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일이 아니라면,
살면서 분명 여러 번 듣는다.
댁의 남편은
농사꾼처럼 안 생겼다는 말을 늘
누군가에게 듣는다.
군에서 전역을 하고
서울 용산
어느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한 적이 있다.
그 곳 주방장님으로 계시던 분이
나를 볼 때마다
자네는 공부 할 사람인데,
왜 이러고 있는가를 말씀 하신다.
어디를 가던지,
늘 자네는 공부 할 사람이라고
한 마디를 하신다.
말하는 투나 생김이 일 할 사람이 아니라고 하신다.
그때는
공부는 마치고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또 다른 공부가 무엇인지
답답할 때가 있었다.
농사짓던 부부에게
동네 사람들과 이야기하면
남편은 농사 일을 하면
안 될 사람이라고 하신다.
그럼 무엇을 하고 먹고사는지 물어본다.
그래도
좌우지간 농사는 아니라고 한다.
그 말을 듣고도
농사일을 하면서
오만 일들이 다 겪는다.
며누리는
시어머니가 치매로
병간호를 했다고 하신다.
시어머니도 살면서 수없이 주변사람들에게
그와 비슷한 말을 들었던 분이다.
어머니가 그렇게 돌아가시자
이번에는
남편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고
남편이 좋아지면,
아내가 지나가던 차에 어깨를 부딪쳐
병원에 입원한다.
아내가 퇴원하면
이번에는
남편이 다시 간이 안 좋아서 병원에 입원한다.
왜 그런지 연구가 없다면
며누리가 고생을 한다.
다음 차례는 외 아들이 투석하러 다닌다.
며느리가 입원하고,
이제부터는 이 집안은
병원을 다니면서 공부하는 집안으로 만든다.
우환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한다면 그 공부를 하라고.
이제는 농사짓던 농작물을 들고
시장으로 사람을 만나게 한다.
오만 사람들이 오신다.
처음 장사하면 기분이 좋다.
새로운 환경이라서 기분 전환이 된 것이다.
시간이 지나서 단골이 만들어지고
하나 둘 나에게
우리 집안이 아픈 이유를 설명한다.
다리가 아파서 침을 맞으러
간다고 하고
허리가 아파서 침을 맞으러 간다고 하고
오만 말들을 정리 하면
오늘 우리 집안 어른들이 왜 아픈 병에 걸렸는지 알 수가 있을 것인데
이제는 농사꾼에서 장사꾼으로 전락한다.
오는 단골들과
어느 병원에 좋은지
설명하고 나도 내일 서울병원에 간다고 한다.
앞을 바라보니
아픈 남편과
아픈 며느리
아픈 아들과
아픈 단골에
병원 앞에서 먹는 이야기만 한다.
아픈 사람만 우글우글 한다
남편은
아픈 몸을 이끌고 상갓집으로 문상하러 간다고 한다.
문상하러 간다면 분명 그분도 나와 같은 아픔이 있는 분이다.
그것을 배우고 공부하려고
문상 가야 하는데,
안되었다고 간다면
보고 듣고 배운 것은 다음 차례다.
왜 그런지 연구하지 않으면,
다시 자손에게 유전이 된다.
어머니를 고려장하면 손자가 다시
지게를 들고 와서 오늘 본 것을 가지고
자신의 아버지를 고려장 한다.
수천 년 연구도 없이 따라 한 결과물이다.
한 사람의 깨우친 후손이 나올 때까지
대대로 아픔을 가지고 공부를 시킨다.
조상들이 방치한 공부가 똘똘말이로
마지막 후손에게 유전으로 남는다.
며누리 입에서 적어도 먹고 사는 말이 아니라
함께 한 주변 사람들이 보인다면
무엇을 해도 즐거운 일들이 일어나면서
집안 우환은 사라진다.
저마다 갚아야 할
빚이 다르다.
그 무게가 뭉쳐서
오늘 우리에게 유산으로 물려받는다.
인류 공영에 이바지 하는 삶이 아니면
그 무게의 잘량이 너무 높다.
우리가
누구인지 같이 연구해 보아야 한다.
2024년7월6일
정법 1701강
인류공영에 이바지한다고 외웠던
국민교육헌장을 떠올리면서,
우리 이웃들 대화에서
내 식구라는 말을 듣고나서
가족이 나인가?
우리인가를 생각해 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