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 (證言) - [48] 홍종복 (洪鍾福) - 나의 증언 10. 충남 지구장으로 시무 - 3
나는 인사를 나누고 원리 교육을 시작했다. 그러나 교구장직을 맡아 순회 활동도 해야 하였으므로 참아버님께 보고드렸더니 이상헌 선생에게 이 사명을 맡기셨다. 이상헌 선생은 그때부터 공산주의 사상에 대해 밑바닥에서부터 철저하게 연구했다. 원리로 공산주의에 대한 모든 이론을 밝히 해명할 수 있는 이론적 기반을 갖춘 후 나와 함께 다시 대전교도소를 찾아갔다. 나는 이상헌 선생을 소개했다. 그리고 교육이 이어졌다. 우리가 교육을 하는 동안 간수들이 권총을 차고 감시하며 지켜보았다. 왜냐면 간첩들에게 사상교육을 하겠다고 온 사람이 도리어 간첩행위를 한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상헌 선생이 매번 강의를 했고 나는 교구 순회를 다니다가 틈틈이 찾아가 참석하곤 했다. 그렇게 약 6개월 동안 교육이 진행되었다. 그러자 공산주의 최고 이론가는 “도대체 누가 이 이론을 만들었소? 이 원리라는 것을 듣고 나니 일생을 바쳐 투쟁해 온 공산주의 이론에 근본적 오류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소.”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의 마음에 변화가 온 모양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지금 세계적으로 기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오직 공산주의 사상 밖에는 없소.” 하고 결론을 내렸다. 공산주의 최고의 사상가가 그런 반응을 보이자 교도소장을 비롯한 간수들이 무척 반기며 좋아했다. 다음부터는 교육을 위해 우리가 교도소를 방문하면 모두 반갑게 맞아 주었다. 이때부터 우리가 교도소를 꾸준히 찾아가 공산주의 사상을 가진 사상범에게 원리 교육을 하게 되었다. 충남지구장으로서 대대적인 승공강연회를 하기 위해 도청 치안국에 계획서를 제출했다. 그러자 치안국 상부에서는 통일교회 전도가 실제 목적일 것이라며 적극 반대했다. 그런데 대전경찰서 정보과장이 대덕군청에서 열린 승공강연회에 참석해 강의를 듣고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동을 받았다. 그는 “대전에서 승공강연회가 있었는데 이 이론이 아니고는 대한민국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라는 호소의 편지를 치안국장에게 직접 보냈다. 그 결과 치안국장의 허락으로 전국에서 대대적인 승공강의가 이뤄질 수 있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