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팔백일흔다섯 번째
누가 진짜 맹인인가?
<요한복음>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길을 가다가 날 때부터 맹인이 된 사람을 만납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이 사람이 맹인으로 태어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이냐고 예수님께 묻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병든 자나 신체 불구는 그 집안에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있어서 그렇다고 믿었던 겁니다. 예수님은 그렇지 않다고 하시면서 그의 눈에 진흙을 발라 치유해 주십니다. 눈이 떠진 맹인의 이야기를 들은 바리새인들은 그에게 누가 눈을 뜨게 해주었느냐고 묻습니다. 오랜 세월 앞을 보지 못했던 사람이 나았다는데 이를 축하해 주는 사람은 없고, 흠잡기에 눈을 부라리고 있는 사람들만 등장합니다. 바리새인들은 그날이 안식일이었으므로 생사가 달린 상황이 아니면 병도 치료할 수 없는데 누가 감히 율법을 어겼는지, 예수가 그인지 확인하려는 겁니다. 바리새인들이 맹인이었던 자가 예수가 고쳐주었다고 하자, 그러면 그가 어떤 사람이냐고 묻습니다. 그는 예수를 ‘선지자’라고 부릅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예수를 그리스도라 시인하는 자를 ‘회당에서 쫓아내기로’ 결의했기에 그를 출교시킵니다. 아무도 고칠 수 없는 병을 낫게 했는데 이를 칭송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사도 요한은 남의 불행과 기쁨에 공감할 줄 모르는 사회를 그렇게 표현한 겁니다. 프로테스탄트 종교 개혁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직무를 우리의 선지자, 제사장, 왕으로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하나님의 말씀 전체가 그리스도께서 선지자 직무를 수행하신 결과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런 예수를 선지자로 믿자, 유대인들은 그 맹인이었던 자를 출교시킨 겁니다. 요즘에도 그렇지요. 자기의 잣대를 들고 다니며 남들을 내 편, 네 편으로 나눕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묻습니다. “누가 진짜 맹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