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Take the A Train - Duke Ellington
재즈의 역사에서 듀크 엘링톤의 위치는 고전음악의 베토벤이나 모짜르트에 비유될 정도로 가히 독보적이다.
아직까지도 수많은 뮤지션에 의하여 그의 곡들은 계속 연주되고 불리워지고 있으며,그의 생존시 많은 음반이
다시 제작되어 발표되고 있다. 본 곡은 듀크엘링톤의 수많은 재즈클래식 중에서 가장 쉽게 귀에 들어오는
대중적인 음악으로 초보 재즈감상자에게는 필청 음악으로 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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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4월 29일 워싱턴 D.C. 출생으로 본명은 에드워드 케네디 엘링턴 (Edward Kennedy Ellington).
그는 1974년 5월 24일 뉴욕의 북서쪽에 위치한 콜럼비아 장로회 병원에서 폐렴과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뉴욕 타임즈가 부음 기사의 헤드라인으로 그를 '음악의 대가 (A Master Of Music)'
고 칭했다.
그만큼 듀크 엘링턴은 재즈 역사상 가장 걸출했던 인물로 수많은 재즈 뮤지션과 재즈 저널리스트가 공동으로
인정하는 창조적인 작곡가, 편곡자, 피아니스트다.
1918년부터 70년대까지 활약한 그는 2천여곡이라는 경이적인 수의 작품을 작곡했으며, 그에 필적하는 상당한
수의 앨범을 발표했다.
듀크 엘링턴과 그의 오케스트라는 1924년 11월 처음 녹음을 했고, 26년에는 악보 출판업자이자 밴드 매니저인
어빙 밀즈 (Irving Mills)와 협력하게 된다.
39년에 이르러서 이들의 관계는 끝났지만 어빙 밀즈는 듀크 엘링턴을 세간에 알리는 데 일등공헌한 인물이다.
그도 그럴 것이 27년부터 할렘에서 가장 유명한 카튼 클럽의 무대에 듀크 엘링턴이 설 수 있도록 계약을 추진
해 준 이가 어빙 밀즈이기 때문이다.
카튼 클럽은 정기적인 연주, 많은 연습 시간, 그리고 리허설 장소를 제공하여 엘링턴 밴드가 음악적 완숙력을
다질 수 있도록 해줬다.
엘링턴 밴드는 카튼 클럽에서의 활동 기간 동안 점차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됐으며, 밴드 이름을 카튼 클럽 오
케스트라로 바꾸기도 했다.
그들이 어느 정도 명성을 얻었을 때에는 주요 극장과 최고의 콘서트 홀에서 연주를 가질 수 있는 명예를 얻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엘링턴은 라디오와 영화에도 출연해 그 명성을 더 널리 알렸다.
그리고 30년에는 세계적인 히트곡 'Mood Indigo'를 발표, 카튼 클럽과의 5년간의 계약을 끝내고 33년 영국 공
연을 가졌다.
이러한 가운데 35년, 재즈계는 베니 굿맨 밴드의 인기 상승과 더불어 스윙 밴드 시대에 접어들었다.
팀을 결성한 지 10년째 되는 해에 엘링턴은 트럼페터 쿠티 윌리엄스(Cooite Williams), 렉스 스튜워트(Rex
Stewart), 섹소포니스트 저니 후지스(Johnny Hodges) 등과 함께 'Prelude To A Kiss', 'I Let A Song Out Of
My Haert' 등 지금은 스탠다드가 된 명곡을 발표했다.
1940년대는 엘링턴에게 최고 황금 시기였다. 그는 색소포니스트 벤 웹스터(Ben Webster)와 18세의 뛰어난 베
이시스트 지미 블랜튼(Jimmy Blanton)를 영입하여 그 어느 밴드보다도 탁월한 연주를 들려줬다.
그리고 이 전성 시기에 가장 많은 공헌을 한 이는 빌리 스트레이혼(Billy Strayhorn). 피아니스트이자 작/편
곡가인 그는 엘링턴 밴드의 주제곡인 'Take The A Train'을 비롯한 200곡 이상의 작품을 엘링턴과 함께 작곡
한 인물이다.
그러나 엘링턴은 화려한 40년대와는 달리 50년대에 접어들어서는 더이상의 혁신적인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한 연유로 그는 음악적 재능을 영화음악으로 발휘하고자 했는데, 50년 '아스팔트 정글(The Asphalt
Jungle)'과 59년 '살인자 해부(Anatomy Of A Murder)'가 그것.
그러나 엘링턴은 모름지기 스윙시대 발군의 빅밴드를 이끌며 명실공히 최고의 밴드리더로, 왕성한 창작자임에
틀림없다.
보통 20년이 넘도록 여러 뮤지션들이 그의 밴드를 떠나지 않았다는 사실과 아직도 많은 재즈 뮤지션들이 그를
흠오하고 있음은 그 예증이다.
많은 재즈대가들이 시대적 흐름에 따라 스타일의 변화를 꾀했던 것과 달리 엘링턴은 40년대 비밥, 50년대의
프로그레시브 재즈에도 동요하지 않고 자신의 스타일을 지속시켰다.
별세하기 1년 전인 73년, 그는 자서전 [음악의 나의 연인](Music Is My Mistress)을 완성한 바 있다.
Take the A Train - Duke Ellington
첫댓글 째매옵~좋은 글 노래 고마워!!^^덕분에 즐감상!ㅎㅎ 첵~첵~첵~
다들 A 열차를 타야하는건가요? ㅎㅎㅎ 역시 째매햄... 햄은 걍 한국에 남아주세요...ㅋㅋ
나도 한표..
그냥 들을때 몰랐는데 이렇게 들으니 기차소리 같네...