진 고유한 선물이기에 가톨릭 교회와 그 밖의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이 일치를 향해 나아갈 이유가 됩니다. 이 일치를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사에서 희년을 보다] 교황 바오로 2세와 식스토 4세의 희년
1464년 9월 16일에 교황으로 선출된, 베네치아 출신의 바오로 2세는 1470년 4월 19일, 희년을 25년마다 거행하도록 하는 칙서 「형언할 수 없는 섭리(Ineffabili providentia)」를 반포합니다. 이 칙서에서 교황은 먼저 1300~1450년까지 희년의 역사를 간략히 정리했습니다. 이어 인간의 짧은 수명, 빈번한 전염병의 창궐 등으로, 극히 적은 이들만이 대사의 은혜에 참여할 자격을 얻는 현실을 목도하면서, 1475년을 염두하고 기존의 33년 주기의 희년을 25년 주기로 축소한다고 선언하였습니다. 그러나 교황은 1471년 7월 26일 뇌졸중으로 갑자기 선종하였습니다. 따라서 그의 후계자로 선출된 사보나 출신의 교황 식스토 4세는 1473년 8월 29일, 칙서 「Quemadmodum Operosi」에서 전임 교황이 정한 25년 주기를 따라, 1474년 성탄 대축일 전야부터 시작되어 그다음 해에 끝나게 될 희년을 선포했습니다. 이때부터 25년마다 희년을 지내는 관습이 현대에 이르기까지 계속됩니다.
교황 식스토 4세는 1473년부터 희년 맞이 준비를 하였는데, 순례자들의 정체를 피하고자 오래전에 무너졌던 ‘폰테 로토(Ponte Rotto)’를 새로 지으며 그의 이름을 따서 ‘폰테 시스토(Ponte Sisto)’라 불렀고, 로마의 고대 수로인 아쿠아 비르고(Aqua Virgo)를 퀴리날레에서 트레비 분수까지 연장하였습니다. 또한, 새 도로를 건설하고 옛 도로는 확장 및 재정비하였고, 자신의 이름을 딴 시스티나 경당도 지었습니다.
한편, 식스토 4세는 로마 방문을 장려하고 회년의 거행 자체가 축소되거나 방해받지 않도록, 성년 기간 로마 외의 다른 여러 성당, 수도원, 경건한 장소들에 그동안 베풀어진 다양한 대사들을 중지시켰고, 이 조치는 이후 전통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1475년 희년 동안 외국 순례자들의 유입은 전반적으로 적었다고 전해집니다. 부르군디 전쟁(1474~1477년)으로 알프스 북쪽과 접한 북이탈리아 근처의 교통로와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받았고, 1470년대 초반, 밀라노의 스포르차 가문 내부의 갈등과 그에 따른 주변국의 개입에 따른 정치적 불안정으로, 로마로 가는 주요 순례길 중 하나인 밀라노도 위험지역이 되어, 이러한 지역의 불안이 순례자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11월경 로마는 도시의 총독 사망과 티베르강의 끔찍한 홍수로 큰 타격을 입었고, 이어 흑사병과 유사한 전염병이 창궐하면서, 순례자들이 로마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식스토 교황은 1476년 볼로냐에서 일종의 ‘희년의 연장 행사’를 허가하였습니다. 조카들을 추기경으로 임명해 족벌주의자로 알려진 식스토 4세 교황은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과의 불명예스러운 전쟁에 휘말리기도 하였지만, 위대한 미술가와 조각가를 로마로 불렀고, 교회음악을 장려하여 시스티나 성가대를 만들었으며, 바티칸 문서고를 설치하는 등 로마를 중세 도시에서 르네상스 도시로 바꾼 르네상스 교황 중의 한 명입니다.
[교회의 언어] ἐκκλησία (엑클레시아, 교회)
교회는 세상 창조 이전부터 계셨던 삼위일체 하느님의 친교 안에서 준비되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오순절의 성령 강림 사건을 통해 공적으로 설립됩니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모임을 종교적인 목적, 특히 예배를 드리기 위해 소집된 집회를 의미하는 히브리어(카할)을 번역한 ‘엑클레시아’라는 명칭으로 불렀습니다. 엑클레시아는 전치사 ἐκ(-로부터)와 동사 καλέω(부르다)의 합성어로 ‘부르다, 불러내다, 소집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동사 ἐκκαλέω(엑칼레오)에서 파생된 명사입니다. 곧, 교회는 하느님께서 불러 모으신 사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을 불러 모으신 이유는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신비체를 이루어(로마 12,4-5; 1코린 12,12-27; 콜로 1,18 참조) 구원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교회는 믿는 이들에게 구원을 전해주는 동시에 믿지 않는 이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명을 지닙니다.(마태 28,18-20 참조)
성령 강림을 통해 설립된 교회가 충실한 믿음을 통해 세상에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는 도구로 성실히 살아갈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하고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가톨릭 신학] ‘용서’보다 더 어려운 게 있나요?
어릴 때 읽었던 동화 중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서로를 미워하는 두 염소가 있었는데, 이 둘은 서로가 너무나 미워서 가장 뜨거운 여름엔 서로를 꼭 끌어안았습니다. 상대를 괴롭히기 위해서입니다. 가장 추운 겨울엔 서로에게 도움을 주지 않으려 멀리 떨어져 살다가 결국 각각 얼어 죽게 되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미워하는 마음, 증오하는 마음은 결국 자기를 죽게 합니다. 우리는 용서가 필요하고 중요하며 가장 큰 사랑이라는 사실을 잘 압니다. 하지만 때로 용서를 실천하기 너무 어렵다는 점도 잘 알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묻습니다.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1-22) 당시 유다교 율법은 3번 용서의 의무를 강조했으나, 베드로는 이를 넘어 자랑스럽게(?) 7번의 용서를 제시했지만, 예수님은 놀랍게도 77번, 즉 ‘완전한 용서’를 요구하십니다. 하지만 용서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누구나 잘 압니다. 특히 큰 상처를 받아 본 적이 있는 사람, 그리고 이전에 참된 용서를 해 본 사람은 잘 압니다. 내게 상처 준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대개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받은 상처가 너무 깊거나 혹은 불공정하다고 느끼는 경우, 그리고 내게 상처 준 사람은 나만큼 힘들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원망이란 내가 독을 마시고 상대방이 죽기 바라는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미워하기는 쉽지만 용서하기는 참 힘듭니다. 용서하는 것이 때로 불가능해 보일 때도 있습니다. 용서란 내 마음에서 독을 빼내는 수술이기 때문입니다. 용서는 근본적으로 상대방이 아니라 내 영혼을 위한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토록 어려운 용서를 실천한다면 우리에게 주어지는 은총은 더 클 것입니다. “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저희도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루카 11,4)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마태 6,15)
물론 아직 용서할 준비가 충분하지 않은데, 용서에 대한 강박이 심해서 준비되지 않은 채 용서한다면 더 큰 화를 부를 수도 있습니다. 용서하기 위해 너무 서두르지 마시기 바랍니다. 용서는 언제나 기도와 참된 회개를 전제합니다. 용서하기 위해 먼저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참된 회개는 우선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모든 인간의 죄가 사라졌음을 깨닫고, 성령께서 우리 마음 안에 함께하심을 느끼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언제나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 회개의 출발점이고, 신앙의 시작점입니다. 하느님 사랑을 깊게 체험한 사람만이 참된 용서를 할 수 있습니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마태 5,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