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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꾸르실료 DE COLORES 원문보기 글쓴이: 야고보 아저씨
2024년 1월 31일 수요일 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1-6
그때에 1 예수님께서 고향으로 가셨는데 제자들도 그분을 따라갔다.
2 안식일이 되자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많은 이가 듣고는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들이 일어나다니!
3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에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5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
병을 고쳐 주시는 것밖에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다.
6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 예수님께서는 여러 마을을 두루 돌아다니며 가르치셨다.
개천에서 용이 난다면 기뻐해야 합니다.
글씨를 쓸 때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글자가 가지고 있는 의미와 필순(筆順)이라고 합니다. 어려서 한문 공부를 하거나 한글을 공부할 때에 필순은 아주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특히 한자를 쓸 때에는 좌에서 우로, 위에서 아래로, 시작은 예리하게, 끝은 무겁고 힘 있게 마무리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서당 훈장님은 한 일자(一)를 쓸 때 ‘시작할 때는 말발굽과 같고 끝은 누에 대가리’와 같아야 한다고 강조해서 말씀하셨습니다. 한 획을 그을 때에도 정성을 다해서 조금도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고도 하셨습니다. 그래서 붓글씨를 쓰고 나면 어깨가 빠지는 듯 아프기도 하였습니다. 필순과 같이 모든 것은 과정이 중요하다고 어려서부터 배웠습니다.
그래서 사람도 잘 생기고 준수하면 이목구비(耳目口鼻)가 분명하여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윤곽이 뚜렷하고 귀, 눈, 입, 코가 제 자리에 확실하게 자리 잡고 있어야 훌륭한 사람이라고 한 말입니다. 글씨를 쓰듯 사람의 얼굴에 순서를 매긴다면 가장 먼저 머리, 이마, 귀, 눈, 코, 입, 턱, 목의 순서로 표기해야 맞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목비구(耳目鼻口)라고 하지 않고 이목구비(耳目口鼻)라고 합니다.
해학적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잘 듣고, 눈으로 잘 식별하고, 입으로 거룩하게 말해서 콧대를 세우듯 권위를 세워야 한다.’고 해서 이목구비라고 한다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목구비가 아무리 뚜렷하고 선이 분명해도 얼굴에 조화를 잘 이루어야 잘 생겼다고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니까 왜 ‘이목구비’라고 했는지 조금씩 감이 잡히는 것입니다.
사람은 경청(敬聽)하는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사람들의 말을 잘 듣는 것은 정말 지혜가 필요한 덕목입니다. 공자는 나이 60이 되어 이순(耳順)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했습니다. 이순(耳順)은 <생각하는 것이 원만하여 어떤 일을 들으면 곧 이해가 된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들의 말이든 경청하는 자세를 가진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서로 자신의 생각으로 똘똘 뭉쳐서 다른 사람의 말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라고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복음도 가장 먼저 들음으로써 받아들입니다.
그렇게 경청한 다음에 눈으로 모범을 보고 배우고 깨닫고, 자신의 삶을 견주어 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의 작은 허물도 빼놓지 않고, 자신의 큰 허물은 무조건 덮어두려고 하는 눈이 아니라 자신의 작은 허물도 크게 보고, 다른 사람의 큰 허물은 아주 작게 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합니다. 세상에서 모범이 될 만한 것이 없으니까 험악하고 흉악한 것만 보이는 것입니다. 복음도 거룩하게 사는 사람들의 삶을 봄으로써 받아들여집니다. 잘못된 것만을 보고 배운다면 복음을 사는 사람은 보이지도 않게 됩니다.
가르치고, 말씀을 전하고, 진리를 말해서 사람들을 감화시키는 도구는 사람의 입입니다. 음식을 먹고, 영양분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입으로는 거룩한 말을 하여야하며, 진리를 증언해야 합니다. 이렇게 귀와 눈과 입이 제 역할을 다할 때 코가 반듯하게 제 자리를 지킬 수 있습니다. 코는 얼굴의 중심에 위에서 아래로 반듯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위와 아래를 하나로 연결해 주는 통로이며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모든 것을 중심으로 모으는 일을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고향을 찾으신 예수님은 이목구비가 정말 뚜렷하셨을 것입니다. 그분의 경청하심과 올바르게 보심이나 선하신 눈매,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말씀, 그 모든 것이 하느님과 완전히 일치되셨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삶을 보면서 놀라고 감탄하면서도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인정하기가 싫은 것입니다. 질투의 감정이나 시기(猜忌)의 감정도 있습니다. 그 감정들이 주님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비하(卑下)하게 합니다. ‘개천에서 용이 나면’ 기뻐해야 합니다. 그러나 개천을 강조해서 용을 말살시키려고 하는 것이 우리들의 심보입니다. 사람의 학벌이나 고향이나 출신지역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인품이 중요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못난 사람들 중의 하나가 학벌이나 출신성분을 가지고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주님, 당신을 비하하는 사람들 속에 저도 있습니다. 용서해 주소서. 그리고 당신의 이목구비를 닮게 하소서. 고향 사람들의 믿지 않음을 안타까워하신 주님!!
