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면접을 봤는데 너무 긴장해서 아무 말 대잔치하고 왔어.”
‘아무 말 대잔치’는 생각없이 아무 말이나 입 밖으로 내뱉는 행위를 뜻하는 신조어다. 트위터나 인스타그램같이 SNS상에서 여러 사람이 각자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멋대로 적어 올린 모습을 비유적으로 이른 말이다. 그 의미 없음이 논란이 되기도 하지만, 대체로 예기치 못한 재미를 준다.
횡설수설, 불통의 의미를 지닌 ‘아무 말’이 여럿이 모여 즐긴다는 뜻의 ‘잔치’를 만나 유행처럼 번지눈 상황이다. 인과 관계 없는 유머, 맥락없는 노래 가사는 물론이고,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맛을 조합한 ‘아무 맛’ 과자까지. 지금 우리 사회엔 ‘아무것’들의 대잔치가 펼쳐지고 있다.
“피겨요정 손흥민 파이팅.” “마이클 잭슨 하니 그 춤이 생각나네요. 봉산탈춤.” 11일 방송된 KBS 예능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의 ‘아무 말 대잔치’ 한 장면. 여러 출연자가 나와 말장난이나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을 스포츠 경기처럼 중계하는 코너다. 예상 가능한 말이 나오면 혹평을 받고, 뜬금없는 상황이 연출되면 좋은 평가를 받는다.
노래 가사도 의미를 알 수 없는 ‘아무 말’ 천지다. 지난해 12월 형준이와 대준이가 장미여관과 함께 발표한 신곡 ‘산토끼’엔 ‘아싸라비아 콜롬비아 / 닭 다리 잡고 삐약삐약 / 아침 먹고 땡 으악 점심 먹고 땡 / 으악 창문을 열어보니 비가 오네요’라는 엉뚱한 노랫말이 나온다. 놀랍게도 7명의 작사가가 참여했다. 사람들은 “이게 뭐야”라는 비난부터 “웃기고 중독된다” “수능 금지곡으로 정해야 한다”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의 노래 ‘쩔어’에는 ‘3포 세대 5포 세대 그럼 난 육포가 좋으니까 6포 세대’라는 가사가 삽입됐다. 청춘들을 향한 메시지를 담았다는 이 노래에도 ‘아무 말’은 빠지지 않았다.
‘아무 말’은 기업 이벤트에도 종종 활용된다. 알바천국은 알바생, 사장, 국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정부에 전달하는 ‘알바 선진국 아무말 대잔치’를 펼쳤다. 각종 아무 말이 오간 가운데, ‘급여(알바생)’, ‘태도(고용주)’ 등 관계자들의 고민도 엿볼 수 있었다.
어디 말뿐인가? 미각도 ‘아무 맛 대잔치’에 푹 빠졌다. 최근 식품업계에는 어울리지 않을 맛을 조합한 이색 제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감자칩과 요구르트(코스모스제과 ‘이상한 감자칩’), 어묵과 연유(롯데푸드 ‘말랑카우 키스틱’), 우유와 수박(서울우유 ‘수박우유’), 커피와 소주(보해양조 ‘딸국다방’), 아이스크림과 핫도그(롯데푸드 라퀴진 돼지바 핫도그)를 조합한 제품부터, 어묵 국물을 차처럼 우려 마시는 티백도 나왔다.
“먹는 것 갖고 장난하지 말라”던 우리네 밥상머리 교육을 떠올리니, 보는 것만으로도 죄의식이 든다. 이런 것들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호기심에 ‘아무 맛’ 과자를 먹어봤다는 대학생 이현진 씨(21)는 “세상에 맛없다는 표현을 다 갖다 붙여도 모자랄 만큼 맛이 없었다. 과자를 먹다 버리긴 생전 처음이었다”라고 혹평을 하면서도 “신상이 나오면 또 사 먹을 거 같다. 아무래도 반복되는 일상이 질려 말도 안되는 것들에 끌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무 맛’은 이슈를 끌기에 좋은 콘텐츠다. 식품업계 한 관계자는 “예상치 못한 맛의 조합이 소비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SNS상에 화제를 모으면서 브랜드 인지도도 높아진다”고 밝혔다. 실제로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등 SNS에는 이색 식품들의 ‘먹방’ 게시물이 줄을 잇는다. 맛이 별로라는 혹평이 많을수록, 게시물과 제품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진다. 이처럼 ‘아무 맛’의 존재 이유는 맛이 아니라 호기심 유발과 새로운 자극이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세상 모든 것을 유희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이 퍼지고 있다”며 “대중은 깊이 있는 사고보다는 순간적으로 빵 터지는 가벼운 유희를 원한다. 일상의 스트레스, 우울함으로 인해 깊이 있는 콘텐츠에 에너지를 쓰기보다는 순간적이고 피상적인 것에서 즐거움을 찾는다”라고 분석했다.
기존 것을 조합하는 방식을 두고 불황의 영향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트렌드코리아2018’을 집필한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장기 저성장의 그늘에 대규모 투자가 어려운 기업들이 기존의 제품을 이용해 약간의 변화를 가한 신제품을 출시한 것”이라며 “의외성으로 무장한 리뉴얼 과자들은 새로운 자극을 원하는 소비자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무것’들의 대잔치는 서사보다 파격이, 논리보다 B급 감성이 앞선다. 이런 현상은 갑자기 등장한 게 아니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뉴스를 통해 정치인과 공직자, 기업가들의 수준 낮은 막말과 언행 불일치 등을 익히 봐왔다. 어쩌면 ‘아무것’들에 열광하는 대중의 태도는 사회 전반에 팽배한 허무맹랑함을 비웃는 것인지 모른다.>조선일보 김은영 기자.
정치권에서 유행하는 아무 말 잔치를 보면서 어이가 없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데 이게 사회 전반에 걸쳐 유행이라니 놀랍습니다. 다른 부분의 아무 말 잔치는 다 그냥 넘어가면서 청와대나 대통령에 대한 것은 조목조목 따지고 법적 조치를 운운하는 것을 보면 아무 말도 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개그가 판을 치는 세상, 이게 바람직한 것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時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