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코르도바의 알카사르(Alcázar de los Reyes Cristianos)를 구경합니다.
알카사르는 입장료 4.5유로인가 하지만, 아침 일찍 방문하는 사람에게는 무료로 공개합니다.
이곳은 성채 부분과 정원으로 크게 나눌 수 있습니다.
1328년 카스티야 왕 알폰소 11세의 명령으로 만든 무데하르 양식의 왕궁이라 합니다.
그러니 고딕양식의 성채, 바로크양식의 교회, 무데하르 양식의 파티오 그리고 이슬람식 목욕탕이 있는 복합적인 곳이죠.
원래 이 자리는 서고트족이 세운 성터였고 그 후 무어인의 요새였을 겁니다.
왕궁의 모습은 마치 성벽을 연상하리만치 난공불락의 요새로 느껴집니다.
후일 레콩키스타를 마무리 지은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2세 양왕이 거주하기도 한 곳이라죠?
이곳이 유명한 이유는 건물의 아름다움은 물론 대항해가 콜럼버스가 이 왕궁에서 양왕을 알현하고
대항해의 계획을 올리고 양왕은 "그대에게 대항해를 허하노라~"라고 했던 곳이지요.
그런 곳이기에 더 유명한지 모르겠습니다.
이슬람을 몰아내고 만들었지만, 건물의 형태는 이슬람과의 공존입니다.
이슬람 건축의 기본인 정원의 분수를 그대로 도입해 만들었네요.
문화란 이렇게 서로 상충하는 게 아니라 공존하는 게 맞나 봅니다.
내부에는 로마 시대의 석관과 모자이크 그리고 물의 정원인 이슬람 풍의 모습도 함께 볼 수 있는 곳이죠.
이슬람은 원래 고향이 척박한 사막이라 정말 물을 이용해 정원 가꾸기에 많은 시간을 들였을 겁니다.
그들은 이렇게 정원에 나무 심고 분수 만들고 하는 것이 삶의 행복이었을 겁니다.
탑에 올라 시내 모습과 과달키비르 강을 바라보는 것도 좋습니다.
이사벨 여왕은 알현 후 떠나는 콜럼버스를 이곳에 올라 물끄러미 바라보았는지 모릅니다.
서방님 몰래 말입니다.
정사각형의 알카스르에는 네 귀퉁이에 모두 감시탑을 세웠겠지만, 지금은 하나가 사라져버렸네요.
알카사르 지하에는 민족 간 갈등의 잔재가 남은 곳이라 하지요.
이곳을 되찾은 가톨릭 세력은 무어인을 따라 이곳에 들어온 유대인에게 떠나거나 아니면 가톨릭으로 개종할 것을 명령했답니다.
지금도 뒤에는 그들의 집단 거주지 유대인 거리가 있습니다.
다시 돌아갈 조국도 없는 유대인은 대부분 개종하여 이곳에 남기를 원했지만, 이를 의심한 이사벨 여왕은 계속 감시하고
의심 가는 사람은 이곳 지하에 감금하고 고문까지 했다고 합니다.
성벽에 올라 성가퀴 사이로 보이는 메스키타의 미나레트 왠지 슬프게만 느껴집니다.
나라 없는 민족의 설움을 누가 알겠습니까?
종교가 사랑이라고요?
종교란 이렇게 내편 네편을 갈라 극과 극을 달리나 봅니다.
그때 이곳을 떠난 유대인은 네덜란드로 많이 이주했나 봅니다.
그들이 모인 암스테르담은 유럽 경제의 중심지로 발돋움하는 계기를 만든 사람이 바로 유대인들의 이주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지 싶습니다.
이로써 네덜란드는 세상에 등장하는 계기를 마련해 작은 나라지만, 무역 강국으로 얼굴을 내밀게 되었다지요.
그들은 그곳에 이주해 만든 게 그 유명한 동인도 회사라 했던가요?
동인도 회사는 인도나 중국 등 아시아 국가와 무역을 함으로 많은 부를 네덜란드로 가져오는 기틀을 닦았을 겁니다.
국토가 작고 땅이 해수면보다 낮은 네덜란드를 세계 속의 중요한 나라로 만든 것 말입니다.
그리고 대항해시대를 열고 스페인의 전성기를 이끈 콜럼버스가 양왕을 알현하고 승낙을 받은 장소도 바로 이 도시라지요?
과달키비르 강은 이곳을 지나 세비야로 흘러들며 세비야에서 콜럼버스가 탄 배를 띄우고 신천지로 출발한 강이라던가요?
높지는 않지만, 성벽 망루에 올라 바라보면 주변의 멋진 풍경도 덤으로 구경할 수 있습니다.
이 도시는 이미 기원전 169년경 로마의 집정관이었던 클라우디오 마르셀로에 의해 도시가 건설되기 시작했다 합니다.
이때가 로마제국이 한창 전성기를 보내던 시기가 아닐까요?
로마 제국이 멸망하며 그동안 이 지역을 엿보며 지냈던 바다 건너 이슬람 세력...
그중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왕조 출신인 아브드 알라흐만 1세가 756년 이곳 코르도바를 도읍으로 정하고
우마이야 왕조를 세우게 되며 700여 년간 이슬람 문화가 꽃을 피웠다 합니다.
알라흐만 3세가 통치하던 10세기경에는 이곳의 인구가 100만 명에 이르렀고 모스크만도 300개 정도로 전성기를 누렸다 합니다.
지금의 코르도바 인구가 30만 명이 조금 넘는다 하니 100만 명의 도시 인구라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코르도바에 모여 살았나 알 수 있겠네요.
이 정도라면 유럽에서도 가장 번창한 도시가 아니었을까요?
그러나 알카사르 안에는 허물어진 옛 모습 그대로 내버려 둔 곳도 있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세상의 힘이란 원래 뜬구름같은 것.
어느 하나 잡으려 해도 내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설령 내 것이 되었다 하더라도 일시적인 것입니다.
우리 삶 자체가 대나무 숲을 지나는 바람이요, 가을 하늘에 일시적으로 피어오른 구름 같은 것 아니겠어요?
첫댓글 저는 유럽국가중 지중해연안 국가들에 많은 사이프러스 소나무를 볼 때 마다 그 키가 큰 나무를 원뿔형으로 원통형 또는 사각형으로 잘 손질해둔것 발견합니다. 그런데 수십 많게는 수백그루 되는 키큰 나무를 손질하자면 크레인이 필요할것 같은데 적지않은 비용이 들리라 생각되었습니다. 그런데 나무의 높이를 보면 크레인 없이는 손질이 불가능할것 같은데 그냥 두지 왜 저렇게 힘들게 할까 생각하곤 합니다. "네일이나 잘하라구요?" 넵, 잘 알겠습니다. 저의 일도 잘 못하면서 왜 씰데없는 것에 신경쓰는지 저도 모르겠어요. ㅜㅜ
그들에게는 정원가꾸기가 취미인가 봅니다.
우리의 정원은 자연 그대로 조화롭게 가꾸는데 그들은 마치 사열이라도 하는 듯 그렇게 도열하는 식으로 가꾸더라고요.
그게 그들의 정원문화인가 봅니다.
크레인이 필요하지 싶어요.
사실 크레인으로 정원 다듬는 모습을 보기도 했고 사진으로 찍어두었습니다.
지기님이 분명 의문을 가지실 듯하여...
@佳人 ㅋㅋ, 바쁘신 와중에 언제 또 독심술을 익히셨는지요. 놀랍습니다.
@서울사람 기본입니다.
이 나이가 되도록 상대방의 의중 자체도 읽지 못한다면 헛 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