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아재가 울 집에 세들어 산다고 해서 담주 부터 인테리어 작업을 앞두고 시간이 남아돌아 끄적이니 과한 정치적 해석은 자제해 주시고 옛날에 이런 일도 있었다는 것만 생각해 주셨으면 해요. :)
#1. 90년대 중후반 인터넷이 한창 보급될 때 였나? 울 영감님이 “비넬” 함 찾아 보그래이 하셨는데,, 그때의 국내 검색 공급업체는 전혀 자료가 나오지 않았고 해외 사이트에 외국어(영어)로 검색하다는 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마도 연세가 들어가심에 따라 흐려져만 가는 기억을 붙잡으려 하셨는지 모른다..
#2. 이런저런 이유로 본인이 벳남으로 떠나기로 마음 먹은 후로 울 영감이 말하신 그 비넬이란 데를 찾아보니 미국의 민간 군수기업이었다. 공항 활주로도 닦고 군사적 목적인 건물을 짓곤 했는데 또 다른 사업분야가 전투 용병을 양성하여 전쟁터에 공급하는 것이었다. 즉, 위험의 외주화.
참고 링크) https://en.wikipedia.org/wiki/Vinnell 인터넷 검색 프로그램 크롬(Chrome)을 사용하시면 맥락 이해할 정도의 번역 레벨이 됩니다.
참고로 영화 <국제시장>에서 주인공 황정민이 기술자로 일한 곳이 그런 종류의 민간 군수회사의 재하청 이었다고 보인다.
울 영감 그 비넬이란 곳에서 메카닉 엔지니어로 일하셨다. 양넘들과 영어로 무리 없이 대화하니 한국인 작업자 그룹중 우두머리(leadman), 그룹장이 되셨다. 같이 일하던 양넘 중에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 떨어뜨린 폭격기 승무원과 친했다고 하셨는데,, 아마도 그 양넘 나이로 봐서 고문 직함을 달지 않았나 본다.
아마 벳남 전쟁 종전후 호주로 가시려던 계획(아마도 동종 민간 군수회사로 이직)이었는데 할아버지 임종을 몇 달 앞두고 1972년 8년간의 벳남 생활을 뒤로한 채 완전 귀국하셨다.


#3. 요즘 핫한 뉴스로 미국 도람뿌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과의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북미회담에서 구르카 용병이 경호를 담당한다고 하는데 구글링을 하다보니 한국 전쟁에 영국군 소속으로 참전했다는 썰이 있고 베트남 전쟁에서도 미국의 압력으로 용병으로 참전했다는 썰이 인터넷으로 떠돈다. 함께 임무를 수행했던 퇴역한 군인들의 증언이 인터넷으로 필터링 되지 않아 어렵지 않게 그런 내용을 찾아 볼 수 있다. (검색어를 gurkha korea war, gurkha vietnam war)
아마도 앞에 서술한 세계의 민간 군수기업에 고용되어 가장 근래의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전, 크고 작은 내전에도 참전하여 국내에서 벌어들일 수 있는 급여보다 몇 곱절 높은 급여로 세계의 전쟁터에 차출되었다.

#4. 참 세상 편하고 좋다. 문명의 이기라고 불리는 컴퓨터로 스마트폰으로 몇 몇의 단어를 조합하여 필요한 자료를 찾을 수 있고 다른 나라 사람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벳남은 중국과 달리 구글이나 페이스북을 차단하지 않아 원하는 사이트 및 정보를 필터링 없이 찾아 볼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 불만이 없다.
파도를 타듯 인터넷 검색을 하다보면 알려지지 않았던 우리 부모 세대의 노고에 대한 자료도 가끔 보게 된다.
1967년 벳남 깜란(Cam Ranh) Vinnell 기업에서 벌어진 처우 불만으로 인한 노동자 폭동, 한국인 다수 사망 및 중상.
※ 참고 링크 : https://libcom.org/library/korean-workers-riot-vietnam-1967 인터넷 검색 프로그램 크롬(Chrome)을 사용하시면 맥락 이해할 정도의 번역 레벨이 됩니다.
일독해 보시기를..
추가 참고 자료)
1. 1965년과 2015년의 평행이론 (1) https://chomchomnkiwi.modoo.at/?link=9whqo1y9&messageNo=9&mode=view&query=&queryType=0&myList=0&page=7
2. 1965년과 2015년의 평행이론 (2) https://chomchomnkiwi.modoo.at/?link=9whqo1y9&messageNo=10&mode=view&query=&queryType=0&myList=0&page=7
첫댓글 몇년전 나짱옆의 깜란을 지나갈때 경치가 하도 좋아서 물어봤더니 옛날 월남전때 미 해병의 거대한 병참공항 였다
하데요.. 위의 참고링크를 보다가 기분이 저조해져 문득 https://www.youtube.com/watch?v=j2qjbsfr3L0 이게 생각이 났읍니다. 당시 우리의 영자 복희가 이렇게도 달러를 벌어 들였네요~
그나저나 공연을 보고있는 미군들은 전쟁터인데도 얼굴에 기름기가 쫘악 흐르네요...^^ㅎㅎ
PLAY
영상 잘 봤습니다. ^^ 처음 봤네요. ㅎ 그 시절 미군들은 염불보다 젯밥에 빠져 전투중에도 아이스크림 등등의 디저트를 헬기로 공수했답니다. 덥고 비 많이 오는 날씨에 덩치도 크고 몸도 둔하니 총 맞기 딱 좋은 조건이었죠. 그런 이유로.. 다음 스토리 아시죠? ㅎ
90년대초 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유명가수들과 밴드마스터들은 대부분이 8군무대출신들이였어여...
네. 맞는 말씀이십니다. :)
삭제된 댓글 입니다.
동의합니다.
영국과 아르헨티나가 전쟁할당시 구르카용병투입설만으로도 아르헨티나가 항복을 했을정도로 구르카 용병 무섭죠.ㅎ
구르카용병눈에 띄면 죽는다는말이 있을정도로 개인전투에는 최적화한 사람들입니다..
네. 그렇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