<인구 조사를 하여 제가 죄를 지었습니다. 이 양들이야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 사무엘기 하권의 말씀입니다. 24,2.9-17
그 무렵 다윗 2 임금은 자기가 데리고 있는 군대의 장수 요압에게 말하였다. “단에서 브에르 세바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를 두루 다니며 인구를 조사하시오. 내가 백성의 수를 알고자 하오.”
9 요압이 조사한 백성의 수를 임금에게 보고하였는데, 이스라엘에서 칼을 다룰 수 있는 장정이 팔십만 명,
유다에서 오십만 명이었다.
10 다윗은 이렇게 인구 조사를 한 다음, 양심에 가책을 느껴 주님께 말씀드렸다.
“제가 이런 짓으로 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주님, 이제 당신 종의 죄악을 없애 주십시오.
제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을 저질렀습니다.”
11 이튿날 아침 다윗이 일어났을 때, 주님의 말씀이 다윗의 환시가인 가드 예언자에게 내렸다.
12 “다윗에게 가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면서 일러라.
‘내가 너에게 세 가지를 내놓을 터이니, 그 가운데에서 하나를 골라라. 그러면 내가 너에게 그대로 해 주겠다.’”
13 가드가 다윗에게 가서 이렇게 알렸다. “임금님 나라에 일곱 해 동안 기근이 드는 것이 좋습니까?
아니면, 임금님을 뒤쫓는 적들을 피하여 석 달 동안 도망 다니시는 것이 좋습니까?
아니면, 임금님 나라에 사흘 동안 흑사병이 퍼지는 것이 좋습니까?
저를 보내신 분께 무엇이라고 회답해야 할지 지금 잘 생각하여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14 그러자 다윗이 가드에게 말하였다. “괴롭기 그지없구려. 그러나 주님의 자비는 크시니,
사람 손에 당하는 것보다 주님 손에 당하는 것이 낫겠소.”
15 그리하여 주님께서 그날 아침부터 정해진 날까지 이스라엘에 흑사병을 내리시니,
단에서 브에르 세바까지 백성 가운데에서 칠만 명이 죽었다.
16 천사가 예루살렘을 파멸시키려고 그쪽으로 손을 뻗치자, 주님께서 재앙을 내리신 것을 후회하시고
백성을 파멸시키는 천사에게 이르셨다. “이제 됐다. 손을 거두어라.”
그때에 주님의 천사는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 있었다.
17 백성을 치는 천사를 보고, 다윗이 주님께 아뢰었다. “제가 바로 죄를 지었습니다. 제가 못된 짓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양들이야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 그러니 제발 당신 손으로 저와 제 아버지의 집안을 쳐 주십시오.”
축일1월 31일 성 요한 보스코 (John Bosco)
신분 : 신부, 증거자, 설립자
활동 연도 : 1815-1888년
같은 이름 : 돈 보스꼬, 돈 보스코, 돈보스꼬, 돈보스코, 보스꼬, 얀, 요안네스, 요한네스, 이반, 장, 쟝,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지오반니, 한스, 후안
성 요한 보스코(Joannes Bosco)는 1815년 8월 16일 이탈리아 사르데냐(Sardegna) 왕국 피에몬테(Piemonte)의 베키(Becchi)라는 작은 마을에서 가난한 농부 프란치스코(Francisco Bosco)와 마르게리타(Margherita Occhiena) 사이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두 살도 안 되었을 때 아버지가 급성 폐렴으로 사망하여 어머니의 영향을 받으며 자랐다. 그는 어려서부터 어머니로부터 깊은 신앙과 근면한 노동 정신 그리고 순종의 덕을 배웠다.
