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월요시편지_720호
마츠시게 유타카
박수서
웃기는 말인 줄 아는데
나도 소싯적에는 영화배우가 꿈이었어
중학교 때부터 담배 안 피우고
우유 많이 먹었으면,
그럴라고 노력했을지도 몰라
170도 안 되는 놈이 뭔 배우여 배우는
걍 방바닥에 내려놓고 주구장창
비디오 참 많이 봤지
고거 따라하면서 혼자 거울 앞에서
시부렁시부렁 대사 깐다고 째내고
혼자 재미나게 놀고 그랬지
수음기 때 젤로 좋아했던 배우는
주윤발이었어
아, 그놈의 성냥꽁다리까지 멋져 보였으니까
그것도 철없을 때 추억이니
그냥 톨스토이나 고리키 소설이나 읽었을 걸
하다가도 불쑥불쑥 생각나
지금은 이 사람이 참 좋아
마츠시게 유타카
'고독한 미식가'라고 아는 사람 알 거여
뭘 먹어도 그 맛의 익스트림 클로즈업이
능수능란한 표정연기와 내레이션
그래서 오늘도 혼자
소머리국밥집에 가서 흉냈지
아, 오늘 하루도 잘 먹었습니다
- 『갱년기 영애씨』(북인, 2020)
*
박수서 시인의 신작 시집 『갱년기 영애씨』에서 한 편 띄웁니다.
장맛비가 오락가락 싱숭생숭 뒤숭숭하게 만드는 요즘 날씨랑 딱 맞는 시집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박수서 시인을 일러 제가 일찌기 "삼류 트로트 짬뽕 시인"이라 불렀더랬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최초로 '트로트 짬뽕시'라는 장르를 네가 한 번 개척해봐라" 그리 말해준 적이 있더랬습니다.
언젠가 빛을 보겠지만, 아직은 미완성이지만,
박수서 시인이 좌충우돌하면서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나가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는 것은 저의 쏠쏠한 재미 중 하나이긴 합니다.
"아, 오늘 하루도 잘 먹었습니다"
쓸쓸한 이 문장을
마츠시게 유타카의 표정과 억양을 떠올리며
다시 읽어봅니다.
그러고 보니 슬그머니 미소가 머금어집니다.
배불러지기까지 합니다.
박수서의 트로트 짬뽕시를 멀리서 응원하는 아침이었습니다.
2020. 8. 3.
달아실출판사
편집장 박제영 올림
첫댓글 춘천에 비가 많이 와서인지 시편지가 오지 않아
박시인님의 블로그에 가서 퍼왔습니다.
박시인님은 엄격하신 분이 아니어서 퍼가도 좋다고 늘 말씀하십니다.
삼년정도만 더 시편지를 쓰시면 1000호를 달성하시겠네요.
부디 많은 시민들이 1000호까지 다 읽어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