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의 교통 중심지, 그리고 내전의 상처
베오그라드에서, 사흘을 머무를 것인가, 이틀을 머무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의 모스타르로 가는 버스표를 끊어면서 해결되었다. 베오그라드(Beograd/Belgrade)에서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니크로행 버스가 밤마다 열 시 즈음에 떠나며, 그 버스가 지나가는 길 위에 그가 가고자 하는 소도시가 있다.
그는 자연스레, 숙소에서 이틀을 머무르고, 거리에서 사흘째 걷는다. 이틀, 사흘에 대한 고민은,
볼거리를 이틀 치 밖에 없다는 생각이지만 너무 일찍 떠나는 아쉬움이 있지 않을까라는 안타까움은 사흘을 필요로 했다.
하지만 이틀째 즈음에, 그는 이 도시에 대한 미련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을 알았지만 그의 손에는 다음날 밤에 떠나는
버스표가 있다. 그리하여 그는 배낭을 역 보관소에 맡기고, 베오그라드의 낡은 나무 의자에 앉아 가만히 멈춰서 있다.
문득, 그는 본다는 것에 대해 상당히 심취해있었지만 아주 띄엄띄엄 향하는 기차를 뒤로 한 체, 그는 그를 보려고 한다.
너무 한 방향으로 보는 것은 편경향을 불러 일으킬 수 있으며 그리하여 자칫 앞만 보고 달려 왔다는 느낌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햇살은 무척이나 따갑지만 가을이 왔다고, 가을 바람이 나무 가지 사이로, 도시 속으로 달려든다.
가을 바람을 잠시 무등 타고 도시 속을 달려본다.
1960년 대 초 중반, 프라하에서 사춘기 시절을 짧게 보내며 공산권 나라에서 온 친구들과 함께 공부한 어느 여인이, 1995년 구(舊)유고슬로비아의 내전이 한창 진행되던 시기에, 학창 시절의 친구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
프라하에 전학 온 지 일주일 되 체 되지 않은 소녀가, 세르보크로아트어(語)로 ‘하얀도시’라는 이름으로 불려지는 ‘베오그라드’에 대한 전설을 또박또박 설명한다.
도나우 강과 사바 강이 합류하는 언덕에 칼레메그단 성(城)이 있으며, 이곳에서는 구시가지를 뒤로 숨겨 두고 있으며, 성 밖으로 삼각주가 아직도 개발되지 않은 체 밀림처럼 펼쳐져 있다.
그러니까, 오스만투르크의 군대가 발칸을 진군하여 이 도시에 맞닿아, 여명(黎明)이 밝아오는 시점에
칼레메그단 성벽을 공격하려는 가을 새벽녘에, -급격히 내려간 기온과 강 수면의 온도 차이로 인하여
우유빛 안개가 수면(水面) 위로 모락모락 피어 올랐으며, 하얀 안개에 휩쌓인 성벽(도시)은 마침 떠오르기
시작한 햇볕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을 발한다. 무기를 든 체 공격 명령을 기다리든 오스만 병사들은 그날,
그 하얀 빛에 취해 습격을 중지하게 만다. 하지만 성은 끝내 함락되었고, 그 이름은 오늘날에 남아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고
소녀는 설명한다.
소녀는 보스니아 무슬림인이며, 이름은 야스민카 다즈다레비치, 친구에게는 ‘야스나’라고 불러달라고 한다.
여인은 열 흘 동안, 지난 시절의 친구들을 만나면서 마지막으로 이 도시, 베오그라드에 들었다.
그리고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혹은 공산주의이지만 권력자의 향유를 누리는 이들에게서 나름의 실망을 안고 들어선 다음,
마지막 친구의 집을 찾을 때에도 여인은 선입견을 가지고 경계를 한다. 하지만 그의 친구는 아주 평범히 살고 있었다.
아스나가 사는 집은 12~15층 정도의 고층 아파트가 즐비하며, 1층은 슈퍼마켓, 세탁소, 자전거 수리점이 있어 생필품을
쉬이 구할 수가 있으며, 건물과 건물 사이의 광대한 공간에는 나무들이 심어져 있고, 테니스 코트며 보육원도 있는 신시가지이다
그는 책을 읽어가면서, 내내 조심스러워했다. ‘야스나’라는 여인이, 자본주의로 이양되면서 그의 삶도 평범함에서
특권층으로 지향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에. 그는 책을 덮고 나서, 지은이와 함께 같이 길을 걸었음을 알았고,
지은이의 친구분 때문에 이 도시에 대한 향수를 더욱 짙게 품게 되었다. 그곳에 가면 ‘야스나’라는
아줌마가 살고 있지 않을까라는. 그리고 당신의 아버지가 ‘유고슬로비아 연방의 대통령’까지 되신 분이 아니냐고 지은이가 물은 말을 그도 물어보았을 것이다.
