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19일 연중 20주간 월요일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너의 재산을 팔아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9,16-22 그때에 16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나에게 선한 일을 묻느냐? 선하신 분은 한 분뿐이시다.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켜라.” 18 그가 “어떤 것들입니까?” 하고 또 묻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19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20 그 젊은이가 “그런 것들은 제가 다 지켜 왔습니다. 아직도 무엇이 부족합니까?” 하고 다시 묻자, 21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22 그러나 그 젊은이는 이 말씀을 듣고 슬퍼하며 떠나갔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인생을 살면서 많은 갈등을 체험하게 되어 있습니다. 취업을 하지 못한 사람들은 취업문제 때문에, 진학문제 때문에, 누구와 결혼할 것인가? 사업 파트너로 이 사람은 적당한가? 종교를 선택하는 것도 아주 심각한 문제입니다. 개종을 한다는 것 등 정말 심각한 문제들이 산재하고 있답니다. 내가 가장 심하게 갈등하고 어려웠던 시기는 어렵게 고등학교를 졸업하였을 때입니다. 대학에 진학하지 못할 형편이면서도 대학에 진학하고 싶은 마음과 직장을 잡아 돈을 벌어야 하는 가정 형편 때문에 심리적 갈등이 아주 심각하였습니다. 직장 때문에도 그렇고, 결혼문제, 자녀들의 교육, 진학, 부모님과 형제들의 관계 등 가정 문제에서도 그렇고, 내 일생은 갈등의 연속이었습니다. 이런 갈등과 괴로움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사회적 심리학자 커트 레빈(kurt. Lewin)에 따르면, 갈등은 다음의 세 가지 경우에 일어난다고 합니다.
1. 두 개의 플러스의 유의성(誘意性:끌어당기는 힘)이 거의 같은 세기로 동시에 반대방향으로 작용하는 경우, 즉 다 같이 매력 있는 목표가 있는데, 어느 쪽을 택하면 좋을지 결정하지 못하는 경우를 말하는 갈등이 있습니다. 그림으로 표시하면 (도시:圖示하면 ) ‘+ ← 사람 → +’입니다. 예컨대, 여성이 결혼과 직장 사이에서 진퇴양난이 되어 있는 경우와 같은 경우입니다.
2. 두 개의 마이너스의 유의성이 거의 같은 세기로 동시에 작용하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즉 ‘- → 사람 ← -’인 경우입니다. 앞은 낭떠러지요, 뒤에는 호랑이라는 경우와 같이 좋지 않은 환경과 요인들이 나에게 다가와 정말 진퇴양난(進退兩難)의 경우입니다. 어느 쪽으로 나아가도 화를 면할 수는 없는 경우에 보다 경미하게 화를 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습니다.
3. 플러스의 유의성이 동시에 마이너스의 유의성을 수반하는 경우이며, ‘±←→ 사람’으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가령 시험에는 합격하고 싶은데, 공부는 하기 싫다는 등의 경우와 같은 것입니다.
이처럼 어떤 유의성에 의해서 인간은 갈등을 하는데 그 유의성이 둘이거나 셋이 동시에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그 유의성에 따라서 갈등의 폭이 커지기도하고, 깊어지기도 하며, 복잡해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또한 사회를 살아있는 유기체로 보고, 이 유기체는 자신을 균형 잡힌 상태로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이론을 ‘균형 모델’이라고 합니다. 균형을 유지하는 데 질서가 유지되는 것을 정상적인 상태라고 보면 비정상적인 상태에 놓인다고 하더라도 균형점을 향해 계속 움직이는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이 균형 모델에 의해서 역으로 생각해보면 사람들은 비정상적인 상태에 있을 때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가기 위해서 갈등을 적절하게 조절할 힘을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에 반하여 갈등모델은 사회 내에 긴장과 갈등의 상황이 비정상적이기 보다는 오히려 일반적이고 당연하다는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회는 권력, 부, 지위 등 희소자원을 차별적으로 분배되기 때문에 차별적인 분배를 계속 유지하려는 세력과 이러한 불균형을 시정하려는 세력이 끊임없이 갈등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사회적 갈등모델인 것입니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돈이 없는 사람들에게 계속 갈등관계에 놓이게 되고, 이러한 갈등관계는 균형을 유지하려는 사람들에게 갈등을 일으키는 유의성(끌어당기는 매력, 동기, 원인 등)을 적극적으로 끌어당기거나, 회피하거나, 무시하거나, 배척함으로써 갈등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재산과 영원한 생명을 동시에 추구하려는 한 젊은이에게 보다 높은 가치관과 영원한 행복의 가치관을 제시하십니다.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그리고 나를 따르라.”라는 가치관입니다. 차별적인 희소자원을 공평하게 분배되는 것이 사회의 정의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많이 가진 사람들은 적게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에 대하여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그 문제에 대하여 공평한 사회정의의 실현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것은 오히려 더 불공정한 태도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열심히 일하든, 부모의 유산을 받아 이루어졌든 지금 필요한 것은 내가 가진 재산은 율법을 어기는 것도 아니고, 율법의 정신에도 어긋나지 않는 것이라면, 열심히 일하지 않고 공짜만 얻으려는 사람들에게 그런 혜택을 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고, 그 것이 사회 정의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청년은 갈등합니다. 그리고 그 매력적인 유의성 중에서 더 큰 쪽을 선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레빈의 첫 번째 유형 ‘+ ← 사람 → +’에서 자신의 이익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는 재산의 유의성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고 싶은 것입니다. 사실 할 수만 있으면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유한한 재산에 연연하지 말고, 무한하고 영원한 하늘나라의 보화에 더 비중을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것이 그렇게 쉽게 말처럼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의 모습입니다. 오늘의 나의 모습도 그러하고, 그동안 살아온 내 삶도 그러하답니다. 심한 갈등이 있을 때 나는 정말 편하고 쉬운 방법을 택해 왔습니다. 돈이 걸려있는 문제에 대하여도 돈과 명예를 더 찾았던 것이 나의 삶이었습니다. 부자 청년을 나는 결국 따라갔습니다. 나는 재산이 없으면서도 재산이 아닌 다른 재산을 따라서 방황하였는지도 모릅니다. 오직 주님께서 매 순간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기만을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