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롱초롱 박철홍,
역사 속 숨은 인물도 흐른다. 14
ㅡ 숨겨진 명장 중 명장 고려 '양규장군'과 그 주변인물 1 ㅡ
요즘 270억 이란 제작비를 퍼부어 화제가 되고있는 사극, <고려거란전쟁>이 방영 중이다.
거란은 고려를 여러 이유를 대며 6차례 침략을 감행한다. 그 중 3차례는 전면적 침략이었다.
1차 침략은 993년 고려 성종 때 일이다. 역사서에는 80만 대군이라고 나온다. 하지만 당시 거란상황등 여러가지를 종합해보면 80만 대군은 지나치게 부풀려진 숫자임이 확실해 보인다.
어쨌던 80만은 아니더라고 해도 엄청난 대군을 동원한 거란의 1차 침략 결과는 유명한 ‘서희의 외교담판‘이다.
이 담판 결과, 소손녕은 80만대군 군사를 이끌고 거란으로 돌아갔고, 서희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강동 6주'를 얻어냈다.
서희가 외교담판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길어지니 다음 기회에 올려 보겠다.
서희 외교담판으로 획득한 강동 6주는 거란의 2, 3차 침략 원인도 되지만 거란 침략을 막아내는 엄청난 역할을 한다.
여기서 먼저 거란 2차 침략 원인이 되었던 '강조의 정변'에 대해서 간락히 알아 보겠다.
거란은 1차 침략 때 서희 그럴듯한 말에 속아 강동 6주를 내 준 것에 대해 속앓이를 하면서 고려를 다시 침략할 수 있는 명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고려에서 '강조의 정변'이 일어난다.
'강조의 정변'은 1009년(고려 목종 12년, 기유년), 서북면 도순검사 '강조'가 군사력을 동원해서 '목종'을 폐위하고, '현종'을 옹립하여 정권을 장악한 사건이다.
강조가 정변을 일으킨 명분은 목종 친모 '천추태후'가 승려출신 '김치양'과 사통을 하여 아들을 낳고 그 아들을 왕위에 올리려고 한다는 소문이었다.
또한 목종도 우리나라 왕 중 유일하게 공식적으로 기록되어 있는 동성애자였다. 목종은 '유행간(庾行簡)'이라는 미남을 끌어들여 동성애 관계를 맺고, 그를 합문사인(閤門舍人)으로 벼락출세시켰을 뿐 아니라 자신이 교지를 내릴 때마다 반드시 유행간에게 먼저 물은 다음에야 시행할 정도로 지나치게 총애했다.
이에 궁중이 지나치게 문란해지자 일부 신료들이 강조에게 정변을 요청한 것이다.
거란 황제 성종은 목종과 천추태후가 거란과 잘 지내고 있었는데 강조가 정변을 일으켜 거란을 멀리하고 송과 가깝게 지내려 한다며 거란황제 성종이 직접 40만 대군으로 침락해 온 것이다
이번 KBS 대하 사극 '고려 거란 전쟁'은 당대 최강국인 거란제국과 신생국 고려가 맞붙은 바로 성종이 친히 40만 대군을 이끌고 침략해온 거란의 2차 침략과 그 뒤 이루어진 3차 침략 26년간 전쟁을 다루고 있다.
오늘 주인공 '양규장군'도 거란 2차 침략 때 첫 번째 격전지였던 강동 6주 중 하나인 '흥화진'에서 부터 시작한다.
고려는 여섯 차례에 걸친 거란 침략에 굴복하지 않았다. 마지막엔 강감찬 귀주대첩으로 거란군을 전멸시키며 전쟁 종지부를 찍는다.
고려거란전쟁 끝은 말 그대로 고려가 통쾌한 승리를 쟁취한 것이다.
당시 거란은 '요'라는 나라를 세우고 황제를 칭하며 송 황제를 포로로 잡아 인질로 삼고,
송으로부터 막대한 재물의 조공을 받기로 하고 송을 멸망까지 시키지는 않는다. 요는 당시 송을 멸망시킬 힘은 충분했다.
송은 요에 쫒겨 중국 남쪽으로 물러나 남송으로 명맥을 간신히 유지할 정도 였다.
당시 요나라는 이토록 강국이었다
사실 이런 상황은 500년 후 조선 시대 후금과 명나라 사이에 낀 조선과 너무 흡사했다. 후금(병자호란 당시는 청)의 침략으로 조선은 정묘, 병자호란을 맞는다. 그리고 치욕적인 패배를 당하고 청의 완전 속국이 된다.
중국 왕조 교체기나 중국 영토가 쪼개지는 혼동기가 항상 우리나라에게는 가장 위험한 시기였다.
이처럼 비슷한 상황이었지만 고려는 조선과 확연하게 달랐다.
고려는 거란을 상대로 정말 잘 싸웠다. 그 중 2차 거란 침략 때가 고려에게도 가장 위기이기도 했지만 고려는 놀라울 만큼 잘 싸운다.
거란 2차 침략 때 우리는 그 동안 듣지 못 했던 놀라운 구국 영웅들이 등장한다.
우리 학창시절 역사 시간에 배웠던 대로 거란 침략하면 서희와 강감찬만 떠 올린다.
서희는 1차 침락 때 외교담판으로,
강감찬은 3차 침략 때 귀주대첩 으로 역사에 큰 이름을 남기고 있다.
그러나 거란 2차 침입 때 정말 놀라울 정도로 잘 싸운 명장중 명장들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당시 그 명장들 활약을 보면 중국 소설 '삼국지연의' 그 어떤 장수들보다도 훌륭했다.
우리는 중국 삼국지라는 소설 속 시시콜콜한 장군들 이름까지도 다 알면서도 우리 역사 속에서도 거의 그 예를 찾아보기 힘든 명장 중 명장 이름조차 알지 못 한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솔직히 역사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지금까지 '양규장군' 이름조차도 잘 들어 보지 못 했다. 부끄럽다.
그런데 왜 지금까지 양규장군과 명장들이 우리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었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고려사에도 그 분들 업적들이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는데도 말이다.
우리나라 역사가 후세 필요에 의해 상당히 왜곡되어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금부터 그 명장 중 명장인 <양규장군>과 그 주변인물들에 관해 자세히 살펴 보겠다.
다행히 이번 '고려거란전쟁' 사극에서는 양규장군이 상당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 사극이 끝나면 양규장군과 그 주변인물들이 재조명 받으리라 생각된다.
그리고 제 글을 먼저 읽고 사극을 보면 훨씬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본격적으로 양규장군과 주변인물에 대해 살펴 보겠다.
이어서 숨겨진 명장 중 명장 고려 양규장군과 그 주변인물 2편이 이어집니다.
ㅡ 초롱박철홍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