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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重足側目(중족측목)
[字解] 重:겹칠 중
[意義] '발을 겹쳐 모으고 곁눈질을 한다'라는 뜻으로, 남의 위세에 눌려 두려워하는 모습을 비유하는 말이다. 측목이시(側目而視).중족이립(重足而立)이라고도 한다.
[出典] 사기(史記) 급정열전(汲鄭列傳)
[解義] 복양(濮陽) 사람 급암(汲晻)은 한(漢)나라 경제(景帝)와 무제(武帝) 때 태자세마(太子洗馬)와 주작도위(主爵都尉) 등을 지냈다. 그는 황제 앞에서도 직언을 서슴지 않았다. 장탕(張湯)이 법률을 개정하여 스스로 정위(廷尉)가 되었을 때, 급암은 황제 앞에서 장탕에게 법률을 제멋대로 한다며 후손들이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고 비난하였다. 장탕은 법령을 가혹하게 적용한 혹리(酷吏) 가운데 한 사람이다.
급암은 때때로 장탕과 논쟁을 벌이기도 하였다. 그럴 때면 장탕은 항상 세세한 법 조문을 들어 설명하였다. 급암은 말로써 그를 이겨내지 못하고 화를 내며 "천하에 도필리(刀筆吏)라는 것들을 공경(公卿)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하더니 과연 그렇구나. 그대가 꼭 그러하니,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두려워서 두 발을 모아 감히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고, 곁눈질을 하게 만들고 있다[必湯也, 令天下重足而立, 側目而視矣]"라고 꾸짖었다. 훗날, 장탕의 관직은 점차 높아져 어사대부에 이르렀으나, 금압은 오히려 회양군의 태수로 밀려났다.
도필리란 아전이 죽간(竹簡)에 잘못 기록된 글자를 칼로 긁고 고치는 일을 했던 데서 유래된 말로서, 아전들을 얕잡아 부르는 호칭이다. 혹리(酷吏)들 가운데는 도필리 출신이 많았다.
여기서 유래하여 중족측목은 남의 위세에 눌려 두려워하며 나서지 못하고 눈치를 살피는 모습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된다.
출처:NAVER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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