“아버지가 유고슬로비아 대통령까지 지내셨는데, 왜 이렇게 평범한 아파트에서 사나요?”
그러면, ‘야스나’라는 아줌마는 그의 친구에게 그랬던 것 처럼, 여행자의 물음을 이상하다는 듯이 생각할 것이다. 그는 ‘야스나’라는 아줌마가 사는 나라라면, 도시라면, 이름이 낯선 도시이어도 한 번 즈음 가 볼만한 곳이라 생각했다.
지금 그가 바라보고 있는 모습의 베오그라드는 무척 조용하고 바쁜 걸음이 보인다. 사람들은 버스를 타기 위해 종종 걸음을 치는 경우가 간간히 눈에 보이지만 모든 이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오래 전에 폭격 맞아 부서진 시멘트 건물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의 폭습으로 파괴된 건물이 아직도 그대로 도심 한 가운데 남아있다-은 흉물스럽게 방치 되어 있으며, 도시 곳곳에 나무 숲이 주는 자리에는 손주를 데리고
온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쉬이 눈에 띄곤 한다.
그리고 젊은이들은 크네즈 미하일(Kneza Mihaila)의 어느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여느 유럽의 모습처럼 이야기를 나눈다.
베오그라드에는 사바(Sava)라는 강이 흐르는데, 강이 한 번 허리를 품고 가는 길목의 언덕에 옛 왕궁과 성터가 남아 있다.
성벽으로 넓게 둘러 쌓인 이곳에는 나무가 숲을 이루어 언제나 사람들이 많이 모여 들어 담소를 나누고, 젊은 연인들은 뽀뽀를 한다. 낯선 이방인은 성벽을 오르거나
그 아래에 전시 되어있는 탱크며 대포를 내 것인 냥 품은 체 사진을 찍고, 혹은 다뉴브의 강줄기를 바라본다.
성벽 난간에서 서쪽으로 바라보는 풍경은,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 안에 아직 사람이 살지 않는 숲이 펼쳐져 있어, 여느 밀림 같은 느낌을 들게 한다.
가까운 강 건너편에는 몇 층의 건물들이 올라선 체이며, 강가에는 멈춰서 배들이 보이다. 이 도시, 외부인보다
내부인이 많다는 생각은 사흘을 걷는 내내, 세모난 깃발을 들고 움직이는 무리를 못 보았으며,
역에서 배낭을 멘 체 이리저리 방황하는 젊은 무리들을 많이 못 보았기 때문일는지 모른다.
공원 나들문 가까이에는 한 평생을 힘겹게 살아오신 할머니가, 유고슬로비아의 돈을 내어놓고 팔고 계신다.
그에게는 무척이나 낯선 도시이지만, 12~15층의 고층 아파트 건물과 건물 사이에 ‘광대한 공간에는 나무들’이 심어져 있는 도시를 이제는 바라보려 한다.
세르비아는 발칸과 동유럽을 연결하는 길목에 서 있다. 베오그라드 기차역에서는 부다페스트와 소피아를 걷쳐 이스탄불까지는 가치가 있으며,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스트(Bucharest)로도 기차가 다닌다.
독일 뮌헨과 크로아티아 자그레브(Zagreb)로도 움직인다. 버스는 철로가 놓이지 않은 발칸반도를 다니는데, 사라예보(Sarajevo)와 스콥제를 연결한다. 또한 포드고리카를 통해 코토르로 내려간다.
물론 두브로니크와 스플리트으로 버스가 다닌다. 실로 세르비아의 베오그리드는 동유럽과 발칸을 잇는 중심지라 할 수가 있다.
그는 밤 열시 즈음, 모스타르로 가기 위해 버스에 오른다.
* 참고서적 *
[프라하의 소녀시대] 요네하라 마리 (마음산책出 이현진譯 2006)
발칸에 대해서는, 슬프게도 아프리카나 아메리카 만큼 멀게 만 느껴지는 나라였다.
내게 발칸반도는 90년 중반의 내전이 아직도 진행중인 나라처럼 다가왔으며, 유럽이면서, 동유럽 보다 더 후진 나라 즈음으로 인식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 속 깊이,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돌아다녔다. 도시는 허물어져가거나 수수했지만 사람은 순박했다. 적어도, 여행자에는 내전은 치유된 것처럼 비춰졌다.
세르비아(베오그라드)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모스타르) -크로웨이샤(스플리트, 하바르, 두르로니크)- 몬테네그로(부드바, 코토르) -알바니아(티라나) -마케도니아(오흐리드, 스콥제) -불가리아(소피아)
저랑 같이 여행하시겠습니까? 감사합니다. 손희상 글..... 아날로그 여행자 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