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문화원 이선재 원장을 찾아서
차가운 겨울바람이 불며 모두들 추위에 몸을 웅크리게 하던 지난 2월 22일 마포구 대흥동의 마포문화체육센터 대강당에는 뜨거운 열기가 넘쳐나고 있었고 열기는 감동의 물결로 일어나 급기야 감격과 감사의 눈물이 감당을 가득 채웠다.
바로 2004년도 양원주부학교의 졸업식이 거행된 날이었다. 그동안 여자라는 이유로 또는 가난 때문에, 어려운 집안 살림을 떠맡아 하고, 동생들 뒷바라지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배움의 길에서 소외되었던 우리의 누이들, 어머니들 할머니들 등이 이날의 주인공이었다.
평생에 배우지 못한 한을 가슴에 품고 응어리진 삶을 살아야 했던 이들에게 이날은 그야말로 광명을 찾는 날이며 세상을 새롭게 살아가는 출발의 벅찬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들의 중심에 바로 꿈과 희망과 용기를 심어준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양원주부학교의 교장이며 마포문화원 원장으로 재임 중인 이선재 원장이다.
‘한 두 끼 굶어서는 죽지 않는다. 배워야 산다.’는 구호를 교육의 지표로 삼고 오늘에 이른 이선재 원장의 삶은 그야말로 어렵고 소외된 우리 이웃에게 부어진 진정한 페스탈로찌 정신의 정수라고 밖엔 표현할 길이 없다.
이선재 원장은 6.25 전쟁 중 1.4후퇴 때 경기도 개풍군(개성)에서 월남한 실향민이다. 실향민의 생활이란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매우 곤궁하기 그지없었고 어린 시절 그 역시 어렵게 공부를 하였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어려운 살림살이로 배우지 못한 이들에게 관심이 쏠렸고 한창 피 끓는 젊은 나이에 마포 청년 동지회를 결성하여 신문팔이, 구두닦이 등 불우 청소년들을 모아 야학을 열면서 운명과도 같은 소외 된 자들의 스승이 되었다.
오늘 양원주부학교와 일성중고등학교의 모태는 6.25 당시인 1952년 함경남도 북청지역의 피난민들이 세운 야학으로 출발을 하였다. 이듬해인 1953년 일성고등공민학교로 서울시장의 인가를 받아 종로구 관수동에서 문을 열어 극빈자와 고아 등 어려운 사람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이후 모 대학과 토지소유권 분쟁을 벌이다가 패소하고 마포로 이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학교의 재정이 말할 수 없을 만큼 악화되어 월세를 내지 못하여 또다시 길거리로 쫓겨나 노천수업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이 소식을 들은 이선재 원장이 백방으로 뛰어 모금활동을 펼치는 한편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당시 진명여고를 정년퇴직하신 이세정 선생님을 설립자겸 교장으로 모시고 주간에는 불우청소년과 정규학교 중퇴생을 가르치고 야간에는 근로청소년을 가르치며 명실 공히 대안학교로써의 걸음을 내딛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그리 수운 일이 아니었다. 이 원장은 학교운영을 위하여 인쇄업을 시작하여 운영비를 조달하였지만 어려움은 더해만 갔다. 그러나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교육을 통한 이웃사랑의 실천에 뜻을 같이한 여러 사람들의 물심양면 지원이 있어 수업은 계속 이어지게 되었다. 이승만 박사의 양아들이던 이인수 박사와 그의 아들 그리고 한양음대 교수였던 조상현 음악가 협회장, 한의원을 운영하시던 이정화 원장 등이 대표적인 사람이며 이선재 원장은 그들에 대한 고마움을 아직도 가슴에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그 후 일성학교는 꾸준히 배움에 목말라하는 학생들의 요람이 되었다가 70년대 후반에 들면서 학생 수가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물론 성인들의 지원 숫자는 늘어났지만 막상 등록 때엔 미달이 되는 당혹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산업의 현장에서 일을 하면서 공부를 하려고 하니 마음과는 달리 현실적으로 시간적 제약을 받기 때문이었다. 이들의 형편을 감안하여 이 원장은 과감하게 일요학교를 개교하였다. 하지만 수업료도 받지 않는 것은 차치하고 휴일에 학생들을 가르칠 선생을 찾는 일이 그리 쉽지 않았다. 결국 일요학교는 88년도에 문을 닫게 되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80년대 들어서면서 주부들의 숫자가 점차 늘어난 것이다. 1개 반에 10여명 이상의 주부들이 등록을 하고 수업을 받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청소년들과 성인인 주부들의 함께 혼합반이 되어 수업을 받는 것이 불편하다는 학생들의 건의에 따라 이때부터 별도의 주부반을 편성하였다. 이후 소문을 듣고 여기저기에서 그동안 어려서는 가정이 가난하여, 커서는 가족들의 뒷바라지로 또 결혼 후 아이를 낳고 키우고 식구들의 뒷바라지로 배우지 못하였고, 그 못 배운 것이 흉이 되어 설움에 한이 맺혔던 주부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방송과 잡지 등 언론에서 관심을 가지고 보도하였다. 이런 결과들이 모여져서 지금의 양원주부학교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선재 원장은 주부들의 애로를 파악하고 주 3일제 수업제도와 정규학교 동등 학력인정을 교육부로부터 받아냈다.
