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 병자호란, 소현세자에 관한 역사 평설
조, 청, 명 3국이 얽힌 병자호란은 그 기간이 2개월에 불과하여 기록은 단순하지만 원인은 복잡하다. 또한 소현세자의 죽음과 관련해서는 아직도 그 의혹이 풀리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당시의 전반적인 상황을 이해하기란 생각처럼 쉽지 않다. 지금까지 발간된 병자호란에 관한 책자를 보면, 기왕에 알려진 이야기만을 다뤘거나, 아니면 흥미를 유발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료에 근거하지 않고, 저자의 추정적인 판단 하에 쓴 책이 더러 있다.
반면에 이 책은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사건을 파헤쳤을 뿐만 아니라 모든 내용을 조, 청 약국의 1차 사료를 중심으로 기술했다. 그 내용은 인조반정→이괄의 난→정묘호란→병자호란→소현세자의 볼모 생활→소현세자와 강빈의 죽음→석철3형제(소현세자의 아들들)의 죽음, 그리고 부록으로 병자호란 당시 항전의 현장이었던 남한산성을 실었다.
병자호란은 불가피한 전쟁이 아니었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은 인조 정권이 주변 상황을 냉철하게 파악하고 좀 더 유연하게 대처했더라면 충분히 막을 수도 있는 전쟁이었다. 그러나 인조 정권은 임진왜란 이후 급변하는 주변 정세에는 눈을 감은 채 지나친 숭명배금과 자신들의 정권 유지에만 급급한 나머지 국방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에 비해 전조 광해군 정권은 날로 강성해지는 후금을 경계하고, 명과 후금 사이에서 균형 잡힌 외교를 구사하며 전쟁을 피해갔다. 그러나 인조 정권은 이괄의 난과 정묘호란 때 그토록 엄청난 곤욕을 치르고도 전혀 달라진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니, 이는 정권 전체가 무능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조선조 제일 무능한 임금의 실상을 다시 한 번 상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