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스러움이란 과연 무엇일까. 미국을 지배하는 의식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승자 독식주의이다. 이른바 winner takes it all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미국의 대통령 선거이다. 미국은 각 주마다 개별적으로 투개표를 한다. 그래서 그 주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는 후보가 그 주의 모든 표를 획득한다. 1표차이라도 그 많은 투표인단 수를 모두 가져가는 것이다. 해당 주에서는 그야말로 박빙의 승부를 펼쳤지만 그 결과는 특정 후보 한명이 모두 가져가는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해서라도 한표라도 더 획득하려 하지 않겠는가. 그만큼 승자에 대한 존경 나아가 영웅시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또한 자국 이기주의 극대화이다. 자국의 이익이 된다면 그야말로 앞뒤 재지 않는다. 그것이 불의라고 해도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서슴치않고 행한다. 그것이 미국의 정의이다. 미국이 지금 전세계에서 최강자이고 세계 질서를 우지좌지하는 경찰국가 노릇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이 가장 미국스러운 행태를 보였다고 평가를 받는 역사에 남는 이벤트가 있다. 가장 위선적이고 자국 이익만을 챙긴 더러운 재판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바로 일본 도쿄 전범재판이다. 이 전범재판은 2차세계이 끝난 다음해인 1946년 5월 3일부터 2년 6개월동안 열렸다. 세계대전에서 상대국들에게 엄청난 피해와 살상을 범한 일본의 전쟁범죄자들을 단죄하는 그런 재판이었다. 증인 491명, 증거자료 4336건, 법정 기록 48만288쪽이었다. 처음에는 그럴 듯했다. 하지만 그속을 들여다보면 그야말로 미국의,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재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였다. 미국이 주도한 전범재판에는 영국과 프랑스 등도 포함됐지만 주도권은 미국에게 있었다. 일본 군정의 총책임자가 바로 미국 사령관 맥아더였기 때문이었다.
미국은 애당초 일본 전범들을 단죄할 마음이 없었다. 진주만 습격사건으로 미국이 졸지에 세계 대전에 참전하게 되고 유럽에서 독일과 태평양에서 일본과 치열한 전쟁을 벌였다. 하지만 미국은 일본의 전쟁범죄자들에게 벌을 주겠다는 생각보다는 어떻게 하면 일본을 잘 다독여 자신들의 편으로 만들고 일본을 자신들의 속국으로 이용할 것인가에 몰두했다. 일본에 핵폭탄 두방을 투하해 수많은 인명피해를 냈기에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또한 세계대전후 급팽창하는 소련의 기세를 막아야 하는데 힘도 없고 경제력 군사력에서 세계 최하위 국가인 남한보다는 일본이 훨씬 다루기도 쉽고 활용가치가 높았다고 판단했던 것같다.
도쿄 전범재판에는 조선이라는 단어가 아예 없었다.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였고 식민지을 건드리려고 보니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재판에 관여한 승전국들이 모두 식민지 제국들 아니였던가. 그들의 판단에 식민지 그가운데 정말 먹을 것도 챙길 것도 없었던 조선은 아예 관심밖이 었다. 인도도 중국도 동남아시아 각국 등 일본의 식민지 국가들도 모두 같은 처지였다.
맥아더는 일본에 도착해 일본인들로 부터 엄청난 환대를 받았다. 전쟁에서 참패한 나라치고 이렇게 승전국을 환대하는 것을 상상하지 못한 맥아더는 승리감에 도취했다. 침략 전쟁의 최고 책임자이자 실질적 리더였던 일왕을 만난 맥아더는 더욱 의기양양했다. 일왕은 맥아더에게 미국이 일본을 통치하는데 모든 역량을 다 바치겠다는 충성맹세에 정신줄을 놓는다. 일왕을 비롯한 왕족들은 진술조차 받지 않고 면책된다. 아예 전쟁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이게 뭔가. 그러면 일왕의 지시를 받고 행동으로 옮긴 자들만 책임이 있는 것인가. 앞뒤가 전혀 맞지 않고 오로지 미국의 이익만을 위한 전범 재판이 되고 말았다. 결국 기소된 A급 전범 28명가운데 7명만 처형됐다. 나머지 전범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둘씩 풀려나 일본 정치 경제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풀려난 전범 가운데 기시 노부스케가 있다. 그는 풀려난 뒤 곧 일본의 총리가 된다. 그가 바로 아베의 외할아버지이다. 아베는 어릴때 외할아버지를 따르면서 그의 정신을 배웠다. 그런 그에게 일제 만행을 사죄하라고 했으니 그의 귀에 그게 들리겠는가. 무슨 잠꼬대같은 소리냐. 한국이 하늘처럼 모시는 맥아더 원수님이 진행한 도쿄재판에서 무혐의로 풀려났고 일부 혐의자는 모두 죄값을 치뤘는데 무슨 뚱단지같은 개소리냐고 할만도 하지 않겠는가. 그 모든 단초는 모두 미국이 제공했다. 하여튼 그랬다.
당시 한국에 주둔하는 미군의 책임자는 하지이다. 하지 중장은 맥아더의 직속 부하였다. 맥아더의 충복이라는 말이다. 그가 남한을 통치하는데 일본에 있는 존경하는 맥아더 원수의 지시를 충실히 따른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맥아더는 남한에 있는 일본인에 대해 불상사가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라는 명령을 내렸을 것이다. 도쿄 전범재판을 보면 그런 장면이 확연히 떠오르지 않는가. 그러니 남한에서 무슨 친일파 청산이 이뤄졌겠는가. 우익 좌익이 죽일 듯이 싸움도 하면서 말이다.
맥아더를 필두로 미국 정부의 친일 정책은 가관이었다. 인간 생체실험을 자행하고 인류역사상 가장 참혹한 짓이라는 그 인간 마루타를 행한 731부대 책임자 이시이 시로를 미국이 정중하게 미국으로 모셔간다. 돈도 두둑히 쥐어주면서 말이다. 미국이 하고 싶었지만 차마 하지못한 그 대단한 생체실험을 완수한 731부대장을 미국 육군 기지로 모셔갔다. 당시 수많은 사람을 생체실험하며 작성된 자료들을 모두 온전히 미국으로 옮겨 갔다. 그 자료로 미국이 의학분야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뤘다는 후문이다.
역사는 무엇인가.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이어주는 가교같은 존재이다. 역사속 진실에서 교훈을 얻는다. 때로는 정말 지우고 싶은 역사도 그것이 역사이니까 그속에서 교훈을 얻고 앞으로 방향도 잡는 것이다. 역사는 냉정하다. 역사속에서 교훈과 진실됨을 얻지 못하는 민족에게는 그 역사를 되풀이 해주는 습관이 있다. 알아듣고 느끼고 제대로 판단할 때까지 말이다. 그래서 역사는 무섭다는 것이다. 그 과거의 아픔을 망각하고 깨닳지 못하는 민족과 국가는 또 다시 그런 역사를 겪게 한다는 의미이다. 한국과 한국인은 또 다시 과거 일제시대 그리고 그 처리를 강대국에게 의존해야만 하는 그런 역사를 또 경험하고 싶은가. 역사는 준엄하게 바라보고 있다.
2023년 2월 15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