가난 때문에 정규 학교에 갈 수 없었던 성 요한 보스코는 9살 때 농한기를 이용하여 카프리글리오(Capriglio) 초등학교에서 읽기와 쓰기만을 배웠다. 15살 되던 해인 1830년에 카스텔누오보(Castelnuovo) 읍내의 한 초등학교에서 단기 과정을 이수한 후, 키에리(Chieri) 시의 인문학교에 진학하여 5년 과정을 마치고 1835년에 키에리 신학교에 입학했다. 그리고 1841년 6월 5일 사제품을 받았다. 사제품을 받은 후 성 요한 보스코는 그의 은인이자 영적 지도자였던 성 요셉 카파소(Josephus Cafasso, 6월 23일) 신부의 도움으로 토리노(Torino)에 있는 사제 연수원에서 신학 연구와 현대 사목에 관한 연구 기회를 얻게 되었다.
성 요한 보스코 신부는 사르데냐 왕국의 수도로 정치와 산업화의 중심지인 토리노에 체류하는 동안, 토리노의 뒷골목을 방황하는 소년들, 전쟁고아들, 교도소에서 만난 12~20살의 수많은 청소년들, 공장에서 비인간화되어 가는 소년 노동자들의 실태를 파악하고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1844년 연수원을 졸업한 후 바롤라(Barola) 후작 부인이 경영하는 ‘소녀들 고아원’의 지도 신부로 부임하였으나 소년들의 사목에 온전히 헌신하기 위해 고아원에서 독립한 성 요한 보스코 신부는, 100여 명이 넘는 소년들과 함께 거처도 없이 이동하다가 1846년 4월 토리노 시의 서북쪽 도라 리파리아 강변의 발도코(Valdocco)에 정착하였다.
성 요한 보스코 신부는 한편으로는 주일학교를 시작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견습생들에게 관심을 기울였다. 1851~1853년에는 고아들과 가출 소년들을 위해 성 요셉 카파소 신부와 독지가들의 도움으로 발도코에 기숙사를 세웠으며, 제본소나 인쇄소 등의 직업학교와 기술학교도 시작하였다. 일반 교육에도 관심을 가져 기숙사의 소년들을 외부 학교에 보냈으며, 1856년에는 불어나는 소년들을 교육하기 위해 기숙사 구내에 학교를 세우는 등 그의 청소년 교육 사업은 점점 확장되어 갔다.
그는 엄격한 규율이나 훈련을 피하고 사랑으로 대하였으며, 각자의 성장과 발전 과정을 주도면밀하게 관찰하여 대응하였고, 각자의 개성과 신앙을 격려하여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로 길러냈다. 이 사업이 날로 확대되자 그는 소년들에 대한 교육과 사랑을 설교하러 다니는 한편 유명한 “예방 교육법”이란 저서를 저술하였다. 그는 사업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하여 교황 비오 9세(Pius IX)의 권고에 따라 1859년 18명의 제자들이 수도 서원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하였다. 그들은 가난한 청소년을 위해 일생을 바칠 것을 서약하였다. 제자들의 첫 수도 서원으로 기초를 다진 살레시오회는 1869년 3월 1일 정식으로 교황청으로부터 수도회 인가를 받았고, 1871년 4월 13일에는 회헌 인가를 받았다. 이듬해에는 성녀 마리아 도미니카 마자렐로(Maria Dominica Mazzarello, 5월 14일)와 함께 소녀들의 교육을 위해 ‘그리스도인의 도움이신 성모 마리아회’, 곧 살레시오 수녀회를 창립하였고, 1876년에는 살레시오 협력자회를 설립하였다. 그들은 청소년들의 구원을 위해 일하는 성 요한 보스코 사업의 협력자들로서 기도와 함께 경제적인 도움을 베풀었다.
성 요한 보스코 신부는 1888년 1월 31일 침대 주위에서 자신을 지켜보는 회원들에게 “모든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고 아무에게도 악을 행하지 마십시오! … 나의 아이들에게 천국에서 기다리겠다고 전해 주시오”라는 말을 남기고 72세의 나이로 선종하였다. 그의 묘비에는 ‘고아들의 아버지’라는 문구가 새겨졌다. 그는 1929년 6월 2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시복되었고, 1934년 4월 1일 같은 교황으로부터 성인품을 받았다. 그는 청소년 교육의 선구자로서 교육자, 청년, 청소년의 수호성인이다. 또한 청소년 교육을 위해 많은 책과 잡지를 출판하고 인쇄소를 적극 활용한 이유로 편집자와 교정자의 수호성인으로서도 공경을 받는다. 그는 보통 ‘돈 보스코’(Don Bosco)로 불리는데, ‘돈(Don)’은 이탈리아어로 ‘사제, 신부’라는 뜻이다. 즉 ‘보스코 신부’라는 의미이다.
오늘 축일을 맞은 요한 보스코 (John Bosco)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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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꾸르실료 DE COLORES 원문보기 글쓴이: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