그동안 이 학교를 통하여 배출된 인재만도 손으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그중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21세기 여성CEO 협회장’을 맡고 있는 분이다. 전국에 440개의 체인점을 가지고 연간 매출 700억 원 이상에 달하는 국내 굴지의 N 프렌차이즈 대표로 그녀 역시 가난한 살림 때문에 배우지 못하였다. 때문에 사업을 하면서 부딪치는 어려움은 그녀로 하여금 배워야한다는 삶의 교훈을 주었다. 하지만 이미 학교에 갈 나이도 아니고, 딱한 처지를 모두 이해하고 그녀를 받아줄 학교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때 만난 양원주부학교는 그녀의 모든 욕구와 문제를 일시에 해결 해 준 것이다. 모든 것에 자신을 얻은 그녀는 사업에서도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였다. ‘공부에서 내실력이 느는 것처럼 내사업도 번창하더라.’고 말하며 그녀는 양원주부학교와 이선재 원장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4년 연속 자동차회사의 판매 왕이 있는가하면, 박사학위를 받은 숫자도 많다. 그중 한 졸업생은 LA에서 뉴브리지 대학을 설립하고 총장으로 취임하기도 하였다.
물로 이 밖에도 여러 졸업생들이 이 사회에서 이제는 중견기업인으로 또 고위공무원으로, 학자로, 예술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실제 지금까지 14명의 시인을 배출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뿐만 아니라 이 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던 선생님들도 더욱 연구하여 서울대 교수로 또는 정부의 핵심기획부처등으로 진출하는 사례가 늘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지난 1월 25일 1년 3학기제의 4년 과정으로 하는 학력인정 초등학교를 설립하여 금년 3월 7일 국내최초로 성인 초등학교의 입학식을 가졌다. 조사 자료에 의하면 2001년도까지 우리나라에 아직도 초등학교를 미 졸업한 인구가 2백4십만명 이상이며 중학교까지의 미 졸업자가 6백7십5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는 20세 이상 성인의 7.4%에 해당하지만 실제 조사 시 허위기재 또는 미 응답자를 합치면 아마 15%정도 될 것이라고 한다.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선재 원장은 이들의 애로를 함께 느끼고 성인초등학교를 설립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지금까지의 일생을 평생교육에 헌신하면서 나름대로의 보람도 가꾼다는 이선재 원장은 아직도 넘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고 한다. 우선 정규학교에는 학생이 자동으로 취학을 하지만 성인 초등학교는 정규교육이 해결하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학생모집의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것은 어차피 학력인정학교임을 감안하여 정부에서 행정조직을 통하여 홍보해 주는 방안도 검토되어야 할 것 이다. 또 학생의 대부분이 어려운 형편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교육복지차원에서 정부의 예산지원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학교에 비하여 터무니없는 교사의 급여수준도 마땅히 개선되어야 할 문제이다.
초기 사고뭉치, 문제아들이 없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들과 함께 웃고 울며 심성을 순화해 나갔으며, 오늘 그들이 이사회의 주역이 되어 이선재원장의 가슴에 감사와 사랑의 카네이션을 달아드린다. 이선재원장님이 진정 이사회의 상록수이시며 소외된 자들의 참스승이라며...
첫댓글 잔잔한 호수와 같으신 선생님 존경합니다, 항상 좋은 일을 하고 계신걸 알았지만 길을 잃은 사람에게 밫과 길을 주시는 군요 ,
이선재 선생님은 모두에게 칭송과 존경을 받아야 마땅한 참 스승님이십니다. 선생님 오래도록 건강하십시오. 다음에 뵈면 악수만이 아니고 대화를 나누는 영광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선생님 화이팅 !
교장선생님께서 항상 관심있게 지켜봐주신다고 고맙다고 하셨습니다.^^ 편연숙님, 송인자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